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전집 읽는 순서, 5대 장편소설, 작가 이름 국내 표기 도스토옙스키로 표준화됨

열린책들 세계문학 총 26권

예전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25권짜리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에 편입되었다. 권수는 총 26권으로 늘어났다. 기존에 한 권에 수록했던 '가난한 사람들'과 '분신'을 분리해서 2권이 된 것이다.

문제가 있다. 기존 25권짜리 전집은 작품이 시대 순으로 배열되어 있었으나 열린책들 세계문학으로는 이런 순서가 없다. 무작위다. 그래서 시대 순서대로 작품을 읽고자 하는 도스토예프스키 독자를 위해 예전 전집 순서대로 열린책들 세계문학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을 나열해 보았다. 

:: 알아둘 점 

1. 전기, 중기, 후기 시대 구분은 내가 한 것이다.
2. 제목 앞 번호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번호다.

 

이상하게 전자책으로는 통독이 잘 안 되어서, 모두 종이책으로 구입해서 다 읽었네요. 그리고서 종이책은 중고서점에 모두 팔아버렸습니다.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요. 남은 건 전자책. 다시 통독할 날이 오려나 모르겠네요. 그때는 전자책으로 읽어 보려고요. 2017.11.14


📑 초기 작품들 (데뷰부터 시베리아 유형을 가기 전까지) - 전반적으로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이 짙다.

#1 
117 가난한 사람들

#2
116 분신

#3
128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외
쁘로하르친 씨 /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 / 뻬쩨르부르그 연대기 / 여주인

#4
126 백야 외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 / 약한 마음 / 뽈준꼬프 / 정직한 도둑 / 크리스마스 트리와 결혼식 / 백야 / 꼬마 영웅

#5
124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 중기 작품들 (사회로 복귀하고서 재기를 노리던 시기) - 코미디 풍자에 집중한다.

#6
123 아저씨의 꿈

#7
114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

#8
129 130 상처받은 사람들

#9
105 죽음의 집의 기록

#10
121 지하로부터의 수기

#11
131 악어 외
악몽같은 이야기 / 여름 인상에 대한 겨울 메모 / 악어

#12
97 노름꾼

 

📑 후기 작품들 (기술적 완성과 사색의 깊이가 더해진 시기) - 종교적 철학적 사상가 면모를 보인다.

#13
12 죄와 벌

#14
15 16 백치

#15
57 58 59 악령

#16
119 영원한 남편 외
영원한 남편 / 보보끄 / 예수의 크리스마스에 초대된 아이 / 농부 마레이 / 백 살의 노파 / 온순한 여자 / 우스운 사람의 꿈

#17
108 109 미성년

#18
29 30 31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 도스토예프스키 5대 장편소설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모두 후기에 집필했다. 미성년은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이 상대적으로 별로였다. 

참고로, 국내에서 작가 이름 표기는 세 가지다.

도스토옙스키 - 외래어 표기법
도스토예프스키 - 외래어 표기법 이전 표기
도스또예프스끼 - 열린책들 출판사만 이렇게 표기했었다가 외래어 표기법 '도스토옙스키'로 쓰고 있다. 

결론. 도스토옙스키로 표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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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13 죄와 벌
줄거리 독후감 느낀점 등장인물 첫문장
열린책들 큰글자판
 

:: 죄와 벌 첫 문장

"찌든 듯이 무더운 7월 초의 어느 날 해질 무렵, S골목의 하숙집에서 살고 있던 한 청년이 자신의 작은 방에서 거리로 나와, 왠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K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11쪽)

첫 문장입니다. 석영중의 해설로는 이 한 문장에 시간, 공간, 사람, 움직임이 다 들어갔다고 합니다. 완벽한 문장이니, 방과 걸음의 의미니 하는 것들은 해석을 하던데요. 작가가 애써 의도적으로 그런 상징이나 의미를 생각해서 그렇게 썼다고는 생각진 않습니다. 쓰다 보니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죠.

:: 죄와 벌 줄거리

죄와 벌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중에 유별나게 잘 알려졌다. 학교에서 읽기 과제로 많이 내서 그런지도. 느낀 점 써오라고 하니 줄거리 써야 하고 독후감을 내야 하니까.

문제는 막상 이 책을 읽으려고 하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대부분이 그런 편이지만, '죄와 벌'은 술술 읽히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내내 뭐라뭐라 계속 혼잣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기존 소설 독법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친절한 서술이다.

줄거리라고 해 봐야 딱히 사건이랄 것이 없다. 핵심 사건만 추리면, 청년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후 소녀 가장한테서 감동을 받아 자수하고서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전부다. 독후감 과제 숙제 때문에 줄거리를 써야 한다면 이보다는 더 많이 써야하겠지.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본에는 하권 끝에 옮긴이가 쓴 다섯 쪽에 달하는 줄거리가 붙어 있다.


:: '좌와 벌'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이 많은 분량의 소설을 읽어낸 사람이라면 기대감이 클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결말을 바랄 것이다. 하지만 끝을 읽으면 허탈할 수 있다. 어쩌면 쓰다가 에라 모르겠다고 하고 이야기를 멈춰 버리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죄와 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건 전개 줄거리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해서 다시 읽어야 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 '죄와 벌'에서 이야기하는 살인은 철학적 의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의미를 넘어선다. 그래서 소설이다.

주인공 청년 로쟈가 노파를 살인하는 것은 자기 논리적으로는 정의 실현이었다. 하지만 '정의 실현' 후에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양심의 괴로움에 사로잡힌다.

그런 그를 소냐가 부활시킨다. 요한복음에서 라자로의 부활 부분을 읽는 장면은 억지스럽고 작위적인 부분이지만, 소설의 주제를 위해서는 꼭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소냐는 소설 후반부에서는 성녀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소설 '죄와 벌' 마지막 부분에서 주목해 볼 문장은 다음과 같다.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본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809쪽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810쪽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참모습은 정신적 부활로 드러난다. 사람의 삶은, 그리고 영혼은 이론으로 간단하고 명료하게 정리하고 처리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영혼의 순수함을 열정적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광기에 사로잡힌 영혼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도 선생이 '죄와 벌'에서 펼쳐보이는 심리 묘사는 놀랍다. 읽는 이가 그 등장인물이 된 기분이 든다.


:: 소설 '죄와 벌' 등장인물 정리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 소설을 등장인물 이름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일부러 등장인물 이름을 따로 적어두거나 아예 책에 맨앞에 정리해서 적혀 있다. 그래도 헷갈리고 어려운 이유는, 러시아 이름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기 못한 탓이다.

러시아 사람의 이름은 총 세 개가 있다. 영어권 이름이 세 개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똑같진 않다. 영어 이름에서 가운데 이름, 즉 미들 네임은 세례명인데 거의 안 쓴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의 중간 이름은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고 일상에서 자주 쓴다. 오히려 마지막 이름, 라스트 네임은 미들 네임에 비해 자주 쓰지 않는 편이다. 라스트 네임은 여자가 결혼할 경우 남편의 성을 따른다. 이 점은 영어 이름과 똑같다.

죄와 벌 주인공의 이름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다. 로마노비치는 아버지 이름이다. 여성은 오브나, 예브나를 붙여서 만들고 남성은 오비치, 예비치를 덧붙여서 만든다.

그리고 퍼스트 네임은 종종 애칭을 쓴다. 이 점은 영어 이름이랑 비슷하다. 로지온의 애칭은 로쟈, 로지까이다.

주요인물만 정리하겠다.

로쟈, 로지까,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꼴리니꼬프 : 주인공
뿔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라스꼴리니꼬바 : 주인공의 어머니
두냐, 두네치까, 아브도찌야 로마노브나 라스꼴리꼬바 : 주인공의 여동생 

알료나 이바노브나 : 전당포 주인
리자베따 이바노브나 : 전당포 주인공의 이복동생
나스따시야 빼뜨로브나 : 주인공 하숙집의 하녀

드미뜨리 쁘로꼬비치 라주미힌 : 주인공의 친구
조시모프 : 주인공의 의사

뽀로피리 빼뜨로비치 : 주인공에게 자수를 다그치는 예심 판사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스비드리가일로프 : 주인공의 여동생 두냐에게 흑심을 품은 지주
마르파 빼뜨로브나 스비드리가일로바 : 지주의 아내

뽀뜨로 빼뜨로비치 루쥔 : 두냐의 약혼자 

세묜 지하로비치 마르멜라도프 : 퇴역 관리
까쩨리나 이바노브나 마르멜라도바 : 퇴역 관리의 두 번째 아내
소냐, 소네치까, 소피아 세묘노브나 마르멜라도바 : 퇴역 관리의 첫 번째 아내가 낳은 딸


:: 영문 위키에서 알아낸, 흥미로운 사실 - 노란색의 상징은 고통 받는 상태 혹은 정신병이다

정당포 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방 벽의 벽지 색은 노란색이다.
루쥔의 반지 색은 노란색이다.
로쟈의 다락방 벽 색은 노란색이다.
소냐의 매춘 신분증/허가증의 색은 노란색이다.
러시아 어로 정신병원을 노란색 집이라고 부른단다.

:: 열린책들 출판사에서는 왜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로 표기하는 것일까?

러시아 원음 발음에 가깝게 우리말로 표기한 것 같다.

우리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많이 쓰는 표기는 '도스토예프스키'다.


※ 열린책들에서 큰글자판이 나왔다. 
 

판형은 기존과 동일하다. 다만, 본문 글자 크기가 2포인트 커져 12포인트다. 그래서 쪽수가 30% 늘어났다. 물론 인쇄 내용 자체는 똑같다.

 

:: 양심의 불꽃, 여윈 말 이야기

마흔, 도스토옙스키 읽기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열린책들의 전자책 '세계문학 e컬렉션 세트(전170권)'가 도스토옙스키 전집(총 26권)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세운 목표가 도스토옙스키 전집 독파다. 155 세트를 산 후에 15 업그레이드 팩 세트를 사서야 비로소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완성했다. 총 스물여섯 권이다.

2016년 12월 27일 현재에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 세트가 180권이 되었고 도스토옙스키 전집(총 26권)을 포함하고 있다.

2017년 1월 18일 현재, 도스토예프스키 작품만 묶어서 전자책 세트로 팔고 있다. 종이책으로는 도스토옙스키 전집은 아직 안 팔고 있다. 그냥 낱권으로 26권을 사면 되겠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이 더는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았음을 깨닫고 의미있는 일을 해보려고 한다. 늙을수록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 촉박할수록 신중한 법이니, 독서도 신간보다는 고전에 손이 간다.

나이 드니 고전이 더 깊게 더 많이 이해된다. 머리가 아니라 경험으로 이해한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면 세상 부조리와 더러운 년놈들과의 타협을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쌓인 독을 고전 읽기로 해독하자. 

죄와 벌, 양심의 불꽃

소설 '죄와 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여윈 말을 억지로 짐수레에 묶어 사람들이 학대하는 부분이다. 언뜻 보기에 이야기의 전개와 큰 관련이 없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중심 감정이다. 소냐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소냐에게 하는 말("잘 있어라, 이 불쌍한 것...! 여윈 말을 너무 부려 먹었구나...!")로 다시 이 작은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라스꼴리니꼬프가 폭리를 취하는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고 '이론적 정의 실현 살인'을 실천에 이르지만 양심의 열병에 걸리고 만다. 그의 살인은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삶은 그렇게 논리적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만 보자면 삶은 모순이며 오직 죽음만이 타당하다.

로쟈의 그림자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있다. 그는 갈등 많은 양심 대신에 명쾌한 욕망을 택한다. 욕망의 끝은 충족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로쟈의 여동생 두냐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그는 논리적인 귀결로 더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반면 로쟈는 소냐의 사랑이 있고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있어 삶으로 나아간다.

양심의 괴로움 속에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논리적이지 못하고 상식적으로 수긍이 안 되는 행동을 한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창녀 노릇을 하는 소냐는 미친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소냐를 무자비하게 착취할 뿐인데도 끝까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돈을 벌어다 갖다 바친다.

로쟈는 자기가 가진 돈 전부를 소냐의 아버지 장례 비용으로 쓰라고 줘 버린다. 일부가 아니라 전부다. 우리의 정상적인 선행은 자기의 일부를 주고서 사회적 존경과 인기를 얻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재산 전부를 남을 돕기 위해 쓴다고 하면 미쳤다고 하지 제정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광기 어린 혼잣말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쏟아진다. 순수한 마음과 현실의 부조리가 대립하면서 정신은 비명을 지르고 행동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극한 상황에 처하자, 양심의 울부짖음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삶의 희망을 만든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삶의 부활을 예감한다. "그는 다만 느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성경 요한복음(번역서는 '요한의 복음서') 11장 나사로(번역서는 '라자로')의 부활 이야기를 억지스럽게(뜬금없이 로쟈가 소냐한테 성경 책을 읽어달란다.) 추가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설 '죄와 벌'이 추구하는 것은 영웅주의 무신론이 아니라 구원과 자기 희생의 기독교 유신론이다.

로쟈는 살인으로 마치 자신이 죽은 것처럼 느끼는데 자수를 하고 소냐의 사랑을 받으면서 부활을 시작한다. 소설 '죄와 벌'은 바로 이 정신적 부활을 강조하며 끝난다. "새로운 이야기, 한 사람이 점차로 소생되어 가는 이야기,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야기, 그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 가는 이야기, 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2014.04.28

죄와 벌 세트 - 전2권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학수 옮김/문예출판사

죄의식, 욕망, 양심의 심리소설

인간의 불안, 갈등, 슬픔, 기쁨, 절망, 희망, 특히 죄의식, 욕망, 양심을 심연의 깊이로 보여주는 심리소설이다.

가난한 대학생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는 범죄소설이지만 추리소설로 보는 이는 드물다. 범죄의 스릴이나 반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본성을 파헤치는 '철학소설'에 가깝다.

사건 전개를 치중해서 읽어내고자 하는 이들은 도스토옙스키 소설이 대체로 그렇듯 등장인물들의 장광설 독백에 질려서 더 읽기를 포기한다. 반면 읽는 이의 심장을 움켜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문장의 미칠 듯한 폭주에 사로잡히면 도저히 책에서 눈을 떼기가 불가능하다. 도스토옙스키에 중독되면 커피 마시듯 읽어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읽는다.

이미 줄거리와 사건 전개를 아는 상태에서 다시 읽어 보니, 주인공의 불안 심리가 수술용 매스처럼 정확히 날카롭게 묘사해 나아간다. 경악스러운 문장이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냐. 

이 옛날 소설이 오늘날까지 폭탄 같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자기 아내의 양말까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사내. 그래 이건 가난을 과장해서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지. 정원 감원 때문에 실직한 가장이 허름한 술집에서 넋두리를 해댄다. 요즘 얘기잖아?

지독한 가난에 빠져 정신이 돌아버린 사람들을 집요하게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처음에는 낡아빠진 옛날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지만 나중에는 오늘날 이야기로 읽힌다. 경제불황과 장기실업을 피할 수 없는 요즘에 사람다움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살인과 자살, 학대와 자학은 극단 상황에 놓인 인간이 자주 보이는 행태다.

김학수 문예출판사, 한문투 옛날 번역

2013년 4월에 나온, 문예출판사 김학수 번역본은 옛날 번역이다. 도스토옙스키 150주년인 1971년에 출간한 책을 다시 편집했다. 옛날에나 썼던 한자어가 종종 나와서 읽기 거북할 수 있다.

열린책들 홍대화 번역과 비교해 보니, 정확성에서도 떨어진다. 읽는 데 큰 지장을 주진 않지만 이런 거다.

홍대화 : 1베르스따 밖에서도
김학수 : 1킬로미터 밖에서도

홍대화 주석에 보면, 베르스따는 미터법 시행 전 러시아의 거리 단위란다. 1베르스따는 1.067킬로미터다.

홍대화는 우리말 위주고 김학수는 한문투다. 읽으면 느낌이 다르다.

홍대화 : 7백30발자국이었다.
김학수 : 730보였다.

너무 사소한 거 아니냐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렇게 중얼거린다.

홍대화 :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이 중요하다……!
김학수 ; 사소한 것, 사소한 것일수록 중요하다!

2015.01.01

죄와 벌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홍대화 (옮긴이)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3부 5장 예심판사 뽀르피리와의 심리 대결 묘사와 3부 6장 주인공 로쟈가 악몽에 빠지는 장면이 압권이다. 사람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니, 놀랍다. 도선생은 천재다. 최고다.

2018.11.5

죄와 벌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은이), 홍대화 (옮긴이)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횡설수설, 쓸데없는 말, 난데없이 등장하는 권총. 소설로의 이성적 논리는 내팽개치고 열광적 광기로 써내려간 글이다. 로쟈는 끝까지 양심의 가책이나 반성이 없다. 결말은, 로쟈가 소냐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냐는 성녀처럼 보인다. 소냐의 사랑이 로쟈를 구원한다.

2018.11.9

열린책들 번역본 전자책 열어 봤더니, 로쟈가 로댜로 나온다. 왜 이러는지. 오탈자나 잡지. 

2025.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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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석영중 지음

열린책들 펴냄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으면서 생겼던 의문이나 궁금증이 이 책에서 많이 풀렸다.

도 선생의 팬이라면 이미 알아서 챙겨서 꼭꼭 씹어 읽었을 것이다.

아직 도선생의 소설을 안 읽었거나 읽으려고 하는 이에게 추천한다. 

 

이 책 읽고 다시 도스토옙스키 책 읽기에 도전해 보라.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반양장)
노문학자 석영중 교수의 저서 『도스토옙스키 깊이 읽기: 종교와 과학의 관점에서』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오랜 세월 도스토옙스키 강의를 해오며 여러 권의 도스토옙스키 관련서를 펴낸 석영중 교수가 지난 20여 년간 발표해 온 연구 성과들을 추려서 묶은 책이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 『죽음의 집의 기록』,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등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대표 작품들을 분석하며 그의 심오한 문학 세계를 조명한다.
저자
석영중
출판
열린책들
출판일
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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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도스토예프스키

횡설수설에 등장인물이 많아 읽기에 까다롭고 지루했다. 사건다운 사건은 3부부터 몰아치듯 나온다. 인물들이 죽어나간다.

각 인물별로 이야기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1인칭 시점 서술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오가면서 관찰자 입장을 유지한다. 직접적이기보다 암시적이다. 갑갑하다. 어찌나 산만한지. 같은 말을 반복하기까지.

열린책들 번역본에는 번역자가 줄거리를 첨부해 놓았다. 워낙 줄여 놓은 탓에, 그리고 이야기가 워낙 산만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직접 모두 다 읽어 보는 수밖에 없다.

분량은 많지만 얘기는 간단하다. 무신론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동이다.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장광설과 형이상학과 사회비판이 나온다. 무신론자들 이야기인데, 180쪽에 가서야 무신론을 처음 논한다. 키릴로프의 인신사상. "신은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합니다. 돌 자체에는 고통이 없지만 돌에서 비롯된 공포 속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신은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는 사람, 그 사람은 직접 신이 될 겁니다." 진지하기보다는 우스꽝스럽다.

평온하고 조화로운 삶은 살고 있는 사람한테는 종교가 필요없다. "인간은 더 고약하게 살거나, 혹은 더 학대받고 더 가난한 족속일수록 더욱더 집요하게 천국의 보상을 꿈꾼다는 거 말입니다."(295쪽) 이 세상의 삶이 지옥일수록 저세상은 더욱 간절하다. 불가지론자인 나로서는 시큰둥한 얘기지만.

소설 '악령'은 무신론자들 풍자하려다 유신론을 사색한다. 유신론과 무신론은 빛과 그림자다. 극과 극은 통한다. 무신론자는 절망한 유신론자다. 신이 없다고 부정하기 위해서는 '신이 있음'이 전제다.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무신론 급진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을 우스꽝스럽게 짧게 그려내는 '팸플릿'을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써 나아가면서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던 인물인 '스타브로긴'이 중심 인물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초고의 계획을 엎어버리고 아예 '위대한 죄인'이라는 비극으로 양을 늘려 버린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모호해진다. 코미디인가, 비극인가.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 뭐지? 3부 8장까지 읽고나서는, 이게 뭐야 싶다.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거야?

이 책을 예전에 읽었을 때는 "촛불처럼 분명하고 손가락처럼 단순합니다."(286쪽) 이 한마디와 끝 장면이 머릿속에 남았다. 그때 내가 읽은 책에는 '찌혼의 임자에서'가 안 붙어 있었다.

'스타브로긴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더 잘 알려졌다는 이 글은 본래 2부 9장으로 넣으려고 했다가 편집자의 권유 혹은 강압으로 삭제했었다가 작가 사후에 발표되었다고 한다.

표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끼가 주인공 아닌가? 다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은 이 사람이지 않은가? 그리고,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타브로긴은 딱히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뺨 맞고 결투에서 총을 엉뚱한 곳에 쏘고 왜 그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행동들, 왜 등장인물들 이 사람한테 열광하는 것일까.

삭제되었던 장이 그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를 여는 열쇠가 된다. 드디어 인격화된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책을 처음부터 다시 읽고 싶어진다. 모호함과 불명확함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왜 삭제되었는지는 읽어 보면 안다.

스타브로긴이 동전의 뒷면이라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알료샤는 동전의 앞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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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도스토예프스키

장황한 문체를 걷어내고 줄거리만 요약하면, 한 남자가 두 여자를 모두 사랑했는데 이도 저도 안 되고 도로 백치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결혼을 둘러싼, 정신병원 환자 같은 이들의 막장 드라마다. 코미디는 전작 '스쩨빤치꼬보 마을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끝은 전혀 다르다. 비극? 개판이다. 작가가 작정을 하고 등장인물들을 시궁창으로 처넣는다.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허구의 인물들을 통해 다 하고서 버린 듯.

총 4부다. 1부 끝에서 빵 터진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에서 경악하게 된다. 그 외 부분은 대단히 지루한 편이나 중후반부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사상이 뜨겁게 달군 쇠처럼 불타고 있다. 이 글 하단에 몇 부분 인용해 놓았다.

'백치'는 그리 술술 읽히는 소설은 분명 아니다. 1부까지 읽어내기도 버거울 것이다. '백치'는 읽다가 졸거나 통독을 포기한다고 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만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워낙 잡다한 이야기가 많아서 종종 샛길로 빠지니까.

이렇게 읽어 보라. 독서의 초점을 흥미로운 사건 진행이 아닌, 물론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너무 적은 탓에, 주인공 캐릭터에 맞춰 보기 바란다. 그러면 이 착한 어른 어린이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아, 그리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 책보다 먼저 읽기 바란다.

지극히 아름답다고 선한 인물. 이런 사람을,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에서 그려내고자 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이 '백치'다. 그러니까 '알료샤'의 이전 버전이 '미쉬낀 공작'이다. 알료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인공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총 2부를 계획했는데, 1부만 완성하고서 작가가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래서 도대체 2부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한데, 아마도 알료샤의 전기일 거라고 추측한다.

미쉬킨 공작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화'라고들 하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맞고 전반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미쉬낀도 얄료샤도 신은 아니다. '유로지비'라 불리는 바보 성인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렇다고 미친 바보짓까지 하는 정도는 결코 아니다. 순진한 정도다.

예수를 닮았다는 것은 어린이랑 친하다는 점과 순진무구할 정도로 착하다는 점과 상대방을 단번에 간파한다는 점 정도겠다. 마쉬킨은 관상쟁이다. 딱 보는 순간, 상대를 파악한다. 점쟁이처럼, 마법처럼, 타고난 재능인 것처럼. 왜 그런지 논리적 이유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초능력?

돈에도 별 관심이 없다. 외모도 딱히 꾸미지 않는다. 이런 미쉬낀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유도 모른 채 호감을 느끼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주변 사람들이 자진해서 미쉬낀을 도와준다. 그리고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도 있다.

미쉬킨 공작 스스로도 자신을 '백치'라고 부르고 주변 사람들도 그를 '백치'라고 부른다. 그리고 실제로도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 코미디 분위기랄까.

알료샤한테서는 그런 바보스러움을 제거하고 단순히 순박한 사람이자 종교적 열망을 지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면에서는 미쉬낀과는 무척 다른 사람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극히 선한 인물' 유형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순진하고 착한 인물은 별로다. 내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이런 인물이 아니라 자존심 끝판왕 캐릭터 때문에 읽는다. 도 선생 소설을 읽는 이유다.

아주 옛날에, 십 년 전쯤 되려나, 아니 더 오래된 듯하다, 어쨌든 이 소설 '백치'를 한 번 통독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다. 읽었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었다. 읽기를 위한 읽기였다. 그래도 계속 기억에 뿌리깊게 남겨져 있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여자였다.

어마어마한 큰돈을 벽난로에 태워버리는 여자. 이런 미치광이 이야기를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어디선가에서 읽었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게 어느 소설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이제 알았다. '백치'였다. 270쪽에 나온다. 1부 거의 후반부다.

나스따시야는 소설 '상처받은 사람들'에 나오는 넬리처럼 윤리적 자존심이 극단적인 인물이다. 잊히지 않는 캐릭터다. 이름을 잊을 수는 있어도, 이 캐릭터가 한 행동과 그 감정 상태는 워낙 강렬해서 잊을 수가 없다. 정말이지 도스토예프스키다. 징헌 인간 같으니. 이런 소설을 써내다니.

그리고 시체가 있는 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밤을 새우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디였나 했더니, 바로 이 '백치'였다.

'백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적 철학적 러시아 민족 사상가적 사색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소설이다. 이전에 발표한 '죄와 벌'의 생각이 더 발전하고 더욱 굳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로고진과 공작이 십자가를 교환해서 목에 거는 모습은 '죄와 벌'의 한 장면과 유사하다.

무신론, 유신론, 러시아 민족에 대한 믿음. 성찰. "종교적 감정의 본질은 그 어떤 이성적 논리로도 접근할 수 없어, 그 어떤 과실이나 범죄, 그 어떤 무신론도 그걸 붙잡을 수 없지. 그런 것들과는 무언가 달라. 영원히 다를 거야. 거기에는 무신론이 영원히 포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영원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거라고.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 가장 선명하게 러시아 인의 가슴속에서 가장 자주 발견된다는 것이야. 그것이 바로 나의 결론이라네!"(344쪽)

무신론자가 이 소설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병에 시달리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열여덟 젊은이 이뽈리뜨의 사색과 몽상은 기독교, 죄, 죽음, 삶, 죄의 처벌, 선행을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들어간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파고들어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띤 말.

"우리는 신에게 우리 식의 개념을 뒤집어씌워 신을 지나치게 비하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신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면, 인간의 능력으로 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책임을 지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그렇다면 진짜 신의 의지와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나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637쪽)

"무신론은 바로 가톨릭 추종자들로부터 시작된 겁니다. 이러니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무신론은 가톨릭의 허위성과 종교적 무력감의 산물인 것입니다."(835쪽)

"사회주의라는 것도 결국은 가톨릭과 그 교리의 산물이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라는 것도 그 형제나 다름없는 무신론고 마찬가지로, 가톨릭에 대한 회의감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가톨릭과 반대되는 정신적 입장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사회주의는 종교가 상실한 정신적인 권위를 차지하려고 하고, 인류가 애타게 호소하고 있는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려 하고, 인류 구원을 '그리스도'가 아닌 '폭력'을 통해 얻으려 한다는 점은 가톨릭과 별 다른 점이 없습니다."(836쪽)

막장 드라마 코미디에서 갑자기 진지하게 심연의 사색과 불타는 감정을 분출해 버릴 때는 정신이 아찔해진다.


:: 예수 그리스도 형상화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겼다. 한 쪽을 여러 번 읽기도 했다. 읽다 자다 깨다 읽다. 반복했다. 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잡다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탐독했다고 할 수 없다. 그냥 한 번 읽었다.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 이후로 쓴 것인데, 그래서 그런지 '죄와 벌' 이야기를 '백치'에 몇 부분 넣었다.

'백치'는 산만하다. 무수한 등장 인물들과 많은 이야기들. 소설의 결말은 모호하다. 큰 줄거리와 상관없는 작가의 체험담(사형 직전에 살아 남은 것, 도박, 간질병 등등)에 여러 잡다한 것들이 담겨 있다.

그래도, 중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똑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가를 많이 닮았다.) 이상형 주인공 미쉬킨 공작의 이야기이다. 미쉬킨 공작은 백치다. 주변 사람들마저 그를 백치라고 부른다. 그가 백치임에도, 사람들은 그에게 가서 고백하려고 하고 그의 인격에 감동을 받는다. 그를 사랑하는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또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 이야기. 돈, 결혼, 사랑, 사회 비판, 뭐 이런 이야기들이라고나 할까. 그리스도를 닮은 미쉬킨 공작은 사람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결국 치료를 받았던 스위스로 돌아간다.

무신론자 이폴리트가 자신의 논문을 낭독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데, 스티븐 킹 공포 소설을 능가할 정도로 으스스하다.

작가의 인식 테두리를 볼 수 있었다. 공작의 입을 통해 쏟아 내는, 로마 카톨릭과 무신론에 대한 비난, 그리고 러시아의 종교와 사상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 또 공작의 입으로 말하는, 러시아 상류계급 비판. 이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가 유럽 여행 직후 쓴 것이라서 유럽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비난도 보인다.

도스토옙스키가 택한 것은 결국 러시아 정교였고, 참된 그리스도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신론자들의 회의를 어떻게 해서든 반박하려 했다. 만년의 작업은 결국 이것에 치중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 작업이 최고로 다다른 미완성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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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소설 이전까지만 해도 범죄를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범죄자의 심리나 행동을 그토록 잘 알지 못했었다. 관심이 없었다. 악한 사람을 묘사하긴 했어도 범죄자를 다루진 않았다. 특히, 살인범은.

도 선생은 진지하게 제대로 혁명을 꿈꾼 것도 아닌, 고작 어쩌다 모임에서 편지글 한 편 읽었다는 죄로 시베리아 수용소 감옥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온갖 범죄자를 꼼꼼하게 관찰할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이를 수기 형식의 소설로 쓴다. 그 소설이 바로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여기서 죽음의 집은 감옥을 뜻한다.

감옥 체험 수기가 아니라 감옥의 범죄인들 모습을 그린 소설로 만들기는 간단했다. 순진하게도,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다. 우연히 알렉산드르 뻬뜨로비치가 쓴 10년간의 유형생활 기록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나. 이런 액자 이야기를 맨 앞에 만들어 놓으면 소설로 변신 완료다. 이 소설 대부분이 아마 실제였을 것이다. 이야기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 더하고 빼고 했겠지만. 어쨌거나 소설보다는 실화 분위기가 난다. 다큐멘터리 같다.

그 유명한 '돈은 주도된 자유'는 바로 이 책에 나온다. 그 감옥에서 돈 쓸 일이 뭐 있나 싶은데, 감옥에 갇힌 점만 빼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는, 거의 모든 걸 하고 있다. 술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도박에 고리대금업까지 있다. 동물도 키울 수 있다.

딱히 주인공이 없다. 여러 사람들의 일화를 나열한다. 이 때문에 흥미를 잃을 수 있어서 통독하기 힘들 수 있거나 재미있게 다 읽어치울 수 있다. 나는 전자였다. 나는 사람들이 통독하기 어렵다는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편인데, 이 책은 읽다 말다 읽다 말다를 반복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가장 도스토예프스키답지 않다. 장광설이 거의 없다. 오로지 성실하게 여러 인물들의 일화를 받아적는 태도를 유지한다.

웃긴 이야기, 슬픈 이야기, 황당한 이야기, 기괴한 이야기, 온갖 이야기가 다 있다. 가짜 금화 하나를 주조하기 위해 진짜 금화 세 개가 썼다는 위조화폐범. 특히, '벨까'라는 개 이야기는 묘한 울림을 준다.

부상을 당해서 언제나 굴욕을 당하며 주변 사람들과 개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던 개. "이미 벨까는 명예를 생각하는 일은 포기한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상실한 채 오직 빵만을 위해 살고 있는 듯했으며, 자기 스스로도 이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377쪽) 결국 다른 개한테 물려 죽는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범죄 캐릭터 모음집이다. 별별 인간이 다 있고 별별 이야기가 다 있다. 특히, 살인자들. 추리소설에 나오는 그딴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범죄자에 대한, 특히 살인자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지하고 지독하고도 철저한 관찰의 결과는 나중에 나올 소설의 기반이 된다. "특히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의 기억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친부살인 이야기는 '카라마조프카의 형제들'에 등장한다.

감옥생활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기독교 작가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죄와 벌'은 죄에 대한 기독교적 사색의 시작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완성이다. 인간의 선악, 죄, 인간 존재의 문제가 왜 신이라는 관념의 사색 없이는 무의미한지 끝까지 가 본다. 대단한 집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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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Записки из подполья (1864년)
도스토옙스키 | 열린책들 | 2010년


:: 반항하고 욕망하는 인간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이게 소설이야? 계속 혼자 중얼거리잖아." 그러면서 읽다 말았다. 당시에는 이 소설과 '죽음의 집의 기록'이 합본으로 묶여 있었다. 그 탓에 두 소설 제목이 헷갈렸다.

이 소설을 두 번째로 읽은 것은 '죄와 벌'을 드디어 완독하고서였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으로 읽었다. 이번에는 어쨌거나 다 읽었다. 그냥 혼자 떠드는 코미디 정도로 여겼다. '죄와 벌'의 1인칭 수다 버전으로.

이 소설을 세 번째로 읽었다. 제대로 읽어낼 수 없으리라 여겼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세 번 읽은 상태에서 이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장난스러운 어투로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의 글이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관찰 연구 결과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 놓았다. 작가는 이를 기반으로 걸작들을 쌓아올린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한 사람들, 선과 악의 극단에 이른 인물, 모욕하는 사람과 모욕받는 사람 등을 주로 다루면서 낭만주의와 신비주의를 보이는 소설들을 써내면서도 과연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을 딱히 못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소설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그 답을 내놓기 시작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2부 구성이다.

'1부 지하실'에는 자기가 하급 공무원(일개 8등관)이었으며 친척한테 유산을 받고서 사표를 내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산다는 점과 나이, 성별 외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없다.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수기인데도 말이다.

작가가 붙인 주석에는 이렇게 나온다. "<지하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장에서 그는 자신과 자신의 견해를 소개하고 있으며, 아울러 우리 주변에 그가 나타난 이유, 아니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밝히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다음 장에서는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들에 관한 이 사람의 실제 <수기>가 제시될 것이다."(9쪽)

장이라고 설명했는데, 번역된 소설에서는 부로 표시했다. 작가 주석대로 '2부 진눈깨비 때문에'는 수기의 주인공 삶 이야기가 나온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인간의 존재 심리학 성찰 논문과 비아냥거리는 우스개와 열띤 광기가 뒤섞인 소설이다. 왜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가 내가 이렇게 그의 모든 작품을 순서대로 읽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부의 핵심 주장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라는 정의가 거짓이라는 거다. 우리들이 여전히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이성적 존재라는 개념이 말짱 허구라는 것이다.

"인간은 항상 어디에서나, 그가 누구이든 간에, 절대적으로 이성과 그의 이익이 지시하는 대로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간 생략)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욕구, 가장 거친 것이라 할지라도 당신 자신의 변덕, 때때로 심지어는 광기에 달하는 당신의 몽상, 바로 이것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간과하는 있는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이익 중의 이익이며 이것 때문에 모든 체계들과 이론들은 끊임없이 와해되어 버린다."(43쪽)

반항하고 욕망하는 것이, 인간이다. 단순히 존재하기를 거부한다. 욕망, 욕구, 변덕, 광기, 몽상의 인간은, 이론이나 제도로 바꿀 수 없다.

'죄와 벌'의 코미디 일인칭 독백 버전

'죄와 벌'의 코미디 일인칭 독백 버전이 있었다. 아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도 이렇게 유쾌한 작품이 있다니! 책을 펴는 순간 지하로부터의 개그 콘서트가 펼쳐진다. 당신을 꽉 붙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고 속사포 독백이 쏟아진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실험적 풍자소설이다. '죄와 벌'의 주인공의 독백을 이 작품에서 자유롭게 펼친다. 읽고 있으면 아주 돌아버린다. 이 소심한 미치광이의 장광설이 진지함과 농담이 오락가락하며 독자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트위터 친구 한 분이 '죄와 벌'을 읽은 다음에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꼭 읽어보라며 "정말 분열적이다 못해 웃겨 죽습니다. 지드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가운데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이 작품을 고르겠다고도 했었죠."라고 추천했다. 정말 웃기더라. 걸작은 아니더라. '죄와 벌'의 스케치로 보인다. 자전적 독백도 섞여 있다.

시대를 앞서 간 것일까. 대단히 실험적인 소설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인 줄 알았다. 허구와 현실이 교차되고 대놓고 독자한테 말을 건다. 발표 당시 독자들한테 외면당했다. 지금도 그리 환영을 받진 못하리라.

수기 형식 소설이다. "나 자신만을 위하여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일 독자들을 대하듯이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것이고, 그 이유는 그렇게 쓰는 것이 나에게는 더 쉽기 때문이라고 단호하게 나는 주장한다. 그것은 형식이다. 단순히 형식일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결코 독자를 가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픽션. 허구의 허구. 현실을 끌어들인 허구다. "'당신은 어떻게…… 마치 책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녀는 말했고, 무엇인가 조롱하는 듯한 것이 그녀의 목소리에서 다시 울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겨서 미칠 것 같았다. 소설 텍스트 안에서 스스로 허구임을 밝히면서도 고집스럽게 이 지하 인간은 자기 말을 줄기차게 쏟아낸다.

주인공은 극도로 소심하며 지나치게 솔직하다. 농담과 자조 속에서 속물 비판을 비수처럼 던진다. "우리 시대의 모든 예의 바른 사람은 겁쟁이고 노예여야 한다." "그들에게 직위란 지성과 동등한 것이었다. 열여섯에 그들은 이미 편하게 돈벌 수 있는 직업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싸구려 행복인가 아니면 고상한 고통인가?" 가끔씩 툭툭 던지는 진지한 말이 무섭도록 매력적인 작가 도스토옙스키임을 입증한다.

도스토옙스키는 불행하고 진지한 사람들이 읽는 생명수다. 행복하고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한테는 난해하고 읽기 힘든 고전일 뿐이다. 당신의 삶이 비틀거리고 소외되고 미칠 것만 같을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어라. 당신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 이토록 웃긴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조차 그렇다.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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