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65 마술 살인 - 미스디렉션

결혼을 세 번이나 한 부인. 여기에 입양까지. 그래서 펼쳐진 인간 관계의 끈이 복잡하다. 양녀에 앙녀의 딸에 그 딸의 남편에. 전남편들의 자식들. 이런 식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니 정신이 없을 지경. 하필 그 사람들이 한 곳에서 모여 살거나 모이게 된다.

초반에 보여주는 혈연 관계의 복잡함에 비해 사건 자체는 단순하다. 너무 단순해서 애거서 크리스티가 기존 작품들에서 보여준 놀라운 트릭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힌트를 계속 준다. 등장인물의 대사에서 연극이라는 말이 어쩌나 많이 나오는지 민망할 지경이다. 그래도 나도 강조한다. 연극이라고 연극. 번역 제목 '마술 살인'도 결정적 힌트다. 본문에 친절한 설명이 나온다. "한쪽 사실만을 보면 다른 쪽 사실은 못 보기 마련이니까요. 게다가 사람들은 잘못된 쪽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요. 우연히 그렇게 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바라보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에요. 마술사들은 그걸 '미스디렉션'이라고 부른다죠?"(125쪽) 또 힌트 나온다. 무대 장치. "환상은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 있는 것이지 물질 자체에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내 말처럼 그것은 무대 앞쪽에서 볼 때뿐만 아니라 뒤쪽에서 볼 때 역시도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는 뜻이오."(233쪽)

 

알고도 속을 수 있다. 보여지거나 말해지면 일단 믿게 되고 그쪽으로 생각하게 되니까. 진실이나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걸 믿는다. 추리소설 반전 트릭의 기본 원리다. 독자를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하는 것. 총 소리에 독살 시도에 소년원의 정신병자 비행 청소년에 주의를 기울이면 정작 중요한 범행 자체는 별 신경도 안 쓴다.

범인을 알고나면 놀라거나 허탈하기 마련인데, 이번 소설 '마술 살인'의 경우는 허탈한 쪽으로 유독 심하다. 범행동기가 강렬해야 하는데, 고작 그거 때문이었어? 하고 실망하게 된다.

드라마가 각색을 잘했다. 상대적으로 원작은 재미와 활기가 덜했다. 복잡한 혈연관계의 사람들은 드라마에서는 좀더 단순하게 바꿨다. 그래도 여전히 복잡하지만.

사람들간 애증의 거미줄을 펼쳐 놓은 후에 살인 사건 터트리고 과연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게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 장인의 솜씨다. 아무래도 감정의 측면에서 트릭보다 이 애증 관계에 더 몰입해서 읽게 된다. 현실의 애증은 피곤하지만 픽션의 애증은 흥미롭다. 관찰 객관화의 재미랄까.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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