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Pe culmile disperării 1934년

에밀 시오랑
강 1997년

::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환희의 노래

절망, 고독, 허무와 정면 대결
극단에서 느끼는 희열
잠을 잘 수 없는, 그래서 미칠 것 같은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끝에서]를 읽었다. 읽는 내내 열광, 동감, 환희.

이 책을 읽고자 마음먹은 것은 제목과 작가가 쓴 서문과 책표지에 있는 작가의 사진 때문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지금 나의 상태가 아닌가. 서문에 글쓴이는 "내게 일어난 중대한 현상, 말 그대로의 재난은 계속되는 불면, 그 쉼없는 공백이었다." 라고 쓰고 있는데, 나 역시 불면으로 지난 대학 1, 2학년 생활을 보내야 했었다. 그 생활은 지옥이었다. 그의 얼굴은 한마디로 악마다. 광기가 느껴지는 저 번뜩이는 눈. 절망과 고독을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철학자의 무서운 얼굴이 이 책을 읽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이름이 낯설다. 옮긴이 김정숙 씨는 에밀 시오랑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가장 프랑스적인 산문가, 파리 대학에서 끼니를 해결한 영원한 학생, 루마니아에서 잠시 철학 교사직을 맡았던 것 외에 평생 한번도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으며 "뤽상부르 공원을 조용히 거닐고 싶다"는 핑계로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사회의 절대 소외자, 프랑스 대통령 관저와 직통 전화로 연결되었던 철학자.(204쪽)

루마니아에서 그는 [눈물과 성자]라는 책을 펴냈는데, 당시 루마니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사람한테서는 "혼란과 무질서", 다른 비평가들한테서는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후에 그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자신의 조국에 복수한다. 그는 사르트르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그러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는 시오랑의 첫 작품이다. 그는 이 책으로 신예 작가들에게 주는 루마니아 왕립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젊은이다운 무모하고도 거칠지만 정열로 한껏 불꽃처럼 내뿜는 철학적 단상들.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미칠 듯이 소리치는 절규! 허무와 절망과 고독의 끝까지 가 보는 용기! 그 끝에서 오히려 기쁨의 노래를 읊조리는 아이러니! 읽는 내내 그의 용기에 감탄하면서 울고야 말았다.

"나는 죽도록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9쪽)

"고통 속에서의 서정은 피와 살과 신경의 노래이다."(12쪽)

"서정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오로지 피, 진지함, 불꽃이라는 데 있다."(12쪽)

"눈물이 뜨거운 것은 고독 속에서뿐이다."(14쪽)

"인간이 살 수 있는 것은 끝없는 긴장을 객관화하면서 진정시켜주는 글쓰기를 통해서뿐이다. 창조는 죽음의 마수로부터의 일시적인 구원이다."(15쪽)

"강한 광기가 숨어 있지 않은 존재함은 가치가 없다."(19쪽)

"나는 공허한 추상보다는 육체적인 격정이나 신경의 파탄에서 오는 성찰을 백배 더 원한다."(36쪽)

"삶이란, 삶과 죽음이 뒤섞인 고통의 연장이라고 느낄 때에만 죽음은 이해된다."(36쪽)

"이성 간에는 정신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내게 정신적이라는 환상을 주게 되는 물리적인 현상만이 존재한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녹아버리는 감정, 전율하는 온몸의 살이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장애도 되지 않으며 스스로의 불로 타오르고 녹아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느낌이 솟아난다."(125쪽)

중간 중간에 사르트르의 철학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 기독교에 대한 공격도 보인다. 이렇게 쓰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을 모른다. 기독교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랑 자체라기보다 사랑을 암시하는 관대함과 동정심뿐이다."(170쪽)

감정에 사로잡혀 비약이 심한 부분도 꽤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거칠 것 없이 저돌적으로 자신의 절망과 싸우는 젊은이의 감정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독과 절망과 고통을 감상적으로 흥얼거리는 이는 있어도 정면 대결하는 사람은 없다. 에밀 시오랑은 불면의 밤에 그것들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있었던 자다.

[태어난 불편함에 대해서]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책을 읽어댔다. 매일 수많은 시간을 아무거나 읽었다.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데 성공한 것을 제외한다면 확실한 이득은 없었다."(190쪽) 대학 3학년 2학기, 현재 나의 상태다. 도서관에 쌓인 수많은 책을 보면 신물이 난다. 저 쓰레기들을 읽으며 보냈던 나의 시간들, 도대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여전히 이렇게 책을 읽어 치우며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 어리석음.

오늘부터 나는 고독과 절망과 허무와 싸울 것이다. 더 이상 피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그것들을 끌어안고 살리라. 이제부터 그것들과 정면 대결에 돌입한다.

내 곁에는 에밀 시오랑이 있다. 불면의 밤에 불꽃처럼 깨어 있던 그가.

1997.12.15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챕터하우스 2013년

이렇게 재출간되었다. 제목이 너무 바뀌어서 못 알아 볼 뻔했다.

2024.10.9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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