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전주곡 Overture to Death (1939년)
나이오 마시 | 검은숲 | 2012

'죽음의 전주곡'은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유명한 추리소설가 나이오 마시(Ngio Marsh)의 장편 추리소설이다. 번역된 책은 2012년에 나온 이거 하나뿐이다. 인기를 끌지 못한 모양이다. 출판사에서는 작가를 애거서 크리스티 아류로 소개한다. 광고는 "애거서 크리스티보다 뛰어나다!"라고 썼지만, 바보나 믿지.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간결하게 묘사했고 종종 웃음도 넣었지만, 결정적으로 애 여사를 능가하는 반전이 없었다. 나쁘진 않지만, 굉장해 하고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탐정 캐릭터가 약하다. 별다른 개성이 없다. 홈즈와 푸아로가 어슬프게 섞인 모습이랄까. 많이 아쉽다.

이야기의 큰 틀은 미스 마플식이다. 조용하고 작은 마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용의자들끼리 서로 애증의 거미줄이 있고 숨은 사연도 있다. 남녀 로맨스도 등장한다. 여기에 유언장까지 있으니, 작가 이름을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표기해서 책을 냈어도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사람마다 글 쓰는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야기에 작가의 전문 지식과 선호가 드러난다.  애 여사는 독약 전문가였고 정원 가꾸는 취미가 있었다. 마시의 소설에는 연극이 나온다. 나이오 마시는 뉴질랜드 연극 부흥의 공으로 애 여사와 똑같은 작위 '데임'을 받았다.

애 여사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인물들이 종이 인형처럼 느껴지는데, 마시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인물들이 연극 배우처럼 보인다. 등장과 퇴장이 있고 각자의 대사를 중얼거린다. 둘 다 인간 심리를 깊게 파고들어가진 않는다. 인물들의 고뇌가 아니라 사건 해결이 초점이니까.

소설 앞 부분이 지루하다. 아무리 읽어도 살인이 나타날 기미가 안 보이니 읽다가 포기할 수 있겠다. 전체가 480여 쪽 분량인데 127쪽에 가서야 사람이 죽는다. 

그럼에도 나는, 연극하는 사람들의 아기자기한 모습을 읽을 수 있어 재미있었다. 대본 선정, 배우들끼리 역을 맡기 위한 질투와 음모, 리허설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 과연 누가 죽고, 누가 범인일까? 조마조마하다가 목차를 봤다. 윽, 범인이 나와 있다. 세상에, 뭐 이런 미친 짓을.

범인을 알아 버렸으니 과연 이 두툼한 책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 중에, 양파가 나왔다. 앨린 경감이 자꾸만 양파를 강조하는 거다. 그러면서 자꾸만 양파의 비밀을 모르지 메롱 하는 투로 베스게이트 기자를 놀린다. 궁금했다, 양파는 왜 중요한 단서지? 용의자를 만날 때마다 왜 양파를 물어봤을까?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의 진상도 거의 다 밝혀진 책 후반부까지 갔으나, 양파 수수께끼는 풀 수가 없었다. 마지막 4쪽에 가서야 왜 찻주전자 안에 든 양파가 범인 잡는 결정적 단서였는지 나온다. 내게 이 책은 '죽음의 전주곡'이 아니라 '양파의 광시곡'이었다. 눈물 난다.

2015.02.27

Posted by lovegoo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