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아들
퍼트리샤 콘웰 지음
홍성영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From Potter's Field (1995년)
'카인의 아들'은 독자가 기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전전편과 전편에 등장하는 살인마 템플 골트가 드디어 이번 편에서 끝장을 보기 때문이다.
소설 시작 프로롤그에 3인칭 서술로 범인이 골트라고 밝힌다. 이어지는 사건들은 주인공 스카페타를 향해 범인이 대담하게 다가선다. 살인범은 일부러 자신을 추적하라고 주인공의 신용카드를 훔쳐다 쓴다. 심지어 스카페타가 일하는 부검실까지 찾아들어와서 메시지를 남기고 간다.
범인을 추적할 수 있는 물증은 전작 스타일대로 참으로 편리하게도 희귀한 것들이다. 2차세계대전에 쓰인 군화, 시술자가 극히 적은 치아 금박복원술. 이 힌트를 따라 스카페타 박사는 범인의 가족을 만나 사연을 듣고 책머리에 인용한 창세기 4장 10절의 진실을 만난다.
차츰 긴장을 고조시키고 범인의 정체에 다가서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장면은 썰렁하다. 끝이 좋아야 한다. 시작과 중간만 현란하면 오히려 나쁘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 같은 장면을 남발하고는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두 방으로 사건 종결이다.
악의 화신 같은 자가 허벅지에 스카페타가 찌른 칼을 맞고서 하는 말이 고작 "피가 멈추지 않아. 당신은 의사니까 어떻게 좀 해 봐."다. 왜 이렇게 갑자기 착해? "야이, X발 년아." 하고 욕을 하든지. 그토록 주인공을 사랑했다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라고 해야 하지 않나.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인 자가 하는 말이 고작 나 좀 살려 달라고? 독자 좀 살려 주쇼.
그토록 교묘하게 죽이고 기발하게 도망치고 형사들을 농락했던 범인이 이토록 맥없이 죽어버리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다. 어서 이야기를 끝내기 위해서, 작가 편리하게 죽어버린다.
연쇄 살인범 골트는 끝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처럼 모호하다. 골트가 동생을 죽인 이유를 모르겠다. 그의 부모들은 골트가 사악한 놈이고 어서 죽여야 한다고만 한다. 살인범의 범행 동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 미친놈이고 어서 죽여야 한다고 등장인물들이 합창한다. 미친놈이야. 더 알아서 뭐해. 죽여라!
골트가 주인공한테 그토록 애착을 갖는 이유도 모르겠다. 그렇게 케이 박사를 좋아했다면 왜 전전작부터 그런 행동을 안 하고 세월이 흐른 후에야 이번 편에 와서야 '날 좀 보소.' 하나?
시리즈 4인방은 변함이 없다. 루시는 동성애를 하고 범인 잡는 컴퓨터 시스템 '카인'을 완성한다. 주인공은 지난편에 이어 이번 편에서도 FBI 프로파이로 벤턴 웨슬리와 불륜에 빠졌다. 마리노는 반장으로 승진했는데 여전히 아부 같은 인간관계는 관심이 없다. 이혼한 전 부인한테 애정이 남아있는 듯 보이나 다른 여자 만나며 그럭저럭 산다. 마리노는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이고 동성애 혐오자다. 촌스럽고 무식이 철철 넘친다. 그럼에도 스카페타는 마리노를 감싼다. 나를 지켜주는 충성스러운 기사님이니까.
이들은 악한 인간의 온갖 범행을 겪으면서 차츰 정신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살인범 잡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분위기다. 스카페타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케이, 벤턴, 루시, 피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범인 잡는다. 인생이나 소설이나 내 맘대로 풀리는 경우는 드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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