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어떤 추리소설을 좋아하느냐는 각자 나름이겠는데, 나는 범죄 미스터리에서 범죄자의 인생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가끔은 그 부분은 건너뛰거나 아예 안 읽기도 한다.

하지만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 시리즈 매그레에서는 해당 사연을 읽지 않고서는 사건의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안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미스터리보다 그 미스터리에 얽힌 사람의 눈물겨운 삶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추리소설을 읽으려다가 인생 드라마를 읽게 된다.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의 초반 수수께끼는 이렇다. 마구간 짚 더미에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이 여자의 옷차림이나 외모, 그리고 평소 생활을 봐서는 절대로 이런 곳에 올 사람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수사에 착수한 매그레 반장은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퇴역 대령으로 배를 몰며 화려한(?) 생활을 즐기는 자다. 그리고 그와 같이 배로 여행하며 그 생활을 즐기는 남자도 수상하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사람이 죽고, 여자의 남편을 의심해 봤으나 역시 범인 가능성에서 제외된다. 그렇다면 누가 범인인가?

역시나 씁쓸하게 끝난다. 이번에는 범인이 직접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매그레 반장이 추리한 것을 범인 앞에서 이야기해서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고 황당한 비약이 없진 않지만, 끝까지 읽고 감동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만,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트릭이며 이야기 전개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씁쓸한 인생


매그레 시리즈 4권을 읽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심농은 추리소설도 범죄소설도 아닌 드라마를 쓰고 있다는 것을. 제목에서 범인과 결말을 보이게 쓴다는 것 자체부터가 범인이 누구냐식의 소설을 거부하고 있다는 증거다.

수수께끼 게임식을 따르지 않으면서 주인공 매그레 반장의 여정을 따라가다보면 한 인생의 기구한 사연을 듣게 되는 것이다.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는 초반의 기이함과 중반의 연쇄 살인이 궁금증을 일으키는데 감동의 포인트는 미스터리 풀이가 아니라 그 사건에 얽힌 사연이다.

씁쓸하고 모순되고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나면 썩 유쾌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니다. 사건의 주인공이 불쌍하고 가련하다. 이 감동의 효과를 가장 잘 만든 작품은 지난 독서 중에는 '갈레 씨, 홀로 죽다'가 단연 최고다. 많은 이들이 수작으로 손꼽는다.

'갈레 씨, 홀로 죽다'에 비하면 '라 프로비당스호의 마부'는 감동이 떨어지는 편이다. 이야기가 억지스럽다. 트릭 틀에 맞추다 보니 그리 된 모양인데, 전작들에 비해 자연스러운 면이 현저히 떨어진다. 주인공 사연의 비약도 심하다.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다작하는 작가들이 그렇듯, 작품 수준이 항상 최고인 건 아니다. 스티븐 킹만 해도 어떤 것은 정말 좋았다가 어떤 것은 정말이지 안 좋다.

그래도 읽은 이유는 작풍 때문이다. 아무리 못 쓴 작품이더라도 매그레 시리즈 아무거나 잡아서 읽게 되는 이유다. 마치 씁쓸한 커피에 중독되듯 심농이 써내려가는 인생의 맛에 익숙해진다. 인간 군상들의 인생살이를 절절하게 써 놓는데 이게 한 번 읽기를 맛들이면 헤어나오기가 어렵다.

후반부에 어마어마하게 감정 이입을 시키는 필력은 경이롭다. 마부의 최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문장들이 저돌적으로 몰아치며 읽는 이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 덧붙임: 시리즈 표지들을 보고 이제서야 깨달았다. 연결되는 그림이다. 1권 표지에 병 속 열쇠가 있는데 다음 2권 표지에는 그 열쇠를 이어받아 열쇠 안에 가방을 넣었다. 3권 표지는 2권의 가방을 이어받아 다음 권 예고인 말 그림을 넣었다. 4권 표지는 말 그림 안에 작게 다음 5권 예고인 등대를 넣었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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