[갈라파고스]
커트 보니커트 지음
박웅희 옮김
아이필드 펴냄
내가 왜 커트 보네거트를 읽지? 나한테 종종 물어 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아마도 내 삶이 썩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그렇게 가는 거야.”
사람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울거나 웃는다. 보네거트의 등장인물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죽는다. 반면, 그의 이야기 방식은 다채롭고 입체적이면서 독특하다. 흩어 뿌리지만 결국 하나로 모여진다. 비아냥거리지만 결국엔 애정으로 맺는다.
유령이 1백만년 전 이야기를 한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상태의 유령. 죽음으로 가는 통로, 푸른색 터널 앞에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을 가려는 걸 지체하면서까지 인류의 진화 과정(두뇌가 물고기 수준으로 변한 인류)과 자기 얘기를 줄줄이 유창하게 떠든다.
이 작중 화자 레온 트라우트야말로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며, 레온의 아버지로 나오는 SF작가 킬고어 트라우트 또한 자신의 밑바닥 작가 인생을 반영한 창조물이다.
킬고어가 레온에게 말한다. 작가가 자신한테 말한다. "레온! 레온!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야. 너희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자들이 너를 그 끝이 없고 인정도 없고 참혹하고 결국에는 의미도 없는 전쟁터에 보낸 것만으로도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이후로는 영원히 필요 없을 만큼 얻지 않았느냐?" 264쪽
1천 개의 언어를 번역하고 갖가지 문학작품을 수록한 만다락스라는 기계가 나온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하면서 인용한 진지한 문학 텍스트는 소설 속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웃음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 작가에 열광하는 모든 독자들이 그렇듯, 끝까지 읽으면 마음 푸근한 이 작가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울다가 웃게 되는 순간이 있듯, 냉소가 정겨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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