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럼 호텔에서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황금가지 펴냄

소설가는 캐릭터를 통해 말한다. 종종 보면 그 캐릭터의 말에 작가의 목소리가 종종 들린다. 구세대가 된 작가는 미스 마플 시리즈 후반에 해당하는 '버트럼 호텔에서'를 통해 과거 어릴적 추억에 빠지는 장면을 초중반에 많이 할애한다. 그래서 정작 이야기 자체는 집중이 안 되기도 했다. 중심 사건이랑 관련이 없으니까.

미스 마플/애거서 크리스티는 과거에 빠져사는 캐릭터/작가가 아니다. "사람은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과거로 돌아가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인생의 본질은 앞을 향해 나아갸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인생은 일방통행이잖아요, 안 그래요?(228쪽)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에서 읽은 듯한 문장.

애 여사는 쿨한 분이었다. 자신이 수줍음이 많다는 것을 깨닫자 가수 지망을 확고하게 포기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도 할 수 없거나 잘할 수 없다면 단칼에 단념했다.

소설은 제목처럼 호텔이라 장소가 부각되어 있다. 구식과 신식이 조화롭게 치장된 곳. 옛 영국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갖추면서도 현대식 설비나 미국식 음식도 제공한다. 이런 마법 같은 일? 역시나 숨겨진 사연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포일러가 된다. 메롱이다.

서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몇 사건이 일어나는데, 나중에 하나로 합쳐서 큰 그림을 완성한다. 사라진 성직자 사건. 철도 강도 사건. 총격 사건. 그리고 살인범의 자백 후 자살.

때마침 그 성직자를 호텔에서 목격한 미스 마플. 그저 목격자로서 경찰한테 진술할 뿐이지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 이래서 좀 긴박감이 떨어졌다. 적극적으로 진술조차 안 한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니까, 아무도 나한테 안 물어봐서라고.

미스 마플 시리즈는 대개 증거가 없어서 함정을 파서 범인을 잡아 정의를 구현한다. 하지만 이 소설만큼은 범인을 알면서도 놓아준다.

그럭저럭 평타다. 2루타 정도. 트릭도 간단한 편이다. 3루타나 홈런 정도의 작품에서는 트릭이 워낙 복잡해서 설명을 들었어도 여전히 이해가 완전히 잘 안 될 때가 있었다.

애 여사 소설에 범행 동기는 대개 돈인데, 그냥 돈이 아니라, 그저 많은 돈이라 어머어머한 돈이다. "충분한 돈과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은 다르지요. 사람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죽이며, 자녀들은 어머니들을 죽입니다."(274쪽)

그 다음 동기는 사랑이다. 돈과 사랑이 결합되는 경우도 많다. 이번 소설도 그랬다. 그리고 마플 시리즈에서는 중혼 범죄가 많다.

2021.10.28.

Posted by 러브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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