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Postmortem (1990년)

법의국장 케이 스카페타의 1인칭 독백은 솔직하고 담백하며 때때로 감상적이다.

"나는 피해자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일단 피해자가 사건 번호로 불리기 시작하고, 증거물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면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꺼져버린 생명처럼, 개인의 프라이버시 역시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이다." 17쪽

"나는 죽은 사람이 무서운 적은 없다. 내가 두려운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40쪽

주인공 케이 스카페타는 셜록 홈즈처럼 나 혼자 잘났다는 식으로 수사하지 않는다. 마리노 형사를 비롯한 주변 인물과 협력한다. 살짝 루저 캐릭터다. 일중독 이혼 미인 직장 여성인데, 능력은 있으나 소심하고 냉철하면서도 종종 실수를 한다.

소설 '법의관'은 법의학 스릴러를 탄생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지금이야 온갖 과학의학기술을 동원해서 살인범을 잡는다는 설정이 진부하지만, 이 소설을 발표할 당시인 1990년에는 획기적이었다. '법의관'은 시대를 앞서가는 이야기였다. 스마트폰으로 페북에 트위터를 하는 요즘 시각으로 보기에는 이 소설이 선사시대처럼 느껴지리라. 모뎀으로 원격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본다.

썩 잘 쓴 이야기는 아니다. 이 유명한 추리소설이 독자를 골탕먹이는, 범인과 상관없는데 중요한 것인 양 속이는 짓을 두 번이나 한다. 정말이지 작가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더라. 명확하지 않게 설명하며 얼렁뚱당 넘어가자는 식으로 마무리하고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결말이라니. 용의자가 나열되고 단서를 조합해서 범인을 잡는 식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수사를 진행하다보니 어느새 갑자기 범인이 잡힌다는 식이다. 복잡한 트릭이나 정교한 추리력이 아니라 끈질긴 수사와 우여곡절 끝에 범인이 잡힌다.

법의학 현장을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드라마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지만 소설은 그럴 필요가 없어서 전문용어를 비롯해서 진행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하지만 소설이고 그다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에서 애써 그런 전문가적 정확성까지 챙겨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저냥 분위기 나면 충분하다.

이 소설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주인공의 사적인 이야기다. 이혼에 조카에 엄마에 요리에, 이런 시시콜콜한 사생활 문제 해결(?)을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주변 인물과 티격태격 대화하는 모습이 읽고 있자니 드라마 보는 것 같다.

처음에는 스카페타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쓰진 않았다고 한다. 남자 탐정이 주인공이고 스카페타는 조연이었다고. 어느 출판 편집자의 충고에 따라 여주인공 1인칭 독백으로 쓴 것이 바로 이 '법의관'이다. 그 결과, 독창성과 흥미를 만들어냈다. 이야기는 별로라고 느낄지 몰라도 여자 주인공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주인공이 작가를 많이 닮았다.

검시관
패트리샤 콘웰 지음/장원

1993년 장원에서 '검시관'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나왔었다. 검시관과 법의관은 다르다. 소설 본문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검시관은 선거로 선출되는 공직자다. 법의병리학자가 아닌 경우도 흔하다. 주유소 직원이라도 어떤 주에서는 검시관으로 선출될 수 있는 것이다."

원제 Postmorem을 직역하면 '부검'이나 '검시'다. 제목으로는 영 없어보인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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