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미학강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은행나무
2010.07.01.

역시 헤겔! 독일철학의 거장(巨匠)다운 솜씨다. 개념과 체계로 촘촘하게 논리를 세우고 예술이라는 이런 것이라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듯 자기 주장을 펴 나아간다.

독일 철학은 관념어 때문에 읽기 쉬우면서도 어렵다. 하나의 개념이 파악되면 그 개념어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쉽다. 그러나, 그 개념어가 파악되지 않은 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헤겔은 독일 철학에서 관념주의 또는 이상주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는 법철학, 종교철학, 역사철학, 예술 철학 등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마르크스, 루카치, 사르트르 등이 헤겔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헤겔'이라는 거대한 산에 오르면 서양 철학은 거의 다 보인다면 과장일까.

공자처럼 헤겔도 자신의 미학 이론을 직접 쓰지 않았다. 원래 진짜 독창적인 사상가는 책을 쓰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 G. H. Mead도 생전에 책을 쓰지 않았다. 사망 후에, 시카고 대학의 제자들이 강의 노트를 모아 정리해서 [Mind, Self, and Society]라는 책을 펴냈다. 공자, 헤겔, 미드. 정말 멋진 녀석들이야! 1820년대를 전후하여 헤겔은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했고, 헤겔이 죽은 후에 그의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호토가 그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모두 3부로, 제1부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 제2부 "여러 특수한 예술미의 형식으로 발전하는 이성", 제3부 "개별 예술들의 체계"이다. 1권은 1부 번역, 2권은 2부 번역, 3권은 3부 번역, 이런 식이다.

1권에는 꽤나 긴 '서장'이 있다. 여기에서 [미학 강의]의 전제와 내용 전반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서문을 읽은 인상부터 적어 본다.

헤겔은 자연미보다 예술미를 높게 평가한다. "예술미는 정신에서 다시 태어난 미"이기에 "정신과 정신의 산물이 자연과 자연의 현상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서양이 미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은 자연미를 예술미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헤겔은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 예술미의 우위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남쪽 지방 숲속의 야생지대에서는 현란하고 풍요로운 색깔의 새 깃털은 남에게 보이지 않고도 스스로 빛나며, 그 새들의 울음소리는 남이 듣지 않아도 울려 퍼진다. 하룻밤 새에 피는 선인장은 누가 보고 경탄하는 일이 없이 피었다가 시들어 버린다. 또 좋은 냄새, 풍부한 향기를 지난 아주 아름답고 호사스런 식물들로 가득한 그 숲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이 언젠가 죽어 황폐해지고 만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그러한 자연처럼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향하는 인간의 가슴을 향해 말을 걸고 묻는 것, 즉 마음과 정신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헤겔이 미를 보는 관점(서양의 미)은 자연보다 인간을 중시한다. 결국, 예술이란 인간만의 그 무엇인 셈이다. 그러나, 동양의 예술은 인간과 자연과의 그 무엇이다.

1부와 2부에서는 이상의 개념과 일반적인 예술형식에 대해서 논하고, 3부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들어 설명한다.

헤겔은 예술보다 종교를 우위에 놓는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참되고 구체적인 이념'은 다분히 종교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는 이념과 현상이 일치할 때 드러나는 것이 이상(理想)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서 이념이 형상화되는 것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고찰한다.

첫째 단계, 이념 스스로가 아직 규정되지 않는 불확실함 속에서 또는 참되지 못한 규정 속에서 있는, 상징적인 예술 형식. 두 번째 단계, 상징적인 예술 형식의 결점을 해소하여 이념과 형상이 조화를 이룬, 고전적인 예술 형식. 마지막 세 번째 단계, 이념과 형상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적합하지 못한 채 서로 분리되는, 낭만적인 예술 형식. 이 마지막 단계의 예술 형식은 미의 참된 이념인 이상을 추구하면서 그 분리를 극복하려 한다.

이런 1부와 2부의 논의로, 3부에서는 상징적인 예술 형식으로 건축을, 고전적인 예술 형식으로 조각을, 낭만적인 예술 형식으로 회화, 음악, 시문학 등을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위의 세 단계는 헤겔의 "역사적인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적인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종교적인 냄새를 없애고 자신의 '계급 투쟁 이론'에 끌어들여 멋들어지게 써먹는다. 브라보, 마르크스!

사르트르도 헤겔의 철학 체계에서 종교적인 요소를 빼고 이용한다. 헤겔은 [미학강의] 서장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 '즉자성(卽自性, Ansich)' 개념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동물적인 기능을 이행하면서도 다른 동물들처럼 즉자성 속에만 머물지 않고 자기 기능들을 의식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 기능들을--예를 들어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을--스스로 의식하여 학문으로 고양시킴으로써 자신의 즉자적인 직접성이 지닌 한계를 넘어선다. 인간은 바로 자신이 동물이라는 것을 앎으로써 동물이기를 멈추며 정신인 자아에 대해 스스로 지식을 부여한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힌트를 얻었으리라. 사르트르가 말한 즉자(卽自)와 대자(對自)는 개념은 여기에 그 뿌리가 있는 듯.

또,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헤겔의 종교적이고 변증법적인 역사철학적 관점을 그대로 이어 받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문학 형식으로 떠오른 소설에 대해서 "신에 의해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다"라고 장송곡 부르듯 읊조린다. 그가 써먹은 "총체성" 개념도 이 [미학강의]에 이미 나와 있다.

헤겔의 [미학강의] '서문'을 읽고서, 서양인들의 무서운 발전 속도를 새삼 깨달았다. 전통의 계승과 결별에 있어서 이토록 빠르다. 옮긴이 두행숙 씨는 역자의 말에서 헤겔 미학이론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들고 있는 것은 루카치가 극복했다. 소설이 서사시를 능가하는 장르가 된 이유를 루카치는 헤겔의 전통을 잘 이어받아 [소설의 이론]에서 설명했다. 또한 헤겔은 서사시의 시대에서 산문의 시대로 넘어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서문에 "최고의 단계에 이르면 예술은 스스로를 넘어서게 된다. 왜냐하면 이때 예술은 정신의 감각성과 화해를 이루던 기반에서 떠나 표상적인 시문학에서 사유적인 산문 속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래서 루카치는 헤겔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우쭐거릴 수 있었다. 사르트르, 마르크스, 루카치의 생각은 모두 헤겔의 철학 체계에서 그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헤겔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에 철학 체계를 정립했기에 사르트르, 마르크스, 루카치 등이 그들 각자의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따분하다고 고리타분하다고 시대에 낡았다고 비합리적이라고 결별만 선언했지, 그 전통의 장점과 핵심을 계승하려는 노력에는 인색했다. 곰곰이 반성해 볼 문제다.

제1부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에서는 우선 현실, 종교, 철학 등과 관련지어 예술의 입지를 살펴본다. 그 다음에, 예술미의 이념을 총체성에 맞게 고찰하기 위해 다음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미의 일반적인 개념 고찰. 둘째, 자연미에 대한 고찰과 그 자연미의 불충분함을 밝혀 예술미인 이상(理想)이 요구됨을 주장. 셋째, 예술작품 속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현상된 이상을 고찰.

헤겔은 참된 현실의 모습 속에 들어와 절대적인 이념으로 머무는 것을 정신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참되고 진실한 것을 스스로 규정하는 보편적이고 무한한 절대정신이다. 예술이 관여하는 영역이 바로 이 절대정신의 영역이다.

그는 정신을 파악하는 형식을 셋으로 보고 있다. 첫째는 감성적인 직관의 형식에 속하는 예술. 둘째는 표상하는 의식인 종교. 셋째는 절대정신을 자유롭게 사유하는, 철학. 헤겔은 은근히 예술보다 종교를, 종교보다 철학을 더 높이 평가한다.

제1장 미의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서: 이 장에서 헤겔은 미는 미의 이념이며, 미는 결국 이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맺고 있다. "미의 영역은 미의 개념과 그 객관성에 의해, 그리고 그에 대한 주관적인 고찰 속에 내포된 자유와 무한성에 의해 유한하고 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이념과 진리의 영역 속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헤겔이 화를 낼 정도로 단순화시켜 보면, 이 독일 철학자가 파악하고자 하는 미는 총체성이라는 이념에 부합되는 그 무엇이라 하겠다. 그 무엇을 그는 진리라 이름 붙이고 참된 것이라 말한다. 미는 참된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다. 이것이 미에 대한 헤겔의 자기 주장이다. 뒤로 갈수록 미와 이념을 거의 같은 말로 쓰고 있다.

제2장 자연미에 대해서: 이념을 드러내는 첫 번째 존재미가 자연미다. 자연이 지닌 미적인 생명성과 생동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연미의 추상적 형식으로, 규칙성과 법칙성과 조화를 들고 있다. 광물, 동물, 식물 등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어 이해가 쉬웠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자연미는 이념적인 주관성을 갖는 참된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열등하며, 따라서 이상미(理想美)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제3장 예술미 또는 이상에 대해서: 헤겔에게는 진정한 예술미가 이상(理想)인 것이다. 말을 만들면, 이상미(理想美). 헤겔은 관념주의 혹은 이상주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 철학 체계에서 예술을 파악한다. 그러기에, 헤겔한테는 예술지상주의적 냄새가 없고 이렇게 이론적으로 미를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예술은 현존재 속에서 우연성과 외면성에 의해 오염된 것을 예술의 참된 개념과 조화시키는 가운데 현상 속에서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버린다. 예술의 이러한 정화(淨化)를 통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상(Ideal)이다."

그가 말하는 이상이 예술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구체적인 서구 예술 작품들을 들어 설명을 하는데, 아무리 읽어도 그가 말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법철학에 국가 얘기를 하고 윤리, 도덕, 선 얘기를 하더니, 고대 영웅 시대와 헤겔이 살던 당시로 나눈다. 즉, 영웅 시대에서는 개인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했으나 현대(헤겔이 살던 그때)는 독자적 행동이 불가능하고 사회 일원으로서 행동하게 되었다. 또, 고대 그리스 조각들을 상황이 부재되어 있으나, 현대의 시문학 예술은 상황 속에서 대립한다.

헤겔의 서구중심주의 사고가 읽혔다. 고대 인도 설화를 하나 예로 들고는, "우리 서구인들의 의식으로 볼 때는 황당무계할 뿐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양중심주의 사고를 갖고 있는 나는 이렇게 평하겠다. 헤겔, 그대가 예로 드는 오이디푸스 이야기야말로 우리 동양인들의 의식으로 볼 때는 황당무계할 뿐이다. 아무리 사전에 의도하지 않은 일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한단 말인가.

헤겔이 당시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도 재미있게 읽었다. 호프만에 대해서는 "내적인 분열, 불쾌한 유머, 기괴한 아이러니."라고 혹평한다. 반면에, 괴테의 작품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에 대해서는 친절하게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심오한 미를 지니고 있는 이 서사시는 우리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족하다."라고 호평한다.

내가 사는 지금에서는 괴테의 작품보다는 오히려 호프만의 작품이 더 많이 읽혀진다. 그것은 바로 지금 사회가 조화의 시대가 아니라, 분열의 시대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정신 분열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복잡한 현대 사회. 우리는 호프만에서 우리를 발견하지, 괴테한테서 우리를 발견할 수 없는 듯하다.

1997.12.21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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