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요람]

Cat's Cradle (1963)

커트 보니것 지음

김송현정 옮김
문학동네 펴냄

 

 

고양이 요람. Cat's Cradle.

영어를 직역한 제목이다.

본래 뜻은 실뜨기 놀이다.

실의 두 끝을 맞매어서 양쪽 손가락에 얽어 두 사람이 주고받으면서 여러 가지 꼴을 만드는 놀이. 이상은 표준국어사전의 뜻매김이다. 나는 이 놀이를 할 줄 안다. 요즘 아이들은 할 줄 아나? 이 책에 보면 꽤 오래 전부터 이 놀이가 있었다고 한다. 에스키모 사람들도 이 놀이를 즐겼다.

실뜨기 놀이를 해 본 사람은 알리라,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 끝장이 나 버린다는 것을. 더 이상 이어 받을 수 없을 때가 온다. 종말이 온다. 그렇지 않으려면 같은 동작으로 같은 모양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으. 지겨워! 그렇게 하느니, 그냥 빨리 끝장을 내는 게 낫다. 이 소설은 이 끝장을 '아이스 나인'으로 처리했다. 모든 것 얼려 버리는 물질, 아이스 나인. 그렇게 가는 거다.

 



아이스 나인은 작가의 냉소를 뜻한다. 이 빌어먹을 세상, 모두 얼어 버려라! 뭐 그런. 커트 보네거트가 끝까지 냉소를 유지한 작품은 드문 편인데, 이 소설은 확실하게 냉소로 끝냈다.

그의 냉소는 무의미의 의미를 생산한다. 무슨 의미? 지도자라는 녀석이 인류를 그토록 많은 피와 희생의 전쟁을 치르게 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아직도 그런 멍청한 지도자를 뽑아서 또 다시 살육의 전쟁을 준비하려 한다. 북한 김정일의 핵도 미국 부시의 전쟁도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하지만, 계속 하고 있다. 계속, 하고 또 하고.

'갈라파고스'에서 만다락스가 농담하듯, '고양이 요람'에서는 보코논서가 궁시렁거린다. 보코논서는 보코논교의 성서다. 기독교 성경을 비꼬는 어투가 뚜렷하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 이 작가의 책을 금서로 지정한 곳이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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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Slaughterhouse-five (1966년)
커트 보니것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이 소설의 제목은 세 개다. 제5도살장(Slaughterhouse-5), 소년 십자군(The Children's Crusade), 죽음과 억지로 춘 춤(A Duty-Dance with Death). 독자가 마음대로 골라잡으면 그만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미국의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다. 미국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젊은 독자들도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에 열광하고 있다.

[제5도살장]은 그의 대표작으로, 작가 스스로도 A학점을 매긴 작품이다. 그의 장기인 블랙 유머와 SF기법을 현란하게 표현했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은이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보네거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소총수로 참전했다. 

그 전쟁 중에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독일의 작센 지방으로 끌려가 드레스덴의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이 포로수용소에 연합군의 무차별 폭격이 가해졌는데, 그는 용하게 살아났다. 옛날에 도살장으로 쓰였던 포로수용소 건물의 지하 방공호가 깊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도살장이었던 곳에서 폭격을 피해 살아나다니, 정말 블랙 유머 같지 않은가.

아름다운 도시 드레스덴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것을 눈으로 직접 본 작가는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그 체험을 글로 쓴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으리라. 그러나 그는 그 공포를 유머로 이겨내며 소설로 쓴다. 그 글이 바로 이 작품 [제5도살장]이다.

이 작품은 과거, 현재, 미래가 질서 정연하게(?) 뒤죽박죽으로 전개된다. 또 SF 기법과 포르노 소설 기법으로 독자를 웃기는데, 정말 못 말릴 정도다.

인간의 허위의식과 겉멋만 든 진지함을 꼬집는 독특한 유머가 가히 천재적이다. 이 작가의 유머는 우리의 상상을 넘는다. 트랄화마도르 인(외계인)을 등장시켜 인간을 풍자한다. 예수도.

이 작품 어디를 봐도 심각하고 진지한 표현은 없다. 가벼운 표현을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한다. 그러나 그런 가벼운 유머 뒤에 숨겨진 작가의 고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의 바탕에는 작가의 어두운 체험(전쟁 체험)과 인류 미래에 대한 종말론적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 '뭐 그런 거지'. 나는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웃었다. 작가도 그 문장을 쓰면서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웃음과 그의 웃음에는 차이가 있다. 작가의 웃음은 전쟁의 공포와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이기려는 안타까운 노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의 웃음은 울음의 다른 표현이다. 울음 같은 웃음이다. 작가 스스로 말하길, "울 수 없으니까 웃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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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퀘이크]
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22년 10월 발행

 


커트 보네거트의 마지막 장편소설? 마지막 회고록 같다.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이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신다. 이 작가를 처음 대하는 독자라면 이 책부터 읽지 않는 것이 좋다. 우선 그의 다른 책들을 읽은 후에 이 책을 읽는 것이 순서다. 

보네거트의 쓰는 방식이 워낙 독특해서 주변 사람들의 평가가 극과 극이다. 그의 블랙 유머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 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내에 그를 좋아하는 독자가 의외로 많다. 이 사람 책이 보이면 무조건 집어서 읽거나 팬 페이지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 그의 인기는 스티븐 킹에 맞먹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패밀리 맨’에서 니콜라스 게이지가 커트 보네거트의 책(제목이 뭐였더라. 고양이 요람?)을 읽는 모습이 보인다. 참고로,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해리가 읽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다고 할 줄거리가 없다.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 기억, 사상을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줄거리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신기한 일이다.

그가 예전부터 자주 주장하는 대가족론이 나온다. 그의 그런 생각은 낭만주의일 뿐이다.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것만큼 바보스러운 일도 없다. 그래도 하자면, 그가 한국에 살았다면 과연 그 대가족론을 계속 주장할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인류학 석사 논문이 거절당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랬던 그가 시카고 대학에서 문화인류학 석사 학위를, 인디애나 대학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塞翁之馬. 도대체 삶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Life goes on! 아카데미즘? 개뿔!

이 책은, 이 책을 쓸 당시 죽은 형에 대한 추억으로 마무리한다. "고상하고 품위 있었다." 자신이 젊었을 때 벌어진 어처구니없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일이 적힌 편지가 이 책을 쓴 동기다. 책 맨 끝에 형과 찍은 사진이 있다. 1997년 발표작이다. 출간 후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했다.

언제나 그랬듯, 웃긴가요? 예. 웃깁니다. 딩동댕!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울거나 웃는 것뿐이라고. 울면서 웃는, 그의 파멸적 웃음은 씁쓸하면서도 유쾌하다.

그가 거짓말을 너무 많이 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갔다면 웃었을 것이고 그가 착한 심성으로 살았다는 이유로 천국에 갔다면 울었을 것이다.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에 있다면, "다들 여기 있군그래.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렇게 너스레를 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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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나이트]

Mother Night (1961)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9년 3월 발행


 

 

소설을 삼 분의 이 정도 읽을 상태에서 동명 영화를 봤다. 그리고 마저 소설을 다 읽었다. 영화를 본 사람은 소설을, 소설을 읽은 사람은 영화를 보려고 할 것이다. 희안하고 재미있게도, 영화에서는 소설의 세부 사항을 생략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영화에서 소설에는 없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에서는 그냥 별다른 말 없이 체스 장기 말들을 조각하는데, 소설에서는 체스 말들을 조각하는 조각도가 한국 전쟁의 군수 물자로 받았다고 나온다. 소설은 주인공의 마지막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데, 영화는 명확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끝난다. 참,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원작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가 실제로 나온다, 주인공 곁을 지나가는 사람으로.

커트 할아범의 대표작 '제5도살장'에 열광했거나 혹은 질린 독자한테, 이 장편소설 '마더 나이트'는 참으로 친절하다. 이야기가 대체로 시간순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예 완전히 시간순으로 재배열해서 보여줬다. 눈물 날 정도로 고맙더라.

스파이, 정획히는 이중첩자 야이기다. 주인공 캠벨 2세는 이스라엘 전범 재판을 기다리며 감옥에 갇혀서 자신의 지난날을 나치 전용 타자기로 타이핑하면서 회상한다. 회고록 형식이다.

 


아, 미리 경고한다. 이중갑첩의 멋지고 긴장감이 넘치고 재미나는 활약상을 기대하지 마시라. 전통적인 영웅 이야기를 고집스럽게 좋아하는 독자라면, 보네거트의 소설은 피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능동적으로 뭘 하는 캐릭터가 아니고 수동적으로 당하는 인물들이 나오니까. 서양장기 체스의 말, 폰을 생각하면 딱이다.

주인공 켐벨은 부조리 캐릭터다. 반유대주의자로 나치 선전부에서 라디오 선전방송을 하는데, 실은 그 방송을 통해 미국 정보부에 유용한 정보를 전달한다. 본인 스스로야 미국의 영웅이라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나치다. 그의 장인어른조차 네가 미국 스파이건 뭐건 어쨌거나 선전방송 자체를 훌륭하게 해냈으니 딱히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니.

"다른 사람이 어디로 가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아무 데도 못 가는 사람, 
다음에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 
무엇을 하라고 말해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 
난 그런 사람을 아우슈비츠에서 수천 명이나 봤어." 325쪽

나는 그런 사람들은 주변에서 날마다 보고 있다. 거울 보면 내가 보인다. 사는 데 가장 궁극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왜 사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317쪽) 누군가는 사랑을 위해서,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서, 또 누군가는 권력을 위해서 산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말해, 뭐 어쩌다 보니 그냥저냥 살고 있을 뿐이지 않나.이 소설 읽고서 인생의 목표를 고민할 줄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서, 뭔가를 스스로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래서들 예술가를 부러워 하는가 보다.


도대체 전쟁에 왜 그렇게들 환장할까? 작가의 통창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을 읽었다면 밑줄을 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적을 무조건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320쪽

 

주인공/작가는, 전범에 대한 올바른 조치가 사형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이라고 한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일이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죄라고 인식조차 못 하고 있으니. 그리고 용서해야 한다고. 왜 예수가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참, 안 쓰고 끝낼 뻔했네. 아우프 비더젠. 잘 가요가 아니라 또 만나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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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커트 보니커트 지음
박웅희 옮김
아이필드 펴냄


내가 왜 커트 보네거트를 읽지? 나한테 종종 물어 보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아마도 내 삶이 썩 잘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그렇게 가는 거야.”


사람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울거나 웃는다. 보네거트의 등장인물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에 질질 끌려 다니다가 죽는다. 반면, 그의 이야기 방식은 다채롭고 입체적이면서 독특하다. 흩어 뿌리지만 결국 하나로 모여진다. 비아냥거리지만 결국엔 애정으로 맺는다.

유령이 1백만년 전 이야기를 한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상태의 유령. 죽음으로 가는 통로, 푸른색 터널 앞에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을 가려는 걸 지체하면서까지 인류의 진화 과정(두뇌가 물고기 수준으로 변한 인류)과 자기 얘기를 줄줄이 유창하게 떠든다. 

 

이 작중 화자 레온 트라우트야말로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며, 레온의 아버지로 나오는 SF작가 킬고어 트라우트 또한 자신의 밑바닥 작가 인생을 반영한 창조물이다.

 



킬고어가 레온에게 말한다. 작가가 자신한테 말한다. "레온! 레온!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정나미가 떨어질 뿐이야. 너희 나라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자들이 너를 그 끝이 없고 인정도 없고 참혹하고 결국에는 의미도 없는 전쟁터에 보낸 것만으로도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은 이후로는 영원히 필요 없을 만큼 얻지 않았느냐?" 264쪽

1천 개의 언어를 번역하고 갖가지 문학작품을 수록한 만다락스라는 기계가 나온다. 만다락스 가라사대 하면서 인용한 진지한 문학 텍스트는 소설 속의 우스꽝스러운 상황에서 웃음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 작가에 열광하는 모든 독자들이 그렇듯, 끝까지 읽으면 마음 푸근한 이 작가의 속마음을 알 수 있다. 울다가 웃게 되는 순간이 있듯, 냉소가 정겨움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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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God Bless You, Dr.Kevorkian (1999)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이강훈 그림
문학동네 펴냄

2011년 1월 발행

 


작가의 후반기 작품이다. 1997년 마지막 소설(자서전 같은 소설) '타임 퀘이크' 이후를 내 맘대로 커트 보네거트의 후반기로 부른다. 작가는 필력이 떨어져서 호흡이 긴 작품을 쓰기 어려운 상태였다. 지난날 회상과 자유로운 몽상을 섞어 짧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후 세계를 취재하는 기자인 커트 보네거트가 말하는 형식이다. 후반기 작품이 대개 그렇듯, 작가는 등장인물로 자기 자신을 설정한다. 이야기로 부르긴 민망하다. 작가의 평소 신념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놓은 수필로 보인다. 커트 할아범의 생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산 사람이 사후세계로 가서 죽은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한다. 셰익스피어, 히틀러, 아시모프, 뉴턴, 메리 셸리, 킬고어 트라우트,비비언 헬리넌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이 반, 낯선 인물이 반이다. 가장 인간적인 사람들과 가장 악했던 사람들을 동시에 취하면서 웃긴다. 무신론자의 유쾌하고 착한 농담이다.

닐 게이먼의 서문은 작품 전체의 양식을 흉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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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문학동네 펴냄

2007년 8월 발행


커트 보네거트는 2007년 4월 11일 돌아가셨다. 향년 84세.

"미국에 살아 있는 가장 좋은 작가." 노벨상 수상자 그레함 그린이 커트 보네거트한테 보냈던 찬사다. 그 말은 더 쓸 수 없다. 커트는 좋은 곳으로 갔으니. "여러분, 나는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여전히 그렇게 속삭이건만. 죽었다니, 무슨 소린가. 그는 미국에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누가 미국을 제대로 엿먹일 것인가. 이제 누가 미국의 똥 같은 짓거리를 보고 "똥싸고 자빠졌네." 하고 말할 수 있겠는가. 스티븐 킹이? 버거킹이나 드셔. 촘스키가? 좀스럽게 구셔. 커트 보네거트가 더는 책을 쓰지 않는다. 가려워 죽겠는데 시원스레 긁어 줄 사람이 없다. 환장한다.

커트 보네거트의 새 책이 나왔다. 죽은 사람이 환생했나. 천국에서 보낸 선물인가. 아니다. 2년 전 펴낸 책이다. 이제야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 잡지에 기고한 낱글을 모았다. 여기에 덤으로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경구 포스터를 곁들였다.

작가가 그동안 책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말했던 생각을 이 책에 고스란히 잘 모았다. 옛날에 쓴 글인데도 여전히 현재에 딱 들어 맞는다. 결국 이 말은 우리 현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단 뜻이다.

 



인류가 진보한다고? 무슨 헛소리냐. 우리는 스스로 파멸하고 있다. 석유 먹고 매연 뿜는 네 바퀴 수레를 타고 다니면서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재앙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이 떼죽음 당하는 걸 텔레비전 생중계로 보는 인간들. 그들이 진보했다굽쇼?

미국 돌대가리한테 스트레이트 펀치를! 커트는 말한다. 나는 "나라 없는 사람"이다.  

 

미국은 본래 주인이 없는 땅이다. 그런 땅에 주인이랍시고 떠드는 예일대 C학점 졸업생의 짓거리란 뭔가. "조지 W.부시는 주변에 C학점 상류계급 학생들을 끌어모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역사와 지리를 전혀 모르고 백인 우월주의를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이른바 기독교도이며 정말 놀랍게도 정신병자, 즉 영리하고 번듯하게 생겼지만 양심은 전혀 없는 자들이다." (99쪽) "아랍인들이 멍청해 보인다고? 그들은 우리에게 숫자를 줬다. 한번 로마 숫자로 긴 나눗셈을 해보라."(79쪽)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말하길, "미국에서만 돈에 대한 애착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한다."(18쪽) 네이팜은 하버드에서 발명되었다.(89쪽)

그가 SF작가로 불리는 게 된 계기는 첫 소설 '자동 피아노'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소설에서는 그는 자신이 일하던 뉴욕 주 스커넥터디 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착각했다.

구덩이에 빠진 남자. 소년, 소녀를 만나다. 신데렐라. 카프카. 햄릿. 이 이야기들을 수직과 수평과 곡선으로 분석해 보여주셨다.  어찌나 웃기던지.

책 표지의 비밀은 132쪽에서 밝혀진다. 그 그림을 그린 종이는 스웨덴 사브 자동차 판매부의 메모지다. 맨 위에 커트 보네커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의 직함은 매니저였다.

이 못말리는 블랙유머 풍자가를 처음 대한다면 이 책을 가장 먼저 권하고 싶다. 자, 이 책을 읽었다면 다음엔 뭘 읽느냐고? 당연히 그의 최고작 '제5도살장'이다. 그렇게 가는 거다. 평화롭게 잠들다. 딩동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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