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형사]
피터 러브시 지음
하현길 옮김
시공사 펴냄

 




예전에 이 책을 읽다가 포기했다. 가까스로 고려원에서 펴낸 두 권짜리 책을 도서관에서 대여했지만 진도가 착착 나가지 않았다. 피터 러브시가 '가짜 경감 듀'에서 보여준 웃음은 여전하지만, 주인공인 늙다리 형사한테 정이 가지 않고 사건 진행이 지루했다. 읽다가 잤다.

시공사에서 한 권짜리로 새롭게 나와서, 이참에 어떻게든 끝내자고 책장을 폈는데 역시나 읽다가 잠이 들었다. 같은 얘기를 세 번 반복해서 이렇게 뚱뚱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이야기의 경제성을 따진다면 그다지 좋은 소설은 아니다. 

각 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여준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제인 오스틴의 편지와 관련된 영문학 지식을 늘어놓는 데 재미를 붙인 지은이는 미스터리의 본연을 망각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다.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덮고 싶었다. 뒤표지에 '예상치 못한 감동'이라고 써 있지 않는가. 여기까지 읽고서 포기하면 이 소설은 영원히 읽지 못한 미스터리로 남는다. 끝장을 내자. 마침내 마쳤다. 감동? 그래 있었다!

피터 다이아몬드는 우직한 형사다. 취조와 탐문을 컴퓨터 검색과 DNA 검사보다 낫다고 믿는 사람이다. 대단한 추리력의 소유자도 아니다. 무술 실력이라도 있나 하면 그렇지도 않다. 소년한테 급소를 맞고 범죄자한테 삽으로 머리통 얻어 맞아 사망 직전까지 갈 뻔한다. 형사 맞아? 진지하게 묘사한 걸 봐서는 절대 웃기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사건 수사하다가 사표 쓰고 경찰서를 나온다. 아, 뭐야?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 추리소설의 전통을 따른다. 이 사람이다 싶으면 아니고 저 사람이다 싶으면 또 아니다. 그럼 결국 이 사람이구나 했어도 역시 아니다. 의심조차 안 했던 인물이 범인으로 드러난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기대하진 마시라. 그런 종류의 반전이 전혀 아니다. 이 사람이 아닙니다. 저 사람도 아닙니다. 범인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이런 식이다.

지루할 때쯤 되면 어김없이 넣은 웃음은 억지스럽다. '가짜 경감 듀'에서는 유머가 이야기 전반에 흐르기 때문에 자연스럽지만, '마지막 형사'에서는 진지한 수사 중에 튀어나와서 생뚱맞다.


하현길의 평이 옳다. "기승전결 중 승과 전이 뭉뚱그려져 숨이 막힐 듯한 스릴을 즐길 수 없다."(588쪽) 결론이 툭 나온다. 증거와 사실로 범인 잡는 재미는 별로다.

끝까지 읽어 봐야 이 소설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명확하게 진술하지 못하는 검시관과 컴퓨터 데이터 베이스로 용의자를 찍어 볼 수는 있어도 진짜 범인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잡는 젊은것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수사대는 절대 잡을 수 없었던 자가 살인자였다. 구수헌 청국장 냄새가 진동하는 결론으로 마지막 형사의 매력을 발산한다. 진짜 형사란 이런 사람이구나. 우리나라 드라마 수사반장이 생각난다.

2011.08.04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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