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책 추천
호빗 - 하찮은 존재의 대단한 모험 

호비트 이야기의 구조는 반지의 제왕과 같다. 보잘것없는 호비트가 자의반 타의반 모험원정대에 합류하고 갖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내고 지혜를 발휘해서 마침내 세상을 구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톨킨 소설 '호빗'을 읽는 재미는 주인공 빌보 배긴스의 심리에 있다. 모험을 싫어하고 안락한 집에서 음식 든든하게 먹으며 편안하게 살고 싶으면서도 모험에 대한 욕망과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욕심이 나는 상황에서도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알고 두려운 사건 앞에서도 용기를 내고 결행하는 모습은 공감을 일으킨다.

작가의 역사관이 마음에 든다.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은 그 잘난 왕이나 왕자니 요정이니 마법사니 하는 것들 힘있고 거만하고 잘난 자가 아니라 대단한 능력은 없으나 자신의 힘을 알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생각하고 실행하는 호빗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한 '간달프'가 모험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배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아주 좋은 친구야, 배긴스. 나는 자네를 무척 좋아해. 하지만 자네도 어차피 이 넓은 세상에서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야."

세상 살다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고 낙담하고 용기를 잃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톨킨의 책을 읽자. 현실 도피로서가 아니라 현실 돌파를 위해서, 나 자신에게 진실한 마음과 진정한 용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2014.12.25


# 이미애의 직역; 김석희의 의역

국내 번역서로 구하기 쉽고 잘 알려진 것은 씨앗을뿌리는사람에서 펴낸 이미애의 번역이다. 

이 번역본의 전자책에는 삽화가 없으며 스로르의 지도와 야생지대 지도는 있다. 표지는 종이책 커버표지와 마찬가지로 용과 대적하는 사나이의 모습을 담은 영화 장면이다.

원서에 충실한 직역이다.

가끔씩 보면 우리말이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고지식하고 기계적으로 번역했다. at your service를 '봉사하겠습니다'라고 옮겼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울리지도 뜻이 통하지도 않는다. 김석희 번역대로 '잘 부탁합니다'라는 인사말이 맞다고 본다.

골룸이 빌보 배긴스한테서 반지를 빼앗기고 욕을 외치는 장면에서 We hates it, we hates it for ever!를 이미애는 어이가 없게도 '우리는 그걸 미워해, 우린 그걸 영원히 미워해!'로 옮겼다. 원문 쉼표까지 그대로 썼다. 무조건 일 대 일 대응식으로 번역할 거면 왜 사람이 하겠는가. 구글 번역기 돌리고 말지. 김석희 번역이 맞다. '그놈이 미워. 영원히 미워할 거야!' 이미애의 번역을 영원히 미워할 거야! :-)

참 순진한 번역이다 싶다. 대학생 시절 리포트용으로 전공영어서적을 번역했던 그때가 떠올라 잠시 웃었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으니까.

내가 번역한다면, 여기서 We는 살려야 한다. 왜냐하면 골룸이 정신분열로 두 개의 자아를 갖고 있으니까. 하지만 it은 그것이 아니라 저놈으로 옮기는 것이 어울린다. 도망치는 빌보의 등에 대고 하는 말이니까. 따라서 '우리는 저놈이 미워, 우리는 저놈을 영원히 미워할 거야!'

원문 구두점 쉼표는 살려야 한다. 김석희는 마침표로 바꿨다. 사소해 보이지만, 작가가 의도적으로 쓴 쉼표다. "Thief, thief, thief! Baggins! We hates it, we hates it, we hates it for ever!" 도둑이란 말을 앞에서 세 번하고 배긴스라고 말 한 후 밉다는 말도 세 번한다.

결국 김석희도 이미애도 번역을 썩 잘했다고 볼 순 없겠다. 적어도 영어 원서를 여러 번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숙독한 후 한 문장씩 꼼꼼하게 번역하지 않았다. 톨킨의 팬이었다면 이렇게 번역했을까 싶다. 무슨 일이든 더 애정을 갖고 더 세밀하게 작업해서 결과물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읽을 책인데 말이다.

호비트 1 - 10점
J. R. R. 톨킨 글 그림, 김석희 옮김/시공주니어
호비트 2 - 10점
J. R. R. 톨킨 글 그림, 김석희 옮김/시공주니어
시공주니어에서 펴낸 '호비트 1, 2'는 의역이다.

김석희 번역은 의역을 해서 나름 우리말로 충분히 담아내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그러다보니 원서에 없는 말을 덧붙이고 아주 가끔은 생략하며 심지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해당 작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다. 단어 자체만 알지 그 단어가 가르키는 대상을 잘 모르니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읽다가 황당한 표현이 나왔다. 20쪽 "사람 모습을 한 작은 난쟁이 요정 엘프들' 엘프가 작은 난쟁이라고? 작은? 난쟁이? 원서 원문에는 그냥 elves로 나올 뿐 수식어가 없다! 번역자 자신은 엘프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답시고 붙인 수식어가 틀렸다.

시공주니어판 호비트는 절판이지만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애써 이 책을 구해서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것은 이 책에 원작가 톨킨이 직접 그린 흑백 삽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과 성품을 그대로 닮은 그림이다. 소박하고 간결하다. 표지 그림도 영화장면보다는 용 그림이 더 마음에 들었다.

글씨 크기가 큼직하다. 총 2권이다.

# 원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

번역은 원문의 음악적 효과를 없애고 뜻만 남긴다. 첫 문장만 봐도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번역 김석희 : 토굴 속에 호비트 하나가 살고 있었다.

번역 이미애 : 땅 속 어느 굴에 한 호빗이 살고 있었다.

원문 톨킨 : In a hole in the ground there lived a hobbit.

홀(hole), 호빗(hobbit). 두운 호(ho)를 맞춘 문장이다.

이런 재미는 원문으로 읽지 않고 번역으로 읽으면, 주석으로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절대로 맛볼 수 없다.

호빗 첫 장 제목은 An Unexpected Party다.

반지의 제왕 첫 장 제목은 A Long-Expected Party다.

An Unexpected를 뒤집어서 A Long-Expected로 바꾼 말장난이다. 원서로 읽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다.


# 책 맨 앞 지도에 있는 이상한 문자는?

지도에 있는, 독해가 불가능해 보이는 문자는 룬 문자다. 정확히는 앵글로색슨 룬 문자다. 해당 글자를 영어 알파벳으로 바꾸면 해독할 수 있다.

영어 위키백과 사전 http://en.wikipedia.org/wiki/File:Anglosaxonrunes.svg 여기 보면 암호표(?)가 잘 나와 있다. 

잘 따라해서 암호를 영어로 풀어 보라. 재미있다.


#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로맨스 유무

[블루레이] 호빗 트릴로지 : 점보 스틸북 한정판 (6disc)
피터 잭슨 감독, 이안 맥켈런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호빗이 피터 잭슨 감독의 영화로 나오면서 다시 이 원작소설 독파를 시도했고 마침내 성공했다. 영어 원서는 1장만 읽고 포기했고 번역서도 읽다가 역시 포기했었다.

톨킨의 소설은,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 나만 그런 거 같지 않던데, 잘 읽히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지, 소설만 읽어서는 잘 모르겠더라.

영화는 책보다 설명이 자세하고 약간 변했고 내용을 덧붙였다. 소설의 확장판 느낌이다. 영화가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은 난쟁이 남자와 엘프 여자의 로맨스다. 원작에는 로맨스가 아예 없다.

전쟁 장면이 볼만하다.


# 국내 여러 호빗 번역본들

그림으로 보는 호빗 - 10점
웨인 G. 해먼드 외 글, 이미애 옮김, 존 로날드 로웰 톨킨 그림/씨앗을뿌리는사람

톨킨이 그린 그림(간단한 스케치 포함, 게다가 컬러다!)을 모두 담은 책도 나왔다. 말 그대로 그림을 모으고 그 그림 설명글을 붙인 책이지, 호빗 소설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의하기 바란다.

도서관에서 잠깐 보고 왔는데, 기대보단 실망이었다. 딱히 봐줄 만한 그림은 몇 편 안 되었다.


호빗 (양장) - 10점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앨런 리 그림/씨앗을뿌리는사람

그림 얘기가 나온 김에 씨앗을뿌리는사람에서 나온 양장본은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앨런 리가 그린 삽화가 컬러로 들었다. 그림이 내 취향에는 별로였다.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톨킨이 그린 그림이 더 마음에 든다. 반면 표지는 무척 마음에 든다. 표지 그림은 존 호우의 것이다.

너무 커서 들고 다니며 읽기는 곤란하고 집에서 편하게 큰 글씨로 읽기에 좋다.

왜 삽화 뒤에 여백을 만들었을까. 그림 뒷면 여백 하단에 달랑 알랜 리 저작권 표시만 있다.

앨런 리의 삽화는 어른용이다. 가끔 무섭다. 상냥하지 않다. 

어린이용 그림이 들은 책은 없을까. 있었다!

호빗 - 10점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제미마 캐틀린 그림, 이미애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어린이를 위한 호빗 - 10점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제미마 캐틀린 그림, 이미애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어린이가 보기에는 좋은 그림체다. 표지 그림부터가 아이들한테 어울린다.

양장본과 반양장본 두 가지다.

주석 따라 읽는 호빗 - 10점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원작, 더글러스 A. 앤더슨 주석, 이미애 옮김/씨앗을뿌리는사람

주석 달린 호빗도 나왔다. 호빗의 창작 과정과 관련 이야기와 각종 자료가 실렸다. 톨킨의 집필 책상이 보인다.

◆ 독서 기록
1회독 : 시공주니어 번역본 2014.12.25
2회독 : 시공주니어 번역본 2015.05.29
3회독 : 씨앗을뿌리는사람 번역본 양장 2015.07.02
4회독 : 씨앗을뿌리는사람 번역본 전자책 2018.07.14
5회독 : 영어원서 2018.07.16
6회독 : 영어원서 2019.02.21
7회독 : 영어원서 2019.03.23 
8회독 : 영어원서 2019.08.18 
9회독 : 영어원서 2021.04.08
10회독 : 영어원서 2021.04.22
11회독 : 씨앗을뿌리는사람 번역본 전자책 2021.07.03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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