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버트런드 러셀
문예출판사 | 2013년
이 책은 버트런드 러셀의 수많은 글 중에서 핵심을 정선해서 고른 선집 에세이다. 따라서 러셀 입문서라 할 수 있다.
러셀의 저서는 워낙 방대하고 다양하면서 때때로 전문적이다. 대개는 수필이지만, 추리소설이 있는가 하면 수학 원리라는 수학 책에 서양의 지혜라는 방대한 분량의 서양철학사 책도 있다. 신문 칼럼도 많이 썼다. 여기에 500쪽이 넘는 자서전까지 죽기 전에 남겼다. 글 쓰는 기계다.
이 책 날개 소개글을 인용해 보면, "철학, 수학, 과학, 역사, 교육, 윤리학, 사회학, 정치학 분야에서 40권이 넘는 책을 쉬지 않고 출간했다. 지능을 최대한 사용하는 놀라운 능력(그는 하루에 거의 고칠 필요가 없는 3천 단어 분량의 글을 썼다)"라고 나온다.
그거 일일이 다 보려면 1년은 넘게 걸릴 것이다. 아직 안 나왔지만 러셀 전집이 나온다면 말이다. 이 선집 한 권이면 간략하게 러셀의 사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워낙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러셀의 생각을 요약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그가 쓴 자서전 첫머리에 세 가지로 요약되어 있다. 번역서가 제목으로 택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에 대답이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가 겪는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
그를 객관적으로 정의하기에는 세 가지 말은 추상적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의 사상은 이성 낙관론이다. 또한 신비주의와 신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불가지론자로서 이성을 추구하는 지성인 입장을 고수한다.
지식의 확실성, 혹은 확실한 지식의 기반을 찾기 위해 수학 연구에 매진하였지만 결국 수학조차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은 러셀은, 그러나 격동의 세월을 겪으면서 1차 세계대전 때는 평화주의자로 반전운동을, 2차 세계대전 후에는 반핵운동을 했다. 이런 사회운동의 기반은 사람이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이성을 추구해서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 있다.
며칠 전 트위터에서 '나는 유신론자이지만 무신론자인 러셀을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를 봤다. 그만큼 러셀의 생각과 행적이 범인류의 인류애,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과연 그분이 러셀의 글을 제대로 읽어 봤는지는 의심스러웠다.
러셀은 여전히 찬반 논쟁이 많은 사상가다. 자살옹호론 같은, 보수층에서 보면 난리가 날 주장을 서슴없이 해댔다.
이 책에 실린 많은 글중에 단연 최고로 칠 것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이다. 기독교를 논리와 이성으로 하나하나 비판하고 있다. 물론 이성을 초월해서 믿어야 한다는 믿음에 굳건한 유신론자들한테는 모기 윙윙거리는 소리만도 못하겠지만.
"저는 종교가 공포에 일차적이고 주요한 기반을 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100쪽)라고 말하면서 결국 그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성으로 밝은 미래를 창조하자는 것이다. 그 다음 글 '어느 신학자의 악몽'은 러셀다운 유머가 넘친다. 유신론자를 풍자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현명한 '지성'이다. 합리성과 관용, 그리고 상호 의존성에 대한 깨달음을 러셀은 강조했다. 허나 세상 사람들이 지성적인 경우는 드물다. 대개들 감정적이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 틈만 나면 남들 부려먹으려고 들고 비이성적인 행동과 극단적인 생각과 막말을 찬양하고 좋아하는 판국이니.
1,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광기의 시대에서, 거짓이 진실을 뒤덮어 오염된 세상에서 러셀은 인류의 희망을 지성으로 보았다. 그런 자가 소수라고 하더라고 인류를 멸망에서 구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방법은 지성의 불꽃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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