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지음
권영주 옮김
검은숲 펴냄
2011년 8월 발행
전자책 O


보니까 딱이네. 여자애가 거짓말 하는 거네. 더 궁금할 게 없었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더 궁금하지도 않고 더 알고 싶은 것도 없다면 왜 더 읽는가. 어느새 나는 계속 읽고 있었다. 

그럴 때 있지 않은가. 영화 보는데 재미는 없는데 배우가 마음에 들어서 끝까지 다 보는 경우 말이다. 소설책도 그럴 때가 있다.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큰 재미가 없는데 문장이 좋은 것이다.

문장이 좋다. 차분하고 착실하다. 성실하게 나아간다. 인물들을 소소하게 세밀하게 표현해낸다. 게다사 살포시 우스개까지 얹는다. 이 정도 필력이면 아무리 시시한 이야기라도 읽혀진다. 벼룩 죽이기 대화 장면에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실제 있었던 옛날 사건을 순화하고 이름 바꿔서 다시 그 진실을 찾아보자는 의도는 이해했는데, 살인 사건도 아니고 실종 사건이고 드러난 진실도 딱히 놀랍지도 않으니, 심심했다.

마지막 장면은 로맨틱 코미디다. 그냥 연애소설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전자책으로 정독했다. 읽기 편해서 좋다. 깨끗하다.

두 번째 읽은 거라서 대충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로맨스, 연애소설로 읽었다. 알콩달콩 달달하니 재미있었다.

조세핀 데이의 유머는 소소하게 은근히 웃긴다. 벼룩 잡기로 이렇게 웃긴다.

"댁도 벼룩을 물에 빠뜨려 죽이나요, 블레어 씨?"
"아뇨, 전 눌러 죽입니다. 제 여동생은 비누를 들고 쫓아다니곤 했죠."
"비누라뇨?"
사프 부인이 호기심을 보였다.
"물렁한 쪽으로 때리면 벼룩이 들러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 참 흥미롭기도 하지. 처음 들어보는 기술인데요. 나도 다음에 한번 해봐야겠군요."

추리소설로서는 정말이지 별 하나도 아까울 지경이다. 결정적 증인이 갑자기 등장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식이라니. 주인공이 끈질긴 수사와 뛰어난 추리력으로 해내는 장르 규칙은 따를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작가 본인의 분신으로 보이는 인물, 매리언을 통해 이 사건의 진짜 피해자는 범인의 어머니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며 공감과 동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 오랜 세월 같이 살고 사랑했던 사람이 그냥 존재하지 않기만 하는 게 아니라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만큼 더 충격적인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사랑했던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한테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고 전에도 없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한테 대체 뭐가 남아 있죠?"

대개의 추리소설, 법정소설에서는 정의실현의 승리감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원고도 피고도 아닌, 범인을 사랑했던 엄마에 대한 동정으로 마무리된다. 그 고통을 강조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감동을 조세핀 테이한테서 느낄 줄이야. 예상밖이었다.

이야기는 물론 지루하다. 매번 나오는 그놈의 관상 이야기는 짜증난다. 하지만 인물 묘사력은 명품 도자기 같다. 손으로 작고 알차게 빚은 만두 같은 유머는 맛있다. 나, 이 작가 사랑한다.

덧붙임 : 서양의 현대 마녀 사냥 이야기는 비슷했다. 셜리 잭슨의 장편소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랑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은 거의 같은 모습이다. 집이 불타고, 이를 즐거워 하는 주변 사람들이 즐거워한다. 다른 점은 그들의 최후였다. 잭슨 이야기에서는 마녀들이 계속 거기 살았으나 테이 이야기에서는 그곳을 떠난다.

2024.7.29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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