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정영목, 홍인기 옮겨 엮음
도솔


여러 작가의 단편들을 모은 책을 읽는 건, 어릴 적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기분이랑 똑같다. 크고 묵직한 상자를 뜯으면서 뭔가 굉장한 게 들어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막상 열어 보면, 진짜 멋진 게 있기도 하지만, 형편없는 것도 있다.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선물세트에 들어 있는 단편소설들이 모두 맘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몇몇은 마음에 들었다. 앞에 수록한 작품들이 지루해서 좀 고생했는데, 뒤에 수록한 작품들이 재미있어서 그럭저럭 다 읽었다.

재미있었거나 인상깊었던 소설만 적어둔다.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 스테니슬라프 램: [솔라리스]처럼 철학적인 소설만 쓰는 줄 알았더니, 이런 유쾌한 단편소설도 쓴다. 최첨단 과학 기술(인공 두뇌학)을 군사 지배(전쟁) 꿈을 위해 쓰려는 사람을 비웃는 우화.

[사기꾼 로봇] 필립 딕: 이 소설은 최근 영화 [임포스터]로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 배우, 매들리 스토가 주연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아직 못 봤다. 외계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연구를 하던 올햄은 갑자기 외계인의 스파이 로봇이라는 협의를 받는다. 올햄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도주하면서 마침내 외계인 우주선을 발견하고 도착하는데... 멋진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자기 놓은 덧에 자기가 빠지는 현대인의 진퇴양난이 냉소적인 결말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채소마누라] 팻 머피: 환상소설. 여자 나무를 키우는 남자 이야기. 남자의 여자에 대한 편견을 직설적으로 말한다. 그 편견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대단하다. 진짜 페미니스트다.

[스파이더 로즈] 브루스 스털링: 사이버펑크. 유전 공학을 지지하는 Shaper와 인공 장기로 기계 인간이 되어가는 Mechanist. 그리고 이 두 사이에 외계인 우주 상인 집단 Investor. 스파이더 로즈는 Mechanist인데, 자신의 감정을 주사로 없애고 살아가는 기계인간이다. 사랑의 감정을 잃은 인간에 대한 비유랄까.

[일주일간의 공포] 래퍼디: 환상소설. 맥주 깡통 구멍으로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이 사라진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인데 정말 재미있다. 가볍게 보일지도 모르나, 작가의 유머 감각과 친근한 문체는 남다른 것 같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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