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25.01.20 [오독 - 문학 비평의 실험] C. S. 루이스
  2. 2024.10.24 [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발랄하고 수다스러운 여행기
  3. 2024.10.09 에밀 시오랑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 절망의 끝에서]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환희의 노래
  4. 2024.10.08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창작 샘이 말라버린, 소설가의 초상
  5. 2024.10.05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죽음 앞에서 글쓰기에 집착
  6. 2024.09.30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재치와 유머, 그리고 뛰어난 통찰
  7. 2024.08.06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사물과 사건을 통해 이야기한다
  8. 2022.09.02 다니카와 슌타로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위로하며 안아주는 말
  9. 2022.09.02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고통과 박해를 이겨낸, 사진 예술가의 회고록
  10. 2022.09.01 [산책]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사람은 자연의 일부다
  11. 2022.08.30 [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 글쓰기로 자학을 극복
  12. 2022.08.21 [헨리 데이비드 소로] 막시밀리앙 르루아 - 만화로 보는, 소로의 생각과 일대기
  13. 2022.08.21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잭 런던- 사회주의 작가의 눈에 비친 조선
  14. 2022.08.20 버트런드 러셀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불가지론자의 유쾌함
  15. 2022.08.18 이중재 [독학의 권유] 반복 실행의 권유
  16. 2022.08.18 [소로우의 일기]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자발적 가난
  17. 2022.08.18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 위대한 개인주의자
  18. 2022.08.13 장 폴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19. 2022.08.10 YES24 블로그 축제 수상자 서른한 명의 내 삶의 쉼표
  20. 2022.08.06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21. 2022.08.03 폴 오스터 [왜 쓰는가?] 필기구가 집필 이유?
  22. 2022.08.03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임경선 - 가상 인터뷰
  23. 2022.08.02 폴 오스터 [빵굽는 타자기] 실패 연대기
  24. 2022.08.02 [오! 수다] 오쿠다 히데오 - 탁 쏜다
  25. 2022.06.10 폴 오스터 [고독의 발명] 고독, 죽음, 삶, 기억, 아버지, 글쓰기, 책읽기
  26. 2022.06.09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단순하고 소박한 삶
  27. 2022.06.09 커트 보니것 [나라 없는 사람] 미국 돌대가리들에게 펀치를!
  28. 2022.06.08 사토 가시와 [이 사람은 왜 정리에 강한가] 정리하면 해결책이 보인다
  29. 2022.03.08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 오웰 - 문명과 자선의 허구
  30. 2021.10.12 레이먼드 챈들러 [심플 아트 오브 머더] 추리소설 비평론

오독 - 문학 비평의 실험 ㅣ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22 
C. S. 루이스 (지은이), 홍종락 (옮긴이) | 홍성사 | 2017년 7월

‘나니아 연대기 -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은 지금에서는 이 작은 책자가 새롭고 흥미롭게 읽혔다. ˝저는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동물들에게 대부분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이 매료된 상태였고˝(24쪽)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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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세계일주 레이스 
스티브 헬리, 밸리 챈드라새커런 지음
권성환 옮김
중앙북스 펴냄
2009년 발행 절판

친한 두 사람이 세계일주를 하기로 결심한다. 단, 비행기를 타면 안 된다. 그러면 너무 쉽잖아.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에게 가장 비싼 술 한 병을 주기로 한다. 이렇게 시작한 둘의 여행은 같이 사이좋게 가는 길이 아니었다. 홀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지구를 돌기 시작한다.

글은 그리 무겁지 않은 듯하면서도 살짝살짝 날카로운 데도 있다. 유머 작가들답게 문체는 발랄하고 수다스럽다. 약속은 깨기 위한 것일까? 한 사람은 약속을 깨고 비행기를 타고 편하게 일찍 돌아오지만, 다른 한 사람은 우직하게 약속을 지켜 불편하게 여행하며 늦게 도착한다. 술도 반씩 나눠 마신다.

스티브가 규칙을 어겨서 밸리가 이긴 꼴인데, 밸리는 이 승리에 씁쓸해하지만 나름 자부심을 갖는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은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겪었던 곤란과 어려움에 정비례한다." 434~435쪽 

여행 같은 인생, 인생 같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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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Pe culmile disperării 1934년

에밀 시오랑
강 1997년

::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환희의 노래

절망, 고독, 허무와 정면 대결
극단에서 느끼는 희열
잠을 잘 수 없는, 그래서 미칠 것 같은

에밀 시오랑의 [절망의 끝에서]를 읽었다. 읽는 내내 열광, 동감, 환희.

이 책을 읽고자 마음먹은 것은 제목과 작가가 쓴 서문과 책표지에 있는 작가의 사진 때문이었다. 절망의 끝에서, 지금 나의 상태가 아닌가. 서문에 글쓴이는 "내게 일어난 중대한 현상, 말 그대로의 재난은 계속되는 불면, 그 쉼없는 공백이었다." 라고 쓰고 있는데, 나 역시 불면으로 지난 대학 1, 2학년 생활을 보내야 했었다. 그 생활은 지옥이었다. 그의 얼굴은 한마디로 악마다. 광기가 느껴지는 저 번뜩이는 눈. 절망과 고독을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철학자의 무서운 얼굴이 이 책을 읽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의 이름이 낯설다. 옮긴이 김정숙 씨는 에밀 시오랑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루마니아 출신의 가장 프랑스적인 산문가, 파리 대학에서 끼니를 해결한 영원한 학생, 루마니아에서 잠시 철학 교사직을 맡았던 것 외에 평생 한번도 직업을 가져보지 않았으며 "뤽상부르 공원을 조용히 거닐고 싶다"는 핑계로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사회의 절대 소외자, 프랑스 대통령 관저와 직통 전화로 연결되었던 철학자.(204쪽)

루마니아에서 그는 [눈물과 성자]라는 책을 펴냈는데, 당시 루마니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사람한테서는 "혼란과 무질서", 다른 비평가들한테서는 "신성 모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 후에 그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프랑스어로 글을 써서 자신의 조국에 복수한다. 그는 사르트르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았다. 그러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절망의 끝에서]는 시오랑의 첫 작품이다. 그는 이 책으로 신예 작가들에게 주는 루마니아 왕립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젊은이다운 무모하고도 거칠지만 정열로 한껏 불꽃처럼 내뿜는 철학적 단상들. 악마의 웃음소리처럼 미칠 듯이 소리치는 절규! 허무와 절망과 고독의 끝까지 가 보는 용기! 그 끝에서 오히려 기쁨의 노래를 읊조리는 아이러니! 읽는 내내 그의 용기에 감탄하면서 울고야 말았다.

"나는 죽도록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9쪽)

"고통 속에서의 서정은 피와 살과 신경의 노래이다."(12쪽)

"서정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오로지 피, 진지함, 불꽃이라는 데 있다."(12쪽)

"눈물이 뜨거운 것은 고독 속에서뿐이다."(14쪽)

"인간이 살 수 있는 것은 끝없는 긴장을 객관화하면서 진정시켜주는 글쓰기를 통해서뿐이다. 창조는 죽음의 마수로부터의 일시적인 구원이다."(15쪽)

"강한 광기가 숨어 있지 않은 존재함은 가치가 없다."(19쪽)

"나는 공허한 추상보다는 육체적인 격정이나 신경의 파탄에서 오는 성찰을 백배 더 원한다."(36쪽)

"삶이란, 삶과 죽음이 뒤섞인 고통의 연장이라고 느낄 때에만 죽음은 이해된다."(36쪽)

"이성 간에는 정신적인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사랑하는 사람이 나와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내게 정신적이라는 환상을 주게 되는 물리적인 현상만이 존재한다.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녹아버리는 감정, 전율하는 온몸의 살이 더 이상 아무런 저항도 장애도 되지 않으며 스스로의 불로 타오르고 녹아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느낌이 솟아난다."(125쪽)

중간 중간에 사르트르의 철학과 비슷한 부분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또, 기독교에 대한 공격도 보인다. 이렇게 쓰고 있다. "기독교는 사랑을 모른다. 기독교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랑 자체라기보다 사랑을 암시하는 관대함과 동정심뿐이다."(170쪽)

감정에 사로잡혀 비약이 심한 부분도 꽤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거칠 것 없이 저돌적으로 자신의 절망과 싸우는 젊은이의 감정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독과 절망과 고통을 감상적으로 흥얼거리는 이는 있어도 정면 대결하는 사람은 없다. 에밀 시오랑은 불면의 밤에 그것들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있었던 자다.

[태어난 불편함에 대해서]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여러 해 동안 책임감에서 벗어나려고 나는 책을 읽어댔다. 매일 수많은 시간을 아무거나 읽었다.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데 성공한 것을 제외한다면 확실한 이득은 없었다."(190쪽) 대학 3학년 2학기, 현재 나의 상태다. 도서관에 쌓인 수많은 책을 보면 신물이 난다. 저 쓰레기들을 읽으며 보냈던 나의 시간들, 도대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직도 여전히 이렇게 책을 읽어 치우며 모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 어리석음.

오늘부터 나는 고독과 절망과 허무와 싸울 것이다. 더 이상 피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그것들을 끌어안고 살리라. 이제부터 그것들과 정면 대결에 돌입한다.

내 곁에는 에밀 시오랑이 있다. 불면의 밤에 불꽃처럼 깨어 있던 그가.

1997.12.15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챕터하우스 2013년

이렇게 재출간되었다. 제목이 너무 바뀌어서 못 알아 볼 뻔했다.

202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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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영하 글 사진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2009년 발행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의 시칠리아
복복서가 펴냄
2020년 발행


김영하는 우리나라 작가 지망생이 가장 부러워 하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리라. 왜 과거형이냐면, 그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후 책으로 묶어냈던 소설 '퀴즈쇼' 때문이다. 이 소설이 나오자, 독자 몇몇이 실망하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렴풋이 이 작가가 창작 샘이 말랐다는 걸 느꼈다. 역시나 그 후에 여행기 따위의 잡글이 주로 나올 뿐 제대로 쓴 소설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 연재가 끝난 후, 설마 이걸 단행본으로 낼 생각은 아니겠지 싶었는데, 바로 나왔다. 자신감이 넘쳤다. 낭독회까지 했으니. 제정신이라면 자신의 실패작을 그렇게 세상에 내놓을 리가 없을 텐데, 그렇게 했다. 예전에 작품 연재를 마친 후 관점을 바꿔 다시 썼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이상하게 보였다.

김영하는 국내 온갖 문학상을 휩쓸었고 열렬한 독자를 얻었고 외국에 자기 소설이 번역되어 읽혔다. 남들이 죽어라도 해도 될까 말까 하는 일을 불과 몇 년 사이에 해냈다. 소설가로서 더 바랄 게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라디오 프로 사회자에 교수 자리까지 앉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 좋은 자리를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이 수필집에는 김영하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과정과 이유가 있다. 성공에 도취해서 더는 창작하려는 힘이 사라졌다는 말을 전하며, 훌쩍 대한민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 버린다.

무엇이 소설가의 창작 의욕을 좌절시켰나? 독자의 악평을 소설가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창작은 멈춘다. 창작의 배가 침몰하는 건 한순간이다. 그렇다고 호평만 듣고 자기 기만에 빠져서 계속 써댄다면, 그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단단한 실패를 딛고 창작한다. 성공에 취해 만족한다면, 무엇을 해내야겠다는 의욕은 사라진다. 허기가 없는데 밥을 먹으려 하겠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엄청난 성공 후에 오히려 일본에 들어가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아다녔다. 심지어, 자신이 쓴 소설이 너무 많이 팔린다고 불평했다. 김영하도 같은 모습이 되려는가. 이 책을 봐서는 그런 것 같진 않다. 그동안 너무 여유가 없었기에 휴식이 필요함을 자신과 독자들한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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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예요
C'est Tout (1995년)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동네 | 1996

죽기 전까지 한 자라도 더 쓰려고 발버둥치는 뒤라스. 이게 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쓰는 뒤라스. 뚜렷하게 알 수 없는 삶을 파악하려고 글을 쓰지만 결국 하나도 모르는 채 죽어 가는 한 작가의 모습. 모호한 삶을 살며 글을 쓰다가 죽는 인간.

우리나라에 영화로 잘 알려진 뒤라스의 소설 '연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김인환 번역, 민음사 1판 20쇄 34~35쪽)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이 아마도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아닐까.

이 책 '이게 다예요' 18쪽.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애인, 얀 앙드레아가 묻는다. "무슨 소용이죠, 쓴다는 것이?" 뒤라스는 소설 '연인'의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건 침묵인 동시에 말하는 것이지. 쓴다는 것. 그건 때로는 노래하는 걸 뜻하기도 해."

이 책에서 다음 두 군데가 내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 "네가 사는 것은 더 이상 불행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이다." 33쪽 "당신은 고독을 향해 직진하지. 난 아니야, 내겐 책들이 있어." 32쪽

과 후배가 그랬다, 젊어서의 추억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내 젊어서의 추억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을 읽은 것이 전부라고. 사랑은 지옥에 갔다 버렸고, 꿈은 지하철에 놓고 내렸고, 열정은 냉장고에 넣어 얼렸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지. 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 그저 자유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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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Mortals and Others
버트런드 러셀 | 사회평론 | 2011년

버트런드 러셀이 쓴 글이라서 곧바로 샀다. 책이 도착해서 보니, 우와 정말 두껍다. 500여 쪽이다. 만족감 충만!

이 책은 러셀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신문에 기고한 글 모음이다. 한글판 편집자가 붙인 부제 '젋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은유로서 '편지'라고 표현한 것 같다.

칼럼이다 보니, 글 하나하나는 짧다. 인쇄된 글씨가 크다. 줄간격이 넓다.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날마다 한두 편씩 부담 없이 읽었다.

러셀의 본래 문장은 기나긴 장문이다. 여유롭고 풍부한 사색을 즐겼던 그였기에, 단문으로 따따닥 빠르게 결론을 확정하는 방식을 싫어했다. 이 책의 원서와 번역본의 짧은 문장은 오늘날 우리 입맛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칼럼이 종종 그렇듯,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고 이 사실 저 사실 이 생각 저 생각 짜깁한 글이 적지 않다. 글 쓸 당시 시공간 배경을 잘 알 수 없어 글 자체만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몇 군데 주석을 달아주긴 했다.

러셀은 문평 비판적 시각에서 재치와 유머로 통찰을 보여준다. 그의 통찰은 오늘 우리 현실까지도 꿰뚫고 있다. 자살 허용, 교육 현장에서의 체벌 금지,안락사,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평등의 문제 등 오늘자 신문 칼럼을 읽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역판이 아니다. 일부 글을 번역하지 않았다. 편집자 말로는 시대에 맞지 않거나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 다른 글 몇 편은 덜어냈단다.

각 글의 제목을 종종 의역해 놓았다. 가끔 너무 생뚱맞다. 원문 제목을 같이 표기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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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비채 펴냄
초판 2011년 11월 발행
특별판 2017년 7월 발행



소설은 판단을 독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사물과 사건을 통해 이야기하는 방식이 하루키식인 모양이다. 자기 소개 대신에 맛있는 굴튀김 먹는 법을 이야기해서 간접적으로 자신을 말한다.

따뜻한 온기를 주는 소설을 쓰고 싶단다. 무척 와닿았다.

바흐의 인벤션을 언급하는데, 왼손과 오른손을 공평하게 쓰는 점이 마음에 든단다. 아무래도 필기는 한 손만을 주로 쓰기 때문에 장편소설을 쓸 때는 어깨가 아프다고.

인벤션 쳐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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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이레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는 인터넷 신문 호보일간 이토이 http://www.1101.com 에 올라온 여러 질문과 그에 응했던 답변을 모은 책이다. 수많은 것들 중에 64개를 골랐다. 

질문은 뭘 먹느냐는 것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질문자는 이제 말을 막 시작한 아이부터 갱년기에 접어든 주부에 유명 연예인까지 많기도 많다. 

꿈을 이어서 꾸는 방법은? 우주인이 정말 있나요? 왜 날마다 목욕을 해야 하죠? 사람은 왜 죽나요? 이처럼 이 시인에게 하는 질문은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하찮은 것도 있다. 이에 대한 대답도 역시 그렇다. 때론 피식 웃게, 때로는 심각하게, 때때로는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의미가 없는 질문에 의미가 없는 대답을 했을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

대답을 멋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말의 예술이랄까. 내가 질문을 스트라이크 존에서 훌쩍 벗어나게 높이 혹은 낮게 던져도 결국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 포수처럼 말이다. 내가 아무리 멍청한 질문해도 나무라지 않으며 토닥토닥 위로하고 쓰다듬으며 지혜롭게 대답하는 감성이랄까.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가 그런 사람이다. 무척 태평스럽게 말하는 듯이 보이나, 잘 들여다 보면 절망했던 시절의 아픔이 답변들 사이에 힐긋힐긋 보인다. 오늘날 시인으로 살며 시를 쓴다는 것은 절망을 끌어안고서도 자살하지 않으려는 필사의 작업이다. 시만 써서는 당장 죽지 않는 게 용하니까. 허나, 그 무시무시한 각오를 일반인들한테 보일 필요는 없었으리라. 현명한 시인이다.

이 책에서 당신을 위로해줄 대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하나쯤은 꼭 있으리라. 마음이 답답하다면 이 책을 펴 보라. 잠시나마 상쾌해지리라. 가볍게 읽히지만 무겁게 내려앉는 감정의 재미를 맛보길 바란다. 

참, 곁들인 그림체도 마음에 든다. 에다 나나에 씨의 솜씨다. http://www.nanae.or.tv 여기에 가면 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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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지음
휴먼앤북스(Human&Books)


사진가, 특히 풍경 사진을 찍는 사람은 종종 간첩으로 오해를 받는다. 다른 사진가의 글에서는 그 사실이 간단한 몇 줄로 나오지만, 김영갑의 회고록에는 자세히 나온다.

사진에 미쳐서 홀로 살면 빨갱이? 이게 말이 되나. 김영갑의 주인집 할머니 과거 경험으로는 그게 절대 진리다. 육이오 전쟁의 기억에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할머니, 이 여자는 착한 남자를 계속 빨갱이 빨갱이 빨갱이 이름 붙이고 의심하고 미워하고 때린다. 김영갑이 할머니의 과거를 이해하고 열심히 화해를 청하지만 죄다 소용없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 경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이 바뀌었는데도 그렇다. 과거를 계속 끌어다가 현실을 해석한다. 결국, 사진가는 다른 집으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로 떨어지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김영갑은 자신을 간첩으로 신고하는 사람들 때문에 경찰에 수시로 잡혀들어가서 조사를 받았다. 예민한 예술가한테는 치명적인 상처였으리라.

아쉽게도, 이 책에 수록된 사진의 아름다움에 몰입하질 못했다. 글에 담긴, 사람들의 추악함에 치를 떠느라 평화로운 풍경 사진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영갑의 억울함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하는데, 단지 당신들의 과거 경험으로 구축한 선입견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렇게 괴롭히다니.

사진만 있었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이토록 평화로운 사진을 찍은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떼어 놓는다면 그의 예술혼을 외면하는 일이겠지.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박해를 견디고 이토록 평화로운 사진을 찍었다. 외로움과 가난조차 사진에 대한 열정을 없애진 못했다.

"나도 당신처럼 외롭다. 홀로 왔다가 홀로 간다. 세상은 아름답다. 넓게 보고 깊게 생각하면 세상은 우리 마음속의 내면 풍경이다." 김영갑의 글과 사진이 그렇게 속삭인다.

삶이란, 고통이란, 그저 잠시일 뿐이다. 아름다움은 순간이다. 그 절정의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 우리를 위로한다.

[밑줄 긋기]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희망의 끈을 나는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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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박윤정 옮김
양문

글쓴이 집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에도 그의 주장은 공감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사람이 현대 문명의 일원으로서 사는 게 비참한 인생이라며 자연의 일부로 살라고 한다. 원시인이 되라는 건가? 과거로 되돌아가자? 그의 강의에 청중은 어리둥절했으리라. 산업화로 기차와 전화가 개설되는 시대에, 산책하면서 자연이 주는 기쁨을 누리고 살라고 하니, 돈과 욕망에 이리저리 휘둘려 사는 세속인의 귀에 그의 말이 쏙쏙 들어갈 리 없었다. 현대 문명의 혜택을 즐기는 데 열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으리라.

소로우는 말한다. "오후 네 시와 다섯 시 사이에 낙타처럼 천천히 걸어 보세요." 문명을 혐오하고 야성의 자유를 사랑했던 소로우에게 산책은 절대적인 자연 사랑이었다. 그에게 숲을 천천히 걷는 일은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우주의 질서에 동참하는 행위였다. 세상사 다 잊고 걷는 것이야말로 소로우가 누렸던 최대의 행복이었다.

소로우의 글은 지루한 장문체다. 여러 고전을 인용하는데, 대부분 낯설다. 그러니 현대 독자가 그의 글 읽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낭독회에서 소로우의 글은 읽지 않는 게 낫다. 읽고 있으면 다들 잔다.

지루한 산문체에다가, 문명을 떠나 자연으로 되돌아가라는 잔소리에도, 그의 글이 우리한테 읽히는 이유는 뭘까? 그의 자연 사랑이 삶의 진실로 돌진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 "삶의 균형을 지키며 은밀한 폭력도 없이 고요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온 세상이 아름다움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쁘고 불확실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얼마나 매혹적인 문장인가.

샘물, 호수, 폭포, 나무, 대지, 하늘. 우리의 본성은 자연, 그 일부로서의 존재감을 느껴야 진정한 삶을 느낄 수 있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느끼려면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라. 산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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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박경리 지음
현대문학

이 책은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했던 창작론 강의를 담았다. 체계적이고 꼼꼼하게 쓴 글이 아닌, 즉흥적으로 말한 것을 글로 옮겨 놓았다. 작가는 강의나 강연을 원고 없이 해 왔다고 한다. 그 이유를 "원고를 준비하면 그것에 사로잡혀서 더듬거리며 말이 막히고 내 목소리가 아닌, 죽은 언어로 지껄이는 것 같았습니다. 하기는 강의 노트를 만들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것도 이유겠지만요."라고 밝혔다. 덕분에,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실감나게 읽었다.

이 강의에서 작가는 사십 년이 넘는 창작 생활 경험을 토대로 문학, 특히 소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즉흥적으로 이 얘기를 하다가 저 얘기를 하다가 해서 일관성을 찾기가 조금은 힘들었다. 너무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해서 그걸 자세하게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겠다. 몇 가지만 추려 보겠다.

분단 문학과 노동 문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있었고, 일본 문화와 일본 문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었고, 곳곳에 유물론적 사고방식, 문학의 상업주의, 현대문명의 허구성,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물신주의 사상 따위의 비난이 있었다. 또,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한테 하는 충고가 있었다. 자기가 쓴 소설을 말하면서 좋은 소설에 있어야 할 것을 말했다.

소설가의 독서 체험과 글쓰기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광적인 독서에 빠져들었던 소녀 시절을 보냈다고. 사십 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세계사대계>를 독파했을 때 눈앞이 확 틔는 것을 체험했다는 박경리. 젊었을 적에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글을 쓰다가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먹을 것이 담긴 그릇이 비었단다. 잠결에 먹은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는 작가니까, 그 엄청난 양과 질의 소설 <토지>를 썼겠지.

"내 일자리는 자학을 극복하기 위하여 돌아오는 곳입니다. 나의 실체를 인식하고 모든 생명의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그 염원 때문에 앉는 자리인 것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자학을 극복하기 위한 행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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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막시밀리앙 르 루아
작은길
2014.05.23.

만화로 보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라, 소로의 생각과 일대기를 핵심만 추려서 정리해 놓았다. 어떤 이의 삶을 이렇게 요약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지만, 다 보고나니 이런 요약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삶과 저서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는 점이 뚜렷하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론자였던 파스칼이 쓴 '팡세'가 무신론자들한테 더 많이 인용하듯, 개인주의자였던 소로의 글은 무정부주의들이 자주 인용한다. 소로의 생각은 '보수적인' 국가에는 대단히 위협적이다. 양심에 따라 국가에 항거하는 개인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돈과 법의 힘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양심의 목소리에 따라 국가 권력에 감히 저항하려는 이들한테는 소로가 위대한 스승이다.

톨스토이, 간디, 킹 목사. 양심의 역사를 만들었던 이들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고백한 사람이 바로 소로다. 다수결의 민주주의도, 감옥과 경찰력도, 심지어 죽음마저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의 글을 읽거나 그의 전기를 조사해서 보면, 오늘날 일반 사회적 기준으로 봐서는 실패자다. 고학력(무려 하버드 대학 졸업) 백수 비정규직(1년에 1달 일하고 11달은 놀자)이었다. 아버지의 연필 공장 운영마저 자신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내던지는 '부잣집 도련님'이지 않은가. 게다가 책 쓰는 작가로서도 대단한 '실패자'였다. 자기가 쓴 책 대부분이 팔리지 않아 집에 보관하고 있었다. 강의하고 연설했지만 귀를 기울이거나 찬성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아니 도대체가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게 거의 보이지 않는 삶이었다. 이런 사람이 위대하다고?

위대한 개인주의자 소로가 추구하는 것은 자유였다. 개인의 자유와 양심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한다. 그는 예수를 뛰어넘는다. 종교 대신 자연을 택한다. 다음은 소로 연구가 미셀 그랑제의 말이다. "이 개인은 독사(기존 사회의 낡고 경직된 통념)에 반대하고, 정치의 부당성과 종교의 위선에 저항하고, 돈과 일에 중독되는 것을 거부하고, 소박하고 행복한 삶의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소비만능주의에서 해방된, 그리고 자연의 무차별 개발이 주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입니다."(91쪽) 그냥 사람이 아니고 무려 '존재'님이시다.

소로의 입문서로 추천한다. '월든' 읽기가 그리 만만치 않았던 이들과 이미 '월든'은 읽은 이들에게도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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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잭 런던
한울
2011.04.25.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회주의 작가인 잭 런던이 1904년 러일전쟁 시기에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었다니, 무척 흥미롭고 놀라웠다. 과연 이 냉철한 사회주의 작가의 눈에 우리나라의 무엇이 포착되었을까? 많은 기대를 걸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잭 런던의 이 러일전쟁 종군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인을 못 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서양인을 보면 무슨 구경거리 보듯 구름처럼 모여드는 조선인.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조선인. '십 리만 더 가라'는 길 안내에 잭 런던은 짜증을 냈다. 이 말은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을 꺼려해서 내쫓기 위해 상투적으로 썼던 말인 모양이다.

이 점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일제 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외국인을 보면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쳐다보고, 외국인에게 불친절하다. 잭 런던은 이 점이 매우 불쾌했던 모양이다. 반면 중국인과 일본인은 자신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고 종군기에 적었다. 일본인은 영어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고.

전쟁이 나자 모두 짐을 싸서 도망치기에 바쁜 조선인. 심지어 문짝까지 가져간다. 그렇게 도망을 가는 도중에도 구경거리는 꼭 본다. 잭 런던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인의 특성 가운데 비능률적인 점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중국인은 도망가지 않고 전쟁 중에도 생업에 열중하며 이익을 잘 챙긴다.

민중의 피와 땀을 빨아먹는 조선의 관료층을 지적한다. 잭 런던은 어찌나 화가 났던지 고을 사또 '박순성'을 직접 만나 민중의 몫 70퍼센트를 환불하라고 말했다. 박순성에게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가면서 잭 런던이 하는 말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신랄하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고, 만영이(잭 런던이 데리고 다닌 통역이자 조수)도 알고 있었으며, 박순성이도 알고 있었고, 우리 모두도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 모두도 알고 있었듯이 박순성이는 절대로 돈을 안 돌려줄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뇌물을 주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는 한국. 전직 대통령들이 앞장서서 민중의 피땀을 쪽쪽 빨아먹었지 않았는가. 잭 런던의 정확한 지적은 오늘날에까지 유효하다.

일제 시대에 잭 런던이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읽기에는 역부족이었으리라. 1904년 러일전쟁 시기, 우리나라는 열강들의 밥이었으니까. 우리나라 땅에서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서로 전쟁을 하는 통에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이 없었겠지.

그의 1904년 3월 4일 종군 일기의 첫부분은 우리 치욕의 역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의 점령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부터 물가는 하루하루씩 오르기 시작했다. 인부와 마부 그리고 상인들은 그런 식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지배계급(관료계급)들이 후에 그들에게서 뺏아갈 것이지만 말이다. 그 즈음에 관료들과 양반계층 사람들은 나라일을 걱정도 하고 겁도 나 있었지만, 불쌍한 고종황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황제는 피신을 해야 할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가운데 일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지엄하게 공포하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들이 잘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당신네 군인들을 그들 병사에게 쫓아내는 일 같은 것이었다."

잭 런던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일본 군대를 칭찬했지만, 제국주의 망령의 씨앗과 일본인 정신문화의 황폐함을 지적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갈색인(잭 런던은 중국인을 황색인으로, 일본인을 갈색인으로 불렀다)에게는 타고난 약점이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모험을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갈색인이 서양으로부터 모든 기술 발전을 도입해 왔는데 윤리적 발전은 무시한 점이다."

그의 통찰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본인보다 중국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의 예언은 맞았다.

잭 런던은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에 매우 감탄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관광이 아니라 취재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 종군기에 우리나라 자연풍경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적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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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
문예출판사 | 2013년

이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수많은 글 중에서 핵심을 정선해서 고른 선집 에세이다. 따라서 러셀 입문서라 할 수 있다.

러셀의 저서는 워낙 방대하고 다양하면서 때때로 전문적이다. 대개는 수필이지만, 추리소설이 있는가 하면 수학 원리라는 수학 책에 서양의 지혜라는 방대한 분량의 서양철학사 책도 있다. 신문 칼럼도 많이 썼다. 여기에 500쪽이 넘는 자서전까지 죽기 전에 남겼다. 글 쓰는 기계다.

이 책 날개 소개글을 인용해 보면,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이 넘는 책을 쉬지 않고 출간했다.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천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라고 나온다.

그거 일일이 다 보려면 1년은 넘게 걸릴 것이다. 아직 안 나왔지만 러셀 전집이 나온다면 말이다. 이 선집 한 권이면 간략하게 러셀의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워낙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러셀의 생각을 요약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그가 쓴 자서전 첫머리에 세 가지로 요약되어 있다. 번역서가 제목으로 택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에 대답이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그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기에는 세 가지 말은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의 사상은 이성 낙관론이다. 또한 신비주의와 신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불가지론자로서 이성을 추구하는 지성인 입장을 고수한다.

지식의 확실성, 혹은 확실한 지식의 기반을 찾기 위해 수학 연구에 매진하였지만 결국 수학조차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러셀은, 그러나 격동의 세월을 겪으면서 1차 세계대전 때는 평화주의자로 반전운동을,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반핵운동을 했다. 이런 사회운동의 기반은 사람이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이성을 추구해서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 있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무신론자인 러셀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를 봤다. 그만큼 러셀의 생각과 행적이 범인류의 인류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그분이 러셀의 글을 제대로 읽어 봤는지는 의심스러웠다.

러셀은 여전히 찬반 논쟁이 많은 사상가다. 자살옹호론 같은, 보수층에서 보면 난리가 날 주장을 서슴없이 해댔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중에 단연 최고로 칠 것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다. 기독교를 논리와 이성으로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성을 초월해서 믿어야 한다는 믿음에 굳건한 유신론자들한테는 모기 윙윙거리는 소리만도 못하겠지만.

"저는 종교가 공포에 일차적이고 주요한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100쪽)라고 말하면서 결국 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성으로 밝은 미래를 창조하자는 것이다. 그 다음 글 '어느 신학자의 악몽'은 러셀다운 유머가 넘친다. 유신론자를 풍자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현명한 '지성'이다. 합리성과 관용, 그리고 상호 의존성에 대한 깨달음을 러셀은 강조했다. 허나 세상 사람들이 지성적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들 감정적이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틈만 나면 남들 부려먹으려고 들고 비이성적인 행동과 극단적인 생각과 막말을 찬양하고 좋아하는 판국이니.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광기의 시대에서, 거짓이 진실을 뒤덮어 오염된 세상에서 러셀은 인류의 희망을 지성으로 보았다. 그런 자가 소수라고 하더라고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지성의 불꽃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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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의 권유
이중재 지음
토네이도 펴냄

합격 수기는 A4 한 장이든 책 한 권 분량이든 '동화'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어렵게 힘들게 가까스로 공부해서 마침내 합격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다. 반드시 그렇게 끝난다.

법정에 들어선 변호사는 사법 제도 자체의 모순에 의문을 제기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모든 합격 수기는 이렇게 쓰는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

만약 합격한 후에 사랑하진 않지만 돈만 보고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자신의 법률회사는 의뢰가 없어 망하고 말았다고 쓰면 안 된다.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중재의 이 책은 '고시 합격 수기' 불문율을 그대로 따른다. 이 책 그 어디에도 시험에 합격한 후에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일을 성취했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합격 후 사연을, 독자는 알아서는 안 되며 작가는 알려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자, 핵심으로 들어가자. 도대체 이 사람의 합격 비결은 무엇일까? 제목처럼 독학인가? 아니다. 정확히 말해 지은이는 독학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 실행을 추천한다.

"뭐야, 고작 그거야. 시시하네." 아니다. '반복 실행'이야말로 합격하지 못한 당신과 합격한 이들의 결정적인 차이다. 당신이 무슨 시험을 준비하고 있든 합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신은 하지 않았다. 했더라도 반복하지 않았다. 반복했더라도 합격할 때까지 버티지 못했다.

광고문안을 보라. "알파벳도 모르던 축구선수에서 독학 4년 만에 사법시험 합격!" 솔직히 인정해라. 이 말에 혹해서 책을 샀거나 폈다고. 나부터 고백하겠다. 그렇다, 이 한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집었다. 인생 역전, 로또다. 그럼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들 그렇게 생각지 않았을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복권을 비유로 들었다.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공부를 시작하지 않은 사람은 긁지 않은 당첨복권과 같은 존재다. 실행이라는 동전을 꺼내 긁기만 하면 된다." 25쪽. 단, 문제점이 하나 있다. 무지하게 많이 반복해서 긁어 봐야 당첨 여부를 알 수 있다.

독학은 혼자 하는 공부가 아니라 독하게 하는 공부다.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는 광기에 가까운 집착과 지독할 정도의 노력, 그리고 행운의 화사한 웃음이 있다. 운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다.

고시생을 위해서 수험 방법의 차별점을 얘기하자면, 일단 이 사람은 노트 요약 정리를 안 했다. 필기를 거의 안 했단다. 그는 책을 그저 여러 번 읽는 것만 했다. "책을 무한 반복해서 읽으니 더욱 자연스럽게 암기가 됐다." 64쪽 필기라고는 메모 정도였다. 잘 외워지지 않는 부분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자주 보고 이해가 되면 버렸단다.

사법시험 준비생은 대개들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그러니 안 되는 시험 때려치우고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데 취직할 생각이 자꾸만 든다. 서울대, 연대, 고대 출신으로 어느 정도 토익, 토플 점수가 되기 때문에 실제로 취직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그만큼 고시에는 합격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 떠나는 순간 포기요, 불합격이다.

이중재는 배수진이었다. 지난 축구생활 10년은 회복할 길이 없었다. 들어간 대학의 학과 공부는 이해되지 않아 중퇴하고 말았다. 이거 아니면 저거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사법시험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사법시험 공부를 억지로 했지만, 이 사람은 흥미를 갖고 재미있어서 파고들었다. 좋아해서 하는 사람은 못당하는 법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라. "신림동 입성 당시 내 목표는 사법고시 합격이 아니었다. '즐겁게 민법을 공부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였다. 나는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앎의 즐거움에 푹 빠져들었다." 86쪽.

내 지난 수험생활은 억지로 했던 것이었다. 가까스로 합격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냉소였다. 만약 자발적으로 의욕을 갖고 하는 공부였다면 보란듯이 합격해서 그들에게 복수할 힘이라도 있지. 그것도 없는 상태에서 그야말로 죽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수험서를 반복해서 읽었다. 지옥이었다.

이중재에게는 전적으로 믿고 지원해준 부모님과 아내가 있었다. 내게는 그런 사람이 곁에 없었다. 내가 믿고 의지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신을 믿고 싶었다. 위선이었다. 차라리 주사위를 믿는 게 낫지. 한 문제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는 살벌한 경쟁에서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다. 한 문제 차이로 합격하고 불합격도 했다.

이중재는 운도 좋았다. 91~92쪽. 사법시험의 외국어 과목이 토익, 토플, 텝스 시험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고시를 비롯하여 사법시험에 영어 시험은 정말이지 극악스러울 정도로 어려웠었다. 이젠 바뀐 것이다. 나조차 이때다 싶어 고시 볼까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이 사람의 사법시험은 자기의 길이었다. "남들 다 어려워하는 민법을 소설책 보듯 정신없이 읽어내려가면서 '이 길은 내 길'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235쪽. 당신도 그러한가? 뭐 그럴 필요까지 있나. 그저 싫지 않으면 그럭저럭 하는 게 일이지 않은가.

나는 소설을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실행'은 못했다. 과연 이 길이 나의 길인지, 정말 쓸 수 있을지 확신은 없다. 그저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있고, 달리 딱히 그 외는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뿐이다.

당신이 어떤 환경이나 조건에 있든, 합격의 비결은 오직 하나다. 될 때까지 무한 반복 실행이다. 합격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경제력과 정신력이 있어야 한다. 합격하는 순간, 당신을 업신여겼던 이들이 당신을 떠받는다.

무조건 반복 실행하라. 그러면 어쨌든 합격한다. 건투를 빈다. 합격한 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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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의 일기
헨리 데이비드 소로
도솔
2003.07.01.

소로우는 친구 에머슨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스물이었다. 그 후부터 죽을 때까지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 그의 일기에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 자연 사랑, 간략한 격언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일기 쓰기로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갔다. 오늘은 뭐 했다가 뭐 했다 식이 아니라, 날마다 사색한 내용을 담았다. 일기 한 장 한 장을 성실하게 썼다. 그 유명한 '월든'은 날마다 쓴 이 기록이 바탕이었다.

"자진하여 무언가를 알아내려면 완전히 편견을 버리고 대상에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사물이 으레 그러리라고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진지한 사색이 주로 이루면서 가끔씩 다음처럼 폭소를 자아내는 우스개가 나온다. "어떤 바보이든 규칙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진 규칙은 모든 바보에 의해 준수될 것이다."

에머슨은 소로우를 "굳은 신념과 간소한 욕망"의 인간으로 평했다. 뭐 좀 배운 사람은 으레 머리를 굴려서 부와 명예를 얻기 마련이다. 그걸 걷어차고 소로우는 자발적으로 가난과 무명을 택했다. 그리하여 얽매임 없는 자유를 얻어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

교사로 취직했으나 체벌에 반대하여 사임하고, 노예 해방 운동가 존 브라운이 처형되자 마을의 조종을 울리려 했고(하지만 제지당했다.), 멕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뜻으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고(친척의 대납으로 풀려난 후 '시민의 불복종'을 쓴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선출되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고 나무를 관찰했다.

책에 작가 연보가 자세히 붙어 있어 읽어보니, 그의 삶은 그리 행복했다고 할 수 없다. 책을 써서 출판했으나 많이 팔리지 않았고 거의 대부분 되돌아 왔다. 청중들에게 강연했으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청혼하는 편지를 썼으나 거절당했다. 여자 집안의 반대 때문이었다. 도서관에 기부금을 보내 달라는 요청서에 "더 기부하고 싶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내가 번 돈을 전부 모아 봐야 이 금액에도 못 미친다."라고 쓰고 5달러를 보냈다.

1847년 9월 30일, 하버드 대학에서 졸업생의 개인 신상 명세를 묻는 질문지에 소로우는 이렇게 쓴다. "나는 교사-가정교사, 측량기사, 정원사, 농부, 도색공, 목수, 석공, 날품팔이 노동자, 연필 제조업자, 사포 제조업자, 작가, 때로는 3류 시인이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면 상당한 지식인이다. 그런 사람이 왜 애써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글을 썼을까? 그는 성공에 집착하는 삶이 싫었던 것이다. 돈도 명예도 안정된 사회적 지위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성공한 삶은 무엇일까. 자신의 명함에 남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적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은 평생 일해도 얻을 수 없는 엄청난 부를 소유한 것인가. 글을 써서 이름을 날리는 것인가. 그것이 정녕 자신이 원하는 삶인가. 그것이 정말로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삶인가.

1857년 5일 1일,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물질적인 부, 특히 집이나 땅을 모으는 데 열중하는 사람은 바보 같은 사람이다. 우리 인생의 자산이자 부동산은 우리가 애써 생각해 내서 얻은 사고의 총량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지는 우리의 사고를 먹는 영원한 목초지가 된다. 그 외 무엇이 내 소유물을 늘여 나를 부자로 만들 수 있겠는가? 상상과 공상과 이성이라는 아주 훌륭한 도구로 어떤 일을 해냈다면 그것은 새로운 창조이고 영원한 소유물로 세상이 도저히 빼앗아갈 수 없다." 당시 살던 사람들의 집과 돈과 땅은 잊혔으나, 소로우의 글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읽히며 기억된다.

사람들은 금방 알 수 있는 결과를 좋아한다. 그러니 책보다 신문을 선호한다. 나는 의도와 과정을 자세히 보고자 책을 읽는다. 여기 한 사람이 있고, 그가 쓴 글이 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삶을 보냈는지 엿볼 수 있다.

소로우의 일기를 읽으면서 떠오른 그에 대한 인상은 고결한 순수함이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이의 모습에는 경이로운 신성함이 있다. 소설처럼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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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은행나무
2011.08.22.

헨리 데이빗 소로우, 그는 자연 사랑에서 삶, 우주, 자유를 사색한 미국 지식인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박한 마음을 지닌다.

값비싼 의식주를 얻기 위해 소중한 삶의 시간을 허비하느니, 차리리 한 달만 정직하게 일해서 나머지 열한 달의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삶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여유 시간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인 자연 관찰과 글쓰기로 보냈다.

대학 도서관 기부금 요청에 5달러를 보내며 "더 기부하고 싶지만 지난 4개월 동안 내가 번 돈을 전부 모아 봐야 이 금액에도 못 미친다."라고 덧붙일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소로우의 글은 자연의 꾸밈없는 솔직성과 아름다운 위대함을 그대로 닮았다.

<야생 사과>: 사과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관련된 온갖 고전, 과학적 지식, 문헌을 종횡무진 총동원하며 삶의 깊은 의미를 풀어내는 이 놀라운 글솜씨! 글쓴이는 사과나무의 생명력에 감탄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한다.

길들여진 사과나무의 열매는 순하고 평범함 맛을 지닌다. 그러나, 야생사과나무의 열매는 "활 시위를 당길 때와 같은 짜릿한 맛"이 난다. 소로우는 야생사과나무처럼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인간 사회 제도의 틀에 맞춰 살지 않고 자연이 가르치는 진리에 따라 살았다.

<돼지 잡아들이기>: 1856년 8월 8일 일기. 강에서 배를 저으며 명상에 잠겨 있던 소로우는 가출한 돼지(?) 때문에 사색을 중단하고 만다. "이 사건을 해결할 모든 책임은 나에게 귀착되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더 빨리 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나만 쳐다보셨고 나는 이제 강 쪽을 바라보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웃었다. 힘세고 날샌 돼지를 잡기 위해 이러 뛰고 저리 뛰는, 소로우와 그의 이웃들. 보통 돼지가 아니었던지 소로우의 아버지는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이웃 사람들은 대체로 동정적이었다. 온 읍이 우리 돼지를 화제로 삼았다. 사람마다 자기가 기르던 짐승을 잃고 속 상해 하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네 정겨운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신창원 원숭이 잡기가 생각난다. 온 동네를 휩쓸고 돌아다니는 그 원숭이 덕에 이웃들이 서로 친하게 되었단다.

<한 소나무의 죽음>: 1851년 12월 30일 일기. 거대한 소나무가 잘려 쓰려지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소나무의 죽음에 애도의 뜻으로 마을의 종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로우.

<가을의 빛깔들>: 아름다운 가을 단풍의 빛이 글에 녹아 있다. 그에게 가을은 자연의 축제다. "이 10월의 축제를 여는 데는 경축 기념 대포를 쏘기 위한 대포알 비용이 들지 않으며 종을 울릴 필요도 없다. 나무 하나하나가 1천 개의 화려한 깃발이 나부끼는 살아있는 자유의 깃대인 것이다." 낙엽에서 철학적 생각을 끄집어낸다. "낙엽들은 자신들의 무덤에 편히 쉬기 전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공중에 흩날렸던가! 그처럼 높이 치솟았던 그들이건만, 얼마나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흙으로 돌아가는가! 나무 아래에 묻혀 썩어가며, 새로운 세대의 동족을 위하여 얼마나 기꺼이 자양분을 제공하는가! 이 낙엽들은 우리 인간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인간은 자신의 불멸성을 자랑하지만 낙엽만큼의 기품과 성숙함을 가지고 죽음에 임할 날이 과연 언제쯤 올 것인가? 머리털이나 손톱을 자를 때처럼 '인디언 여름'과도 같이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육신을 떠날 날이 과연 언제쯤 오겠는가?"

왜 우리는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을 보지 못하는 걸까. "자연 경관에서는 우리가 감상할 마음의 준비가 된 만큼의 아름다움만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외에는 눈곱만큼도 더 우리는 볼 수 없다." 마음의 여유, 우리는 그걸 잃어버렸다.

<시민의 불복종>: 소로우는 미국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에 강하게 반발했다. "자유의 피난처임을 자임(自任)해 오던 나라의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이고, 또 한 나라의 전 국토가 외국 군대에게 짓밟히고 점령되어 군법의 지배하에 놓였을 때, 정직한 사람들이 일어나 반항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 때라도 결코 너무 이르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할 의무가 시급한 것은, 이 짓밟힌 나라가 우리 나라가 아니며, 오히려 침입한 군대가 우리 나라 군대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정부가 부과한 인두세(人頭稅)를 6년 동안이나 거부했다. 수선을 맡긴 구두를 찾으러 구둣방에 가려다가 감옥에 갇히고 만다. 친척의 대납으로 하루만에 풀려난 소로우는 이 체험을 글로 쓴다.

이 글은 개인주의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세상을 참되게 변화시키는 것은 다수의 비위에 맞춰 이랬다 저랬다 하는 정치꾼의 정책과 입법자의 법이 아니라, 정의와 선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소수의 개인들이다. "우리가 만약 우리의 장래를 입법자들이 의회에서 보여주는 말재주에만 전적으로 맡기고, 일반 국민의 풍부한 경험과 효과적인 불만 표시로 잘못을 시정해 나가지 않는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그 지위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엄정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내가 허용해 준 부분 이외에는 나의 신체나 재산에 대해서 순수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입헌군주제에서 민주주의로 진보해 온 것은 개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을 향한 진보이다. 중국의 철인조차도 개인을 제국의 근본으로 볼 만큼 현명했다."

자연에 몰두했던 그가 이런 사회적 의미가 담긴 글을 쓴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소로우는 집단적인 사회 집단과 제도보다 개별적인 사람의 양심과 개성을 존중했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정부를 용납할 수 없었다. 정부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들이 정부를 위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위대한 개인주의자의 힘찬 목소리를 들어 보라.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양심을 상대하려는 의도는 결코 보이지 않고 오직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뛰어난 지능이나 정직성으로 무장하지 않고 강력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기적이란 신이 어쩌다가 우연히 심심풀이 삼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반드시 일어나고야 마는 필연의 산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은 그 기적에 대한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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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민음사
1998.08.05.

"글을 쓴다는 것은 주는 것이다." 1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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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쉼표(YES24 블로그 축제 수상자 서른한 명의)
편집부
문학동네

"우린 온갖 조건들에 둘러싸여 자기 힘으로 뭔가 선택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일이 흔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5쪽

그래서 글쓰기가, 소설쓰기가 매력적인 것이다. 혼자서 자기 힘으로 끝까지 해 나아가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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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사는 힘들지만 굉장히 재미있어요. 나도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았지만 글쓰기만큼 편한 것도 없거든요. 사람들과 억지로 사귀지 않아도 되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또 손님들에게 머리 숙일 필요도 없지요. 이렇게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자기한테 편하게 느껴지는 일을 해라.

대개들 출근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으며 외로워한다. 돈을 버는 일이란 대체로 자신의 자존심을 낮추는 것이다. 예술가는 그 반대로 일해야 대접받는다. 대중에게 아부한답시고 자기만의 장점을 버리면 작품이 평범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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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5년 2월 발행

 

 

연필이 없어서 유명 야구선수한테서 사인을 받지 못했던 폴 오스터. "다른 것은 몰라도 세월은 나에게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히 가르쳐 주었다. 주머니에 연필이 들어 있으면, 언젠가는 그 연필을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내 아이들에게 즐겨 말하듯, 나는 그렇게 작가가 되었다." 

 

김연수가 컴퓨터로 딱히 할 게 없어서 소설을 썼다는 말과 통한다. 

 

글은 쓰고 싶어서 쓴 게 아니다. 

 

글쓰기 도구가 있어서 글을 썼을 뿐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갈축 키보드를 샀기에 그저 타이핑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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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라카미 하루키 팬인가? 아니라고 답해야 하리라. 이 일본 사람의 소설에 열광한 적이 없으니. 읽어 본 책은 [상실의 시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밤의 원숭이]가 전부고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밤의 원숭이] 정도다. 하루키라고 찍힌 책만 보면 무조건 집어 들진 않으니까, 팬이라 할 수 없다. 욘사마 일본 가듯 하루키 한국 와서 "제 책입니다. 제 사인도 넣었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제발 읽어 주십시오." 하고 내게 간곡히 청한다고 해도, 안 읽을 터이고 책은 받아서 하루키 팬한테 비싼 값에 팔 것이다.

구십 년대 학창 시절 나의 자아 상실감은 하루키의 그 느낌과 달랐다. 운동권도 비운동권도 아닌 회색주의자로 불렸으니. [공산당 선언]을 읽고 있으면 선배한테 괜한 오해를 받았고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읽고 학생회 조직의 폭력성에 대해서 비난하면 또 이상한 눈총이 쏟아지는 거였다. 나중에야 [월든]을 읽고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을 때 이십 세기는 사라졌다. 이 책을 집어 든 사람들 대부분이 품었을, 아스라한 추억과 가슴 떨리는 감정이 나한테는 없었다. 그가 소설가라는 점과 그가 소설을 어떻게 쓰려 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을 때 헤맸다. 분류번호가 일본문학이 아닌 한국수필이다. 이상하네, 일본 작가 인터뷰가 한국 문학, 그것도 수필로 분류되다니. 집에 와서 천천히 읽어 가면서 그 이유를 알았다. 놀랍게도, 이 책은 하루키와 직접 인터뷰한 책이 아니었다. 글쓴이는 하루키를 직접 만나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어떻게 썼을까. 책 맨 끝에 붙은 참고 서적을 보라. 그 책들로 짜깁기한 것이다.

짜깁기는 깔끔하고 정갈하다. 진짜 하루키와 인터뷰한 걸로 착각할 정도다. 문장이 매끈하다. 흥미롭게 잘 썼다. 거기에 적절한 그림을 더했으니, 읽기는 수월했다. 다만, 독자들이 그다지 관심이 없을 자기 얘기를 넣은 것은 절제의 미덕에서 벗어난 일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정도면 좋았을 걸. 한창 하루키 삶의 이야기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엉뚱한 사람이 등장해서 자기 얘기를 하니, 읽는 사람으로서는 흐름이 끊어져 불편하다.

170쪽 "이 글은 가상의 인터뷰이며, 무라카미 하루키 씨의 답변 내용은 그의 실제 인터뷰 글을 토대로 하여 작성되었다."를 읽기 전까지만 해도 글쓴이가 직접 하루키와 만나서 인터뷰를 한 줄만 알았다. 이런 가상 인터뷰는 책세상문고 세계문학에서 자주 하는 편이다. 어떻게 옛날에 죽은 사람과 이렇게 인터뷰를 했지 싶어 살펴 보면 '가상 인터뷰'인 것이다. 예전에 하이텔 시절에 어느 동호회 게시판에 '쥐스킨트 인터뷰'가 올라와서 기쁜 마음에 읽었다가 나중에 그게 '가상 인터뷰'였다는 걸 알았을 때 낭패감이란 참. 제발 '가상 인터뷰'라고 글 맨 앞에 써 놓으란 말이야, 그렇게 작게 말고 크게 써 놓으라고, 이 허풍선이들아!

하루키에 대한 소식은 구십 년대 초반 이후 나에게는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기에, 이 책이 전하는 하루키의 소식은 놀라웠다. [상실의 시대]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배신과 비난에 고생했다니. 세상 일이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함께 있는 것이로군. 일본 사회에 어울리지 못해 외국을 떠도는 방랑객 세월을 보냈다니, 가여웠다. 그러게 돈과 명성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니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은, 뜻밖이었지만 좋아 보였다. 레이먼드 카버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만남은 가슴 찡했다.

작가 지망생한테 유익한 충고가 많다. 하루키의 지난 삶에서 알 수 있듯,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그 어떤 예술 작품이든 열심히 감상하고 즐긴 후에야 자신도 예술 작품을 만들 용기가 생긴다. 하루키의 성공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꾸준한 노력으로 이루었다. 어느 분야건 공짜는 없다. 그냥 어디 한번 해 볼까 하며 덤비는 게 아니었다. 꾸준히 연구하고 시도하고 노력해서 완성했다. 글이 잘 안 써진다고 불평하기 전에 하루키만큼 책을 읽었는지 반성해 보라. 또 하루키만큼 써 봤는지 자신한테 물어 보라.

하루키는 '나의 북극성'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좋은 작가다. 모범이 될 만한 소설가다. 글쓰기에 대한 신념과 헌신. 그 점은 모든 작가 지망생과 이미 작가인 사람도 배워야 하리라, 무라카미 하루키 팬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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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 타자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2000년 8월 발행

 

 

작가, 진짜 글을 쓰는 사람은 성공이란 말이 자신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는 자신의 삶이 사람들이 말하는 그 성공과는 정반대 편에 있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무엘 베케트는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감히 실패할 수 없는 식으로 실패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책은 성공한 작가 폴 오스터의 실패 연대기다. 그가 유명한 작가가 되기 이전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오스터는 이렇게 회고한다.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즐거운 책이다. 그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 현실의 어디에서 왔는지 아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실에서 소설로 넘어가는 그 과정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소설들을 읽은 후에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 책을 읽고나면, 폴 오스터 소설의 원천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을 흥미롭게 이야기한다. 대부분 그 사람들은 소설에서 등장인물로 탄생했다. 놀랐던 것은 폴 오스터가 유명 작가들과 만났다는 점이다. 교정 문제로 저지 코진스키를 직접 만났고, 장 주네의 연설을 통역했다.

 

"의사나 경찰관이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쓰는 것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6p 당신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밑줄을 치는 부분이다.

원제는 Hand to Mouth다. 빵굽는 타자기로 의역한 재치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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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를 모른다면, 이 책은 안 읽겠지. 이 책으로 처음 이 작가를 접하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다른 책부터 읽은 후에 이 책을 집으라.

기행문이다. 유명한 항구도시를 여행하면서 그 지방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은 감상을 썼다. 그렇다고 미식가의 요리 비평은 아니다. 여행 전문가의 상세한 관광 안내기는 더구나 아니다. 그럼 뭔가. 제목처럼 수다다.

주제 맞게 잘 쓴 글이 아니다. 술집 마담하고 술 마시고 도박하고 사람 구경하고 그런다. 2004년 나오키 문학상을 타고 거만해진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 놓는다. 평소 자기 생활과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 놓는다. 자기 책 광고를 천연덕스레 한다. 독설과 찬양이, 솔직함과 뻔뻔함이 그네처럼 흔들거리며 짧은 문장으로 열심히 조잘거린다. 웃긴다. 재미있다.

이 소설가는 이 책에서 밝히길, 결혼은 하셨고 나이는 마흔 줄이고 아이는 없고 앞으로 없을 것 같고 예쁜 여자 좋아하고 일본 야구는 선수의 기록을 외울 만큼 마니아다.

기행문인데도 그의 문장은 그대로다. 주인공을 소설가 본인에서 다른 아무 이름이 붙이면 소설로 읽히리라. 이라부나 오쿠다나 몸만 어른이고 정신 상태는 어린 아이다.

사진 찍는 사람과 편집자가 같이 하는 여행이다. 그래도 열심히 혼자 춤추는 걸 보면, 딱 이라부 모습이다. 괜히 그런 캐릭터가 나왔겠는가. 다 작가 닮아서 나온 자식이지.

오쿠다의 문장은 청량 음료수다. 탁 쏜다, 짧고 간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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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발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지난 해 가을 이 책을 읽고난 느낌이 겨울을 지나 복학하고 봄, 여름이 지나 다시 가을의 문턱에 접하는 어제까지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오늘 다시 읽었으니까 아마 또 다음 해까지 그 느낌은 계속 유지될 듯하다.

조용한 방에서 글을 쓰는 사람, 삶과 죽음의 이미지, 고독, 그런 것들이 참 오랜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읽다 배고파서(어제 점심에 만두, 어제 저녁에 라면, 오늘 아침은 콘후레이크) 쇠고기 국밥을 듬직하게 맛있게 먹었다. 배가 부르니까 역시 졸렸다. 가까스로 졸음을 참고 이 책을 읽었다.

나랑 어울리는 이 책의 다음 구절. "욕구가 없는 남자, 이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이 남자는 무엇 하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보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25쪽) 

 

그 문장은 나를 말하고 있었다. 하루 세 끼 밥과 하루 한 권 책 외에는 아무 욕구도 없는 남자. 젊은 나이에 왕성할 성욕마저 있는지 의심스러운 남자.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하염없이 책만 읽는 남자.

'미국의 카프카'로 불리는 폴 오스터의 초기작 <고독의 발명>. 자전적 냄새가 많이 풍겼다. 작가의 독서 편력을 읽을 수 있었다. 비범한 글쓰기 솜씨와 글읽기 솜씨, 고독, 죽음, 기억, 책쓰기에 대한 독특한 문장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이 책에서 그의 다른 소설들 <뉴욕 삼부작>, <미스터 버티고>, <리바이어던>의 창작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싸구려 탐정 소설을 썼던 것과 대필자(代筆者) 노릇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조금은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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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은행나무


이 책은 발표 당시 인기가 없었다. 1854년 초판 2천부가 출간된다. 다음해 3백부 남짓 팔린다. 그후로는 전혀 팔리지 않는다. 그 당시에, 이 책은 명백한 실패작이었다. 독자 수가 고작 몇 백 명이었으니까. 작가는 여덟 번이나 퇴고를 할 정도로 이 책에 정성을 쏟았지만 무관심 속에 버려진 채 남겨졌다. 그러다 오늘날엔 전세계적으로 읽혀진다. 발표 당시엔 인기가 없다가 왜 지금에 와서 새삼스레 읽혀질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도끼 한 자루 들고 월든 호숫가 근처 숲으로 들어가 손수 조그마한 통나무집 짓고 생활하면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적었다. 고작 전원 생활 몇 년 한 걸 가지고 뭐 대단하다고,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그걸 글로 쓴 사람은 또 좀 많은가. 그런데, 소로우의 글은 놀라운 마력으로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소로우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새뜻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얽매임이 없는 자유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 나갈 수 있으므로 값비싼 양탄자나 다른 호화 가구들, 맛있는 요리, 또는 새로운 양식의 고급 주택 등을 살 돈을 마련하는 데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행복의 척도다. 돈은 수단에 불과한데, 어느새 그것은 인간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행복하기 위해 비싼 물건을 사들이는 데 소중한 삶의 시간을 쓰지만 결국엔 불행하고 만다. 우리의 불행은 행복하고자 돈을 버는 그 행위에 있다. 이런 모순 속에 현대인의 고독과 불행은 더욱 깊어만 간다.

소로우의 숲 속 생활은 '삶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했던 철학적 자기 실험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이렇게 쓴 작가의 삶은 실제 어땠을까. 세속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작가는 결코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책을 썼으나 많이 팔리지 않았고, 강연을 했으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이교도로 낙인찍혔고, 은둔자로 치부되었으며, 평생 독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했다. 그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대로 살았다.

조그마한 호숫가 옆에 집을 짓고 간소하게 살면서, 그는 삶의 의미와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숲속 생활에서 느낀 삶의 진리를 아름답고도 신비한 자연의 변화에 빗대어 이렇게 말한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천성에 맞는 여러 여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대신 끌어다 댈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이라는 암초에 우리의 배를 난파시켜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애를 써서 머리 위에 청색 유리로 된 하늘을 만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그 훨씬 너머로 정기에 가득 찬 진짜 하늘을 바라볼 것인데."

소로우의 자발적 가난은 아무나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 아니다. 성공해서 유명해지고 돈 많이 버는 삶의 방식이 우리 머릿속에 워낙 강하게 박혀 있다. 책이 처음 나왔던 당시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은 단순하고 소박한 삶에 있지 않다.

소로우의 문장은 자연의 세세한 관찰을 통해 단순한 진리를 독자에게 강렬하게 전달한다.

소로우는 자연을 사랑했다. 그에게 천국은 지금 여기 지구다.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그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린 이미 천국에 있다. 아름다운 이 지구에!"

자연을 사랑하는 그에게 월든 호수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다. "9월이나 10월의 이런 날 월든 호수는 완벽한 숲의 거울이 된다. 그 거울의 자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은 내 눈에는 보석이상으로 귀하게 보인다. 지구의 표면에 있는 것으로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면서 커다란 것은 없으리라."

절망한 사람에게 따뜻한 희망과 뜨거운 열정을 북돋아 주는 책.
공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숲 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는 듯한 상쾌함을 주는 책.
우리가 지구라는 천국에 살다는 걸 깨닫게 하는 책. 
소로우의 <월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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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7년 8월 발행


커트 보네거트는 2007년 4월 11일 돌아가셨다. 향년 84세.

"미국에 살아 있는 가장 좋은 작가." 노벨상 수상자 그레함 그린이 커트 보네거트한테 보냈던 찬사다. 그 말은 더 쓸 수 없다. 커트는 좋은 곳으로 갔으니. "여러분, 나는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여전히 그렇게 속삭이건만. 죽었다니, 무슨 소린가. 그는 미국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누가 미국을 제대로 엿먹일 것인가. 이제 누가 미국의 똥 같은 짓거리를 보고 "똥싸고 자빠졌네."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스티븐 킹이? 버거킹이나 드셔. 촘스키가? 좀스럽게 구셔. 커트 보네거트가 더는 책을 쓰지 않는다. 가려워 죽겠는데 시원스레 긁어 줄 사람이 없다. 환장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새 책이 나왔다. 죽은 사람이 환생했나. 천국에서 보낸 선물인가. 아니다. 2년 전 펴낸 책이다. 이제야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 잡지에 기고한 낱글을 모았다. 여기에 덤으로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경구 포스터를 곁들였다.

작가가 그동안 책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말했던 생각을 이 책에 고스란히 잘 모았다. 옛날에 쓴 글인데도 여전히 현재에 딱 들어 맞는다. 결국 이 말은 우리 현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단 뜻이다.

 



인류가 진보한다고? 무슨 헛소리냐. 우리는 스스로 파멸하고 있다. 석유 먹고 매연 뿜는 네 바퀴 수레를 타고 다니면서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재앙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이 떼죽음 당하는 걸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는 인간들. 그들이 진보했다굽쇼?

미국 돌대가리한테 스트레이트 펀치를! 커트는 말한다. 나는 "나라 없는 사람"이다.  

 

미국은 본래 주인이 없는 땅이다. 그런 땅에 주인이랍시고 떠드는 예일대 C학점 졸업생의 짓거리란 뭔가. "조지 W.부시는 주변에 C학점 상류계급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이른바 기독교도이며 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이다." (99쪽) "아랍인들이 멍청해 보인다고? 그들은 우리에게 숫자를 줬다. 한번 로마 숫자로 긴 나눗셈을 해보라."(79쪽)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말하길, "미국에서만 돈에 대한 애착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한다."(18쪽) 네이팜은 하버드에서 발명되었다.(89쪽)

그가 SF작가로 불리는 게 된 계기는 첫 소설 '자동 피아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소설에서는 그는 자신이 일하던 뉴욕 주 스커넥터디 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착각했다.

구덩이에 빠진 남자. 소년, 소녀를 만나다. 신데렐라. 카프카. 햄릿. 이 이야기들을 수직과 수평과 곡선으로 분석해 보여주셨다.  어찌나 웃기던지.

책 표지의 비밀은 132쪽에서 밝혀진다. 그 그림을 그린 종이는 스웨덴 사브 자동차 판매부의 메모지다. 맨 위에 커트 보네커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의 직함은 매니저였다.

이 못말리는 블랙유머 풍자가를 처음 대한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자, 이 책을 읽었다면 다음엔 뭘 읽느냐고? 당연히 그의 최고작 '제5도살장'이다. 그렇게 가는 거다. 평화롭게 잠들다. 딩동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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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왜 정리에 강한가
사토 가시와 지음
정은지 옮김
바다출판사


아트디렉터로서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프로젝트의 회고담이다. 공간, 정보, 사고 등의 정리 방법을 소개했다. 원리는 같다. 54, 55쪽에 정리돼 있다. 아이디어 도출, 문제 해결, 기획, 컨셉 잡기에 고심하는 분께 도움이 될 것이다.

아트디렉터? 사전적 정의로는 '광고 그래픽을 기획하고 지휘하는 미술 감독'이다. 보는 것이 이해가 빠르리라. 저자의 홈페이지에 가면 온갖 상품과 회사 로고를 강렬하면서도 통일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깔끔한 직선형 디자인이다. 대상의 핵심을 콕 찍어 보여준다.

사토 가시와 씨는 일본 유명인사다. 아이디어가 기발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티셔츠를 투명 패트병에 담아 팔기, 노상 주차장에 늘어선 차량에 'SMAP'라고 크게 쓴 커버를 씌우기, 재활병원을 리조트 개념으로 재창조하기 등 톡톡 튀면서도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어차피 할 거 재미있게 해야지."(13쪽) 일하는 자세부터가 남다르다.

이런 사람의 아이디어 도출법은 특별하지 않을까. 비결이 뭘까? 답은 무뚝뚝하게도 정리다. "대상을 정확히 분석해서 정리하고 중심이 되는 요소, 즉 본질을 끄집어내서 하나의 형태로 완성해 나가는 작업"(15쪽)이다. 의외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마법처럼 신기한 방법을 통해 얻는 줄 알았더니, 누구나 다 아는 '정리'다. 정리라고? 정말요, 사토 씨?

모든 것은 정리에서 시작한다. 무엇부터 정리하나? 찾아온 고객의 생각을 정리하라. 이 과정을 글쓴이는 "꽤 까다롭고 힘들다"(25쪽)고 밝혔다. 뭔가 문제가 생겼고 그게 뭔지 몰라서 온 사람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클라이언트는 환자처럼 불평만 늘어놓는다. 디렉터는 의사처럼 세밀하게 진찰해서 핵심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문제 해결의 아이디어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이다. 난해한 철학처럼 들린다.

"아트디렉션은 결코 허상의 이미지를 꾸며 내는 작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상의 본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표현하는 것이 기본이다."(120쪽) 아이디어는 본질에서 얻어서 표현한다. 본질을 얻는 방법이 정리고, 그 정리로 창조적 아이디어가 나타난다.

사토 씨의 일처리 과정은 세 단계다.

1. 현상 파악
2. 시점 도입
3. 과제 설정

각 단계의 세부는 이렇다.

1-1. 정보가 보이지 않는다.
1-2. 정보가 보이게 놓는다.
1-3. 정보를 모아서 나열한다.
2-1. 우선순위를 정한다.
2-2. 인과관계를 밝혀낸다.
3-1. 본질을 파악한다.
3-2. 과제를 설정한다.

먼저, 무의식을 의식의 세계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막연한 생각을 언어로 만들어야,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정보가 보이기 시작하고 드디어 정보를 시점에 따라 모으고 나열할 수 있다. 문장이 안 된다면 핵심 단어만이라도 써 본다.

눈에 보이는 정보를 시점에 따라 정리해 나아간다. 정보가 아무리 많더라도, 관점이 없으면 정리가 안 된다. 정보를 그렇게 분류하거나 나열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확한 시점에 맞추어 정보를 정리하고 비전을 찾아내어 구조를 세운 다음, 세부 디자인에 들어간다."(121쪽)

독자적인 시점 잡기가 관건이다. 그래야 비전이 나온다. 다른 사람도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시점'이어야 한다. 이를 어떻게 발견하는가?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버린다. 대상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다면적인 시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시점으로는 아무리 봐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는 방향이 달라지면 단점이 장점으로 보인다. '소박하고 존재감이 없는' 메이지가쿠인 대학교를 '설치지 않으면서 심지가 강한' 교풍의 학교로, '소장품 없고 역사도 짧은' 국립신미술관을 '신선하고 새로운' 전시장으로 바꾼다. 결과만 보면 쉬워 보이나 그 과정은 어려웠다. 애매한 상황에서 정확한 시점을 찾아내려고 끙끙거려야 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154쪽) 느껴야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정확한 관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고객한테 끝없이 물어봐야 한다. 수많은 가설 시점을 만들어 시도해야 한다.

정리해서 시점을 발견하라. 그러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그것이 아이디어다.

2011.07.27


목표의식을 갖고 정리하지 않으면 삶이 흐트러진다.
언젠가 읽겠다고 이 책을 집에서 가져왔지만 일에 치여살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언제 책을 가져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내 인생을 희미하게 되는 대로 살고 있었다.

고객의 관점에서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해내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노력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힘들 뿐이다.

책 읽으면서 정리부터 시작했다.
지갑부터 책상에 컴퓨터에 내 인생의 목표와 계획도.
이 블로그도 정리한다.

하나의 강렬한 관점으로 단순하고 명료하게 만들자.
물론 인생도 말이다.

돌이켜 보니, 나는 이 정리술을 나도 모르게 서평을 쓰면서 익히고 있었다. 트위터에 명언(?)을 만들어내는 것도 오랜 서평 쓰기 훈련 덕인 것 같다. 하지만 기술은 기술일 뿐이다. 삶의 의욕과 삶의 목적은 기술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 분명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이다.

자기계발서는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도 목표도 제시해 줄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이 찾아야 한다.

2013.09.01


글쓰기의 영감과 소재도 이미 내 곁에 있다. 정리해서 찾아라.

2014.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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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 오웰 지음, 김기혁 옮김/문학동네

조지 오웰 하면 동물농장과 1984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공산주의와 전체주의를 우화와 SF 소설로 풍자한 작가로 기억하고 끝이었다. 작가의 삶과 그의 첫 책은 몰랐었다.

에릭 아서 블레어(조지 오웰의 본명)은 기자 출신이었다. 기자 이전에 그의 삶은 잘나가는 명문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이튼 학교를 졸업한 후 영국 식민지 경찰로 버마에서 근무한다. 이 안정적인 '명문대 출신 공무원 자리'를 휴지처럼 버린 후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파리와 영국으로 가서 밑바닥 인생을 산다. 그리고 필명으로 첫 책을 낸다.

도대체  지식인이 스스로를 사회 계층의 맨 아래로 내몰아서 무엇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가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사회의 위선과 권력의 악에 동조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이는 그가 쓴 글에 선명하게 나타난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은 파리에서의 접시닦이 생활과 런던에서의 떠돌이 생활 체험 수기다. 단순한 수기가 아니라 재미나는 이야기와 사회 비평을 덧붙였다. 그래서 이 책은 성격이 모호하다. 대개 논픽션으로 보지만 절묘한 이야기가 종종 있어 소설 같고 사회 구조의 모순을 이론이 아닌 체험을 통해 고발한다는 면에서는 시사 평론 같다. 문학동네 연보(421쪽)에서는 '자전소설'이라 칭했고, 펭귄클래식은 '회고록(Memoir)'이라 명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는 실직 무직 떠돌이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정확히 묘사해 놓았다. 지금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구조적 모습은 그대로다. 노동 조건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는 노예일 뿐이다. 일을 시키는 입장과 자본가 관점에서는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일을 싼값에 혹은 무임금으로 최대한 부려먹을 기계일 뿐이다.

책의 첫 부분은 파라의 빈민굴에 사는 인간군상들을 묘사한다. "돈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주듯, 가난도 보편타당한 행동 기준에서 그들을 해방시켜주었다."(130쪽) 가난에 찌든, 욕설하는 괴짜들의 정신병동 같은 분위기다.

작가의 개인적인 느낌이 객관적 사실을 선택해서 강조한다. "가난과 불가분의 관계인 권태라는 것도 느끼게 된다. 아무 할 일도 없는 데다 배불리 먹지도 못하는 시간에는 그 무엇에도 흥미가 일지 않는다.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젊은 해골' 같은 느낌으로 한 번 침대에 누우면 반나절이나 누워 있곤 한다. 오로지 음식만이 몸을 일으키게 한다. 일주일을 빵과 마가린으로 버틴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몇몇 곁다리 기관이 달린 밥통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147쪽)

가난의 실제 모습을 그리고 있으면서도 문학적 재미와 사회적 통찰을 함께 유지한다. 삽화처럼 종종 끼어 있는 이야기들은 어찌나 재미있던지. 들은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기승전결이 절묘하다.

작가는 살인적인 노동 강도로 접시닦이 생활을 한다. "접시닦이들은 매매되는 노예만큼이나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의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며 아무런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 임금은 겨우 연명할 정도이다. 유일한 휴가는 해고당했을 때뿐이다."(276쪽) 왜 이런 일자리가 유지되는가. 왜 최하층민은 사람이 아니라 착취되는 노예로 살아야만 하는가.

"교육받은 사람들은 현상유지를 바란다."(280족) 따라서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 편을 든다. 그게 자신한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적이 없는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미신을 퍼트린다. 가난을 체험한 작가의 발언은 이렇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전적으로 그들의 수입의 차이일 뿐이다."(281쪽) 그럼에도 가난한 이들을 차별하고 학대하고 비하하여 부유한 사람들을 떠받들게 한다.

문명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것이다. 각자가 자기 일에 충실하면 다들 잘 살고 사회가 잘 돌아간다는 것은 거짓이다. 노동 착취를 통해 소수의 부와 사치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사치라는 허위를 위해 노예적 노동이 지속된다.

런던의 떠돌이 생활에서 작가는 자선과 구호 활동이 얼마나 기만적이고 위선적인지 고발한다. 당시 런던에서 떠돌이가 많았던 것은 그 어떤 구호소에서도 하루 이상 머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지 그들이 떠돌아다니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모순을 사람들은 모른 체한다. 오히려 이들을 착취한다. 구호단체에서 받은 식권을 가지고 식당에 가면 그 식권의 값보다 낮은 음식을 준다. 떠돌이는 뭐라 항의도 못한다.

왜 거지를 경멸하는가? "단지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이익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능력이니, 효율성이니, 사회복지니, 그 밖의 무엇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돈을 벌어라, 합법적으로 벌어라, 나아가 많이 벌어라'라는 것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돈이 미덕을 가늠하는 위대한 척도가 되었다. 거지는 이 척도에 맞지 않기 때문에 멸시당하는 것이다."(354쪽)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고 예외적인 인물은 떠돌이 화가 '보조'다. "보조에게는 공포라든가 후회, 수치, 자기 연민 따위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면서 자기 나름의 철학을 이루어냈다. 거지 생활을 하는 건 절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344쪽)

"마음만 먹으면 부자든 가난뱅이든 사는 건 매한가지지.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일은 계속할 수 있으니까. 자신한테 이렇게만 말하면 되는 거야. '나는 여기가 자유인이다'라고." 그러면서 보조는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 " '그리고 너는 됐어' 라고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342쪽)

보조는 자본주의 사회의 위대한 척도인 돈을 버렸다. 그에게 가난은 별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사고로 다친 한쪽 다리마저 게의치 않고 산다. 누더기를 걸치고 배가 고파도 책을 읽고 별을 본다. 정신적으로는 자유롭게 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직과 가난은 거의 죽음에 가깝다. 이 책이 출간된 1933년이나 불황으로 전세계가 청년실업과 노령화 사회를 직면하고 있는 현재나 구조적 문제는 바뀐 것이 없고 해결책도 바뀐 것은 없다. 착취는 계속될 것이고 노예적 노동도 계속될 것이고 지식인은 계속 부유한 자들 편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생산할 것이다.

지옥이 보고 싶거든, 단테의 '신곡' 지옥편이 아니라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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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아트 오브 머더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최내현 옮김
북스피어 펴냄

[심플 아트 오브 머더] 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추리소설 비평론이다. 무척 주관적으로 추리소설을 논하고 있고 어투가 비아냥거림과 반어법이 섞여 있다. 객관적이고 정밀하고 충실한 평론을 기대하진 말기 바란다. 자기랑 비슷한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을 쓴 해밋만 격찬한다.

챈들러는 추리소설가로서 추리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심플 아트 오브 머더'라는 짧은 글에 솔직하게 써 놓았다. 일종의 고해 성사 같은 분위기다. 탐정소설을 문학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문학이라고 말하고 싶어. 이런 투다.

"대부분 살인을 다루기에 정신의 앙양과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 챈들러는 다르게 썼지. 내 소설을 읽어 봤어? 내가 창조한 필립 말로야말로 진짜 문학다운 탐정소설이야. "소설은 이 남자의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한 도전이다." 다른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을 묵사발로 만드는 발언이 이어지는데, 그 비판대로라면 챈들러 소설도 허접하긴 마찬가지다.

스스로 인정하듯, 탐정소설은 "수수께끼로서는 충분히 지적이지 못하고, 소설로서는 충분히 예술적이지 못하다." 챈들러는 대단한 문학이라고 평가되긴 어렵지만 자기만의 스타일만은 확실히 확립했다. 필립 말로 스타일은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는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전성시대를 열었던 자로서, 추리소설에 대한 통찰력이 좋다. 후배 작가들은 읽고서 참고할 만하다.

왜 홈즈는 왓슨이 있어야 하고, 왜 푸아로는 헤이스팅스가 있어야 하는가? "살인 소설의 또 다른 문제는 스스로 설정한 문제를 풀어내고 스스로의 질문에 대답하는, 무언가 우울한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다는 점이다." 챈들러의 이 말에 답이 있다. 자문자답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자신의 추리를 혼자서 중얼중얼 말하는 것은, 정신병자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탐정의 추리를 들어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추리소설 구매자에 대한 챈들러의 비아냥거림. "표지에 시체 그림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 달러라는 정가를 다 주고 구매하기도 한다." 이들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를 즐겨 읽는 순문학 애독자들은 아니지 않은가.

탐정소설은 애초부터 리얼리티를 포기하고 범인찾기 수수께끼 구조물을 인공적으로 쌓아올린다. 실제 살인 사건은 어떤가? "경찰에게는 잔머리를 쓰는 살인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쉽다. 정말 어려운 사건은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살인이다."

앨런 밀른의 '빨강집의 수수께끼'에 대한 비평에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빨강집의 수수께끼'를 먼저 읽은 후에 이 책을 읽도록 하라. 나는 이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빨강집의 수수께끼'를 재미있게 읽었다. 밝고 명랑한 소설이다.

단편소설 [스페니시 블러드]도 같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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