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살인 사건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사회심리학
'네덜란드 살인 사건'는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설정과 가장 닮았다. 한정된 공간에서 살인이 일어났고 용의자들은 서로 가까운 사람들이면서 애증으로 묶여 있다. 어느 누구도 살의를 안 갖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사가 들어가고 마침내 탐정/형사가 모두를 모이게 한 후 살인이 일어난 날 당시를 재연해서 범인은 밝혀낸다.
용의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사건을 재구성해서 범행의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지적하는 것은 지난 '누런 개'와 '교차로의 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로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요즘에도 보는 것처럼 해당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해서 사건을 재구성한다.
제목처럼 네덜란드로 가서 수사한다. 매그레 반장이 비공식 수사 의뢰를 받고 현장에 간 것인데, 외국이다 보니 말이 안 통해 통역을 둬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갑갑한 그 사회 분위기를 더욱 답답하게 느끼게 해 준다.
심농은 이 소설에서 보수적인 사회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정말 내가 그 옛날 네덜란다의 어느 곳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한 편의 사회심리학 사례 보고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소설에서 그려낸 사회 모습은 우리나라 유교문화랑 비슷해 보인다. 체면을 중시하고 성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온갖 추잡한 성추행과 불륜이 저질러진다. 겉으로만 보면 점찮지만 억압된 욕망은 위선의 탈을 쓰고 여기저기 배출되어 버린다.
모자에, 시가에, 권총에 물적 증거가 넘쳐나지만 매그레는 시큰둥이다. 살인이 발생한 주택의 도면을 받아들기도 하지만 매그래는 별다른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물적 증거와 현장 도면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 중시하는 것이다. 범인 잡기 게임의 결정적 힌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의 머리 싸움 혹은 독자 속이기도 이를 이용한다.
심농의 매그레는 그런 식이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매그레 반장은 인간을 관찰한다. 뭔가 대단한 추리력과 반전이 넘치는 트릭을 기대하는 독자한테는 실망이겠지만, 인간적인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독자한테는 만족일 것이다.
남녀의 애증 심리를 무척 잘 파악해서 글에서 쓰고 있다. 다음 편 '선원의 약속'에서도 이어진다.
위선과 탐욕의 겉치례 사회
표지가 함정이다. 살인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이다.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잡아야 한다. 매그레는 이 원칙을 무시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토록 난리치는 증거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모자니 시가니 다 그냥 넘어가버린다. 표지 그림에 있는 모자라서 사건에서 대단히 중요한 줄 알았더니 허를 찔리고 말았다.
사건 동기와 그 과정은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남녀 애증 관계로 뻔하고 실망스러운 편이다. 그럼에도 정교하게 쓴 사회심리학 논문 같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실제로는 억압이 심한 사회를 그리고 있다. 여기에 예쁜 여자와 못생긴 여자의 갈등과 심리가 절묘하게 묘사되었다.
매그레는 사건 용의자와 관계자를 모두 불러서 똑같이 재현하는 가운데 사건의 진실을 밝힌다. 매그레는 범인을 찾았다고 자랑하지도 그렇다고 범인을 체포하지도 않는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자기 관할이 아니다. 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쓸쓸히 홀로 퇴장한다. 위선과 탐욕의 겉치례 사회를 뒤집어 놓았으니 그가 환영받을 자리는 아니었다.
심농의 범죄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는 범인 잡기와 수수께끼 풀이에 몰두하는 오락소설과는 다른 차원이다. 해당 인물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심리를 주인공 매그레처럼 차분히 따라가며 이해하면 인생의 씁쓸한 단면을 맛보게 된다. 사는 게 참 뭔지 싶다.
'네덜란드 살인 사건'은 막장 드라마처럼 남녀 애증 관계가 꼬일 데까지 꼬였다. 인위적인 설정이라서 지금까지 읽은 매그레 시리즈 중에서는 다소 격이 떨어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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