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박윤정 옮김
양문
글쓴이 집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에도 그의 주장은 공감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이 현대 문명의 일원으로서 사는 게 비참한 인생이라며 자연의 일부로 살라고 한다. 원시인이 되라는 건가? 과거로 되돌아가자? 그의 강의에 청중은 어리둥절했으리라. 산업화로 기차와 전화가 개설되는 시대에, 산책하면서 자연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살라고 하니, 돈과 욕망에 이리저리 휘둘려 사는 세속인의 귀에 그의 말이 쏙쏙 들어갈 리 없었다. 현대 문명의 혜택을 즐기는 데 열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라.
소로우는 말한다. "오후 네 시와 다섯 시 사이에 낙타처럼 천천히 걸어 보세요." 문명을 혐오하고 야성의 자유를 사랑했던 소로우에게 산책은 절대적인 자연 사랑이었다. 그에게 숲을 천천히 걷는 일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우주의 질서에 동참하는 행위였다. 세상사 다 잊고 걷는 것이야말로 소로우가 누렸던 최대의 행복이었다.
소로우의 글은 지루한 장문체다. 여러 고전을 인용하는데, 대부분 낯설다. 그러니 현대 독자가 그의 글 읽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낭독회에서 소로우의 글은 읽지 않는 게 낫다. 읽고 있으면 다들 잔다.
지루한 산문체에다가, 문명을 떠나 자연으로 되돌아가라는 잔소리에도, 그의 글이 우리한테 읽히는 이유는 뭘까? 그의 자연 사랑이 삶의 진실로 돌진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삶의 균형을 지키며 은밀한 폭력도 없이 고요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아름다움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쁘고 불확실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매혹적인 문장인가.
샘물, 호수, 폭포, 나무, 대지, 하늘. 우리의 본성은 자연, 그 일부로서의 존재감을 느껴야 진정한 삶을 느낄 수 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느끼려면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라. 산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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