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 2017년
구두 하나로 고골을 제친다
실직한 사내가 살해당한다. 가장인 그의 아내와 자식과 친척들은 그를 무시한다. 딱히 특별한 거라고는 없는 사건. 하지만 살해 당시에 그가 싣고 있었던 누런 구두는 이 사내의 일상과 너무 달랐다. 이 단서로 범인을 추적해 가는데...
실직한 가장의 죽음. '갈레 씨, 홀로 죽다'를 다시 읽는 기분이었다. 비슷해도 너무 비슷했다. 그래도 초반이 흥미롭기 때문에 어쨌거나 끝까지 다 읽긴 했다. 끝이 워낙 달라서 당혹스러웠다. 범인은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고 그냥저냥 잡힌다. 살짝 웃음 하나 남기고 끝났다. 불쌍한 라푸앵트.
"루이 투레가 누런 구두를 사 신었다는 것은 매그레가 보기에 하나의 단서였다. 우선, 그것은 해방감의 증거였다. 유행하는 구두를 신고 있는 동안은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인 듯이 생각되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즉, 도로 검은 구두로 갈아 신을 때까지는 아내와 처제, 동서들이 그에게 아무런 영향력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78~79쪽
그 흔한 구두 하나로 소시민의 고독을 이토록 절묘하게 잡아내다니. 귀신 같은 솜씨다. 왜 작가들이, 소설가들이 조르주 심농에 열광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니콜라이 고골을 우습게 제친다.
옛날 외국 소설에서 우리나라 현재를 느끼다니. 씁쓸하다. 실직한 가장 남편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아무래도 일반적인 추리소설 독자라면 실망할 작품이다. 정교한 트릭, 환상적인 추리, 놀라운 반전으로 밝혀지는 의외의 범인. 그런 것들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겠지. 도서관 종이책이 거의 새 책에 가까웠다. 인기가 없다.
하지만 매그레 심농 팬이라면 다르다. 반장님이 자기 방식대로 나쁜 년놈들 혼내주는 것과 범인 잡는 와중에도 웃음을 선사하는 것에 만족할 것이다.
# 오탈자
99쪽 밑에서 셋째 줄
내로라 할 것 없으나마 => 없으나
179쪽 위에서 첫째 줄
좋았던 옛 시절 생각이 나누먼. => 나는구먼.
전자책에도 똑같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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