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하는 글쓰기
박미라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2008년 발행 절판
엄밀히 말해, 이 책은 글쓰기를 다루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 제목이 분명히 '치유하는 글쓰기'다. 그렇다. 강조점을 앞에 잡은 책이다. 글쓰기의 기능 중 하나인 '치유'에 초점을 맞췄다. 심리 치료 안내서다.
꽉 막힌 상태에서 그것을 글로 풀어내면, 시원하다. 글을 쓰면 그동안의 상처가 사라진다. 글을 많이 쓰는 소설가들은 이미 이를 잘 안다. 김연수는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받았던 모든 상처는 치유됐다."('나는 왜 문학하는가', 열화당, 2004년 12월, 54쪽)고 고백했다.
블로그에 억눌린 감정을 글로 배설하면, 개운하다. 인터넷에 쓴 글에 공감이나 추천 수가 하나라도 늘면 난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낀다. 사소한 댓글 하나에도 그날 기분이 좋아진다. 악플이면 화가 나지만, 없는 것보다야 낫다. 어쨌든 누군가 내 말에 반응했으니까. 자신을 즐겨찾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면 그날 하루는 좋은 날이다. 세상은 천국이야.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글을 끄적이면 어떤 효과가 있는지 다들 안다. 그럼에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마음의 상처가 깊다면? 글을 마음껏 많이 쓰는 작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하다면? 글을 써서 마음을 치유한 사례를 보고 싶다면? 박미라의 심리 치료 수기 상담 안내 모음집인 이 책을 펴 보면 도움이 되리라.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서 작문 책을 섭렵하다 보니, 독서와 글쓰기로 심리 치료를 돕는 책을 몇 권 만났다. 대부분 외국 사례라서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획표로 딱딱하게 진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런 단점을 없애고 기존 책들의 핵심을 모아 놓았다. 더구나 이미 글쓰기로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여러 번 진행해 본 사람이 쓴 글이라, 더 구체적이다.
글쓴이는 가족학과 여성학을 전공한 후, 현재 심신통합치유학(새로 생긴 학문?)을 공부하며 글쓰기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단다. 풍부한 사례들은 물론 모조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글이다. 편집 없이 그대로 책에 실었다. 글에 달린 댓글도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인쇄했다. 지나친 감정 과잉이라 읽기 버거운 것도 있겠으나, 공감이 가는 글도 있으리라. 골라서 읽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하리라.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수필집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거부감이 커서 책을 덮거나 공감이 간다며 눈물을 흘리거나. 왜 이럴까. 노희경의 글은 냉정하게 쓰지 않았다. 그동안 가슴속에 쌓아 놓은 것을 배설했다. 이 때문이다. 자기 감정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글로 써냈다. 편집이 안 된 블로그 글처럼 말이다.
도대체 저렇게 유치한 드라마를 왜 좋아할까. "아주 그냥 죽여줘요."라고 부르는 노래가 뭐가 그렇게 죽여주게 좋다고 그리 난리일까.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고 있기에 그렇다. 거기에는 꾸밈이 없다. 때론 형식도 차리지 않는다. 아닌 말로, 말을 막한다. 말은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차분하게 글로 단정하게 쓰려면 상당한 훈련을 해야 하고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정확히 확실히 읽어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사람들은 당장 급한 불부터 끄듯, 그렇게 감정을 털어 놓는다. 안 그러고 참고 또 참으면 '캔디'가 된다. 몽상에 빠져 누군가 나 좀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돈도 많이 줬으면 싶다. 꿈 깨라.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연애 소설이 왜 그리 많이 팔리는지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외롭고 괴롭고 아프다. 그런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주변에 드물다.
예전에 내가 쓴 글과 읽은 책을 돌이켜 보니, 감정 배설이 대부분이었다. 부모에 대한 원망, 세상에 대한 원한, 갑작스럽게 닥친 병마, 안 풀리는 일, 일상의 사소한 짜증, 현실도피 몽상. 지금은 그렇지 않다. 가끔 통제 없는 글을 쓰지만 그걸 공개하진 않는다. 나중에 읽고는 지운다.
화가 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즉시 글로 쓴다. 이런 습관은 최근에야 생겼다. 화가 나면 그걸 말로 하지 않는다. 글로 쓴다. 문제가 생기면 머릿속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종이에 쏟아낸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면 화가 풀리고 해결책이 보인다. 나중에 읽어보면 웃음이 나온다. 왜 그렇게 고민한 거야. 별거 아니구먼.
블로그나 인터넷 글에 사적인 얘기는 되도록 안 쓴다. 댓글도 거의 안 단다. 감정 수위가 높은 글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안 할 수가 없을 때도 있다. 나도 사람이다. 당신처럼 말이다.
상처받은 아픔을 참지만 말고 글로 풀어내라. 속이 확실히 풀린다.
[밑줄 긋기]
우리는 그의 글이 가진 힘, 그러니까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고통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그의 저력에 감동했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을 촘촘하게 기록해낸 치열함 때문에 울었던 것이다. 그녀의 글을 통해 우리의 과거가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이 글이 그날 밤, 그녀와 우리 모두를 구원했다.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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