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호텔
윌리엄 윌키 콜린스 /바른번역(왓북)

The Haunted Hotel (1879)

전자책으로만 나와 있습니다. '월장석'과 '흰옷을 입은 여인'으로 유명한 윌키 콜린스가 쓴 소설이고요. 고딕 분위기의 범죄 미스터리입니다. 트릭은 어렵지 않아 추리소설 많이 읽은 분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요.

분량은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아서 반나절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월장석과 흰옷을 입은 여인의 분량이 워낙 많으니까 이 소설도 그럴 거라 짐작할까 봐 말씀드리는 겁니다. 읽다가 너무 길어서 포기하는 독자가 속출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그 정도로 분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짧지도 않고요. 영어 위키에 보니까 '유령 호텔'을 단편으로 분류하던데 그렇게 짧진 않고요. 장편으로 분류하긴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200쪽이니까 중장편 정도 양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추리소설이라고 말했지만,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런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작가가 콜린스라는 것만 보고서 무작정 사서 읽기 시작했거든요. 궁금해서 빨리 읽느라 바빴어요. 제목 '유령 호텔'과 이야기 분위기 상으로는 귀신 이야기로 끝날 줄 알았습니다. 애드거 앨런 포처럼요. 그러고 보니 월장석과 흰옷을 입은 여인도 초중반까지는 그런 분위기죠.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발생하니까요. 저주 걸린 보석이니 갑자기 유령처럼 나타난 정체 불명의 흰옷을 입은 여인이니.

로맨스가 등장하는 것도 콜린스 스타일이죠. 아그네스와 헨리를 보고 있으면, '흰옷을 입은 여인'에서 나오는 마리안과 월터가 생각납니다. 불행한 여자를 사랑하고 지켜주다가 마침내 결혼에 성공한다. 이런 식의 로맨스입니다. 미스터리 때문에 읽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것은 로맨스죠. 어쨌거나 결말은 일이 잘 풀리고 둘이 행복하게 잘먹고 잘살게 될 거라는 예감입니다.

윌키 콜린스는 연재소설의 장인이었습니다. 연재의 요령은 다음 회를 읽고 싶게 하는 것이죠.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 보이는데요. 연재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호흡이 길고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옛날 소설들 대개가 그렇죠. 시간이 남아 돈다는 투로 아주 아주 길게 장황하게 씁니다.

콜린스의 소설은 도일과 크리스티의 아버지라 불러도 될 만큼 추리소설의 기본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콜린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도일과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이 떠오릅니다.

'유령 호텔'의 초반 미스터리는 몬트베리 경의 비서인 페라리 씨의 실종입니다. 도대체가 이 사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힌트는 몬트베리 경의 죽음과 베라리 씨의 부인 앞으로 전달된 편지 안에 든 천 파운드입니다. 이는 후반부에 유령이 출몰하는 호텔의 비밀과 사건의 진상과 연결됩니다.

천 파운드의 의미가 애매해서 그래요. 몬트베리 경이 베라리 씨의 죽음 혹은 실종에 대한 위로금이라고 하기에는 적고 그렇다고 그동안 수고했다고 주는 돈치고는 많거든요.

사건의 진상을 밝혀주는 것이, 몬트베리 경의 부인이었던 백작부인의 자백서에 가까운 희곡 원고라서 맥이 빠졌지만, 나름 탐정 노릇을 하는 헨리의 세련된 마무리는 최신 범죄소설처럼 현대적이네요.

유령에 죽음에 로맨스에 그 난리법석 속에서 가끔씩 웃음이 나는 장면이나 문장이 튀어나와서 재미있었습니다. 아, 월장석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2015.07.11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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