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지음
현대문학
이 책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했던 창작론 강의를 담았다.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쓴 글이 아닌, 즉흥적으로 말한 것을 글로 옮겨 놓았다. 작가는 강의나 강연을 원고 없이 해 왔다고 한다. 그 이유를 "원고를 준비하면 그것에 사로잡혀서 더듬거리며 말이 막히고 내 목소리가 아닌, 죽은 언어로 지껄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기는 강의 노트를 만들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요."라고 밝혔다. 덕분에,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실감나게 읽었다.
이 강의에서 작가는 사십 년이 넘는 창작 생활 경험을 토대로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즉흥적으로 이 얘기를 하다가 저 얘기를 하다가 해서 일관성을 찾기가 조금은 힘들었다. 너무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해서 그걸 자세하게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겠다. 몇 가지만 추려 보겠다.
분단 문학과 노동 문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있었고, 일본 문화와 일본 문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었고, 곳곳에 유물론적 사고방식, 문학의 상업주의, 현대문명의 허구성,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신주의 사상 따위의 비난이 있었다. 또,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한테 하는 충고가 있었다. 자기가 쓴 소설을 말하면서 좋은 소설에 있어야 할 것을 말했다.
소설가의 독서 체험과 글쓰기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광적인 독서에 빠져들었던 소녀 시절을 보냈다고. 사십 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세계사대계>를 독파했을 때 눈앞이 확 틔는 것을 체험했다는 박경리. 젊었을 적에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먹을 것이 담긴 그릇이 비었단다. 잠결에 먹은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 작가니까, 그 엄청난 양과 질의 소설 <토지>를 썼겠지.
"내 일자리는 자학을 극복하기 위하여 돌아오는 곳입니다. 나의 실체를 인식하고 모든 생명의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 염원 때문에 앉는 자리인 것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학을 극복하기 위한 행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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