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에 완성했으나 계속 퇴짜를 맞았다. 출간하겠다고 했던 곳에서는 1년 동안 보관했다가 1920년 출판한다. 원고료는 보잘것없었으나 이를 계기로 자신감을 얻어 작가는 이후 80여 권을 써낸다. 이 소설을 시작으로 불멸의 추리소설 황금기 역사가 쓰여진다.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의 첫 등장이자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데뷰작이다.

자서전에 보면, 애서거는 이 책 출판 당시만 해도 푸아로라는 캐릭터로 추리소설을 많이 오래 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편으로 끝날 거라 여겼다. 첫 작품에서 푸아로는 나이가 꽤 들어서 은퇴한 전직 경찰로 나오니까.

푸아로의 마지막 '커튼'은 바로 이 작품 이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 완성 후 원고를 금고에 넣어 두었다. 주인공이 죽으면 연재 시리즈물을 만들 수가 없으니까.

장편소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유산을 둘러싼 독살이다. 누구도 범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다들 동기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여러 인물을 균형있게 배치한 솜씨가 좋다.

단서와 기이한 일을 모래알처럼 뿌려놓았다. 책에는 저택의 2층 평면도, 잉글소프 노부인의 침실 도면, ll and만 남은 종이 조각, 몇 마디 글을 휘갈겨 쓴 편지봉투 등 수수께끼 조각들이 종합선물세트처럼 담겨 있다. 범인잡기 게임을 위한 소도구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독약, 애증, 유서, 밀실을 잘 섞었다.

곳곳에 긴장 풀라고 유머를 넣었다. 갑작스러운 청혼이라니, 생뚱맞게 웃겼다. 푸아로는 결벽증이 있는데, 이같은 주인공의 특징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옷차림은 언제나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말쑥했다. 아마도 그에게는 먼지 하나가 총탄으로 입은 상처보다는 더 큰 고통을 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해문출판사 2002년판 34쪽)

지은이는 제1 차 세계대전 동안 병원 약국에서 일했던 경험 덕에 독약 스트리크닌에 대해 자세히 써 놓았다.

이야기는 헤이스팅스 대위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한다. 자연스럽게 화자가 독자의 입장이 되면서 작가의 입장인 푸아로한테 사건의 해결을 듣는다. 초반 이야기 분위기가 아서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와 유사하다.

친절하게도, 푸아로는 각 의문점을 정리해서 알려준다. "첫째는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 버린 커피잔이야. 둘째는 열쇠가 꽂힌 채로 놓여 있는 편지 상자이고, 셋째는 바닥에 묻어 있는 얼룩일세."(해문출판사 2002년판 64쪽)

추리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푸아로가 헤이스팅스한테 말한다. "한 가지 사실은 다른 또 하나의 사실을 이끌어 주지.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계속 처리해 나가는 거야. 다음 사실이 앞의 것과 일치하는가? 만일 일치한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 아주 훌륭해!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다음 사실들을 추적할 수 있지. 그런데 다음에 나타난 것이 아주 조그만 것이라도 앞의 사실과 어긋난다면, 우리는 계속 추적해 나갈 수가 없어! 아하, 바로 이것이 이상하구나 하고 생각해야지. 거기엔 뭔가 빠진 것이 있다는 걸세. 감추어져 있는 고리의 연결 부분이라고나 할까."(해문출판사 2002년판 55~56쪽)

비범한 관찰력과 뛰어난 추리로 이상한 사건을 풀어내는 탐정소설의 계보라. 뒤팽이 홈즈를 낳고 홈즈는 푸아로를 낳으니라. 이 탐정들의 특징은 고스란히 오늘날까지 전해져 닥터 하우스와 몽크에까지 이른다. 하 박사는 홈즈의, 몽크 씨는 포와로의 자손이다.

코난 도일이 홈즈가 나오는 첫 소설 '분홍색 연구'에서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을 인용하듯, 애거서 크리스티는 푸아로가 처음 등장하는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에서 홈즈를 인용한다. 헤이스팅스의 입을 통해 말한다. "오, 나는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이 되고 싶습니다."(해문출판사 2002년판 18쪽)

작가 본인은 추리소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에블린 하워드 양은 헤이스팅스에게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며 "터무니없는 소설도 많이 있어요. 범인은 마지막 장에서 등장하지요. 누구나 깜짝 놀라서 말문이 막혀 버리게 말이에요."(해문출판사 2002년판 18쪽)라고 말한다. 작가는 이 말을 이 작품에서 실현한다. 

◆ 1회독 2011.7.10 (해문 2002년판)

다시 읽어 보니 역시 대단하다. 애 여사는 미스터리 천재다. 첫 작품이 이 정도다! 이토록 정교한 수수께끼 구조물을 만들어내다니, 경이롭다. 남녀의 미묘한 연애 심리와 범죄자의 기이한 심리까지 묘파해내는 솜씨라니. 작가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독약 전문 지식을 활용했다.

◆ 2회독 2014.6.8 (황금가지 2013년 2판)

부록으로 작가 인터뷰가 실렸다. 언니의 말에 반발해서 쓴 소설이라고. "'너까짓 게 감히 미스터리소설의 걸작을 쓸 수 있을라고!' 하던 언니의 말에 반발하다시피 쓴 것이 바로 이 <스타일즈 저택 괴사건>인데, 여기서 처음 내가 좋아하는 포아로가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지요." 300쪽 

◆ 3회독 2014.7.5 (동서문화사 2003년 중판)

번역서로 읽을 때는 쉽지만 원서로 읽으니까 어렵네요. 이유는 당연하게도 작가가 영국식 구어 표현을 많이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영어시험에는 대개는 나오지 않는 것들이죠. 사전으로 찾아 보면 거의 끝부분에 해당 뜻이 있습니다. 영어는 다의어라서 문맥상이 뭐가 알맞은지 골라야 하기 때문에 글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면 오역이 필연이더군요.

1장에 나오는 단어와 표현을 살짝 몇 개만 살펴 보죠.
I had been invalided home from the Front : invalid가 수동형으로 쓰여 상이군인으로 송환되다는 뜻입니다.
We had a good yarn about old times : yarn는 구어로 잡담이란 뜻입니다.
Rotten little bounder too! : bounder는 영국 구어로 상스러운 사내라는 뜻입니다.
it's making life jolly difficult for us : jolly는 영국 구어로 '대단히'를 뜻합니다.
mater : 영국 구어로 어머니를 뜻합니다. 아버지는 pater고요.
A great sport : 뛰어난 스포츠라고요? ㅋㅋ. 아닙니다요. 여기서 sport는 사람을 뜻합니다. 재주 많은 사람.
as game as they make them : 게임이 형용사네요. ㅎㅎ. 의지 있는, 투지만만한, 원기 왕성한.
the mater cottoned to him at once : 어머니께서 단번에 그를 코튼했다? 뭔소리야? 솜옷을 입혔다는 말인가? ㅎㅎ. 구어 표현으로 cotton to는 좋아지다라는 뜻이래요.
번역서에 그리도 간단하고 쉬운 문장이 원서에서는 이토록 이해하기 어려웠던 겁니다.

영어 원서로 통독했다. 문장 구조는 간단해서, 허기야 문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수준으로 평이하게 쓰는 편이라, 읽기는 수월했다. 다만, 어휘나 표현이 가끔씩 낯설고 어려운 게 있어서 아주 쉽게 술술 읽지는 못했다. 재판 과정은 지루했다.

이번이 4회독인데, 여전히 경이로운 작품이다. 어떻게 이게 데뷰작이냐고, 세상에. 반전에 오해에 함정에 여러 사람의 사연이 꼬여서 복잡해 보이나 푸아로의 경쾌하고 명쾌한 수사는 웃음과 약올림을 섞으며 착착 진행된다. 용의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의 의문과 수수께끼를 차곡차곡 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풀어내며 마침내 살인범을 발표하는, 불꽃놀이처럼 작열하는 푸아로의 파이널이 멋지다.

브라보, 애거서. 브라보. ◆ 4회독 2011.11.6 (영어 원서)  ◆ 5회독 2015.7.15 (영어 원서) ◆ 6회독 2019.11.9 (영어 원서)

아무래도 영어원서로 읽으면 번역본으로 읽을 때보다는 더 천천히 자세히 신중하게 한 문장씩 꼼꼼하게 읽게 된다. 하지만 모르는 단어 숙어가 워낙 많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종종 건너뛰고 읽었다. 아, 정말이지 낯설고 어려운 영국영어 표현이 많이 나왔다. 영어 익히기에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소설이 좋다고 추천하던데, 나는 추천하지 않는다. 가끔씩 나오는 짤막한 불어도 은근히 거슬렸다.

그래도 재미있었다. 다소 복잡하고 약간 지루했지만 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추리소설이 아니라 연애소설로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심쿵한 문장이며 자잘한 연애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하는 것을 보면, 연애소설로도 성공했을 것 같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메리 웨스트매컷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들은 로맨스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울했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애거사 크리스티
김남주 황금가지
2015년 7월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소설 중에 가장 여러 번 읽은 책이다. 역시 대단한 작품이다. 이게 첫 추리소설이었다는 게 더욱 놀라운 일이다. 백 번 읽어도 이 정교한 미스터리 구조물의 찬란한 빛이 희미해지지 않으리라.

1판 2쇄 255쪽 오탈자
그렇데 → 그런데

◆ 7회독 2025.1.16 (황금가지 2015년)

국내 번역본은 셋이다.

1. 동서문화사, 미스터리 북스 123번, 2003년판, 스타일즈 저택 괴사건
오탈자가 몇 군 데 있다. 가끔 원문을 무시하고 자기 좋을 대로 자기 마음대로 번역한 문장이 종종 있다. 문장을 아예 빼먹고 번역 안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읽기에 불편하진 않았다. 부록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인터뷰를 실었다.

2-1.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2, 2013년 2판,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표지는 독자를 약올렸던 커피잔이다. 한 개 없어졌다고 쇼를 한다. 오탈자가 많다. 저택 평면도에는 '존 잉글소프의 방'이라고 잘못 적혀 있다. 존 캐번디시다. 비교적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다. 오역. 236쪽 다른 하인들이 눈물을 끌썽이며... 원문에는 눈물 흘린다는 말은 없었다. all eyes and ears(신경을 곤두세우다)로 나올 뿐이다. 237쪽 노골적으로... 원문에는 unfeignedly(꾸밈없이)로 나온다.

2-2.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1, 2015년 1판,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지난 판본의 저택 평면도 오류를 수정했고 오탈자를 바로잡았다. 푸아로가 프랑스어로 말하는 부분을 번역에 반영해서 발음을 우리말로 적은 후에 해당 번역을 가로 안에 넣었다. 예를 들면, 비엥!(좋습니다!) 이런 식이다. 

3-1. 해문 1990년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문고판. 작고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 좋다. 옛날 번역이라서 예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황금가지 번역본보다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빨간책으로 기억하는 세대다. 표지가 고딕 성당을 자르는 거대한 톱니 바퀴다. 해문 표지는 소설 내용을 전혀 짐작할 수 없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인기다. 이상한 인기다.

3-2. 해문 2002년판,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
표지에 제목만 있다. 하드커버 양장본. 휴대성이 떨어진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12장 초고의 비밀

2024년 9월 24일 발행한 이 페이퍼백 영어원서( ISBN 9780063375901)에는 이 책 이 전에는 출판되지 않은, 12장의 초고를 부록으로 수록했다.

이 12장은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이제는 탐정소설의 크리셰가 되어 버린, 푸아로 파이널이다. 놀랍게도, 초고에서는 탐정이 법정에서 진술하는 식이었다.

읽어 본 바로는, 당연하게도 추리 자체는 바뀐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용의자들을 다 모아놓고 범인을 밝히는 식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이 영어원서 책 맨 앞에 있는 소개문에 따르면, 이 책의 출판사 사장 John Lane이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한테 그렇게 바꾸라고 요구했단다. 보라, 편집은 신의 영역이다.

초고를 수정하면서 더 확실하고 더 명확하게 추리를 설명했다.

이 첫 장편소설 추리소설 이후 푸아로 파이널이 반드시는 아니지만 빈번하게 나온다.

이 소설을 탄생시키도록 한 사람 둘, 어머니와 언니

애거서 크리스티는 집안에 문학 야망을 지닌 사람이 자신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다. 어머니와 언니.

첫 장편추리소설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을 어머니한테 바친다는 헌사는 그냥 쓴 게 아니다. 실제로 이 장편소설을 써서 완성하도록 응원했던 사람이 그녀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끝내주는 추리소설을 쓰도록 부추긴 것은 언니였다. "I bet you can't write a good detective story." "내 장담하는데, 넌 좋은 탐정소설을 쓰지 못해." 잘 봐라. 그냥 추리소설이 아니다. 잘 쓴, 좋은 추리소설이다. 그래서 아예 끝내주는 추리소설을 써버린다.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은 그녀가 처음 쓴 '추리'소설이지 처음 쓴 소설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너무 기 죽지는 마라. 이미 추리소설 잘 쓰는 재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 맞긴 하지만.

2025.2.2

13장 읽어 보니, 오류 혹은 억지가 있다. 큰 문제나 잘못은 아니긴 하다. 자신의 손글씨를 흉내내어 쓴 편지를 의심하지 않다니 이상하다. 익명의 편지가 내 글씨체로 써 있는데, 그걸 믿고 편지에서 가라는 곳으로 간다?

2025.2.9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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