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Moon Palace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0년 3월 신판 발행
2014년 7월 전자책 발행
문 팰리스
1997년 10월 초판 발행
우연의 일치를 끝까지
폴 오스터의 소설 중에 가장 좋아한다. 단연 최고다. 우연의 일치를 끝까지 밀고 나아가면서 쓴, 가장 폴 오스터다운 소설이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중요하다.
내가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 책을 읽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취직이 안 될 때 읽었고, 이젠 또 다시 실직자 신세로 전락해서 읽게 되었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더 살고 싶은 욕망이 사라질 때마다 불쑥 이 책을 읽었다. 그래서 힘을 내서 살았느냐, 그건 아니다. 멍한 상태로 오래 지냈다.
예전에 그었던 곳에 또 다시 밑줄을 그었다. 아니, 조금 다른 곳에 더 그었다. 이 소설을 여러 번 읽는 건 순전히 나 자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게 거울이다. 나의 현재 상태를 서술하는 부분을 열심히 찾을 뿐이었다.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으니.
이 소설은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절망을 얘기한다. 주인공 마르코 스탠리 포그는 입만 살아있는 백수다. 자신의 실패한 삶을 그럴듯한 말로 애써 꾸미지만, 그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솔직한 거짓말쟁이다. 그의 해석은 비참한 현실을 감추지 못하지만 자신을 위로한다.
달이 차고 기우는 이미지를 이야기는 충실하게 구현하고 끝난다. 딱히 행복 결말도 슬픈 결말도 아니다. 그저 이야기의 끝이다.
전자책으로 오랜만에 읽어봤다. 문장과 이야기가 여전히 잘 생각났다. 정말 좋아했었던 소설이었다. 이십 대 시절을 추억할 뿐이다.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다. 폴 오스터는 2024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고, 나는 오십 대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소설을 못 안 쓰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써 나가는 작가야. 네가 쓰고 있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래 어쨌든 어떻게든 결국 살아야 한다.
전자책 2차 수정 2023년 8월 25일 리뉴얼 오탈자 : 세차가 → 세차게
열린책들 전자책 오탈자는 여전하네.
2025.4.27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태원 [천변풍경] 1930년대 서울 청계천변의 풍경을 아름답게 수놓은 자수 (0) | 2024.11.17 |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 살인, 사랑, 미술의 삼중주 (0) | 2024.11.09 |
막심 고리키 [어머니] 줄거리 민중 언어 소설 작가의 성실한 글쓰기 (0) | 2024.10.28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죽음과 절망 속에서의 사랑 (0) | 2024.10.24 |
한강 [여수의 사랑] 어둡고 아름답게 펼쳐진, 허구의 절망감 (0) | 2024.10.14 |
김영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로봇 블랙코미디 (0) | 2024.10.08 |
임철우 [등대] 절망적인 상황에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다 (0) | 2024.10.08 |
임철우 [그 섬에 가고 싶다] 마음속에 따뜻한 별 하나를 심어 주는 소설 (0) | 2024.10.08 |
[국어시간에 소설읽기 1] 임철우 단편소설 포도 씨앗의 사랑 (0) | 2024.10.08 |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열린책들 - 뜻이 애매한 것 (0) | 2024.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