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퀴즈 플레이]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추리소설을 읽으려고 이 책을 잡은 분은 없을 듯하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 이름 때문에 읽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리라. 그의 자서전 '빵굽는 타자기(Hand to Mouth)'에서 이 탐정소설은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재빨리 썼다고 했다. 이 소설은 당장에 팔리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헐값에 팔렸다. 폴 벤자민이라는 필명이 찍혀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두 가지를 명심하길 바란다. 첫째, 정말 잘 쓴 소설일 거라 기대하진 말자. 둘째, 먼저 폴 오스터의 소설들을 읽은 후에 이 소설을 읽자. '스퀴즈 플레이'는 전형적인 폴 오스터 소설이 아니다. 자기 스타일을 확립하기 전 습작이다. 시험 삼아 장편소설 하나를 완성했다.
작가의 자기 취향이 물씬 풍긴다. 야구 사랑. 사건 의뢰인 조지 채프먼은 전직 야구 선수다. 이 소설의 제목 스퀴즈 플레이(squeeze play)는 야구 용어다. 점수를 내기 위해 밀어내기 번트하는 일을 뜻한다. 미스터리의 결정적 힌트다. 갈취, 협박이란 뜻도 있어서 이야기의 배경을 암시한다. 탐정 맥스 클라인은 폴 오스터와 닮은 꼴이다. 뉴욕에 사는 유태인이다. 입담이 대단하다. 아내와 이혼했다. 아들이 하나 있다. 7년간 공부하고 졸업한 컬럼비아 대학이 배경이다.
폴 오스터의 팬이라면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가 본격적인 자기 소설을 쓰기 전, 순수하고 어리숙한 문장을 읽을 수 있다. 자기 스타일로 깔끔하게 다듬기 전 문장을 읽는 것은, 스타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배우로 치자면, 유명한 배우가 되기 전에 포르노 영화에서 나체로 나오거나 엑스트라로 출연한 모습을 보는 셈이다.
여기저기 폴 오스터가 나중에 쓸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 보인다. "마치 자기 앞으로 달려오는 트럭을 갑자기 발견하고 깜짝 놀라, 그 트럭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피할 시간은 전혀 없었다. (305쪽)" 이 문장은 '우연의 음악'의 마지막 부분이다. 그 소설에서는 이렇게 썼다. "멈출 수 있는 시간, 일어나려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었다. 나쉬는 브레이크를 꽉 밟는 대신 액셀러레이터를 더 세게 밟았다."
초기 작품의 단어와 문장은 한 작가의 머릿속에 남아 다음 작품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을 읽는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초등학교 소풍에서 하는 보물찾기다. 이 재미는 이강백한테서도 맛볼 수 있다. 그의 등단작 '다섯'의 특정 단어들은 후속작에서 고스란히 다시 나온다.
폴 오스터가 이 소설에서 문장을 자기 식대로 밀고 나아가기 주저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의 재능이 의심스러웠으리라. 고민과 방황이 그대로 묻어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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