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995년 초판
2012년 개정
2018년 개정판
2021년 큰글자

4B 연필을 오른손에 쥐고서, 임철우의 아름다운 글에 반했다는 이 사람의 글에 그림 그리듯 밑줄 그으며 낱말 하나 하나를 눈으로 꾹꾹 눌러 읽었다. 

어둡지만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발하는 문체다. 시적인 문장을 쓰고 싶었던지 같은 단어를 반복하고 사전에 없는 낱말 '찬결'까지 썼다.

한강의 소설집 '여수의 사랑'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손창섭의 인물들처럼 한 빛깔이다. 이름과 생김새와 성과 나이가 조금씩 다를 뿐 다 같은 이들이다. 현실감이 없어 작위적인 느낌을 준다.

손창섭은 육이오 전쟁 후 폐허의 상황이 있었다. 반면, 한강은 그 현실적인 상황이 없다. 진눈깨비 같은 허구의 인물들을 창조하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불균형적이고 비정상적인 가족 관계나 교통 사고나 갑작스러운 죽음과 질병으로 설정하고는 그만이다.

절망이라는 개념을 위해 온갖 등장 인물이 처해진 상황과 운명이 작가에 의해 조율되었다는 혐의가 짙다. 현실적 상황과 사회적 상황은 그의 소설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허구다. 한강이 소설에서 어둡고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 절망과 허무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도 왜 이게 마음에 드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이게 분명히 말짱 뻔하게 가짜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진짜로 믿으려고 하고 빠져든다. 물론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 그렇다. 소설이란 이런 것이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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