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A. C. 그레일링 지음
남경태 옮김
에코의서재

"The Meaning of Things: Applying Philosophy to Life" "여러 것들에 대한 의미 : 삶에 대해 철학하기" 앞의 영어는 이 책의 본래 제목이고, 뒤의 우리말은 내가 번역한 것이다. 옮긴이 남경태 씨가 붙인 제목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 사전"은 원제를 재해석한 것인데, 철학사전이라는 말까지는 붙인 것은 내 생각엔 안 어울린다. 간단한 수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부제로 달은 "'사랑, 슬픔, 용기, 죽음, 야망, 평화, 가족, 예술, ...... 삶의 중요한 가치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더 어울린다. '철학적 사유'라는 말에 상당히 어려운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것이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글쓴이 그레일링은 머리말에 "대부분의 글들은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으며, 꼭 순서에 따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읽어도 된다.(9쪽)"라고 적었다. 목차를 보고서 자신이 흥미로운 주제의 글을 찾아 곧바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뒤에서부터 읽다가 다시 앞으로 읽었다가 중간 정도에서 덮었다. 책의 맨 끝에 나오는 주제는 '사소한 것'이다. 지은이가 인용한 힌두스탄 속담이 재미있다. "인간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산이 아니라 돌이다." 적절한 인용과 평이한 서술로 흥미롭게 썼다.

앞서 말했듯,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이라서 보통 두세 쪽 분량이다. 그럼에도,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은 거의 1시간을 주는 책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무겁게 생각할 수 있다.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괴로운 책일 수도 있다. 뭐라고? 나라고? 그래 나다. 이 철학자 아저씨가 인용하는, 책의 범위는 은하계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학다식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의 저자 앞에서 자신이 읽은 책은 지구의 갈대 한 포기 정도밖에 안 된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이런 수준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읽으면서 갑갑할 수 있다. 이 책이 읽기 어렵다고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로의 책을 읽었던 사람이나 평소 철학 관련 책을 훑어 봤던 사람에게도 더 빨리 더 잘 읽힌다. 이 점을 말하고 싶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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