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2 분신 -
:: 자의분열 도플갱어 다중인격 소설
도스토예프스키는 처음 쓴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일약 문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가 그 다음에 야심차게 쓴 '분신'으로 추락한다. 그토록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던 독자며 비평가들이 갑자기 돌아서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 본인은 이 작품의 성공을 확신했다. "골랴드낀(소설의 주인공)은 저를 성공의 절정으로 데려다 주었답니다." 실제로는 당시에 망했다. 하지만 오늘날 비평가와 독자들한테는 격찬을 받았다.
'분신'은 분열된 자아, 그러니까 똑같은 자신인데 정확히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는 환상을 그린 소설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자신과 꼭 닮았으면서 자신보다 훨등한, 분신(도플갱어)이 갑자기 나타나서 서로 갈등한다는 이야기다.
자아 분열 혹은 다중 인격, 또는 도플갱어를 다룬 이야기는 대개 복잡하고 애매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때로는 아주 대박나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개인적 체험으로는 대개 다 별로였다.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쾌감이나 통쾌감이 없는 탓인 듯.
다중인격 살인자를 다룬 영화, 제임스 맨골드의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흥미롭게 봤다. 과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 알고나면 허탈하지만, 보는 내내 재미는 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적의 화장법'은 이 소재 '자아분열'로 반전을 만든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지킬과 하이드'도 있다. 스포일러가 되려나.
이 소설 '분신'을 바탕으로 혹은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만든 영화도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으로 나오는 '블랙 스완'은 두 개의 인격으로 분열되면서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긴 했지만 딱히 재미있다고 하긴 그렇다.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은 보다가 잤다. 영화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은 아무래도 다른 듯.

:: 극사실주의 판타지
소설 '분신'은 우리의 실제 사회 생활을 극사실주의 판타지로 보여준다. 너무나 공감하고 심히 절감해서 무서울 지경이다.
우리는 자신의 참된 자아가 아니라 가면, 즉 거짓된 자아를 연기하고 있다. '분신'의 주인공처럼 자아 분열 정신병에 걸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사회생활은 때때로 자아에 많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준다. 대개들 가장 미운 사람 1순위가 직장상사 아닌가. 그리고 비굴하게 사는 자기 자신이 2순위겠고.
하급 관리 골랴드낀의 심리적 붕괴, 그의 일상, 그의 자존심, 그의 자의식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은 이 소설 '분신'의 일부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났을 때 주인공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답을 해, 말아? 아는 체를 해야 하는 거야, 뭐야, 이거?' 우리의 주인공은 엄청난 고민에 빠져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고, 놀랄 정도로 나랑 닮은 누구 다른 사람인 척할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쳐다 봐?'"
마음에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 속으로는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인간을 때려주고 싶은데 얼굴은 웃으며 입은 덕담을 말한다. 통제를 못하고 분출해 버리기도 하지만 가끔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번째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인물의 외부 모습과 주변 환경 묘사가 아닌 인물의 심리, 심중 묘사에 초점을 맞춰 썼다. 두 번째 소설 '분신'에서는 분열된 심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미래의 문학 수법을 써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분신'은 뒤에 나올 대작의 서곡이다. 특히, '죄와 벌'을 미리 보는 느낌이다. 소심함과 자의식, 그리고 갈팡지팡하는 성격에 혼자서 중얼거리는 주인공. 종종 꿈이나 환각에 빠져서 현실을 이탈해 버린다. 빛과 그림자처럼 쌍둥이 분열자아의 캐릭터들인 라스꼴리니꼬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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