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사상 100선
김철호
녹두
1994.05.01.

서울대가 선정한 사상 고전 100편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했다.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니까 갑자기 등장한 "서울대학교 선정 고전 200선". 선정한 책들이 장관이다. 아마도, 대학 교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많다.

간략하게나마 고전을 읽고 싶은 욕심에 집어들었다. 복잡하고 방대한 고전 한 편을 네다섯 쪽으로 요약하니, 역시나 수박 겉 핥기다.

사상 고전, 이것은 시대를 대표하거나 혹은 세계를 변화시킨 텍스트다. 따라서 그 텍스트를 작성한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그 사상가들의 삶과 그 텍스트를 작성할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머리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읽는 것이며,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읽는 것이다.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은 얼굴 빛깔과 모양조차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책이 주는 감동과 지혜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책읽기는 우리에게 폭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전해 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며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 준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고 막상 책을 읽으려 하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으면 좋으냐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으레 고전을 읽으라고 쉽게 권하곤 한다. 그러나 고전은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누구나 읽은 것으로 자부하려 들지만 실은 누구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이어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 (3쪽)

요즘 책값이 비싸다고들 불평한다. <기학(氣學)>을 쓴 최한기, 그는 누가 책을 사는 데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을 하면, "만약 이 책 속의 인물이 나와 한 시대를 살고 있다면 천리길이라도 반드시 찾아가 볼 터인데, 지금 책값이 아무리 많이 든다고 하더라도 양식을 싸 가지고 멀리 찾아가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였다.(72쪽) 책값이 비싸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책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法句經)], 이 책이 꽤 읽을 만할 것 같다. 읽기 쉬워 보인다. 다른 불교 사상 고전은 이해하기 어려울 듯싶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서 풀어지지 않는다. 미움은 미움이 없을 때에만 풀어진다." 135쪽 좋은 구절이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는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사회주의 사회가 온다고 주장하는데, 글쎄다, 아직은 이 자본주의가 끄떡없는 것 같다. "기술 혁신은 출판분야 등에도 예외 없이 확대되어 책의 가격을 하락시키고, 또한 기업의 혁신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교육 연한도 늘어나게 되면서 지식인들이 대량 양성되었다. 그러나 기업은 이렇게 생성된 대량의 지식인들을 흡수하거나 적절히 배치할 만한 조건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불만을 품는 적대세력으로 전환된다." (336쪽) 슘페터의 이 주장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우선, 책의 가격은 하락은커녕 계속 오르고 있다. 책값은 밥값보다 비싸다. 전공 분야의 분업화와 세분화로 지식인들의 결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다음으로, 같은 전공 분야에서조차 대화가 안 될 지경이다. 현대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아서 결국 특정 부문만 깊이 파고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하며 옹호 세력으로 발전하고 있다. 취직 못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에 불만이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사회주의를 택한다? 글쎄다. 한달에 50만원짜리 인턴 사원이라도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인간들이?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 제3장에서 언어의 해석학적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언어를 단지 인간에게 도구적 의미가 아니라 언어를 그 자체 세계에 대한 경험의 의미로써 해석학적 존재론의 지평으로서의 구조를 가진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므로 외국어의 학습도 기술적 학습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유체계, 세계관에 대한 체험의 의미로서 설명되어진다. 마찬가지로 가머디에게서 번역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대치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난해한 해석학적 작업의 하나로서 이해된다."(369쪽) 동감한다. 기계적인 번역이 창조(?)하는 수많은 오류를 보라. 비디오 영화 자막에서 책에서 우리는 엉터리 번역을 수없이 대한다.

서울대에서 뽑았다는 사상 고전 100권 도서 목록에 맥루한과 포퍼가 빠진 건 유감이다. 아무래도 사상 고전 100선을 선정한 녀석들의 독서 폭과 양이 의심스럽다.

서울대에서 뽑은 사상 고전 100편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원론적인 사상 고전을 택한 것 같다. 정말 고전다운 고전이기는 하지만, 너무 고전적인 책만 택한 것은 문제 아닌 문제가 아닐까.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을 마음이 있는 독자가 있을까. 또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걸 선정한 그 사람들은 과연 읽어 봤을까. 나의 추측은 '아니오'다.

1996.09.14

책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전자책이 나왔는데도 그렇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제 지식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학의 권위와 힘을 스러지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실용적 지식이 아닌 추상적 지식을 추구하는 대학의 졸업장이 별다른 힘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니.

책은 생각의 수단이다. 돈 많다고 반드시 여유롭게 사는 것이 아니듯, 책을 많이 읽었다고 지혜롭게 사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아서 그 돈을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읽은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오해해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다.

2015.01.07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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