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
잭 런던
한울
2011.04.25.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회주의 작가인 잭 런던이 1904년 러일전쟁 시기에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에 왔었다니, 무척 흥미롭고 놀라웠다. 과연 이 냉철한 사회주의 작가의 눈에 우리나라의 무엇이 포착되었을까? 많은 기대를 걸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잭 런던의 이 러일전쟁 종군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조선인을 못 마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서양인을 보면 무슨 구경거리 보듯 구름처럼 모여드는 조선인. 외국인에게 불친절한 조선인. '십 리만 더 가라'는 길 안내에 잭 런던은 짜증을 냈다. 이 말은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을 꺼려해서 내쫓기 위해 상투적으로 썼던 말인 모양이다.
이 점은 정도의 차이만 있지, 일제 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외국인을 보면 무슨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쳐다보고, 외국인에게 불친절하다. 잭 런던은 이 점이 매우 불쾌했던 모양이다. 반면 중국인과 일본인은 자신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고 종군기에 적었다. 일본인은 영어로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고.
전쟁이 나자 모두 짐을 싸서 도망치기에 바쁜 조선인. 심지어 문짝까지 가져간다. 그렇게 도망을 가는 도중에도 구경거리는 꼭 본다. 잭 런던은 이렇게 말한다. "조선인의 특성 가운데 비능률적인 점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중국인은 도망가지 않고 전쟁 중에도 생업에 열중하며 이익을 잘 챙긴다.
민중의 피와 땀을 빨아먹는 조선의 관료층을 지적한다. 잭 런던은 어찌나 화가 났던지 고을 사또 '박순성'을 직접 만나 민중의 몫 70퍼센트를 환불하라고 말했다. 박순성에게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돌아가면서 잭 런던이 하는 말은 가슴이 아플 정도로 신랄하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고, 만영이(잭 런던이 데리고 다닌 통역이자 조수)도 알고 있었으며, 박순성이도 알고 있었고, 우리 모두도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람 모두도 알고 있었듯이 박순성이는 절대로 돈을 안 돌려줄 것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뇌물을 주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는 한국. 전직 대통령들이 앞장서서 민중의 피땀을 쪽쪽 빨아먹었지 않았는가. 잭 런던의 정확한 지적은 오늘날에까지 유효하다.
일제 시대에 잭 런던이 우리 민족의 잠재력을 읽기에는 역부족이었으리라. 1904년 러일전쟁 시기, 우리나라는 열강들의 밥이었으니까. 우리나라 땅에서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서로 전쟁을 하는 통에 그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이 없었겠지.
그의 1904년 3월 4일 종군 일기의 첫부분은 우리 치욕의 역사가 고스란히 적혀 있다.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의 점령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의 원천이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부터 물가는 하루하루씩 오르기 시작했다. 인부와 마부 그리고 상인들은 그런 식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지배계급(관료계급)들이 후에 그들에게서 뺏아갈 것이지만 말이다. 그 즈음에 관료들과 양반계층 사람들은 나라일을 걱정도 하고 겁도 나 있었지만, 불쌍한 고종황제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황제는 피신을 해야 할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모르는 가운데 일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지엄하게 공포하였다. 예를 들자면, 일본군들이 잘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당신네 군인들을 그들 병사에게 쫓아내는 일 같은 것이었다."
잭 런던은 이 책 전반에 걸쳐 일본 군대를 칭찬했지만, 제국주의 망령의 씨앗과 일본인 정신문화의 황폐함을 지적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갈색인(잭 런던은 중국인을 황색인으로, 일본인을 갈색인으로 불렀다)에게는 타고난 약점이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모험을 실패로 돌아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갈색인이 서양으로부터 모든 기술 발전을 도입해 왔는데 윤리적 발전은 무시한 점이다."
그의 통찰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일본인보다 중국인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의 예언은 맞았다.
잭 런던은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에 매우 감탄한다. 그러나 그는 그런 관광이 아니라 취재를 위해서 왔기 때문에, 이 종군기에 우리나라 자연풍경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적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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