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강의 춤집에서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카뮈 이방인 태양


사형을 받기 직전에 사형수가 매그레 반장한테 옛날에 있었던 살인 사건 목격담을 이야기해준다. 매그레는 그 살인 사건을 조사하러 간 '센 강의 춤집에서' 요란스럽고 장난스럽게 노는 부부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중 한 명은 매그레가 형사임을 알아채고 친한 말투로 술을 권한다.

살인이 일어나고, 유력한 용의자는 도망을 치고, 그를 추적하는 형사들. 사건의 진실은 이미 준 힌트로는 결코 알 수 없다. 범인이 자백하기 전까지는 범인이 누구라고 명확하게 밝힐 수 없었다. 간통으로 서로 얽히고 협박에 빚에 뭐에 지쳐버린 이는 결국 자백한다. 홀가분하게 감옥행을 자청한다.

카뮈의 유명한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그 유명한 문장은 조르주 심농의 이 소설 '센 강의 춤집에서'가 출처였다. "그건 숙명과도 같았습니다... 그날따라 난 그렇게나 기분이 좋았는데... 어쩌면 태양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죠... 어쨌든 난 총을 빼앗으려고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전자책으로 읽어서 해당 쪽을 모르겠고 9장에 나온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 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이 눈물과 소금의 장막에 가려서 나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 이방인, 김화영 역

 

평범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실은 일탈과 욕망과 권태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분위기다.

 

인생의 씁쓸한 진실 한 자락


겉으로 봐서는 유쾌하고 즐거운 중산층 부르주아 부부들의 모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의 진실은 지루하고 추악하고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이 가득하다. 짜릿한 불륜을 위해 남자들이 벌이는 어릿광대 짓은, 씁쓸하면서도 진실로 그러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곧 사형을 앞둔 이한테서 옛날 살인에 대한 간략한 몇 가지 단서만 듣고 무작정 뛰어들어서 기어코 진실을 밝혀내고야 마는 매그레 반장이나, 삶의 위선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 범죄자나, 산다는 게 참 뭔지 싶은 것이다.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반장 시리즈는 추리소설의 틀거리 안에 인생의 씁쓸한 진실 한 자락을 짙고 길게 그림자처럼 드리운다. 이야기는 살인범 잡기보다는 살인범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에 초점을 맞춘다. 그 사연이라는 게 참으로 공감이 간다.

셜록 홈즈와 에르퀼 푸아로는 살인범을 찾아 응징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런 추리소설은 명쾌하다. 삶은 명확하고 문제는 해결된다. 어린이를 위한 로봇 만화영화처럼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고 정의는 승리한다. 이래서 추리소설은 애들이나 읽는 거고 문학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이 오락물이 아닌 문학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뭔가 더 있어야 한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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