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사
이청준 지음
열림원
장편소설 <조율사>는 이청준이 월간 '사상계'사에 일할 때 초고를 썼고, 그 후 1971년 계간 <문학과 지성>지에 발표했다. <작가의 말>로 봐서, 이 소설은 분명 그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무기력한 현실에서 글을 못 쓰고 방황하는 젊은 소설가의 고뇌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억압받는 사회 현실에서 문학도들인 시인 송 교수, 비평가 지훈, 소설을 쓰는 팔기와 기형, R일보 문화부 기자인 김형, 그리고 나는 손님이 별로 없는 기적(汽笛)에서 문학 이야기나 결론도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송 교수가 그들에게 편지 하나를 남기고 돌연 그 모임을 떠난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우리는 지금 조율하는 사람들로, 어느 특정인(정치가, 독재자, 권력자)의 비위에 거슬리는 것 때문에 연주(작품 발표)를 하지 못하고 계속 조율만 하다가 결국 연주자가 아닌 영원한 조율사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후, 그들은 조율이라는 은어(隱語)를 쓰면서 만난다. 그런 조율만 신경 쓰던 중 비평가 지훈이 연주를 한다. <비극적 지식인론>이란 제목으로 지식인의 실천을 강조하며 나태한 문학인을 비판하는 글을 쓴다. 나는 글도 안 써지고 애인도 떠나고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위장병을 치료하기 위해 단식을 시도하는데……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비평가 지훈이 쓴 <비극적 지식인론>과 그에 반박하는 송 교수, 그리고 그런 송 교수를 반박하는 주인공의 진지한 문학론이었다. 작가가 진정 외치고 싶었던 소리였으리라.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현실에서의 창작 행위란 무엇인가? 작가는 단순히 시대 의식을 표현하는 자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그런 사회적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가. 진정한 문학은 무엇인가. 세월이 지나도 물음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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