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24.10.17 버트런드 러셀 [서양의 지혜: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주관적인 통찰력
  2. 2024.09.29 에라스무스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우신예찬 광우예찬] 세상을 바꾼 우스개
  3. 2024.09.26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난세에 간웅이 이기는 법
  4. 2024.09.25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자아인식
  5. 2024.09.23 [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6. 2024.09.23 [자성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내면의 신성 추구
  7. 2024.09.23 스피노자 [에티카] 영원하고도 무한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
  8. 2022.09.03 [철학 이야기] 듀란트 - 유명한 철학자들과 친해지기
  9. 2022.09.01 [논어] 사람다움의 길
  10. 2022.09.01 [대학, 중용] 유학의 목표와 방법
  11. 2022.08.31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도자의 조건] 사람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
  12. 2022.08.29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희망, 죽음, 사랑, 행복
  13. 2022.08.26 [바가바드 기타] 영원한 진리의 노래
  14. 2022.08.23 [헤겔의 미학강의 1] 예술미의 이념
  15. 2022.08.23 [생활의 발견] 임어당 - 공산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미움
  16. 2022.08.23 [만화로 보는 주역] 이기동 최영진 - 한문 몰라도 읽기 가능
  17. 2022.08.23 [한눈에 읽는 현대철학] 남경태 - 현대 철학자들의 용어를 쉽게 풀어
  18. 2022.08.22 [논리의 오류] 에드워드 데이머 - 논리적 사고력과 비판력 키우기
  19. 2022.08.22 [희랍 철학 입문] W.K.C. 거스리 - 일반인을 위한 희랍 철학 입문서
  20. 2022.08.22 [철학의 탈주] 근대 사상의 탈주를 시도한 사상가들 소개와 비판
  21. 2022.08.22 [하나만의 선택] 박이문 - 명쾌하고 논리적이며 끈질긴 철학적 사고
  22. 2022.08.22 [세계의 사상 100선] 서울대 선정 사상 고전 100권 요약 소개
  23. 2022.08.22 [의지의 분열] 김주호 - 삶의 의지, 창조, 사유를 강조하는 철학 에세이
  24. 2022.08.22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서양 철학에 대한 신랄한 반격
  25. 2022.08.22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입문] 강성도 - 종교철학에서 본 화이트헤드
  26. 2022.06.10 [철학의 뒤안길] 바이셰델 - 쉽게 풀어 쓴 서양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
  27. 2022.06.10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진정한 윤리란?
  28. 2017.08.05 [스피노자의 철학] 질 들뢰즈 - 선악을 넘어서
  29. 2017.07.31 재미있는 책 추천 [철학의 뒤안길] 빌헬름 바이셰델 - 서양철학자들의 삶

서양의 지혜:
그림과 함께 보는 서양철학사

버트런드 러셀 지음
서광사 펴냄 | 1990년 발행

러셀은 수학자답게 이 책을 아주 꼼꼼히 썼다. 사회적 정치적 시대 상황과 흐름, 철학자의 삶과 철학 요약, 비평, 영향 등 빠짐없이 쓰면서도 끊이지 않는 철학사의 흐름을 계속 짚어낸다. 특히, 수학적 철학에 대한 그의 설명은 명쾌하다. 수학과 담쌓고 지내는 나조차 수학 공부를 하고 싶게 할 정도다.

글쓴이는 이성을 중시하는 서양철학의 전통을 벗어나려는 철학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성을 벗어나려는 철학에 대한 논평은 가차없이 매섭게 비수를 날린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 철학은 심오함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몇 줄로 요약해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가끔 그다지 쓸모없는 사실을 나열한다 싶은 부분이 없진 않았다. 매끄럽지 못한 문장, 번역의 문제였을까? 지루하게 반복되는 문장, 강조였을까?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은 재빨리 끝낸다.

이런 결점이 생기는 까닭은 러셀이 서양철학사를 자신의 통찰력에 의해 일관성과 흐름을 유지하며 썼기 때문이다.

객관적 서술은 지은이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이기에 적당치 않다. 사실만을 나열한 교과서식 서양 철학사는 재미가 없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많이 풀렸다. 그와 동시에, 많은 부분들이 의문으로 남았다. 많이 알수록 많은 걸 모른다는 게 이제야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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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차기태 옮김/필맥

한글 세대를 위한 번역본 

한문보다는 한글에 익숙한 세대에게 편한 번역본이다. 다만, 한스 홀바인의 삽화는 넣으려면 제대로 넣든가 하지. 실망했다. 아예 삽화를 다 빼 버리는 게 낫겠다. 그리고 어차피 이해도 잘 안 되고 낯설기만 한데 주석도 다 빼 버리고 본문만 간결하게 남기면 좋았겠다 싶다.

여러 번역본 중에 가장 잘 읽혔다. 교수 번역자들의 한문투 번역 문장에서 벗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2015.1.20

우신예찬 -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풍자를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에는 부록으로 에라스무스가 주변 사람들에 보낸 편지글이 있다. 읽어 보니, 의외로 에라스무스는 심심풀이 책 '우신예찬'을 나름대로 변호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식으로 전제를 세운 후 풍자를 어느 정도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라는 투였다.

책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대로 읽힌다. 건전한 반성 정도를 기대했으나 전면적인 사회 개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종교 정치 지배층의 억압과 위선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양심에 사이렌을 울려 버렸다. 가볍게 다들 한 번 웃자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말했던 진실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풍자의 힘이 센 이유는 웃음으로 진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2011.9.21

우신예찬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해마다 읽는 책

어떤 책은 반복해서 읽는다. 대표적인 게 수험서다. 수험서의 운명은 한심한 인생과 똑같다. 반복해서 읽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 딴 사람한테 팔아 버리거나 쓰레기통으로 간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그렇게 가는 거다. 고전은 반복해서 읽히지만, 수험서와는 정반대의 운명이다. 계속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인생은 이래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꽤 많은 책을 썼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은 달랑 [광우예찬] 한 권이다. 그것도 심심풀이로 별 생각없이 썼다. 작가라면 자신이 가장 노력해서 쓴 책이 많이 읽히길 바란다. 하지만 책의 운명은 작가의 노력과는 상관없다. 그가 공들여 쓴 책은 현재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이 책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게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정도 풍자에 당시 사람들이 흥분했다면 당시 종교 단체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에라스무스의 이 책을 네 번 읽었다. 해마다 읽었다.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왜 이렇게 읽을까. 이유는 뭘까. 아직도 바보들이 이 세상에서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 놈들이 판 벌리고 지랄발광하고 있는 중이다.

2004.7.21

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에라스무스 외 지음/을유문화사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그리스로마 고전, 성경, 구절의 종횡무진

세상을 바꾼 우스개

세로쓰기 책을 가로쓰기 책으로 읽으니까, 빨리 읽힌다. 느긋하게, 주석도 종종 읽었다. 세로쓰기에 절판의 운명을 겪었던 책이 가로쓰기에 새판으로 나왔다. 다행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의 [광우예찬], 우리한테는 학생시절 세계사 시간 [우신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고전이 읽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 책은 재미없다고 미리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건, 음식 맛을 보기 전에 맛이 없다고 말하는 거와 같다.

[광우예찬]은 재미있다. 지금껏 세 번 읽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나면 또 읽을 작정이다. 이 책은 개그 콘서트보다 정확히 백배 더 웃긴다. 에라스무스의 수다는 수다맨을 오천배 앞지른다.

광우여신이 스스로를 예찬하면서, 인간의 바보 멍청 지랄 개판 짓거리를 줄줄이 꿰어서 늘어놓으며 웃긴다. 글쓴이 에라스무스의 익살은 자신의 책 [격언집]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풍자하면서 끊없는 수다를 이어간다.

그는 이 풍자문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쓴 진지하고 교훈적인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심심풀이였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있었다. 부패 종교 권력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래서다. 사람들은 억압된 자신의 감정을 속시원하게 풀어준 이 책에 열광했다.

당시 종교 단체들은 성경 구절을 자기 이익에 맞게 뜯어고쳐 함부러 사람들을 사형시켰다. 그런 시대에 감히 그건 미친지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라스무스가 처음이었다. 이 심심풀이 책은 그 시대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어 퍼진다. 우스개가 세상을 바꾼다.

밑줄 긋기

모든 것을 먹줄로 재고, 어떠한 잘못도 용서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만족하고, 자기만이 부와 건강을 지니고 있고, 자기만이 임금이고, 자기만이 자유롭고, 천하에 유아 독존이라고 자칭하고, 친구도 필요치 않고,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고, 신들에 대해서도 업신여기고, 인간의 행위를 모조리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밖에 퍼붓지 않는 그런 따위의 인간을 보았을 때, 누가 그를 괴물처럼, 유령처럼 무서워서 달아나지 않겠어요. 이러하기에 완벽한 현인이란 짐승 같은 거예요. (66쪽)

2002.8.15

글쓴이: 에라스무스 Erasmus
옮긴이: 정기수
펴낸곳: 을유문화사
발행일: 1989년 11월 25일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인간의 바보 미친 지랄을 찬양하라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전기문, [에라스무스 -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와 비극]을 읽고, 에라스무스의 책이 보고 싶었다. 서울문고에 갔다가 영어 원서 펭귄 클래식 [Praise of Folly]를 발견했다. 그것도 세일 코너에서! 덕분에, 싸게 샀다. 하지만, 내가 워낙 게으르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생소한 단어와 온갖 주석이 달린 그 책을 영어로 읽자니 만만치 않았다. 앞 부분 조금 읽다가 그만 두었다. 그게 1년 전이다.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언제쯤 읽게 될지는 저 위에 계신 분도 모른다.

송파 도서관에서 에라스무스를 검색해 보니, [광우예찬]이 나왔다. 서가로 들어가서 책을 찾아냈다. 책을 펴는 순간, 읽어야 할지 망설였다. 세로쓰기였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새로 가로쓰기 책이 나와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세로쓰기 책을 읽기로 했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자다가 거의 2주일이 걸려서야 다 읽었다. 머리 속에 남은 게 있나. 그래도 밑줄 두 개 그었다.

중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들이라면, 에라스무스를 세계사 시간에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 정도로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에라스무스는 고전 연구 학자였다.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라틴어로 쓰여진 옛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섭렵한 박학 다식한 사람이었다. [광우예찬]에서 종횡무진 쏟아져 나오는 인용문구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헌과 성경이다.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진지하게 쓴 게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내내 말을 걸터타고 있어야만 했던(25쪽)" 그는, 장난삼아 광우신(狂愚神)을 예찬하는 글을 쓴다. 그냥 심심해서 쓴 거다. 그는 이 책이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심심풀이로 쓴 책이 세상을 바꾸다니, 우습지 않은가.

[광우예찬]은 나오자마자 그 시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부패한 종교 권력 세력들의 짓거리에 대한 풍자가 그 시대 사람들의 속을 풀어 주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풍자 대상은 포괄적이다. 신학자, 문필가, 남편, 노름꾼, 사냥꾼, 국왕, 추기경, 수도사, 신하, 법률가, 철학자, 교황 등. 시작할 때는 농담만 하다가 독일 주교들과 신부들을 풍자할 때는 진담을 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책은 기존 기득권 세력한테 금서로 묶인다.

에라스무스가 쓴 책들 중에 지금까지도 읽히는 건 이 책뿐이다. 나머지 책은 잊혀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양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과 성경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추거나 일일이 주석을 읽어야한다. 반면, 에라스무스가 그랬듯 심심해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광우신의 유쾌한 자화자찬을 그런 배경 지식과 주석의 도움이 없이도 즐길 수 있다.

풍자문의 생명은 꽤나 긴 것 같다. 인간들의 바보 미치광이 짓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니.

밑줄 긋기

어떠한 종류의 인생도 제외하지 않는 풍자는 어떠한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악덕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일어나서 상처를 입었다고 외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까닭이요,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불안감을 자백하는 까닭일세.(27쪽)

행복이란 사물에 관해 인간이 갖는 의견에 따라서 좌우되는 거예요.(87쪽)

200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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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II Principe (1513년) 
니콜로 마키아벨리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4월
5점 ★★★★★

난세에 간웅이 이기는 법

'군주론'이 정치학의 고전이 된 이유는 선한 군주, 선한 정치, 폭군, 악한 정치 따위의 고리타분한 윤리적 이상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현실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준 마키아벨리에게 인류는 큰 신세를 졌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실현 불가능한 공자님의 군자 임금이 아니라 실제로 권력을 잡아 통치하는 자의 행태에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악행을 찬양한 것은 아니다. "군주는 가능하다면 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114p) 악덕도 때론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도 정직하게 얘기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즘이라 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비윤리적 수단도 쓸 수 있다고 해서 비판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론적 이분법과 무용지물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정치 지식을 추구했다.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는, 그가 운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읽는 내내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떠오른다. 난세에는 간웅이 이기는 법이다. 도덕적 의무와 융통성이 없는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이익에 따라 꾀를 부려야 권력을 잡는다. 일단 승리하여 땅을 넓히고 마침내 통일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쓸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왕국, 공국, 공화국이 서로 다투고 있었으며 주변 강대국의 위협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온갖 지략과 갖가지 모략이 넘쳐났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바랐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고전, 옛날 책, 옛날 기록을 읽으면서 현재 이탈리아의 분열 상황에서 과연 이기는 전략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정리하고 종합한다.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철저하게 파고들어가 사색하여 국가 통치술을 도출해낸다. "타인을 권력에 오르게 한 자는 스스로를 몰락시킨다."(50p)

'군주론'은 자기계발서나 처세술로 읽히기도 한다. 승리를 위한 전략을 끝없이 구상하고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하는 글이니 그럴 수 있다. "인간들이란 충분히 만족시켜 주거나 짓뭉개야 한다."(43p)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46p) 이런 류의 문장에 밑줄을 그면서 읽는 것이다.

처세에 능하지 못했던 자가 쓴 처세술 책이라니. 이 책 183쪽에 보면 마키아벨리의 생애가 나오는데, 인생 중후반부터 이 권력에 붙었다 저 권력자한테 붙었다 하며 아부하다가 별볼일 없이 살았다.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에게 바치지만 관직에 등용되지 못했다. 당연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음모 혐의로 투옥되었던 사람을 등용할 턱이 없지. 

로렌초 다음으로 권력을 쥔 추기경에게 '전쟁의 기술'을 저술해서 바치고 간신히 한직을 얻는다. 메디치 가문이 추방되고 피렌체가 공화국이 된다. 하지만 공직에 나가지 못한다. 메디치 가문에 협력했던 놈인데 누가 좋아했겠나. 

'군주론' 끝에서 아부를 하는데, 잘하지 못했다. 군주가 듣고 싶거나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어쩌라고. 그게 먹히겠냐.

마키아벨리는 운이 없었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 운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사무쳤던 모양이다. "제가 부당하게도 얼마나 거대하고 끊임없는 운의 원한을 견뎌야 하는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35p)

미드 보르지아를 보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쟁, 살육, 음모, 배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극찬했던 체사레 보르자의 활약을 볼 수 있다. 지략이 제갈공명 수준이다.

문장은 간결하다 못해 바삭거린다. 논리와 사실과 증거와 예의 나열이다. 촘촘하게 쌓은 벽돌만 보는 셈이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이다. 

"저는 유려한 미사여구나 요란하고 감동적인 말, 아니면 많은 이들이 자기가 만든 것을 묘사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사용하곤 하는 감언이나 겉만 번드레한 윤색으로 이 책을 꾸미거나 채우지 않았습니다."(34p)

제대로 자세히 읽어내긴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펭귄클래식코리아의 번역본은 책 끝에 인명사전을 마련해 놓았고 서두에 1500년 당시 이탈리아 지도를 첨부했다. 아쉽게도, 그리고 이상하게도 장 제목들을 목차로 수록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각 장 제목은 중요하다. "마키아벨리는 본문에서 사용한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제목을 썼고, 이 제목들을 통해 군주는 신민들에게서 사랑을 바라야 하는지 공포를 바라야 하는지와 같은 전통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명확한 표지판을 제공했다."(20p)

1. 군주국의 다양한 종류와 그것이 획득되는 방식
2. 세습 군주국
3. 복합 군주국
4.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다리우스 왕국은 왜 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5. 각자의 법 아래에서 살던 도시나 공국들은 정복한 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6. 자신의 무력과 능력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7. 타인의 무력과 운의 도움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8. 악행으로 권력에 오르는 자들
9. 시민 군주국
10. 군주국의 국력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11. 교권 군주국
12. 군사 조직과 용병
13. 원군, 혼성군, 자국군
14. 군주는 군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15.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일들
16. 후함과 인색함
17. 잔인함과 자비함, 사랑을 받는 것이 두렵게 여겨지는 것보다 나은가 그 반대인가
18. 군주는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19. 경멸과 미움을 피할 필요
20. 요새, 그리고 군주들이 의지하는 오늘날의 다른 방편들은 유용한가
21. 명예를 얻기 위해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22. 군주의 개인적 막료
23.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24. 왜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그들의 국가를 잃었는가
25. 인간사는 얼마나 운에 지배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운에 맞서야 하는가
26. 이탈리아를 야만인들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간곡한 권고

해당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며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살펴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서양 유럽 고대 중세 전쟁 역사에 익숙하다면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정치 군사 전략전술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읽었을 것 같다. 아직 안 읽었다면 이 책에 열광하게 되리라.

초판 1쇄 오탈자
57p 헤택 → 혜택

20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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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톰 버틀러 보던 | 센시오 | 2024년 2월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흐름출판 | 절판 | 아래 쪽수 표시는 이 책이다.

자기계발에서 자아인식으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에 과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연하다면,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을 읽어 보라. 무턱 대고 이것저것 읽을 것이 아니라 추천 목록과 서평의 도움을 받아 읽는 것이 순리다. 50권에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과 최근 베스트셀러가 자기계발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묶여 있다.

책 제목만 보고 가벼운 책으로 짐작하지 말고 목차를 살펴 보라. 가장 처음 소개하는 책은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지만 마지막 서평 도서는 피에르 테아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자기계발을 주제로 한 책 소개로 보이나, 안으로 들어가 세부를 살피면 삶의 통찰과 자아인식을 종합했다.

여러 책을 탐색하는데 그 분야는 철학, 종교, 문학, 경제, 예술, 심리학 등을 물론이고 동서양의 고전을 포괄한다. 법구경, 도덕경, 바가바드 기타에 성경까지 등장한다.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담겼다면 그 어떤 책이라도 기꺼이 파고들어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데 뒤로 갈수록 묵직한 주제와 낯선 책이 기다리고 있어서 통독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는가 하면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도 있다. 서평가는 책의 수준이 아니라 주제에 주목했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이 행복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써내려갔던 이들의 책을 깊게 읽고 핵심을 짚어냈다. 글쓴이의 성실한 책읽기는 성지 순례처럼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노력과 정성이 글 한 줄 한 줄에 보인다. 그 어떤 책에도 편견을 갖지 않는 수용적 자세와 더불어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흔히들 성공이란 건강, 부, 사랑, 행복, 명예 등을 뜻한다. 자기계발로 그것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들 여긴다. 지은이는 그런 책을 소개하면서 그 너머를 펼쳐 보여준다. 버틀러 보던은 사람들이 바라는 그 모든 것을 소유했다가 한순간에 모두 잃게 될 처지에 있는 보에티우스가 죽기 직전에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을 “자기계발 영역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아무리 높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309쪽)고 평한다.

자기계발서는 말한다. “망설이지 말고 당장 해 봐라.” 그런데 사람들은 방금 읽은 대로 하지 않는다. 이를 거듭 경험한 사람에게는 ‘자기계발’이란 단어만 봐도 화가 난다. 그런 류의 책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그럼에도 삶이 힘들면 어김없이 자기계발서를 펴서 읽는다. 왜 그런가?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다. 책을 읽을 때 다잡았던 긍정적 사고는 짜증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들을 실망스러운 말과 그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금세 잊힌다. 내면의 힘이 무쇠처럼 강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체로들 그저 그리 된다.

당장의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니 현실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만이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쓰니 성취하고 싶은 일의 실행은 계속 미룬다. 자기계발은 꿈으로만 머문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참아라.” 책에는 이런 말이 안 나온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성공은 운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노력으로만 되는 것도 아님을 냉정하게 깨닫는다면, 위선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자아의 진정한 소망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 당신이 바라는 성공은 운과 노력이 필요하나 간절한 바람은 깨달음을 요구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잘할 수 있나? 그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의문에 답한 후에야 진정한 자기계발이 시작된다. 자기계발은 자아인식을 핵으로 감싸서 안을 때야 비로소 실천이 가능하다. 이 책은 ‘자기계발’로 출발해서 ‘자기인식’에서 멈춘다. “당신만의 독특함을 인식하고 표현함으로써 세상의 진화를 일으킨다.”(465쪽)

자기계발의 목표는 인간 잠재력의 발현이다. 진정한 삶은 행복과 성공을 초월한다. 자아실현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배움의 길에는 실패도 끝도 없다. 오직 정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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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도서출판 숲 | 2005년 10월

이 책 '인생이 왜 짧은가'는 세네카의 저작들 중에서 '대화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10편의 에세이에서 4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인생의 짦음에 관하여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행복한 삶에 관하여

편지 형식으로 읽는 이한테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세네카의 글을 읽으면서 무척 놀랐다. 이거 어디서 이미 읽은 내용이었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과 아놀드 베넷의 '시간관리론'은 세네카의 글을 가져다 썼다고 해도 될 만큼 이 옛날 사람 세네카가 쓴 글을 자기 식으로 조금 변형했을 뿐이었다. 소로우와 베넷한테서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근본적으로 없는 것이라, 이미 옛날 사람들 한 말, 한 고민, 한 생각을 오늘날 사람들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혹은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고통, 고난, 실패, 불행, 불운에 시달리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비난한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외부적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면, 내심, 의지, 마음을 바꾸거나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닥치는 불행,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부다. 세네카의 글은 이 마음가짐에 대한 친절하고 자상한 충고이다.

착한 사람한테는 복이, 나쁜 사람한테는 불행이 온다는 것은 산타만큼이나 거짓말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나이에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철학적인 문제이자 당장에 현실적인 고민이다.

왜 착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냐는 물음에, 세네카는 '섭리에 관하여'에서 직접적인 답이 아니라 우회적인 해설을 내놓는다. 선한 이에게 불행으로 오히려 더 단련되고 더 인간답게 처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한 이에게 행운은 그 사람을 더 악으로 이끌어줄 뿐이란다. 동문서답인데, 결국 인생의 길흉화복 자체는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니까 노력하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것 자체의 덕목을 유지하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에서도 세네카는 같은 견해/태도를 유지한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네.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 것을 존중하고, 남의 것을 되도록 멀리하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어야 하네." 116쪽 이에 따라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외부의 불행, 행운, 부, 명예, 병, 기타 등등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짦음에 관하여'에 보면 사람이 왜 인생을 낭비하고 허투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 글은 아놀드 베넷의 '시간관리론'과 무척 비슷하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는 듯했다. 그러면서 실용적인 해결보다는 더 근본적 인식을 제시한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계속 불안하고 불만에 사로잡힌다. 왜? 답은 간단하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남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고 있지요." 11쪽 바쁘게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작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니까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왜 이렇게 인생이 짧은가 한탄하게 되는 때가 온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지금 자기계발서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장 덮고 이 책을 읽기 바란다. 나도 웬만한 자기계발서는 두루 읽어 봤다. 그리고 많이 실망하고 많이 낙담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세네카는 성공이 아니라 성공 그 자체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차분하고 진솔한 어투로 말해주고 있다.

도대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세네카는 '행복한 삶에 대해여'에서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어 동요하는 일이 없는 생활"(175쪽)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이 바로 철학, 인생와 세상에 대한 생각, 좁혀 말하면 스토아 철학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행복하려고 너무 애쓰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애면글면 집착하는 것을 버리고 담대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세네카가 그토록 침착하게 자살 명령을 수행했던 것은, 이같은 철학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삶을 살았으나 참으로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자결함으로써 자기 철학을 몸소 실천하여 완성한다. "그들이 가끔 죽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52쪽 세네카는 자기 성찰로 죽음마저 평정한다. "자유는 운명에 무관심할 때에만 얻을 수 있어요."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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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Ta eis heauton
열린책들 | 2011년 12월
5점 ★★★★★ 끝내줍니다

내면의 신성 추구를 위한 부단한 자아성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은 철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책이다. 본인이 스토아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혹은 이 철학사상을 정리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전쟁 중 틈 날 때마다 자아성찰을 위해 썼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블로그 일상글 같은 것이다. 물론 그 수준과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미드 시청에 빠져 있다 보니, 넷플릭스가 사람 잡는다, 책을 거의 안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블랙 세일즈를 보다가 책이 나와서 드라마 시청을 마치고 드라마에 나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명상록은 이미 읽은 책이지만 드라마 블랙 세일즈에서 인상적으로 남았기에 그 낡고 익숙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새롭게 다가왔다.

블랙 세일즈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가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데, 자신이 현재 처한 불우한 상황에서 굳굳하게 살아남기 위한 터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온갖 부조리, 타락, 배신, 범죄, 살인, 권력투쟁, 모략이 뒤덮고 있는데 이런 철학책이라니. 놀라운 대조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 책의 구절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히는 바위처럼 되어라. 바위는 동요할 줄 모르며, 거친 바닷물은 그의 발치에서 잠든다."이다. 제4권 49절.

한때 철학 서적을 꾸준히 다양하게 많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종교만큼이나 철학에 회의적인 생각이 든 후부터는 철학 책을 안 읽었다.

어떤 철학 도서를 읽든 어쩐지 궁극적인 답이 없는 질문만 계속 들 뿐이고 결국 다 하나의 의견일 뿐이고 절대적으로 옳거나 타당하고 말할 수 있는 철학 사상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실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철학서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문학서적은 재미라도 있지, 철학책은 그딴 것도 없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철학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건 예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처럼 자기 편할 대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외부 세계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자꾸만 심란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펴서 아무 데나 읽어 보라. 마음을 다잡고 인생을 제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세우라. 물론 스토아철학을 진리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스토아철학을 자신의 인생의 지침으로 여기라는 뜻도 아니다.

삶의 불행과 역경, 요즘 같은 불황과 심리적 절망에 굴하지 말고 굳굳하게 살아라. 그러고자 할 때 이 책이 위안이자 격려가 될 것이다. 설령 행운과 경제적 풍요를 맞이한다 하더라고 사람 내면의 강건함이 없으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마르쿠스가 이 책 자성록에서 끝없이 되내이듯 우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안다면,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요 내면 성찰의 핵심이 되어 사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용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행운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제4권 49절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행운을 즐기는 것보다는 불행을 이겨냄에 있는지도 모른다.

# 더 읽을만한 책

스피노자 '에티카' - 스토아 철학을 체계적인 윤리학으로 발전시켜 집대성한 책이다. '명상록'과 같은 맥락의 글이면서 확장된 모습이다.

에픽테투스 '엥케이리디온' - 스토아 철학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선배 되는 이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세네카 '행복론' - 스토아 철학자

파스칼 '팡세' - '명상록'의 문체와 비슷하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 문체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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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Die Ethik (1677)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서광사 | 1990년 10월
5점 ★★★★★ 끝내줍니다

영원하고 무한한 신에 대한 사랑
신은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이다

동양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상가는 이탁오였다. 그럼 서양에서 욕사발을 가장 많이 들이켜야만 했던 철학자는 누구인가? 바로 바루흐 스피노자였다. 이 둘은 추방당하고 자신이 쓴 책이 금서로 묶이고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이들이 한 일은 집 안에 앉아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썼을 뿐이다. 문제는 그들의 사상이 기존 권력 세력의 질서에 대항한다는 점이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은 땅 속에 묻힌 관이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존경받는 인물이 그가 단지 다르게 생각하고 위선적으로 처신하지 않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국가를 반역한 사람처럼 취급된다면, 국가에게 이보다 더한 불행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왜 스피노자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나? 그의 철학 체계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스피노자(1632-1677)의 대표작, 에티카. 본래 제목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형이상학으로 시작해서 존재론을 논하며 인식론을 거쳐 윤리학에 이른다. 그리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스피노자는 일원론자다.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은 신이다. "동일한 본성을 소유하는 실체는 오직 하나밖에 존재하는 않는다." 그 실체가 신이다. 그것만이 무한하고 영원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신의 힘에 의존한다." 정신과 물체는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실체인 신의 변용이다. 주의! 사람들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범신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모든 것은 신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바보다. 

다시 말해, 실체의 변형과 실체 자체를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신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혼동하는 사람은 신에게 쉽사리 인간의 정서를 부여한다." 또 신의 능력을 왕의 능력이나 권능으로 착각한다. 자, 여기서 스피노자가 그 당시 기독교 사상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진다. "많은 사람들이 신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열정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인격신은 엉터리다. 왜냐하면, 신은 육체도 정신도 아니며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의 논리는 "신이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인간은 신의 목적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사물의 원인을 모르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충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로 성립되며, 인간의 신체는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대로 존재한다. 인간 정신의 대상은 오직 존재하는 신체일 뿐이다. 

이래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덕은 단순하다. 덕의 기초는 각자가 자신의 유(有)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스피노자는 공자처럼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자유인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인식론으로 접어든다. 사람들은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왜 그리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보는가. 그것은 사물을 지성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식을 세 종류로 나눈다. 첫째, 감각이나 기호를 통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표상한다. 둘째, 사물의 성질에 대하여 공통 관념을 소유한다. 이것을 이성의 인식이라 부른다. 

셋째, 직관지(直觀知)다. 참된 인식은 두 번째와 세 번째다. 감각은 사물을 우연으로 고찰한다. 이성은 사물을 필연으로 고찰한다. 사람은 열정에 복종하여 자신의 본성을 잃기 쉽다. 열정적인 정서에 예속당한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행하다. 참다운 덕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성상 언제나 필연적으로 일치한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고 행복하다.

스피노자는 여러 가지 정서를 세 가지로 압축한다. 기쁨, 슬픔, 욕망. 다른 여러 종류는 이 세 가지의 변형이다. 예를 들어, 희망이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기쁨이다. 자기 만족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기쁨은 직접적으로는 악이 아니고 선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슬픔은 직접적으로 악이다."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이, 다른 사정이 같을 경우,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다." 기쁨은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요약하자. "정신이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이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특히 염두에 두며, 따라서 그가 불쾌하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과 불경스럽고 혐오스럽거나 옳지 않고 수치스럽게 보이는 것은 사물 자체를 전도되고 훼손되게 그리고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데에서 생긴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참다운 인식의 장애들, 즉 미움, 분노, 질투, 조롱, 오만과 우리들이 앞에서 주의한 여러 가지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들이 이미 말한 것처럼 가능한 한 선하게 행동하며 즐거워하려고 하는 일에 노력한다."

사람의 기쁨 중에 가장 큰 것은 신을 인식하는 일이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이는 직관지(直觀知)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더 많이 인식하면 할수록 더욱더 신을 사랑한다."

영원하고 무한한 그 무엇에 심취한 적이 있는가. 그것을 느끼거나 깨달은 자는 많지 않다.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이 그 이유를 말해 주는 듯하다. '철학하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쓴다. "이제 여기에 이르는 것으로서 내가 제시한 길은 매우 어렵게 보일지라도 발견될 수는 있다. 또한 이처럼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물론 험준한 일임이 분명하다. 만일 행복이 눈앞에 있다면 그리고 큰 노력없이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서 등한시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보통 "사람들은 돈의 관념을 원인으로 동반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기쁨도 거의 표상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신에 취해 있었다. 영원하고도 무한한 자유인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유태인 공동체에서 추방되어도 이교도로 무신론자로 낙인찍혀도 자신의 사상을 지켰다. 홀로 살며 렌즈를 연마하여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행복했다. 1673년 하이델베르크 교수 초빙 제의를 사상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중히 거절한다. 이처럼 인간의 위대한 정신은 세속의 욕망을 초월한다. 바루흐 스피노자, 그의 고독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였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에티카'로 오늘날까지 전한다.

199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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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듀란트
홍신문화사


"철학? 어려워. 골치 아파." "철학책? 으, 재미없어." "철학자? 따분한 사람이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속하는 분이라면, 윌 듀란트의 유명한 [철학 이야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철학에 대한 색다른 매력을 느낄 것이다.

철학은 분명,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철학책은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철학자는 따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이 소설적이며, 극적이고, 인간적이다.

윌 듀란트의 세계적인 명저 [철학 이야기]는 서양 철학을 철학자 중심으로 소개했다. 글쓴이는 <서론 -철학의 효용에 대하여->라는 머리말을 통해 철학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듀란트는 이 책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 스피노자, 볼테르, 칸트, 쇼펜하우어, 스펜서, 니체, 베르그송, 크로체, 러셀, 산타야나, 제임스, 듀이, 이들 철학자의 삶과 철학과 책과 사상을 요약하고 비판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철학자의 사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출생과 성장 과정과 죽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간략한 전기문이라고 해도 될 듯. 철학자가 그런 사상을 갖게 된 사회적 가정적 배경을 서술하여,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이 단순한 서양 철학 사상사라면, 독자들은 외면했을 것이다. 듀란트는 철학 사상의 요약과 함께 비판을 했다. 그래서 각 철학 사상의 특징과 결점을 모두 보여줘서 맹목적으로 그 철학 체계에 빠지거나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철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가볍게 철학자들의 삶 이야기로 읽어도 좋으며, 무겁게 각 서양 철학 사상의 분석적 비평으로 읽어도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적인 철학자들의 사상과 인생관을 만나 보길.

1996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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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홍익출판사

논어는 공자와 그 제자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다. 20편으로 나누어 묶었다. 딱히 주제별로 모으진 않았다.

일상 대화의 기록이다. 구어체다. 읽기 편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입말은 글말과 달리 전후상황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말을 했을 당시 시대 상황의 맥락을 현재의 우리가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주석이 달린다.

공자는 인을 주장했다.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그 인이라는 게 뭐냐고 물었다. 물을 때마다 대답이 달랐다. 묻는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답변이 달랐다. 딱 부러지게 이거라고 얘길 안 한다. 왜 이럴까? 인이라는 개념에 상황 적합성이 있기에 그렇다.

인의 실천 방법은 중용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을 모두 경계한다. 예를 따르는 것을 중시했으나 넘치거나 부족하면 공자는 어김없이 지적했다. 세 번 생각한 후에 행동한다는 말에, 세 번은 지나치고 두 번이면 된다고 했다. 권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한테 어울리지도 않는 천자의 예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것은 예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인은 사람들 안에서의 사람다움이다. 노자의 사상과 달리, 공자는 어떻게든 세상에 인간다움을 실현하려 했다. 세상에 나아가 의로움을 실천하려 했다. 그렇다고 공자가 더러운 세상을 피하여 자신의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은둔을 비난하진 않았다. 다만, 그 길을 걷지 않았을 뿐이다.

인의 실천자를 군자라 불렀다. 군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인간다운 인을 실천하는 정치는 가능할까. 결과만 보자면, 그의 이상은 현실이 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공자의 말은 옳다. 사람다움의 길, 그 길을 이끄는 인의 정치는 영원히 우리의 목표다.

아무리 세상이 잘못 돌아간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결코 포기 못할 것이, 이 책에 있다. 논어는 사람답게 살려는 끈질긴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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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중용
주희 지음
김미영 옮김
홍익출판사


대학과 중용은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압축한 책이다. 논어는 사람들의 대화를 주섬주섬 모았다. 주로 공자가 한 말을 받아썼다. 반면, 대학과 중용은 공자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글말로 썼다. 공자의 생각을 정교하게 다듬고 쌓았다.

어떤 이의 생각이 커다란 학문으로 발전하려면 규범이 필요하다. 공자의 여러 말과 행동은 대학과 중용으로 유학이 된다. 유학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각기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대학과 중용에 대한 해석의 중심을 무엇으로 두느냐에 따라 두 책에 뜻을 빼거나 더했다.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우리나라의 실학.

대학과 중용은 유학의 출발점이자 공자 사상의 핵심이다. 여기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갈 수는 있어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유학에 입문하려는 사람한테 가장 먼저 읽으라고 권하는 책이다. 논어를 읽었으면 바로 다음에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은 강령을 모은 책이다. 중용은 그 강령의 방법을 논한 책이다. 학문의 목표와 방법을 이 두 권으로 정리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대학과 중용은 정치적 느낌이 강하다.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자기 수양을 강조한다. 통치자의 덕을 강조한다. 지배자의 덕이 백성에게 두루 미친다는 게 줄거리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드는 예가 임금에게나 어울린다. 두 책에는 임금이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지가 강렬하게 나타난다. 공자가 추구했던 꿈이, 바로 그것이었니까. 물론, 대학과 중용이 꼭 지배층의 덕성을 키우는 교과서라고 단정할 순 없다. 유학의 핵심은 본성의 발현이었기에 누구에게나 삶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성실한 사람을 가장 좋게 여긴다. 흔히들 말하는 성실, 그것이 유학에서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행동이 하나 되는 길이다. 도다. 동양 철학은 인간 행위의 근거를 자연 질서에서 찾았다. 그 방법이 중용이다. 중용은 때에 맞게 행동하는 일이다. 그렇게 하려면 꼭 갖추어야 할 게 세 가지다. 지, 인, 용. 지식, 실천, 용기.

공자는 역시나 지, 인, 용이 뭐라고 꼭 집어 말하지 않는다. 이분 말하는 방식이 그렇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혜로움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자함에 가까우며,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용맹함에 가깝다." 가까운 거지, 바로 그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왜 이렇게 말할까? 공자는 지나침을 경계했다. 지식이 지나치면 교만해지고, 실천이 지나치면 반성이 적고, 용기가 지나치면 생각이 없다. 세 가지가 조화롭게 어울린 상태가 성실함이다. 그 성실함으로 중용에 이른다. 그러면 사람은 하늘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

정말이지 이렇게 행동하기는 어렵다. 무척 어렵다. 공자도 중용의 길을 가기는 어렵다고 수차례 말한다. 수많은 제자가 있었으나, 안회만이 그 중용을 실천했다고 한다. 가난하면서도 너그럽고 만족스러운 마음을 유지하기가 쉽겠는가? 안회는 그걸 해낸 사람이다. 성인이다. 성인은 배우지 않아도 하늘의 뜻과 어울려 행동하는 자다.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깨달아 실천하는 일을 꾸준히 반복하란다. 이것이 바로 성실이다.

공자에게 배움이란 성실이었다. 꾸준히 인을 깨닫고 실천하는 노력이었다. 성실한 사람은 중용의 길을 걷는다. 하늘의 뜻과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킨다. 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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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조건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지음
홍재완 옮김
교양인 펴냄

좋은 지도자의 마음 가짐을 논한 책이다. 지도자 윤리론이라 하겠다. 진정한 지도자란 어떤 사람일까. 꿈, 비전, 목표, 희망, 열정을 공유하고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자다.

알베로니는 지배 복종의 개념을 다른 각도에서 보았다. 같은 행위라도 어떤 면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고 다른 개념이 된다. 꿈이 있는 지도자에게 명령은 호소로, 복종은 동의로 그 모습이 바뀐다. 같은 목표를 성취해 나아가는 수평 관계다. 권력 구조는 일의 효율을 위한 제도일 뿐,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권력이 목표인 사람은 거짓말로 남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탐욕을 만족시킨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면 그 나라는 망한다. 타인의 고통으로 자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폭력은 가장 편리한 지배 수단이다. 적대 세력을 만들어 사람들을 폭력에 취하게 한다. 미움의 힘으로 사람들을 단결시킨다. 그런 마음을 유지시켜 자신의 명령에 복종케 한다.

지배자의 무능과 부패는 신뢰를 갈가먹는다. 사람들의 소망, 꿈, 바람을 이해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는 지배하려고 하지, 우리를 지도하려 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사람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헌신하는 자다. 꿈과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이 지도자다. 그는 그 목표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한다. 그는 명령하지 않지 않는다. 같이 이룰 꿈을 이야기하고 어떻게 실현할지 묻는다. 권력은 그에게 수단이다. 모두가 바라는 꿈을 위한 현실적 도구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불굴의 신념으로 끝없이 노력하는 사람, 그가 지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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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사전
A. C. 그레일링 지음
남경태 옮김
에코의서재

"The Meaning of Things: Applying Philosophy to Life" "여러 것들에 대한 의미 : 삶에 대해 철학하기" 앞의 영어는 이 책의 본래 제목이고, 뒤의 우리말은 내가 번역한 것이다. 옮긴이 남경태 씨가 붙인 제목 "미덕과 악덕에 관한 철학 사전"은 원제를 재해석한 것인데, 철학사전이라는 말까지는 붙인 것은 내 생각엔 안 어울린다. 간단한 수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부제로 달은 "'사랑, 슬픔, 용기, 죽음, 야망, 평화, 가족, 예술, ...... 삶의 중요한 가치에 관한 철학적 사유"가 더 어울린다. '철학적 사유'라는 말에 상당히 어려운 책으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것이니까.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된다. 글쓴이 그레일링은 머리말에 "대부분의 글들은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으며, 꼭 순서에 따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읽어도 된다.(9쪽)"라고 적었다. 목차를 보고서 자신이 흥미로운 주제의 글을 찾아 곧바로 읽을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뒤에서부터 읽다가 다시 앞으로 읽었다가 중간 정도에서 덮었다. 책의 맨 끝에 나오는 주제는 '사소한 것'이다. 지은이가 인용한 힌두스탄 속담이 재미있다. "인간이 걸려 넘어지는 것은 산이 아니라 돌이다." 적절한 인용과 평이한 서술로 흥미롭게 썼다.

앞서 말했듯, 신문에 기고한 짧은 글이라서 보통 두세 쪽 분량이다. 그럼에도, 읽는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은 거의 1시간을 주는 책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무겁게 생각할 수 있다.

책을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사람한테는 상당히 괴로운 책일 수도 있다. 뭐라고? 나라고? 그래 나다. 이 철학자 아저씨가 인용하는, 책의 범위는 은하계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학다식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일지라도 이 책의 저자 앞에서 자신이 읽은 책은 지구의 갈대 한 포기 정도밖에 안 된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이런 수준의 글을 제대로 읽으려면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없으면 읽으면서 갑갑할 수 있다. 이 책이 읽기 어렵다고 겁을 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로의 책을 읽었던 사람이나 평소 철학 관련 책을 훑어 봤던 사람에게도 더 빨리 더 잘 읽힌다. 이 점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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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
박석일
정음사

인도 경전, 대서사시
베단타 철학
진리의 노래

헨리 데이빗 소로가 즐겨 읽었다기에 일부러 찾아본 책이다. 삶이 힘들거나 불행한 일이 생길 때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읽고 있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토인비도 즐겨 읽었다고 하던데, 과연!

인도의 경전이자 대서사시인 [바가바드 기타 (Bhagavad-Gita)]는 산스크리트 어로 씌어진 신(神)의 노래이다. 신의 본성과 속성에 관해서 황홀하고도 신비스러운 표현들. 참되고 명확한 우주론에 기초한 베단타 철학을 풀이해 주는 복음이다. 이는 신의 말씀이다. 신이 창조물이자 그의 친구인 사람한테 영원한 진리를 말하는 노래이다.

크리쉬나와 아르주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가 시작되면서부터 장수들의 우렁찬 외침 소리와 말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독자의 귀를 울린다.

1996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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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의 미학강의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은행나무
2010.07.01.

역시 헤겔! 독일철학의 거장(巨匠)다운 솜씨다. 개념과 체계로 촘촘하게 논리를 세우고 예술이라는 이런 것이라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듯 자기 주장을 펴 나아간다.

독일 철학은 관념어 때문에 읽기 쉬우면서도 어렵다. 하나의 개념이 파악되면 그 개념어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쉽다. 그러나, 그 개념어가 파악되지 않은 채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헤겔은 독일 철학에서 관념주의 또는 이상주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켰다. 그는 법철학, 종교철학, 역사철학, 예술 철학 등에 관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다. 마르크스, 루카치, 사르트르 등이 헤겔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헤겔'이라는 거대한 산에 오르면 서양 철학은 거의 다 보인다면 과장일까.

공자처럼 헤겔도 자신의 미학 이론을 직접 쓰지 않았다. 원래 진짜 독창적인 사상가는 책을 쓰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 G. H. Mead도 생전에 책을 쓰지 않았다. 사망 후에, 시카고 대학의 제자들이 강의 노트를 모아 정리해서 [Mind, Self, and Society]라는 책을 펴냈다. 공자, 헤겔, 미드. 정말 멋진 녀석들이야! 1820년대를 전후하여 헤겔은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강의를 했고, 헤겔이 죽은 후에 그의 제자인 하인리히 구스타프호토가 그 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모두 3부로, 제1부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 제2부 "여러 특수한 예술미의 형식으로 발전하는 이성", 제3부 "개별 예술들의 체계"이다. 1권은 1부 번역, 2권은 2부 번역, 3권은 3부 번역, 이런 식이다.

1권에는 꽤나 긴 '서장'이 있다. 여기에서 [미학 강의]의 전제와 내용 전반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서문을 읽은 인상부터 적어 본다.

헤겔은 자연미보다 예술미를 높게 평가한다. "예술미는 정신에서 다시 태어난 미"이기에 "정신과 정신의 산물이 자연과 자연의 현상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서양이 미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은 자연미를 예술미보다 우위에 두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헤겔은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 예술미의 우위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남쪽 지방 숲속의 야생지대에서는 현란하고 풍요로운 색깔의 새 깃털은 남에게 보이지 않고도 스스로 빛나며, 그 새들의 울음소리는 남이 듣지 않아도 울려 퍼진다. 하룻밤 새에 피는 선인장은 누가 보고 경탄하는 일이 없이 피었다가 시들어 버린다. 또 좋은 냄새, 풍부한 향기를 지난 아주 아름답고 호사스런 식물들로 가득한 그 숲도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이 언젠가 죽어 황폐해지고 만다. 그러나 예술작품은 그러한 자연처럼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향하는 인간의 가슴을 향해 말을 걸고 묻는 것, 즉 마음과 정신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헤겔이 미를 보는 관점(서양의 미)은 자연보다 인간을 중시한다. 결국, 예술이란 인간만의 그 무엇인 셈이다. 그러나, 동양의 예술은 인간과 자연과의 그 무엇이다.

1부와 2부에서는 이상의 개념과 일반적인 예술형식에 대해서 논하고, 3부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예술작품을 들어 설명한다.

헤겔은 예술보다 종교를 우위에 놓는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참되고 구체적인 이념'은 다분히 종교적인 냄새가 풍긴다. 그는 이념과 현상이 일치할 때 드러나는 것이 이상(理想)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서 이념이 형상화되는 것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고찰한다.

첫째 단계, 이념 스스로가 아직 규정되지 않는 불확실함 속에서 또는 참되지 못한 규정 속에서 있는, 상징적인 예술 형식. 두 번째 단계, 상징적인 예술 형식의 결점을 해소하여 이념과 형상이 조화를 이룬, 고전적인 예술 형식. 마지막 세 번째 단계, 이념과 형상이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적합하지 못한 채 서로 분리되는, 낭만적인 예술 형식. 이 마지막 단계의 예술 형식은 미의 참된 이념인 이상을 추구하면서 그 분리를 극복하려 한다.

이런 1부와 2부의 논의로, 3부에서는 상징적인 예술 형식으로 건축을, 고전적인 예술 형식으로 조각을, 낭만적인 예술 형식으로 회화, 음악, 시문학 등을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물론, 위의 세 단계는 헤겔의 "역사적인 변증법적 발전 과정"이 바탕에 깔려 있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역사적인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종교적인 냄새를 없애고 자신의 '계급 투쟁 이론'에 끌어들여 멋들어지게 써먹는다. 브라보, 마르크스!

사르트르도 헤겔의 철학 체계에서 종교적인 요소를 빼고 이용한다. 헤겔은 [미학강의] 서장에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 '즉자성(卽自性, Ansich)' 개념을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은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동물적인 기능을 이행하면서도 다른 동물들처럼 즉자성 속에만 머물지 않고 자기 기능들을 의식하고 깨닫는다.

그리고 그 기능들을--예를 들어 음식을 소화하는 과정을--스스로 의식하여 학문으로 고양시킴으로써 자신의 즉자적인 직접성이 지닌 한계를 넘어선다. 인간은 바로 자신이 동물이라는 것을 앎으로써 동물이기를 멈추며 정신인 자아에 대해 스스로 지식을 부여한다." 여기서 사르트르는 힌트를 얻었으리라. 사르트르가 말한 즉자(卽自)와 대자(對自)는 개념은 여기에 그 뿌리가 있는 듯.

또,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헤겔의 종교적이고 변증법적인 역사철학적 관점을 그대로 이어 받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문학 형식으로 떠오른 소설에 대해서 "신에 의해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다"라고 장송곡 부르듯 읊조린다. 그가 써먹은 "총체성" 개념도 이 [미학강의]에 이미 나와 있다.

헤겔의 [미학강의] '서문'을 읽고서, 서양인들의 무서운 발전 속도를 새삼 깨달았다. 전통의 계승과 결별에 있어서 이토록 빠르다. 옮긴이 두행숙 씨는 역자의 말에서 헤겔 미학이론의 첫 번째 문제점으로 들고 있는 것은 루카치가 극복했다. 소설이 서사시를 능가하는 장르가 된 이유를 루카치는 헤겔의 전통을 잘 이어받아 [소설의 이론]에서 설명했다. 또한 헤겔은 서사시의 시대에서 산문의 시대로 넘어갈 것임을 알고 있었다.

서문에 "최고의 단계에 이르면 예술은 스스로를 넘어서게 된다. 왜냐하면 이때 예술은 정신의 감각성과 화해를 이루던 기반에서 떠나 표상적인 시문학에서 사유적인 산문 속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래서 루카치는 헤겔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우쭐거릴 수 있었다. 사르트르, 마르크스, 루카치의 생각은 모두 헤겔의 철학 체계에서 그 아이디어를 볼 수 있다. 헤겔이 워낙 광범위한 분야에 철학 체계를 정립했기에 사르트르, 마르크스, 루카치 등이 그들 각자의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따분하다고 고리타분하다고 시대에 낡았다고 비합리적이라고 결별만 선언했지, 그 전통의 장점과 핵심을 계승하려는 노력에는 인색했다. 곰곰이 반성해 볼 문제다.

제1부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에서는 우선 현실, 종교, 철학 등과 관련지어 예술의 입지를 살펴본다. 그 다음에, 예술미의 이념을 총체성에 맞게 고찰하기 위해 다음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 미의 일반적인 개념 고찰. 둘째, 자연미에 대한 고찰과 그 자연미의 불충분함을 밝혀 예술미인 이상(理想)이 요구됨을 주장. 셋째, 예술작품 속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현상된 이상을 고찰.

헤겔은 참된 현실의 모습 속에 들어와 절대적인 이념으로 머무는 것을 정신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참되고 진실한 것을 스스로 규정하는 보편적이고 무한한 절대정신이다. 예술이 관여하는 영역이 바로 이 절대정신의 영역이다.

그는 정신을 파악하는 형식을 셋으로 보고 있다. 첫째는 감성적인 직관의 형식에 속하는 예술. 둘째는 표상하는 의식인 종교. 셋째는 절대정신을 자유롭게 사유하는, 철학. 헤겔은 은근히 예술보다 종교를, 종교보다 철학을 더 높이 평가한다.

제1장 미의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서: 이 장에서 헤겔은 미는 미의 이념이며, 미는 결국 이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맺고 있다. "미의 영역은 미의 개념과 그 객관성에 의해, 그리고 그에 대한 주관적인 고찰 속에 내포된 자유와 무한성에 의해 유한하고 상대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이념과 진리의 영역 속으로 우뚝 솟아오른다."

헤겔이 화를 낼 정도로 단순화시켜 보면, 이 독일 철학자가 파악하고자 하는 미는 총체성이라는 이념에 부합되는 그 무엇이라 하겠다. 그 무엇을 그는 진리라 이름 붙이고 참된 것이라 말한다. 미는 참된 것이어야 한다는 당위다. 이것이 미에 대한 헤겔의 자기 주장이다. 뒤로 갈수록 미와 이념을 거의 같은 말로 쓰고 있다.

제2장 자연미에 대해서: 이념을 드러내는 첫 번째 존재미가 자연미다. 자연이 지닌 미적인 생명성과 생동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연미의 추상적 형식으로, 규칙성과 법칙성과 조화를 들고 있다. 광물, 동물, 식물 등으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어 이해가 쉬웠고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그러나 자연미는 이념적인 주관성을 갖는 참된 통일성이 없기 때문에 열등하며, 따라서 이상미(理想美)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제3장 예술미 또는 이상에 대해서: 헤겔에게는 진정한 예술미가 이상(理想)인 것이다. 말을 만들면, 이상미(理想美). 헤겔은 관념주의 혹은 이상주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킨 사람이다. 그 철학 체계에서 예술을 파악한다. 그러기에, 헤겔한테는 예술지상주의적 냄새가 없고 이렇게 이론적으로 미를 파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예술은 현존재 속에서 우연성과 외면성에 의해 오염된 것을 예술의 참된 개념과 조화시키는 가운데 현상 속에서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을 버린다. 예술의 이러한 정화(淨化)를 통해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상(Ideal)이다."

그가 말하는 이상이 예술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구체적인 서구 예술 작품들을 들어 설명을 하는데, 아무리 읽어도 그가 말하는 이상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법철학에 국가 얘기를 하고 윤리, 도덕, 선 얘기를 하더니, 고대 영웅 시대와 헤겔이 살던 당시로 나눈다. 즉, 영웅 시대에서는 개인 독자적으로 행동하고 판단했으나 현대(헤겔이 살던 그때)는 독자적 행동이 불가능하고 사회 일원으로서 행동하게 되었다. 또, 고대 그리스 조각들을 상황이 부재되어 있으나, 현대의 시문학 예술은 상황 속에서 대립한다.

헤겔의 서구중심주의 사고가 읽혔다. 고대 인도 설화를 하나 예로 들고는, "우리 서구인들의 의식으로 볼 때는 황당무계할 뿐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양중심주의 사고를 갖고 있는 나는 이렇게 평하겠다. 헤겔, 그대가 예로 드는 오이디푸스 이야기야말로 우리 동양인들의 의식으로 볼 때는 황당무계할 뿐이다. 아무리 사전에 의도하지 않은 일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한단 말인가.

헤겔이 당시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도 재미있게 읽었다. 호프만에 대해서는 "내적인 분열, 불쾌한 유머, 기괴한 아이러니."라고 혹평한다. 반면에, 괴테의 작품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에 대해서는 친절하게도 자세하게 소개하면서 "심오한 미를 지니고 있는 이 서사시는 우리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족하다."라고 호평한다.

내가 사는 지금에서는 괴테의 작품보다는 오히려 호프만의 작품이 더 많이 읽혀진다. 그것은 바로 지금 사회가 조화의 시대가 아니라, 분열의 시대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정신 분열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복잡한 현대 사회. 우리는 호프만에서 우리를 발견하지, 괴테한테서 우리를 발견할 수 없는 듯하다.

1997.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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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발견
린위탕
범우사
2011.04.25.

이로서, [생활의 발견]을 세 번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사랑했다. 이제 이 책을 더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책은 그대로다. 다만, 내가 변했다. 세상도 많이 변했다. 임어당의 여유는 자본주의 사회의 여유와는 딴 판이다. 일하지 못해 생계를 위협받는 사람들한테 여유는 지옥이다. 지옥에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 관한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것, 두 가지. 첫째, 범우사의 번역본에는 틀린 글자와 빠진 글자가 많다. 읽는 흐름을 방해할 정도다. 틀린 글자가 이렇게 많은 책을 읽어 보긴 오랜만이다. 반갑다. 둘째, 완역본이다. 다른 번역본에 빠져 있던 [명료자유]편을 번역해 놓았다.

밑줄을 긋지 않으며 읽었다. 예전에는 사소한 글귀 하나하나를 내 감정선과 일치하면 밑줄을 그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예전에 그었던 밑줄을 다시 떠올리니 어리둥절했다. 사소하고 평범한 문장인데, 내가 왜 여기에 밑줄을 그었을까. 이미 그 밑줄은 내게 흡수되어 온 몸에 퍼져 있는 탓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 듯하다. 이 책은 내 몸에 저장되어 있다.

이 책은 옛날 책이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세계는 전쟁에 휩싸여 있었다. 제국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서로 싸우고 미워했다. 개인의 행복을 논하기에는 어려운 시절이었다. 국가를 위한 충성이 강요되고 있었다. 그런 현실에서, 중국인 임어당은 개인주의 철학을 내세우면 여유를 이야기한다. 우스개를 여기저기 뿌려 놓으면서. 임어당은 이런 책을 쓸 게 아니라, 전쟁터에서 자신의 조국 중국을 위해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가서 일본놈을 하나라도 더 쏴 죽여 버려야 현실적인 거 아닌가. 세상은 전쟁으로 소란스러운데, 한가롭게 옛 중국문인들의 글을 인용하면서 한가롭게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다니.

글을 쓰는 사람은 행동하기보단 생각하는 쪽이다. 정확히 말해, 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턱대고 행동부터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부터 한다. 현실을 생각해 보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만이 글을 쓴다. 현실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이 없다. 당장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행동한다.

[생활의 발견]에는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가 차분하고 우스꽝스러운 어투로 적혀 있다. 임어당은 총을 쏘기보단 차라리 비웃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552쪽)을 읽어 보면, 글쓴이가 그 당시 시대 상황을 일시적인 발광이라고 여긴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끌어 안으면서 미래를 본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해 본다.

"우리는 결국 인간의 정신력에 신뢰의 뜻을 표한다. 그것은 본시 한계가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무모한 유럽 운전사의 지능보다는 무한히 높은 그 무엇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번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때가 오리라. 인류는 머지않아 정리 위에 서서 사물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을 만한 이유가 우리에게는 있다." (552쪽)

현실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작가라고 할 수 없다. 진실을 믿고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2002.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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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
이기동, 최영진
동아출판
1994.01.01.

한문을 잘 몰라도 읽을 수 있는 주역
일상 주변 실생활을 예로 들어 설명

"주역, 그거 점 보는 책이죠." "너, 주역을 읽었다고. 내 관상 좀 봐 주라." 이런 인식은 역학(易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술(易術)로 보기 때문이다. 또, 동양 철학은 무조건 비과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이라고 몰아 세우는 것에 원인이 있다.

주역은 그렇게 단순히 점을 보기 위한 책이 아니다. 주역은 노자(老子), 장자(莊子)와 더불어 삼현(三玄)으로 불리며, 동양 철학의 밑바탕을 이룬다. 가장 철학적이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담으려고 노력한 책이다. 사물의 모든 변화를 기호로 표현했다.

주역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낯선 한자와 뜬구름 같은 말에 '이게 뭔소리여?' 하기 쉽다. 나도 [만화로 보는 주역]을 읽기 전에는 그랬다. 도대체가 접근하기가 너무나 어려운 책이었다. 아무리 읽어도 뜬구름이었다. 선문답이었다. [만화로 보는 주역]은 그런 뜬구름을 제거했다. 한문을 잘 몰라도 된다. 그리고 아주 재미있고 실용적으로 쓰여 있다. 직장 생활, 일상 생활, 정치적 사건, 가족, 사회 계층, 주변의 일을 예로 들어 쉽게 이해가도록 풀이해 놓았다.

성균관대 유학대학 한국철학과 교수이자 한국주역학회 총무이사인 최영진 교수와 성균관대 유학과 교수인 이기동 교수가 공동 집필했다. 점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역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서양 철학이 한 일은 무엇인가. 공해, 핵폭탄, 문명의 이기, 자연 파괴, 물질적 풍요 속에 고독.

동양 철학의 대표적인 책, 주역의 기본 사유 방식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이다. 자연의 파괴나 이용이 아니다. 자연과 함께 사는 것이다.

주역에서 복권 당첨 같은 요행을 바란다면, 그냥 스포츠 신문에 나는 오늘의 운세나 보는 것이 낫다. 그런 분에게 주역은 철학책이 아니라, 영원히 점보는 책이다.

주역을 한 번 읽고 나면,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어떻게 앞으로 살아야 하는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마음을 다 한 후에야 가능한 일이지만.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이야,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하겠지만, 삶의 계획을 세우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199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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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남경태
휴머니스트
2012.05.29.

현대를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철학의 홍수 시대'다. 철학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제는 철학을 모르고서 현대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신문을 봐도 책을 봐도 철학은 빠짐없이 튀어나온다.

가끔 만나는 철학 용어가 만만치 않다. 불확정성, 패러다임, 포스트모던, 구조주의, 기표, 기의, 집단무의식, 해체.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한 번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막상 철학책을 찾아 읽어보니,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철학책은 역시 어려워." 하고 한숨을 푹 쉬고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 살려니, 그것도 쉽지 않다.

현대 사회는 사회 구성원을 그렇게 살게 그냥 두지 않는다. 철학은 이제 컴퓨터와 영어만큼이나 현대인한테는 꼭 잘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니. 이런 현대인이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철학을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로 삼을 수 있는 책이 있어 여기 소개한다.

[현대 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현대 사상가 30명을 소개하고, 그 철학자들의 용어를 정말 알기 쉽게, "이렇게 이해하기 쉬워도 되는 것일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예를 들어 쉽게, 정말이지 너무나도 쉽게 설명해 놓았다. 다음이 그 30명의 30개 용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
니체의 '권력의지'
프로이트의 '무의식'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
후설의 '판단중지'
레닌의 '약한 고리'
융의 '집단무의식'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케인스의 '유효수요'
바슐라르의 '인식론적 단절'
루카치의 '계급의식'
하이데거의 '현존재'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게임'
그람시의 '헤게모니'
라캉의 '욕망'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브로델의 '장기 지속'
아도르노의 '계몽'
사르트르의 '자유'
레비스트로스의 '심층구조'
바르트의 '신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쿤의 '패러다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
들뢰즈와 가타리의 '욕망'
푸코의 '지식-권력'
보드리야르의 '시뮐라시옹'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데리다의 '해체'
부르디외의 '아비튀스'

이해하기 어려운 지식을 쉽게 이해하기 쉽게 쓴 책을 볼 때마다 참 부럽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말하거나 쓰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아는 것을 말하거나 쓰는 것'과 '아는 것을 타인한테 이해시키는 것'은 또 다르다. 이 다름을 같게 하려면 언어에 대한 상당한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고 그 감상을 쓰기가 힘든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과 감동을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 그 벽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남경태. 내게는 친숙한 이름이다. 이미 그의 책 두 권을 읽어 봤다. 영어와 한글로 번역한 [공산당 선언](백산서당 펴냄)과 역사 에세이 [상식 밖의 한국사](새길 펴냄). 남경태의 글은 쉽다는 달콤한 맛도 있지만 그 특유의 공격적인 매콤한 맛이 더 마음에 든다. 매운 맛!

[공산당 선언]을 번역한 그 과감함이 그렇고, [상식 밖의 한국사]에서 기존 역사관과 역사 상식을 여지없이 공격하면서 현실 비판을 확실하게 하는 것도 그렇다. [현대 철학은 진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서도 역시 그 현실 비판을 빼 놓지 않았다. 쉬운 문체와 매운 맛의 비판이 돋보이는 남경태. 그의 글쓰기를 계속 지켜 볼 생각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상가 중 두 명의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물론 내가 다 통독해 본 것만.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두 권.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그 신화와 구조-](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이 책은 현대 사회학의 명저로, 현대 소비 사회를 기존 상식적인 경제학적 관점이 아닌 기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김용준 옮김; 지식산업사 펴냄). 이 책은 그의 회상록(回想錄)인데, 모든 사람과 모든 학문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려는 그의 자세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현대 철학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보다 공자 맹자 시대보다 더 복잡하고 풍부해졌다. 다만, 진지하게 철학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현대 철학은 언제부터인지 단순한 지식이 되어 버렸다. 지금 소개하는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다. 철학 용어를 빨리 이해하고 빨리 써먹어야 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다.

차분하게 조용히, 삶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그 외 여러 가지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칸트는 그의 철학 강의를 듣는 젊은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고 한다. "너희들은 나한테서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철학만 배우는 사람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조용히 이 세상을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철학은 모든 것의 바탕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인식론과 방법론을 제공한다. 철학은 모든 인간과 모든 세상의 핵심이다. 철학은 인생관과 세계관을 제공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철학이 단순히 지식으로 전락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쇳조각처럼, 기계의 부속품처럼.

1997.6.20

 

지난 12월 남경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명복을 빈다.
2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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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의 오류
에드워드 데이머
중원문화
2012.06.20.

58가지 오류
훌륭한 논증의 기준
적절한 예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과 논술시험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서야 우리 나라에 논리학과 관련된 책이 홍수처럼 쏟아졌고 독자의 수가 갑자기 늘었다. 그러나 실제 토론에 도움이 될 만한 논리학 서적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나라는 논리적인 토론을 보기가 힘들다. 감정적 싸움이 대부분이다. 신문의 독자 투고란도 컴퓨터 통신망의 토론장도 엉터리 논리가 판을 친다. 그 엉터리 논리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들. 욕설, 인신공격, 비꼬기, 위협 따위가 약방의 감초처럼 꼭 들어간다. 이쯤 되면 토론이 아니다.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보기 힘든지. 상대방이 욕설이나 인신 공격을 하면, 일단 참고 화를 내지 않고 상대방이 인신 공격을 하고 있음을 알린 후, 다시 논의의 핵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려는 사람도 드물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서 지금 소개하는 책이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이 책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엉터리 논리를 모조리 지옥으로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58가지 오류를 정의하고 그 예를 들어 보이고 그 오류를 바로잡는다. 조준 준비! 조준 완료! 발사! 엉터리 논리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간다.

지은이는 훌륭한 논증이 지켜야 할 기준 세 가지를 제시한다. 옳거나 승인할 수 있는(Acceptable) 것, 결론의 옮음에 관련 있는(Relevant) 것, 결론의 옮음을 위해 충분한 근거(Grounds)를 제공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만족시키는 것이 훌륭한 논증(ARGument)이다. 오류는 이 세 가지 중에 어느 하나라도 만족시키지 못할 때 생긴다.

미국 사람이 쓴 책이라서 우리 나라의 실정과 거리가 먼 예는 옮긴이가 우리 나라 실정에 맞게 많이 바꾸어 그 수는 적은 편이라 읽는 데 거부감은 그리 없을 것이다. 적절한 그림도 곁들여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토론의 목적은 토론 상대자를 이기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와 타당한 대안에 도달하는 것에 있다. 토론에서 이기고만 싶어서 이 책을 탐독한다면, 그것은 헛된 욕망이다.

199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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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철학 입문
W.K.C.거스리
서광사
2000.04.20.

일반인과 비전공자를 위한 희랍 철학 입문서
희랍 철학 용어를 현대 관점이 아닌, 그 시대 상황에 맞게 설명

William Keith Chambers Guthrie가 쓴 The Greek Philosophers를 완역한 책이다. 거드리 교수의 강의록이다. 겨우 200쪽 분량의 문고판이지만, 희랍 철학에 대한 세밀한 접근이 돋보인다. 희랍어를 모르는 비전공자들이 희랍 철학의 이해에 접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희랍 철학 용어를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개념이 아닌 그 시대에 맞는 개념으로 이해하도록 몇 개 용어를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각 철학자들의 간략한 성장 배경과 살던 시대 상황을 서술했다. 그들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을 간략하게 요약했다.

글쓴이는 희랍 철학자들을 다음과 같이 접근한다. "철학자들은 진공 속에서 사색을 하지는 않으니, 그들의 사색의 결과들은 '기질 x 체험 x 앞서의 철학들'의 산물로서 기술될 수 있겠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사색의 결과는 바깥 세계가 그 특정인에게 스스로를 드러내 보일 때, 그것에 대해 보이는 그 특정인의 어떤 기질의 반응인데, 이 반응은 또한 대개의 철학자들의 경우에, 이전의 사상가들이 남긴 저술들에 관한 반성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다."(26쪽)

이런 접근 방법은 꼭 철학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과 그 사람이 살던 당시의 사회 모습과 그가 영향을 받은 선배들에 의해 철학, 문학, 음악, 미술 등 여러 문화가 탄생한다.

다음은, 내 눈을 유난히 오래 잡아 두는 부분이다. "플라톤의 국가에 있어서의 최하 계층은 현대의 저술가들에 의해서 가끔 '일반 대중(the masses)'으로 언급되는데 수와 관련지어서 본다면 이 계층은 확실히 압도적으로 최대 다수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계층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과는 현저히 다른데, 그것은 그 계층이 사실상 사유 재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 받은 유일한 계층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견해로는 정치 생활에 있어서 가장 나쁜 일 중의 하나는 정객들의 물욕(物慾)이었다. 그건 확실히 그의 시대에 있어서의 타락한 민주 제도에 없지 않은 하나의 악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목표는 경제력과 정치력의 완전한 분리였다. 이 방법에 의해서 그는 훌륭하게 다스리는 것을 유일한 큰 염원으로 갖는 한 부류의 정치가들을 얻게 되기를 바랐다."(136쪽) 플라톤적인 국가는 물론 지나친 이상형이다. 그럼에도, 현실의 문제점은 확실히 잘 지적했다. 지금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상황을 보라. 정객들의 물욕(物慾)은 플라톤이 살던 그 때나 한국의 지금이나 여전하다.

"참된 소크라테스 학도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무지를 깨닫고 있으므로, 참된 소크라테스주의는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의 자세, 즉 쉽게 교만으로 오해된 지적인 겸손을 상징한다. 어떤 적극적인 학설보다도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공헌이다."(93쪽) 지적 겸손함을 지닌 지식인은 매우 드물다.

199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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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의 형성과 지역 사회운동
이진경
새길
1995.06.01.

라캉, 알튀세르, 데리다, 보드리야르, 푸코, 들뢰즈 사상 소개 및 비판
맑스와 프로이트를 넘어 새로운 대안 찾기

이 책은 근대 사상의 탈주를 시도한 여섯 명의 맑스적인 사상을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자크 라캉, 루이 알튀세르, 자크 데리다, 장 보드리야르, 미셸 푸코, 돌뢰즈 등이 그 여섯 명이다. 맑스와 프로이트를 넘어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했던 그들.

자크 라캉 : 무의식의 이중구조와 주체화
그는 기존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언어학을 도입하여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명제를 만들어 정신분석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루이 알튀세르 : 비철학적 철학을 위하여
그는 인문과학의 거대한 인물인 맑스와 프로이트를 넘어서 [맑스주의 철학]이 아닌, [맑스주의를 위한 철학]을 주장하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자크 데리다 : 해체적 독해와 지배담론 허물기
그는 글쓰기에 대한 전통적 이해 방식을 비판하며 지배담론을 허물기 위한 해체를 주장했다.

장 보드리야르 : 기호의 장벽과 상징의 저항
그는 기호학적 입장에서 근대적 인간관인 이성적 인간을 비웃으며 기호학적 인간관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적 사회양식을 분석했다.

미셸 푸코와 담론 이론 : 표상으로부터의 탈주
그는 담론의 분석을 통해 권력을 폭로하고자 했다.

돌뢰즈 : 존재의 균열과 생성의 탈주
그는 새로운 조건하에 새로운 생성의 운동을 유목이라 부르며 새로운 형태의 혁명을 주장한다.

이 책의 읽을거리는 돌뢰즈의 이론과 사상이다. 이 책의 집필 목적도 아마 돌뢰즈의 사상을 소개하여, 맑스적인 사회 과학 방법론이 살아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199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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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의 선택
박이문
미다스북스
2017.02.16.

철학적인 문제를 명쾌하고 끈질지게 다룬 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
글쓴이의 지적 편력기

박이문 평론집 <하나만의 선택>은 1978년에 초판 발행되었다. 내가 읽은 책은 4쇄로 1983년에 펴낸 책인데, 종이 색이 누렇게 바랬다. 이렇게 낡은 책이 날카로운 글을 담고 있는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읽으면서 감탄, 감탄, 감탄!

철학적 문제, 문학 이론에 대해서 명쾌하게 논리적으로 쓰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해하기 어렵고 뚜렷하지 못한 것들이 저자의 눈을 통하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인다. 그 동안 내 머리를 괴롭히던 애매하고 복잡했던 생각들이 정리 정돈 된 느낌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뜨겁게 살고 싶었고, 옳게 살려고 애써 왔었다고 믿는다." 라는 [책 머리에] 글이 참 인상적이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현대사상과 그 관점]에서는 주로 철학적인 문제들을 다룬 수필이다. 구조주의와 기호학, 이념학과 현대사상, 과학과 윤리, 인간과 인간적인 것, 종교와 형이상학과 종교적 경험, 동서사상의 한 비교점, 사르트르 철학의 핵심, 실존주의문학과 인간소외, 자연과 의식과의 변증법 -'바실라르 연구'를 중심으로.

[부조리의 조리]에서는 주로 한국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루었다. 종교인과 종교장이, 대학 문학 철학, 민족적 자각과 반성, 부조리의 조리, 정신의 옹호, 외래문화에 대하여, 한국인--사고의 자립, 이론과 실천.

[하나만의 선택]에서는 저자의 귀향과 지적 편력기를 다루고 있다. 고향의 전나무처럼, 하나만의 선택 --나의 지적 편력기.

글쓴이의 명쾌하고 논리적이고 끈질긴 철학적 사고가 문장에서 빛나고 있다.

1996.6.8

이성, 지성, 지혜, 지식, 철학, 논리, 언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만병통치약처럼 현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성인은 언제나 깨어있어야 한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가르치지 말고 가리켜야 한다.

20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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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사상 100선
김철호
녹두
1994.05.01.

서울대가 선정한 사상 고전 100편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했다.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니까 갑자기 등장한 "서울대학교 선정 고전 200선". 선정한 책들이 장관이다. 아마도, 대학 교수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많다.

간략하게나마 고전을 읽고 싶은 욕심에 집어들었다. 복잡하고 방대한 고전 한 편을 네다섯 쪽으로 요약하니, 역시나 수박 겉 핥기다.

사상 고전, 이것은 시대를 대표하거나 혹은 세계를 변화시킨 텍스트다. 따라서 그 텍스트를 작성한 사람들의 삶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그 사상가들의 삶과 그 텍스트를 작성할 당시의 시대상을 밝히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머리말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세상을 읽는 것이며,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읽는 것이다.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은 얼굴 빛깔과 모양조차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책이 주는 감동과 지혜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책읽기는 우리에게 폭 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전해 주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며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 준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고 막상 책을 읽으려 하면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무슨 책을 읽으면 좋으냐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으레 고전을 읽으라고 쉽게 권하곤 한다. 그러나 고전은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누구나 읽은 것으로 자부하려 들지만 실은 누구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책'이어서 쉽게 읽히지 않는다." (3쪽)

요즘 책값이 비싸다고들 불평한다. <기학(氣學)>을 쓴 최한기, 그는 누가 책을 사는 데 돈이 많이 든다고 불평을 하면, "만약 이 책 속의 인물이 나와 한 시대를 살고 있다면 천리길이라도 반드시 찾아가 볼 터인데, 지금 책값이 아무리 많이 든다고 하더라도 양식을 싸 가지고 멀리 찾아가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라고 반문하였다.(72쪽) 책값이 비싸다고 투덜대는 사람은 책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법구경(法句經)], 이 책이 꽤 읽을 만할 것 같다. 읽기 쉬워 보인다. 다른 불교 사상 고전은 이해하기 어려울 듯싶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서 풀어지지 않는다. 미움은 미움이 없을 때에만 풀어진다." 135쪽 좋은 구절이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는 자본주의가 붕괴하고 사회주의 사회가 온다고 주장하는데, 글쎄다, 아직은 이 자본주의가 끄떡없는 것 같다. "기술 혁신은 출판분야 등에도 예외 없이 확대되어 책의 가격을 하락시키고, 또한 기업의 혁신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교육 연한도 늘어나게 되면서 지식인들이 대량 양성되었다. 그러나 기업은 이렇게 생성된 대량의 지식인들을 흡수하거나 적절히 배치할 만한 조건을 형성하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불만을 품는 적대세력으로 전환된다." (336쪽) 슘페터의 이 주장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우선, 책의 가격은 하락은커녕 계속 오르고 있다. 책값은 밥값보다 비싸다. 전공 분야의 분업화와 세분화로 지식인들의 결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다음으로, 같은 전공 분야에서조차 대화가 안 될 지경이다. 현대 지식인들이 읽어야 할 책은 너무 많아서 결국 특정 부문만 깊이 파고 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하며 옹호 세력으로 발전하고 있다. 취직 못한 지식인들은 자본주의에 불만이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사회주의를 택한다? 글쎄다. 한달에 50만원짜리 인턴 사원이라도 들어가려고 기를 쓰는 인간들이?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 제3장에서 언어의 해석학적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언어를 단지 인간에게 도구적 의미가 아니라 언어를 그 자체 세계에 대한 경험의 의미로써 해석학적 존재론의 지평으로서의 구조를 가진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므로 외국어의 학습도 기술적 학습의 의미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사유체계, 세계관에 대한 체험의 의미로서 설명되어진다. 마찬가지로 가머디에게서 번역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대치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난해한 해석학적 작업의 하나로서 이해된다."(369쪽) 동감한다. 기계적인 번역이 창조(?)하는 수많은 오류를 보라. 비디오 영화 자막에서 책에서 우리는 엉터리 번역을 수없이 대한다.

서울대에서 뽑았다는 사상 고전 100권 도서 목록에 맥루한과 포퍼가 빠진 건 유감이다. 아무래도 사상 고전 100선을 선정한 녀석들의 독서 폭과 양이 의심스럽다.

서울대에서 뽑은 사상 고전 100편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지나치게 원론적인 사상 고전을 택한 것 같다. 정말 고전다운 고전이기는 하지만, 너무 고전적인 책만 택한 것은 문제 아닌 문제가 아닐까. 문제라고 생각하는 내가 문제인가.

이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을 모조리 읽을 마음이 있는 독자가 있을까. 또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걸 선정한 그 사람들은 과연 읽어 봤을까. 나의 추측은 '아니오'다.

1996.09.14

책 가격은 여전히 비싸다. 전자책이 나왔는데도 그렇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이제 지식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게 되었고 대학의 권위와 힘을 스러지고 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실용적 지식이 아닌 추상적 지식을 추구하는 대학의 졸업장이 별다른 힘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판국이니.

책은 생각의 수단이다. 돈 많다고 반드시 여유롭게 사는 것이 아니듯, 책을 많이 읽었다고 지혜롭게 사는 것은 아니다. 돈이 많아서 그 돈을 관리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읽은 책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거나 오해해서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히는 사람도 있다.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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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분열
김주호
장산
1995.02.01.

이 철학 에세이는 크게 세 부분이다. 제1부: 삶으로부터의 의지의 분열, 제2부: 삶의 사유 공간과 그 해석, 제3부: 감성과 그 삶의 이해

제1부는 '우리 시대 인도자들의 새로운 시도'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평소 고민하는 문제들에 대해 가볍게 핵심만 찌르면서 글이 전개된다.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귀들이 많다.

제2부에서 작가 김주호의 독특한 철학 체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철학 체계는 동양철학의 이기론, 불교 철학, 칸트 철학,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들의 의견도 포함되어 있으며, 심리학, 미학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글의 전개가 상당히 논리적이라서 독자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선형적 삶의 세계, 평면적 삶의 세계, 공간적 삶의 세계, 마치 수학의 점, 선, 면, 공간을 연상하게 한다. 존재와 반존재, 의지와 반의지, 인식과 반인식이라는 점을 토대로 서로를 연결시키면서 평면을 구성하고 다시 입체, 즉 공간을 구성한다. 결국 8개의 사유 공간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뒤따른다.

나는 제3부를 가장 처음에 읽었다. 글이 간단하고 깔끔하면서 매력적이다. <노트1. 삶의 감상적 분석>은 우리가 주변에 느낄 수 있는 철학적 생각에 대한 아름다운 스케치 같은 글이다. <노트2.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자연에서 느끼는 작가의 철학적 생각을 정말 아름답게 글로 표현하고 있다. 태양, 파란 하늘, 바람, 흙, 구름, 나뭇잎, 안개, 빗방울, 노을이 수채화처럼 눈에 보일 듯이.

19950509

이 책 출판 당시에 나름 인기를 얻어서 책이 팔리고 저자도 어느 정도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세월의 급류에 쓸려 살아남지는 못한 듯 보인다. 검색해 보니, 김주호는 2008년에 새 책을 하나 더 냈다. 하지만 이 책마저도 주목하는 이는 없다.

이 책은 당시에는 신선했었다. 이유 없이 실의에 빠진 이십 대 시절에는 그랬었다. 자신이 읽은 철학책을 이리저리 조합한 아마추어 철학자의 평범한 책인데도 열광했었던 것은 워낙 독서량 부족했던 탓이리라. 젊었을 때는 뭐든 좋아 보이지. 철학, 과학, 종교에 대한 절대 신뢰가 무너지고 책 읽는 것도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닌 지금에서 보니, 참 순진했던 시절이었다.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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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김용옥
통나무
2002.04.01.

서양 철학의 독선을 깨부수기
서양 학문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자
철학, 정치적 폭력과 종교적 독선에 맞선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까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사람이다. 호감이 전혀 안 가는 인상을 지닌 그 사람. KBS에서 무슨 세계 기행인가 뭔가 하는데 웬 까까머리 사내가 두루마기를 입고 일본 거리를 돌아다닌다. TV를 보면서, 저 사람은 스님이야 야쿠자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그 사내는 일본의 석학들을 줄줄이 만나는 것이 아닌가. 윽, 저 사람 도대체 뭐야! 동경 대학을 다녔다나. 야, 이 사람 보기와는 전혀 딴판이네. 바로 그 사내가 이 책을 쓴 사람이었다.

고려대 생물학과 입학했으나 병으로 중퇴. 다시 한국신학대학 입학. 돌연 종교를 떠나 고려대 철학과 입학. "나는 고대철학과 3학년때 우주를 보았다."라고 스스로 말했다나. 그 후 중국 국립대만대학 철학과에서 석사를, 일본 동경대학 철학과에서 또 석사를, 그것도 부족해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를 땄다. 윽, 이 사람 보통내기가 아니다. 학위를 밥먹듯 따다니!

동서양 철학책을 줄넘기 뛰듯 인용에 분석에 비판. 권투 시합하듯 글을 쓰는가 하면, 쌍스러운 욕도 거침없이 내뱉고, 자신의 주장을 주먹질하듯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말하고, 심심하면 농담에 자기 자랑에 자기 얘기. 으, 정말 못 말려!

서양 철학에 대한, 아니 더 나아가 서양 문화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은 이 책 한 방에 지옥으로 떨어진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총 엠티를 안 가고 동양철학 강좌를 들었다. 그 정도로 상당히 신선한 강의였다. 그 강좌를 통해 서양 철학의 맹점을 깨달았다. 연역법과 귀납법의 맹점. 플라톤에서 비롯된 서양 철학의 이분법적인 독선.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내가 배운 것은 사실상 대부분이 서양 철학에서 비롯된 지식이다. 그런데 그 지식이 불완전하다니! 그렇게 완전하다고 믿었던 지식이.

그 후, 그래도 나는 서양 철학과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버릴 수는 없었다. 서양 철학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아직도 지상에 있었다. 남들처럼 하늘에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데, 오늘 이 책을 읽고 그 존경심은 저 지하 백 킬로미터 아래 암반을 지나 마그마를 지나 유황이 들끓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예수님도 같이. 아, 그렇다고 내가 서양 철학과 예수님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외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제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

김용옥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동양 철학 강좌를 들어 본 사람이라면 다 들어본 내용이고 기독교의 독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누구도 못한 일을 이 책에서 해냈다. 철학을 상아탑에서 일상 생활로 끌어당겼다. 그의 이런 작업에 많은 욕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김용옥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철학을 세속화하지 않습니다.
나는 세속을 철학화 할 뿐입니다.
나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철학의 인간화지요.

이런 그의 당당함은 결코 우쭐댐이나 독선이 아니다. 확고한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그가 겸손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려고 노력한 분이 과연 계실는지. 의문이나 의혹을 쉽게 포기하고 거짓 이야기와 거짓 약속에 몸을 맡겨 버린 사람들이나 그를 비난할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비판을 독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는 기독교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기독교를 믿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종교의 위선을 파헤쳐서 보여주었을 뿐이다.

김용옥이 잘난 척한다고 욕하는 사람이야말로 못난 사람이다. 그는 잘났다. 그는 결코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다. 잘난 사람이 잘났다고 말하는데 그를 잘난 척한다고 말하는 것은 못난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그는 분명 잘난 사람이다.

밑줄 긋기

철학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폭력과 독선에 끊임없이 도전해 온 양심있는 사람들의 생각의 역사입니다. 정치적 폭력과 종교적 독선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숨쉬어온 인류의 맥박입니다. 69~70쪽

19970126

덧붙임

이 책을 집 근처 기독교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다. 아직도 그 교회 도서관이 해당 교인이 아닌 사람들한테도 개방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 교회가 소장한 책에는 반 기독교 혹은 기독교 비판 서적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다. 마치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공산주의 책이 있는 대기업 도서관 같았다.

으, 저 촌스러운 책 표지를 봐라. 무슨 수학학원 교재 같다.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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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입문
강성도
조명문화사
1995.11.01.

영국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20세기의 데카르트'라 불리며 수학, 논리학, 과학철학, 종교철학 등 여러 분야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 있는 사상가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쉬워 보이나 실제로는 난해하다.

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용어 때문이다. 과정, 유기체, 계기, 이해 등으로 자신의 철학 체계를 설명했다.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가깝게 느껴진다. 이런 파격적인 용어 사용으로 기존 철학 용어의 난해함을 거부한다. 화이트헤드 철학의 매력이다.

왜 쉬운 용어를 쓰는가. 역동적인 세계관을 통해 넒은 일반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낡은 철학 용어가 아닌 쉽고 새로운 용어로 새로운 사고 방식을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 체계는 이해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상이 언제나 그렇듯이 기존 사고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어 자체는 쉬우나 그 의미는 새롭다. 화이트헤드의 용어 해설집이 따로 있다.

뉴턴의 결정론적 사고 방식을 거부한다. 사물의 존재는 그것의 형성 과정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being)은 형성(becoming)되는 과정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되어짐의 과정이다. 그의 대표작 제목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있어 실재는 곧 과정이다. "흐름을 중심으로 보면 과정이 되고, 관계를 중심으로 보면 유기체가 된다." 자신의 철학 체계를 로 유기체적 세계관이라고 부른다.

이 책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입문'은 종교철학과 기독교 신학에서 입장에서 다룬다. 입문서로서 손색은 없다. 글쓴이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동양철학과 비슷하다며, 보조국사 지눌의 원융일치와 정혜쌍수에 비교한다.

총 3부다.

제1부 화이트헤드의 생애와 사상 : 화이트헤드의 독특한 성장 과정과 그이 사상의 기본 개념을 요약 설명했다. 영국의 유복한 가정에서 출생, 유서 깊은 곳에서의 교육, 캠브리지 대학의 자연 과학 명문인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 입학, 대학생 시절 소크라테스식 토론 경험, 다양한 독서 경험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외울 정도로 무서운 지식 흡수력, 만능 스포츠 맨, 다양한 정치 참여 활동, 겸손을 통한 사람들과의 사귐, 강의를 마친 후 남는 여가 시간에 한 권의 철학 책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정력적인 학문적 저술 작업.

제2부 과정철학의 지평과 쟁점 : 본격적인 분석과 비판

제3부 과정철학의 신학적 적용 : 종교철학으로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체계를 받아들인 과정신학을 소개했다.

부록으로 이 책 지은이의 지도 교수였던 존 캅의 글 '왜 화이트헤드인가(Why Whitehead?)?'를 수록하고 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동양철학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보조국사 지눌의 원융일치나 정혜쌍수와 비교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인 강성도가 기독교 신학자이기 때문에 철학의 적용과 분석을 종교적인 입장에서 많이 다루었다.

이 책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종교철학과 기독교 신학으로 한정시켜 서술하기는 했지만, 화이트헤드 철학의 입문서로 손색은 없어 보인다.

작성일 : 19960224

 

절판된 책이지만 건립된 지 오래된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충북중앙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수정일 : 201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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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뒤안길
W.바이셰델/서광사

철학은 철학자의 삶에서 나온다. 철학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혹은 삶과 무관한 그 무엇을 생각해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다. 철학자의 진지한 삶에서 진지한 철학이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진지하게 고민한 후 그 고민을 응축시켜 하나의 사상으로 완성하여 그것을 실천하려는 삶, 바로 거기에서 철학 사상이 솟아난다.

왜 그런지 알 순 없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철학을 삶과 무관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철학은 결코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 평범하고도 명백한 진리를 이 책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과 흥미진진하게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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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철학
질 들뢰즈 지음
박기순 옮김/민음사


질 들뢰즈, 그가 1995년 자신의 아파트에서 자살했을 때,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게 기억난다. 철학자가 자살을? 자살한 소설가의 소설책을 읽는 데는 거부감이 없지만, 자살한 철학자의 책을 읽는 것은 영 꺼림칙하다.

스피노자는 삶의 철학자다. 들뢰즈는 그 누구보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는 니체에 앞서 삶을 위조하는 모든 것들, 우리가 삶을 폄하할 때 의거하게 되는 모든 가치들을 고발한다. 다시 말하면 스피노자는, 우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며 단지 삶과 유사한 어떤 것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피하기만을 꿈꾸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삶은 죽음에 대한 숭배라는 것을 주장하는 모든 가치들을 고발한다."

스피노자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그의 철학을 단순히 범신론이라고 생각하고, 그 다음엔 그 생각이 무신론으로 이어진 듯하다. 특히, 현대 철학자들은 자본주의와 물질주의가 우월한 현실 상황에서 스피노자를 그렇게 보는데, 이는 순전히 자신이 믿는 것을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끌어들인 해석이지 스피노자의 철학은 아니다. 바루흐 스피노자는 명확한 인식으로 신을 만나는 기쁨을 이야기한다. 그는 신본주의자다. 인본주의로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지 마라.

스피노자는 비도덕론자가 아니다. 기존의 가식적이고 폭력적인 도덕을 거부했을 뿐이다. 이것을, 들뢰즈는 멋지게 풀어놓았다. 흔히 도덕은 선과 악을 전제로 상과 벌로 사람의 삶을 억압한다. 스피노자는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사과 이야기'를 통해 이를 고발한다. 

"<너는 저 열매를 먹지 말라>, 불안에 사로잡힌 무지한 아담은 이 말을 금지의 표현으로 듣는다. 신은 그에게 단지 과일의 섭취가 낳을 자연적 귀결을 드러냈을 뿐인데, 아담은 원인들을 모르기 때문에 신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도덕적으로 금지한다고 믿는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선과 악은 없으며, 좋음과 나쁨이 있다."

"이해해야 할 것을 명령과 혼동하고 인식을 복종과 혼동하며 존재를 당위와 혼동하는 오랜 오류의 역사가 존재한다. 법칙은 언제나 선악이라는 가치의 대립을 결정하는 초월적 심급이지만, 인식은 언제나 좋음-나쁨이라는 존재 양태들의 질적 차이를 결정하는 내재적 능력이다."

서구 기독교 사상의 죄의식, 선과 악의 대립적 가치 법칙으로 삶을 억누르는 그런 도덕을, 스피노자는 허용치 않는다. "죄의식으로 인하여 어떻게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진정한 윤리란, 지배 이데올로기의 인위적 법칙이 아니라 각 개인의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스피노자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그는 정신(영혼)과 물질(육체)을 구별하여, 자아 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찬성치 않았다. "정신과 신체 사이의 실질적인 인과성의 관계를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둘 사이에 어떤 우월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들뢰즈의 이 해석은 정확하다. 스피노자에게 유일한 실체는 신이기에, 정신과 물질은 신의 변용이다.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월함을 인정치 않았다. 정신에 대한 물질의 힘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요즘과는 다르다.

스피노자가 우리한테 많은 영감을 주는 이유는 뭘까. 당장 떠오르는 것은, 현대 물질 문명에 반성적 사고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자연에 대한 기하학적 인식이라는 데카르트와 근대 시대의 공통되는 면이 있었으나, 가는 길을 완전히 달랐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자의식을 중시하였기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정당화시켰다. 스피노자는 신, 인간의 정신(영혼)과 육체를 소중히 여겼기에, 인간은 자연(신)의 한 부분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스피노자의 철학은 삶, 신, 우주를 포옹한다.

그 어떤 인습이나 제도에 꺾이지 않고 사유의 자유를 끝까지 밀어붙였기에, 교수직마저 사양해 버리고 렌즈 세공으로 혼자 생계를 유지하며 홀로 진리에 열중했던 바루흐 스피노자. 삶과 우주와 신에 대한 열정이 불꽃처럼 분명하고 압축된 형태로 활활 타오르는, 그의 철학. 그의 책은 자유를 열망하는 이들에게 불멸의 불꽃으로 영원히 읽혀지라.

199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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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철학 - 10점
질 들뢰즈 지음, 박기순 옮김/민음사

 

질 들뢰즈가 스피노자의 철학을 해설한 책이다. 스피노자에 대한 기존 해석을 완전히 뒤엎는다. 스피노자를 유물론자, 비도덕론자, 무신론자의 철학자로 보여준다. 범신론자로만 취급되었든 스피노자가 전혀 새로운 인식의 광활한 수평선을 보여준다.

 

이는 내게 충격이었다!

 

 

도덕은 선과 악을 전제로 상과 벌로 논리로 인간의 삶을 억압한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윤리일 수 없다. 그것은 폭력이다. 진정 자유로운 인간은 선악이 아니라 좋음과 나쁨을 따른다.

 

스피노자는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사과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너는 저 열매를 먹지 말라', 불안에 사로잡힌 무지한 아담은 이 말을 금지의 표현으로 듣는다. 신은 그에게 단지 과일의 섭취가 낳을 자연적 귀결을 드러냈을 뿐인데, 아담은 원인들을 모르기 때문에 신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도덕적으로 금지한다고 믿는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선과 악은 없으며, 좋음과 나쁨이 있다."

 

근대의 가치관, 아니 지금도 꾸준한 지지를 받고 있는 선악 관념은 정말로 타당한 것인가?

 

 

 

"이해해야 할 것을 명령과 혼동하고 인식을 복종과 혼동하며 존재를 당위와 혼동하는 오랜 오류의 역사가 존재한다. 법칙은 언제나 선악이라는 가치의 대립을 결정하는 초월적 심급이지만, 인식은 언제나 좋음-나쁨이라는 존재 양태들의 질적 차이를 결정하는 내재적 능력이다."

 

 

기독교 사상의 죄의식과 선악의 대립적 가치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강압적 법칙이다. 자연스럽지 않다. 진정한 윤리는 각 개인의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스피노자 철학의 현재성과 미래성, 그 혁명적 사상의 특징을 잘 설명한 책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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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뒤안길 - 10점
W.바이셰델/서광사

 

 

[추천도서 005] 철학의 뒤안길 - 빌헬름 바이셰델 / 서양철학자들의 삶과 철학

 

 

두꺼운 서양철학사 책을 읽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사람을 위한 책이다. 시대순으로 주요 서양 철학자들의 삶과 철학 사상을 간략하고 흥미롭게 써 놓았다.

 

총  32명

 

1. 탈레스:철학의 탄생

2.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3. 소크라테스

4. 플라톤

5. 아리스토텔레스

6. 에피쿠로스와 제논

7. 플로티노스

8. 아우구스티누스

9. 안셀무스

10. 토마스아퀴나스

11. 에크하르트

12. 니콜라우스

13. 데카르트

14. 파스칼

15. 스피노자

16. 라이프니츠

 

 

17. 볼테르

18. 루소

19. 흄

20. 칸트

21. 피히테

22. 셸링

23. 헤겔

24. 쇼펜하우어

25. 케에르키고르

26. 포이에르바하

27. 마르크스

28. 니체

29. 야스퍼스

30. 하이데거

31. 러셀

32. 비트겐슈타인

 

재미있다. 각 철학자의 삶 이야기가 흥미롭다. 그런 독특한 삶에서 사색한 철학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건 뭐 거의 단편소설 하나씩 읽는 기분이다.

 

마르크스는 시인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시골 학교 선생님이었다. 스피노자는 렌즈 가공업자였다. 파스칼은 계산기를 만들었다.

 

삶과 철학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펼쳐지는지 볼 수 있다.

 

요약서라는 한계가 분명 있긴 하지만, 무작정 두꺼운 서양철학사로 곧장 들어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철학자의 흥미로운 삶과 그의 철학 개괄 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참고로, 번역투 문체가 거슬리다는 평이 있다. 나는 별다른 불편없이 읽었다. 번역투에 익숙해서 그런지, 글이 재미있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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