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김용옥
통나무
2002.04.01.
서양 철학의 독선을 깨부수기
서양 학문에 대한 열등감에서 벗어나자
철학, 정치적 폭력과 종교적 독선에 맞선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까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사람이다. 호감이 전혀 안 가는 인상을 지닌 그 사람. KBS에서 무슨 세계 기행인가 뭔가 하는데 웬 까까머리 사내가 두루마기를 입고 일본 거리를 돌아다닌다. TV를 보면서, 저 사람은 스님이야 야쿠자야,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그 사내는 일본의 석학들을 줄줄이 만나는 것이 아닌가. 윽, 저 사람 도대체 뭐야! 동경 대학을 다녔다나. 야, 이 사람 보기와는 전혀 딴판이네. 바로 그 사내가 이 책을 쓴 사람이었다.
고려대 생물학과 입학했으나 병으로 중퇴. 다시 한국신학대학 입학. 돌연 종교를 떠나 고려대 철학과 입학. "나는 고대철학과 3학년때 우주를 보았다."라고 스스로 말했다나. 그 후 중국 국립대만대학 철학과에서 석사를, 일본 동경대학 철학과에서 또 석사를, 그것도 부족해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를 땄다. 윽, 이 사람 보통내기가 아니다. 학위를 밥먹듯 따다니!
동서양 철학책을 줄넘기 뛰듯 인용에 분석에 비판. 권투 시합하듯 글을 쓰는가 하면, 쌍스러운 욕도 거침없이 내뱉고, 자신의 주장을 주먹질하듯 상대방에게 확실하게 말하고, 심심하면 농담에 자기 자랑에 자기 얘기. 으, 정말 못 말려!
서양 철학에 대한, 아니 더 나아가 서양 문화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은 이 책 한 방에 지옥으로 떨어진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총 엠티를 안 가고 동양철학 강좌를 들었다. 그 정도로 상당히 신선한 강의였다. 그 강좌를 통해 서양 철학의 맹점을 깨달았다. 연역법과 귀납법의 맹점. 플라톤에서 비롯된 서양 철학의 이분법적인 독선.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내가 배운 것은 사실상 대부분이 서양 철학에서 비롯된 지식이다. 그런데 그 지식이 불완전하다니! 그렇게 완전하다고 믿었던 지식이.
그 후, 그래도 나는 서양 철학과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버릴 수는 없었다. 서양 철학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아직도 지상에 있었다. 남들처럼 하늘에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데, 오늘 이 책을 읽고 그 존경심은 저 지하 백 킬로미터 아래 암반을 지나 마그마를 지나 유황이 들끓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예수님도 같이. 아, 그렇다고 내가 서양 철학과 예수님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외면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제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았다.
김용옥이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사실상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동양 철학 강좌를 들어 본 사람이라면 다 들어본 내용이고 기독교의 독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누구도 못한 일을 이 책에서 해냈다. 철학을 상아탑에서 일상 생활로 끌어당겼다. 그의 이런 작업에 많은 욕을 해대는 사람들에게 김용옥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철학을 세속화하지 않습니다.
나는 세속을 철학화 할 뿐입니다.
나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철학의 인간화지요.
이런 그의 당당함은 결코 우쭐댐이나 독선이 아니다. 확고한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그가 겸손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에 어떤 문제를 끝까지 파고들려고 노력한 분이 과연 계실는지. 의문이나 의혹을 쉽게 포기하고 거짓 이야기와 거짓 약속에 몸을 맡겨 버린 사람들이나 그를 비난할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비판을 독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다. 그는 기독교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으며 기독교를 믿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종교의 위선을 파헤쳐서 보여주었을 뿐이다.
김용옥이 잘난 척한다고 욕하는 사람이야말로 못난 사람이다. 그는 잘났다. 그는 결코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다. 잘난 사람이 잘났다고 말하는데 그를 잘난 척한다고 말하는 것은 못난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그는 분명 잘난 사람이다.
밑줄 긋기
철학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이러한 폭력과 독선에 끊임없이 도전해 온 양심있는 사람들의 생각의 역사입니다. 정치적 폭력과 종교적 독선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으면서도 죽지 않고 숨쉬어온 인류의 맥박입니다. 69~70쪽
19970126
덧붙임
이 책을 집 근처 기독교 교회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다. 아직도 그 교회 도서관이 해당 교인이 아닌 사람들한테도 개방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그 교회가 소장한 책에는 반 기독교 혹은 기독교 비판 서적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이다. 마치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공산주의 책이 있는 대기업 도서관 같았다.
으, 저 촌스러운 책 표지를 봐라. 무슨 수학학원 교재 같다.
201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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