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필립 K. 딕 지음
유영일 옮김
집사재
딕의 소설은 영화로 나왔다. 유명한 [블레이드 러너]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까지. [토탈 리콜]과 [스크리머스]가 있다. 소설과 영화를 모두 봤다.
영화 [토탈 리콜]의 원작 소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는, 이 책에서 읽어보니 영화와는 다르게 썰렁한 블랙 유머다. 가상 기억이라는 설정만 따왔다. 블랙 유머가 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소설 앞부분만 영화에서 따다 썼다. 원작 그대로 따라 했으면 관객 대부분이 매표소에서 환불해 달라고 난리가 났을 거다. 영화는 소설에서 기억으로만 있었던 화성 비밀요원 활동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영화 [스크리머스]의 원작 소설 [두번째 변종]은 영화와 거의 똑같다. 끝 부분을 시나리오 작가가 좀더 극적으로 바꾸었다. 영화를 먼저 본 탓에 이 소설을 가장 빨리 읽었다.
기계와 비기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철학적 사색으로 이어지는 대사가 [블레이드 러너]와 [스크리머스]에 나오는데, 원작 소설에는 그런 게 적거나(블레이드 러너) 아예 없다(스크리머스). 그러니까, 영화는 단지 아이디어나 상황설정을 원작 소설에서 따오는 것이지, 원작 그대로 옮기진 않았다.
내가 읽은 딕의 소설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현대 문명을 비웃은 허무 개그다. [두번째 변종]처럼 공포와 스릴로 분위기를 바뀌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진지한 고민에 빠지는데,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웃는다.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긴다. "마법의 투명 지팡이"(94쪽), 하하하.
딕의 매력은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이다. TV세트로 변하는 살인 기계([아무도 못말리는 M]), 가상 기억([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스스로 진화해서 마침내 인간을 닮아가는 기계([두번째 변종]),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장악하는 송신기([죽은 자가 무슨 말을]), 시간 여행을 통해 장사를 하는 사람([매혹적인 시장]), 시간 여행으로 역사적 인물한테 영감을 주는 일([오르페우스의 실수]). 그의 소설은 아이디어 보물 창고다. 영화 감독들이 SF 영화를 만들 때, 딕의 소설에 끌리는 건 당연하다.
번역이 안 좋다는 소문이 돌아서, 이 책 사는 걸 망설였는데, 실제로 읽어보니까 아주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단, 내가 한글로 번역된 외국 소설을 워낙 많이 읽었기에 직역투 번역문에 익숙해져 있어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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