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글쓰기 2008년 초판
작가살이 2018년 개정
The Writing Life (1989년)
애니 딜러드 지음
이미선 옮김
공존 펴냄
번역 제목 '창조적 글쓰기'보다는 원서 제목이 더 어울린다. 더 라이팅 라이프 The Writing Life. 글 쓰는 삶. 글 쓰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의 모습은 어떨까? 그런 사람은 행복할까, 불행할까?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 수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조금만 쓸 수 있을까?
애니 딜러드는 이런 의문에 친절한 목소리로 답해 주진 않았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독단적인 삶을 솔직하게 적어 놓았다. 구체적인 글쓰기 방법은 알려주는 게 하나밖에 없다. 써라. 미안하지만, 그게 글을 쓰는 삶의 전부다.
글을 쓰는 재미보다는 어려움을 더 많이 토로해 놓았다. 글 쓰는 일과 그런 생활을 건조하게 추상적으로 비유를 들어 보인다. 작가 본인의 문체가 본래 그런 모양이다. 진지하게 글쓰기를 대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그렇지 않다면 읽기에 까다로우리라. 즐거운 글쓰기, 재미있는 글쓰기, 어떻게 하면 글을 신나게 술술 쓸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얻을 게 거의 없는 책이다.
글, 긴 글, 한 권 분량의 책, 아니 두툼한 몇 권의 책을 써내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제1장 맨앞에 "서두르지도, 쉬지도 마라."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했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 지은이는 그저 묵묵하게 조금씩 써나아갈 뿐이다. 글을 쓰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없기에 자신의 생생한 삶을 밋밋한 종이에 글자 쓰는 일로 보내고 있지 않나 회의하기도 한다.
딜러드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44~47쪽)는 웃기면서도 섬뜩하다. 작가들이 영감을 얻기 위해 창밖을 뚫어지게 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애니 딜러드도 창밖을 열심히 내다본다. 주차장에 차 대고 내리는 사람들, 언덕 위 암소들, 지붕 위 참새들, 앗! 한 마리는 다리가 하나다. 저 멀리 시냇물 속에 거북이가 헤엄치네. 그러다가 소프트볼 하는 아이들을 본다. 아예 같이 논다. 다음날, 작가는 창문을 굳게 닫고 블라인드를 친다. 커튼 위에 창밖을 그린 그림을 붙인다. 이제 그 모습을 글로 쓴다.
글을 쓰려면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포기해야 한다. 흐린 날에만, 일요일에만, 기분이 내킬 때만 쓴다면 작가가 아니다. 그런 사람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글쓰기보다 재미있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뽐내기도 쉽다. 결과는 보여주면 상대가 바로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립니다. 자,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와, 멋집니다. 피아노를 칩니다. 자, 들어 보세요. 오, 아름다워요. 카레이서입니다. 자, 보십시오. 정말 빠르군요. 글을 씁니다. 여기 제가 쓴 책입니다. 예에, 멀뚱멀뚱.
글은 상대가 진지하게 읽어주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종이뭉치에 아무런 생기 없는 검은 글씨일 뿐이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세상과 단절하고 다른 일을 포기하고, 대신에 홀로 즐겁게 지내며 홀로 격려하며 문장을 하나씩 써내려간다. 가끔이야 누구나 그럴 수 있지. 원고지 몇 장 정도야 그럴 수 있지. 날마다? 그것도 원고지 몇 천 장을 써댄다? 당신은 그럴 수 있는가.
글쓰기는 힘들다. 그래, 솔직해지자. 글 잘 쓰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다. 쉽게 쓰는 사람도 있겠지. 이 책의 지은이와 옮긴이는 그렇지 않다.
'옮긴이의 글'이 흥미롭다. 이미선은 글 쓰는 일과 번역의 차이점을 이야기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같으나, 그 과정은 다르다. 자기 글을 쓰는 일은 욕구와 재능과 지식이 필요하지만 번역은 학술 서적을 제외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 번역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나, 창작은 시작도 끝도 없다. 글을 쓰기 전부터 고민하고 글을 쓴 후에도 고심한다. 번역자는 그저 이미 써 놓은 글을 따라가면 그만이다. 번역은 창작만큼 힘들지만 그래도 쉬운 편이고 더 낮은 차원이라고 말한다.
내 독서 경험으로는 오히려 원문보다 번역문이 더 뛰어난 경우도 봤다. 유명한 소설가들은 번역을 하면서 자기가 쓰는 자기 나라 말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고 자기 문체를 완성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고, 폴 오스터가 그랬다.
글쓰기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다면 왜 그만두지 못하는가? 그래도 즐겁기에 멈추지 못한다. 나가서 공을 차기보다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기보다는, 사진기 셔터를 누리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문장을 하나 쓰는 게 더 재미있다. 나는 그렇다.
[밑줄 긋기]
"모든 아름다운 가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 예이츠 1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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