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탐정 소설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 지음
송기철 옮김
북스피어



탐정소설 애독자를 위한 책이다. 탐정소설을 쓰려는 작가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탐정소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수많은 작품을 소개받을 수 있다. 여기서 문제 아닌 문제점은 소개된 책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이 안 되어 있다는 점이다. 영어 독해가 되는 독자라면 읽을거리가 대박으로 터진다. 프랑스와 독일어까지 된다면 추리소설 세계 명작에 파묻혀 숨 쉬기 힘들 지경으로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는 수많은 작품들을 언급했다.

윌러드 헌팅턴 라이트의 독서량에 치가 떨린다. 이 인간은 사람이 아니다. 책 읽는 기계다. 이 책 편집부 후기에 이 괴물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읽으면 기가 막힌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비롯하여 세 개의 대학에 다녔으며 예술 평론가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술이 돈 벌어주나. 대중오락물이 아니면 돈이 안 된다. 예술 감식안과 학식은 뛰어나지만 경제적 궁핍을 피할 수 없던 차에 병까지 걸린다. 담당 의사는 그에게 독서를 금지했는데, 희한하게도 '추리소설'만은 읽도록 허락했다. 아마도 학구적인 독서는 몸에 무리를 주지만 즐거움을 추구하는 독서는 건강에 좋을 거라 여긴 모양이다.

라이트는 병원 침상에서 무려 2천 권에 달하는 책을 2년 동안 광속으로 먹어치운다. 엄청나게 많은 탐정소설들, 당시 시중에 나와 있는 거의 모든 추리소설들을 거의 다 읽어치운 후에 탐정소설을 써낸다. '밴 다인'이라는 필명으로 '파일로 밴스' 탐정이 나오는 소설을 출판한다. 밴스 시리즈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미국 출판시장을 장악한다.

그는 부자가 된다. 이 책 편집부 후기는 작가가 "투병 생활을 하면서 얻은 빚을 일찌감치 다 갚는 것은 물론 값비싼 펜트하우스를 구입하여 거주하였고 화려한 생활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하며 비참한 말년은 언급하지 않았다. 라이트는 대공황 이후 다시 빚에 찌든다. 음주와 약물 중독에 빠진다. 관상 동맥 혈전으로 세상을 떠난다. 향년 51세였다.

'위대한 탐정 소설'은 학구파 순문학 평론가다운 글이다. 대상이 대중소설이나 그 접근법은 고급스럽다. 구약성경 다니엘서 외경으로 전하는 수산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일야화, 헤로도토스, 제프리 초서, 키케로를 언급하신다. 단서를 뜻하는 영어 단어 클루(Clue)의 유래는 크레타 미궁에서 미노타우루스를 처지하고 안전하게 돌아오도록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건넨 실타래(Clew)라고 말씀하신다. 각 나라별 비교문화 분석까지 하신다. 여기에 무수한 작품들이 언급되며 간략한 비평이 쏟아진다.

탐정소설은 수수께끼의 범죄를 다룬 소설이다. 탐정소설에 연애는 금지라고 말하는 부분은 무척 공감했다. 애 여사님의 푸아로 탐정소설은 대놓고 연애질을 한다만. 순수 퍼즐식 탐정소설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괴기소설 분위기라든가 스파이소설 분위기를 결합시키지 말고 퍼즐을 푸는 즐거움을 만드는 데 집중하라는 얘기다. "탐정 소설은 일반적으로 소설의 원칙에 지배받기보다는, 오히려 수수께끼의 영역에 속한다. 이는 기실 소설의 형태로 정교하게 확장된 퍼즐의 한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

탐정소설에는 연애 금지다. 옳소! 찬성! 동의합니다!

꼬장꼬장한 라이트 아저씨는 이 글 '위대한 탐정 소설'에 만족하지 못하고 필명 밴 다인으로 '탐정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이란 글을 또 써낸다. 결국 필명 속에 숨어있던 라이트는 1928년 가을 정체를 밝히고 만다. 

참고로, '탐정소설을 쓰기 위한 스무 가지 규칙'은 네이버 캐스트에 전문이 번역되어 있다. 가서 한 번 읽어 보길 바란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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