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로 저택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황금가지
김교향 옮김/해문출판사
The Hollow (1946)
그토록 복잡하고 기묘하고 놀라운 트릭을 선보였던 애거서 크리스티가 이번 소설에서는 의외로 평범하고 산만하고 흐지부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이한 캐릭터를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흥미롭게 읽긴 했다.
한 남자가 죽고 용의자는 세 여자다. 부인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다. 살인 현장에서 총을 쥐고 있었으니까. 바보 아니야? 스스로 나 범인이라고 밝히는 꼴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여자가 그걸 빼앗아 물속에 버린다. 게다가 총 맞아 죽어가는 남자가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른다. ‘헨리에타!’ 범인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현장에는 없었으나 전날 다툰 옛 애인이 있다.
헨리에타. 오, 이런 여자가 정말 있을까. 머리 좋고 연애 잘하고 동정심도 있다. 푸아로를 이기려고 했던 것은 무모했지만. 정신없이 수다스러운 4차원 아줌마 레이디 앵커텔은 또 어떤가. 후반부에 결정적 힌트를 알아챈다.
권총 트릭인데, 누가 범인이더라도 관심이 없었다. 이토록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았던 추리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동정이 가는 인물이 없어서 그런 듯하다.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는 남녀들이라니. 그걸 방관하는 여자는 또 뭔가.
사랑의 화살표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 명의 여자(배우, 조각가, 주부)가 잘난 남자를 거의 숭배하듯 사랑한다. 딱히 잘난 건 없는 남자 에드워드는 어려서부터 헨리에타를 사랑한다. 아무리 결혼하자 사랑한다고 헨리에타한테 말해도 소용없다. 여자의 대답은 언제나 노다. 미지는 그런 에드워드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에드워드는 마지못해 미지한테 청혼하고 그마저 거부당하자 가스 틀어 놓고 자살을 시도한다. "헨리에타는 날 원하지 않았어.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았지." 아이고, 이 양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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