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개
조르주 심농 | 열린책들
인간적인 반전
'누런 개'는 매그레 시리즈 소설 중에서 잘 알려진 작품들 중에 하나다. 열린책들에서 펴내기 전에 동서미스터리북스 시리즈 '사나이의 목'에 수록되어 있었다, '황색의 개'라는 제목으로.
이 누런 개는 사건 현장마다 등장한다. 그래서 개가 살인범은 아니지만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리고 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열쇠들 중에 하나가 된다.
총살 피살 미수, 독살 미수, 실종 등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누런 개. 사건 현장에 정체불명 발이 큰 사나이의 발자국이 발견된다. 누군가 사건 수사 내용을 알아채고 신문사에 해당 내용을 선정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기사를 써서 익명으로 투고하고 그것이 실린다. 콩가르노 시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이는데...
매그레 반장은 지문 뜨기 좋아하는 신참 형사랑 같이 수사한다. 매그레는 수첩에 용의자를 조사하며 적은 것을 르아루 형사한테 보여준다. 범죄는 결국 사람이 저지른 것이다. 반장은 사람 중심으로 수사한다. 과학 수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사건 해결과 설명은 푸아로 파이널식이다. 용의자와 사건 관련자를 한 자리에 모두 모여놓고 매그레 반장이 그간 일어난 일의 진상을 밝힌다. 그런데 끝에 기분 좋은 반전이 하나 있다. 매그레스럽다.
'누런 개'는 가난한 두 연인의 뜨거운 사랑을 부유층 권력층의 추악한 범죄와 대비시킨다.
추리소설은 한 번 읽고 버리는 장르다. 사건의 진상과 범인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다시 읽어서 재미를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과 감정이 이번 다섯 번째 독서에서는 안 났다. 그럼에도 초반 공포 분위기 조성과 사건을 미궁으로 빠트리는 솜씨를 보는 재미는 여전했다.
한 번 읽고 버리는 일회용 독서용 추리소설임에도, 여러 번 읽을 가치가 있다. 매그레스러운 인간적인 추리소설이라서.
죽음을 부르는 개
개로 공포 분위기 조성하는 건 셜록 홈즈의 '배스커빌의 개'가 연상되고, 용의자와 사건 관계자를 모두 불러 한자리에 모아놓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모습은 푸아로가 떠오른다. 수수께끼 풀이식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이렇게 덜 심농스러운 소설이 가장 마음에 들 것이다.
전반부에 미스터리와 공포가 구축된다. 죽음을 부르는 개. 거대한 사나이의 큰 발자국. 음산한 분위기.
역시나, 심농스럽게도 기구한 사연이 여러 사람들과 엮이며 전개된 기이한 사건이었다. 후반부에 범죄자를 풀어주는 매그레스러움까지 더한다. 매그레 반장의 구수한 인간미.
그의 소설이 영화로 자주 만들어지는 것은 그의 문장을 읽어 보면 쉽게 이해된다. 장면장면을 설명하듯 쓴 문장들은 시나리오를 읽는 기분이 든다. 특히, 초반부 묘사는 한 문단 한 문단이 영화 장면처럼 펼쳐진다. 아예 대놓고 "이 장면 이후..."라는 문장도 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부르주아와 지배층에 대한 냉소는 묘한 공감을 일으킨다. 이 옛날 소설에서, 1931년에 쓰고 발표된 소설에서 대한민국의 현재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덧붙임: 동서추리문고에는 '사나이의 목'이라는 책에 합본되었다. 제목은 '황색의 개'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7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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