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의 밤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팜므파탈 + 푸아로식 파이널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이 소설 '교차로의 밤'은 좋아할 것 같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푸아로식 파이널과 대실 해미트의 팜므파탈이 등장하니까. 느와르 분위기의 범죄 영화 느낌이다.
소설은 살인 용의자로 유력한 '검은색 외알박이 안경을 낀 남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대개 오랜 강도 높은 심문을 받으면 무너지기 마련인데, 이 남자 안데르센은 침착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본인의 본래 품성인 듯 보인다.
사건은 황당하다. 안데르센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보험업자의 차고에 있는 새 차 대신에 안데르센의 헌 차가 주차되어 있다. 화가 난 보험업자는 신고를 하고, 이에 안데르센 차고에 가 보니, 그 새 차가 있고 그 안에는 한 남자가 총을 맞아 죽고서 운전석에 엎드린 채 있었다.
시골 한적한 교차로에는 세 집이 있다. 보험업자의 집, 안데르센의 집, 그리고 자동차 정비소. 당연히 이 세 집 중에 한 집에 사는 사람이 살인범이다. 그래서 모두 감시한다.
안데르센에게는 여동생이 있는데, 안데르센은 동생을 가두고 외출한다. 뭐지? 이 여자가 팜므파탈로 나온다.
차고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남편을 보러온 여자는 교차로에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후 이야기는 빠르게 읽히게 될 것이다. 뭐가 뭔지 정신이 없겠지만,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용의자들 모두 모아 두고서 매그레 반장이 끝에서 정리해서 설명해 준다.
푸아로식 파이널은 매그레 시리즈에서 지난 5편 '누런 개'에 이어 두 번째다. 용의자와 사건 관련 인물을 모두 소집한 후 매그레가 하나씩 하나씩 그동안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범인을 밝힌다.
우물 장면이 웃겼다. 마지막 장면은 남자의 순정이다.
액션 범죄 영화를 보는 듯한 소설
매그레 시리즈는 감기 걸렸을 때 읽게 되는 소설이 되어 버렸다. 아픈 와중에도 유일하게 읽히는 책은 심농 소설이다.
이 소설 후반부는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우물 안에서 난장판이다. 여자 한 명에 남자 세 명이 붙어서 아주 가관이다. 그래도 결말은 역시 심농의 심성이 잘 배어 있었다. 매그레 시리즈는 읽는 이유는 이 마지막 부분의 연민 때문이다. 소설 같은 얘기지. 순정을 다 바쳐 사랑하는 사내라니.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 가장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이다. 초반부 교차로의 세 건물 갈등 상황과 중후반부 총격 장면은 영화 시나리오라고 불러도 될 만큼 사건 전개가 빠르다. 시대와 장소로 현재에 맞춰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어도 상당히 좋은 결과를 보일 듯하다.
이 작품을 읽고서야 왜 심농을 별종 같은 천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심농은 대중소설의 기술력과 순수문학의 문장력을 동시에 갖추었다. 특히, 교차로의 밤은 미국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보는 듯했다.
매그레 반장의 수사 방식 자체가 괴짜다. 증거 수집해서 수수께끼 조각을 맞추는 것에는 별 관심도 없고 오로지 그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 사람이 말하는 태도와 외모와 옷차림에 집중해서 뭔가 이상하고 어색한 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빨리 쓰느라 그랬는지 생뚱맞은 문장이 튀어나와 있기도 하던데... 뭐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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