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농 - 매그레 반장, 삶을 수사하다]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성귀수, 이상해, 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11년 3월 발행
전자책 없음
750원짜리 책이다. 정말? 정말이다. 어째서? 새로 나올 매그레 시리즈의 홍보용 책자다. 매그레 시리즈를 읽으려는, 읽은, 읽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 자료들이 가득하다.
광고/홍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강조점이 엉뚱한 데 꽂혀 있다. 조르주 심농이라는 작가에 '관심'을 갖는 데는 그런 것들이 흥미롭겠으나 작가를 '이해'하는 데는 방해가 된다. 유명인사가 되면 별별 말이 증폭되어 떠돌아다니기 마련이라서.
1만 명의 여자와 잤다는 얘기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표현한 문장을 제거한 채 앞부분만 편집해서 돌아다니는 말이었다. 본래는? 섹스가 "정상적 행동의 진부한 측면"일 뿐이며 "성적인 집착이 아니라 소통의 욕구"이고 결정적으로 섹스는 "인간적 접촉을 구해도 공허함을 쥐게 된다"는 씁쓸함이다. 111~112p.
조르주 심농이 쓴 매그레 시리즈는 과연 어떤 소설인가? 임호경의 말이 가장 정확한 설명이다. "분명 추리소설이기는 한데 도스토옙스키 분위기가 풍기는 작품이었습니다. 발자크적인 면도 눈에 띄었습니다." 203p
도스토옙스키 분위기란 갈 데까지 간 사람의 심리적 측면을 깊게 파고들어 끝장을 내버리는 파괴적인 문장들을 뜻하고, 발자크적인 분위기란 다양한 인간 군상의 드라마를 역동적이면서 사실적으로 묘사해내는 것을 뜻한다.
열린책들에서 매그레 시리즈의 국내 출간을 망설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세일즈 포인트가 애매했다. 오락소설도 아니고 문학소설도 아니니. 셜록 홈즈 같은 것을 기대한 독자한테는 매그레에 게임 같은 것이 없어 실망한다. 문장이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수수께끼 풀이 재미는 거의 없으니 다시는 안 찾는다. 추리소설을 뛰어넘는 소설이 아니라 무늬만 추리소설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인생극장이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추리소설은 대중소설이다. 문장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인간 심리를 깊게 파고들지도 않는다. 사건 해설을 위해 잠깐 짚어 줄 뿐이다. 핵심은 수수께끼다. 범죄자의 사연이 아니다. 트릭의 재미를 추구한다. 사람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는 일은 없다. 사연? 알고 싶지 않아!
해외에서는 어마어마한 작가로 그의 매그레 전집을 갖고 있는 것이 일상인데 국내에서는 추리소설 애호가들이 별종 취급한다. 매그레 시리즈는 75권 전부를 기획했으나 21권에서 출간을 멈추고 말았다. 더는 안 나온다.
쓰고 싶은 소설과 팔아야 하는 소설 사이에 갈등한 심농은, 자기 나름대로 전략을 짰다. 이상적으로는 고골과 도스토옙스키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자신이 쓴 소설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심농은 대중소설 편집자의 주문대로 문학적인 단어와 표현을 제거해 버린다. 일상적으로 자주 쓰는 단어로 문장을 쓴다. 추상적인 단어를 배재한다. 구체적인 단어만 나열해서 문장을 만든다.
"형용사, 부사, 단지 어떤 효과를 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든 단어, 단지 문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든 문장. 아름답기만 한 문장은 잘라 버립니다. 내 소설 속에서 그런 것을 하나라도 발견하면, 없애 버리죠." 88p
매그레 시리즈는 소설의 분량을 엄격하게 제한해 놓았다, 중편과 장편의 중간 정도로.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게 했다.
그는 예술가다. 소설가는 밥벌이를 위한 연극이다. 심농은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썼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들을 통해, 글쓰기 전체를 통해 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89p
심농은 대중소설가의 가면을 쓴 문학소설가였다.
"내겐 글쓰기에 대한 아주 강한 의지가 있습니다. 나는 내 길을 갈 겁니다." - 조르주 심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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