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남경태
휴머니스트
2012.05.29.

현대를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철학의 홍수 시대'다. 철학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제는 철학을 모르고서 현대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신문을 봐도 책을 봐도 철학은 빠짐없이 튀어나온다.

가끔 만나는 철학 용어가 만만치 않다. 불확정성, 패러다임, 포스트모던, 구조주의, 기표, 기의, 집단무의식, 해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막상 철학책을 찾아 읽어보니,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철학책은 역시 어려워." 하고 한숨을 푹 쉬고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 살려니, 그것도 쉽지 않다.

현대 사회는 사회 구성원을 그렇게 살게 그냥 두지 않는다. 철학은 이제 컴퓨터와 영어만큼이나 현대인한테는 꼭 잘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니. 이런 현대인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철학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로 삼을 수 있는 책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현대 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현대 사상가 30명을 소개하고, 그 철학자들의 용어를 정말 알기 쉽게, "이렇게 이해하기 쉬워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예를 들어 쉽게, 정말이지 너무나도 쉽게 설명해 놓았다. 다음이 그 30명의 30개 용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니체의 '권력의지'
프로이트의 '무의식'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
후설의 '판단중지'
레닌의 '약한 고리'
융의 '집단무의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케인스의 '유효수요'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
루카치의 '계급의식'
하이데거의 '현존재'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그람시의 '헤게모니'
라캉의 '욕망'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브로델의 '장기 지속'
아도르노의 '계몽'
사르트르의 '자유'
레비스트로스의 '심층구조'
바르트의 '신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쿤의 '패러다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
푸코의 '지식-권력'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데리다의 '해체'
부르디외의 '아비튀스'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쉽게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을 볼 때마다 참 부럽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말하거나 쓰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는 것을 말하거나 쓰는 것'과 '아는 것을 타인한테 이해시키는 것'은 또 다르다. 이 다름을 같게 하려면 언어에 대한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고 그 감상을 쓰기가 힘든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과 감동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그 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남경태. 내게는 친숙한 이름이다. 이미 그의 책 두 권을 읽어 봤다. 영어와 한글로 번역한 [공산당 선언](백산서당 펴냄)과 역사 에세이 [상식 밖의 한국사](새길 펴냄). 남경태의 글은 쉽다는 달콤한 맛도 있지만 그 특유의 공격적인 매콤한 맛이 더 마음에 든다. 매운 맛!

[공산당 선언]을 번역한 그 과감함이 그렇고, [상식 밖의 한국사]에서 기존 역사관과 역사 상식을 여지없이 공격하면서 현실 비판을 확실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현대 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서도 역시 그 현실 비판을 빼 놓지 않았다. 쉬운 문체와 매운 맛의 비판이 돋보이는 남경태. 그의 글쓰기를 계속 지켜 볼 생각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상가 중 두 명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내가 다 통독해 본 것만.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두 권.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이 책은 현대 사회학의 명저로, 현대 소비 사회를 기존 상식적인 경제학적 관점이 아닌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 이 책은 그의 회상록(回想錄)인데, 모든 사람과 모든 학문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려는 그의 자세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현대 철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보다 공자 맹자 시대보다 더 복잡하고 풍부해졌다. 다만, 진지하게 철학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현대 철학은 언제부터인지 단순한 지식이 되어 버렸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철학 용어를 빨리 이해하고 빨리 써먹어야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차분하게 조용히, 삶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그 외 여러 가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칸트는 그의 철학 강의를 듣는 젊은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고 한다. "너희들은 나한테서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철학만 배우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조용히 이 세상을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철학은 모든 것의 바탕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인식론과 방법론을 제공한다. 철학은 모든 인간과 모든 세상의 핵심이다. 철학은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공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철학이 단순히 지식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쇳조각처럼, 기계의 부속품처럼.

1997.6.20

 

지난 12월 남경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명복을 빈다.
2015.1.7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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