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II Principe (1513년)
니콜로 마키아벨리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4월
5점 ★★★★★
난세에 간웅이 이기는 법
'군주론'이 정치학의 고전이 된 이유는 선한 군주, 선한 정치, 폭군, 악한 정치 따위의 고리타분한 윤리적 이상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현실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준 마키아벨리에게 인류는 큰 신세를 졌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실현 불가능한 공자님의 군자 임금이 아니라 실제로 권력을 잡아 통치하는 자의 행태에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악행을 찬양한 것은 아니다. "군주는 가능하다면 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114p) 악덕도 때론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도 정직하게 얘기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즘이라 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비윤리적 수단도 쓸 수 있다고 해서 비판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론적 이분법과 무용지물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정치 지식을 추구했다.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는, 그가 운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읽는 내내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떠오른다. 난세에는 간웅이 이기는 법이다. 도덕적 의무와 융통성이 없는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이익에 따라 꾀를 부려야 권력을 잡는다. 일단 승리하여 땅을 넓히고 마침내 통일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쓸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왕국, 공국, 공화국이 서로 다투고 있었으며 주변 강대국의 위협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온갖 지략과 갖가지 모략이 넘쳐났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바랐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고전, 옛날 책, 옛날 기록을 읽으면서 현재 이탈리아의 분열 상황에서 과연 이기는 전략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정리하고 종합한다.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철저하게 파고들어가 사색하여 국가 통치술을 도출해낸다. "타인을 권력에 오르게 한 자는 스스로를 몰락시킨다."(50p)
'군주론'은 자기계발서나 처세술로 읽히기도 한다. 승리를 위한 전략을 끝없이 구상하고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하는 글이니 그럴 수 있다. "인간들이란 충분히 만족시켜 주거나 짓뭉개야 한다."(43p)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46p) 이런 류의 문장에 밑줄을 그면서 읽는 것이다.
처세에 능하지 못했던 자가 쓴 처세술 책이라니. 이 책 183쪽에 보면 마키아벨리의 생애가 나오는데, 인생 중후반부터 이 권력에 붙었다 저 권력자한테 붙었다 하며 아부하다가 별볼일 없이 살았다.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에게 바치지만 관직에 등용되지 못했다. 당연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음모 혐의로 투옥되었던 사람을 등용할 턱이 없지.
로렌초 다음으로 권력을 쥔 추기경에게 '전쟁의 기술'을 저술해서 바치고 간신히 한직을 얻는다. 메디치 가문이 추방되고 피렌체가 공화국이 된다. 하지만 공직에 나가지 못한다. 메디치 가문에 협력했던 놈인데 누가 좋아했겠나.
'군주론' 끝에서 아부를 하는데, 잘하지 못했다. 군주가 듣고 싶거나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어쩌라고. 그게 먹히겠냐.
마키아벨리는 운이 없었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 운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사무쳤던 모양이다. "제가 부당하게도 얼마나 거대하고 끊임없는 운의 원한을 견뎌야 하는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35p)
미드 보르지아를 보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쟁, 살육, 음모, 배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극찬했던 체사레 보르자의 활약을 볼 수 있다. 지략이 제갈공명 수준이다.
문장은 간결하다 못해 바삭거린다. 논리와 사실과 증거와 예의 나열이다. 촘촘하게 쌓은 벽돌만 보는 셈이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이다.
"저는 유려한 미사여구나 요란하고 감동적인 말, 아니면 많은 이들이 자기가 만든 것을 묘사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사용하곤 하는 감언이나 겉만 번드레한 윤색으로 이 책을 꾸미거나 채우지 않았습니다."(34p)
제대로 자세히 읽어내긴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펭귄클래식코리아의 번역본은 책 끝에 인명사전을 마련해 놓았고 서두에 1500년 당시 이탈리아 지도를 첨부했다. 아쉽게도, 그리고 이상하게도 장 제목들을 목차로 수록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각 장 제목은 중요하다. "마키아벨리는 본문에서 사용한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제목을 썼고, 이 제목들을 통해 군주는 신민들에게서 사랑을 바라야 하는지 공포를 바라야 하는지와 같은 전통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명확한 표지판을 제공했다."(20p)
1. 군주국의 다양한 종류와 그것이 획득되는 방식
2. 세습 군주국
3. 복합 군주국
4.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다리우스 왕국은 왜 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5. 각자의 법 아래에서 살던 도시나 공국들은 정복한 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6. 자신의 무력과 능력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7. 타인의 무력과 운의 도움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8. 악행으로 권력에 오르는 자들
9. 시민 군주국
10. 군주국의 국력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11. 교권 군주국
12. 군사 조직과 용병
13. 원군, 혼성군, 자국군
14. 군주는 군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15.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일들
16. 후함과 인색함
17. 잔인함과 자비함, 사랑을 받는 것이 두렵게 여겨지는 것보다 나은가 그 반대인가
18. 군주는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19. 경멸과 미움을 피할 필요
20. 요새, 그리고 군주들이 의지하는 오늘날의 다른 방편들은 유용한가
21. 명예를 얻기 위해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22. 군주의 개인적 막료
23.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24. 왜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그들의 국가를 잃었는가
25. 인간사는 얼마나 운에 지배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운에 맞서야 하는가
26. 이탈리아를 야만인들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간곡한 권고
해당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며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살펴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서양 유럽 고대 중세 전쟁 역사에 익숙하다면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정치 군사 전략전술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읽었을 것 같다. 아직 안 읽었다면 이 책에 열광하게 되리라.
초판 1쇄 오탈자
57p 헤택 → 혜택
20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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