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닥터
퍼트리샤 콘웰 지음
허형은 옮김
노블하우스 펴냄
Unnatural Exposure (1997년)
콘웰의 긴장감 고조시키는 이야기 솜씨는 인정해 줘야 한다. 매번 결말이 흐지부지라서 용두사미지만, 책 마지막 쪽까지 읽게 하는 능력은 있는 작가다.
시리즈 8편까지 왔고 지난 7편에서 테러 집단과 당당하게 싸운, 우리의 주인공은 이제 유명인사다. 외국 가서 강의도 한다. 여전히 일중독자이고 휴일이고 주말이고 쉬는 법이 없다. 이 사람아, 좀 쉬라고! 그의 부하가 스카페타 국장한테 무조건 쉬라고 명령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팔다리가 없이 몸통만 있는 시체가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견된다. 8년 전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시체들과 비슷하다. 딱히 실마리가 될 것은 보이지 않는다. 잘린 흔적을 봐서는 의료계 전문가다. 이런 가운데, 살인범은 '죽음의 닥터'라는 닉네임으로 스카페타에게 이메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은 자신이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
사건은 변종천연두로 확대된다. 작은 섬마을에서 지난번 사지절단 시체와 비슷한 피부발진과 수포가 보이는 시체가 발견된다. 백신이 없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난리가 난다. AOL 채팅방에서 범인 '데드닥'과 대화를 오래 끌어서 마침내 범인의 위치를 잡아내고 FBI가 출동한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순간은 이번에도 지난 편처럼 운이다. 참으로 고맙게도 그동안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 짧게 채팅하다가 이번엔 어찌된 일인지 길게 한다. 억지스럽지만 어쩔 수 없어. 이야기 끝내야 하니까.
그동안 읽은 시리즈 중에 유일하게 주변 인물들 중 한 명이 범인으로 밝혀진다. 힌트가 잘 나와 있어서 범인은 쉽게 맞출 수 있다. 지난 편들처럼 생뚱맞은 사람이 범인이랍시고 갑자기 나타나는 식에서 벗어났다. 여전히 살인범은 그냥 미친 사람이라는 설명이다. 그냥 미친 년놈이야. 왜 그러지는 아무도 몰라. 묻지도 마. 알려고도 하지 마.
추리소설/범죄소설이라기보다는 '법의학 스릴러'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 연속극 드라마 같은 소설이다. 이혼한 독신녀 스카페타의 일상이랄까. 시리즈 4인방의 사생활 이야기는 이 시리즈 팬들한테는 절대적으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한테는 이야기의 사건 전개에 충실하지 않고 사족으로 보일 것이다. 이래서 시리즈는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 줘야 한다.
스카페타는 드디어 마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웨슬리한테서 듣는다. 나처럼 주인공 케이도 마크의 죽음이 FBI가 거짓으로 꾸민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알고보니 죽은 게 맞다. 우연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웨슬리가 스카페타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나름 스카페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둘은 이제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웨슬리가 이혼했기에 불륜이 아니다. 둘이 결혼해도 아무도 뭐라 비난할 사람 없다. 마리노가 왜 둘이 결혼 안 하냐고 성화다. 충성스러운 마리노는 오직 케이 박사의 행복을 빌 뿐이에요.
루시는 FBI 인질구출팀 기술 담당으로 잘나간다. 일을 너무 잘해서 주변 동료들이 시샘하고 두려워한다. 마리노는 스카페타에 대한 애정과 질투는 여전하고 묵묵하게 주인공을 지켜주는 기사님 역할을 시리즈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마리노가 건강 관리를 잘 하지 못하고 있어서 스카페타가 엄마처럼 잔소리를 해댄다.
나는 스카페타 시리즈는 주인공과 마리노가 다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읽는다. 둘이 너무 귀엽다.
마리노 : 내 트럭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칭찬해 준 적 있었냐고. 아님 나랑 낚시 가본 적 있소?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온 적은? 절대 없지. 박사가 사는 데가 더 고상한 동네라서 내가 매번 그리로 가야 하니까.
스카페타 : 당신이 요리 한 번 해봐요. 그럼 당장에 갈테니까.
말싸움은 하지만 참 다정한 커플이다. 스카페타가 자신도 엘비스 광팬이라고 고백하자, 마리노가 어찌나 좋아하는지 싱글벙글이다. 엘비스 관련해서 마리노의 유년 시절 사연이 나온다. 술 취한 아버지가 자신과 어머니를 구타하는 걸 어떻게 그만두게 했는지 나온다. 수호천사다운 사연이다.
다음 편에 스카페타와 웨슬리가 결혼하나.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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