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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9.03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외로운 소시민의 모습
  2. 2022.09.03 [느림] 밀란 쿤데라 -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랑이 참사랑
  3. 2022.09.03 [철학 이야기] 듀란트 - 유명한 철학자들과 친해지기
  4. 2022.09.03 [굶주림] 크누트 함순 - 배고픈 사나이의 일상
  5. 2022.09.03 [섬] 장 그르니에 - 나의 섬을 보고 싶다
  6. 2022.09.03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 은둔 소설가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7. 2022.09.03 [삶의 진실을 찾아서] 크리슈나무르티 - 삶의 진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8. 2022.09.03 [수상록] 몽테뉴 - 서양 수필 문학의 시작
  9. 2022.09.03 [박교수의 변소 이야기] 박승조 - 변소에 관한 잡다한 지식 모음집
  10. 2022.09.03 [어릿광대의 모험] 에리히 캐스트너 - 욕망에 눈 먼 사람들을 비웃는 광대
  11. 2022.09.03 [주말에 끝내는 프랑스어 첫걸음] 한택수 - 프랑스 어 맛보기의 즐거움
  12. 2022.09.03 [모빠상 괴기소설 광인] 사회적 금기와 윤리의 위선에 대한 비웃음
  13. 2022.09.03 [조선조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연구] 이상희 - 조선 사회의 언론
  14. 2022.09.03 [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 동서양 신화를 교차시킨, 언어 조각품
  15. 2022.09.03 [변명은 슬프다] 권경인 - 사물과 자연 풍경에서 이끌어 낸 잠언
  16. 2022.09.03 [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 미술과 문학은 다정한 형제
  17. 2022.09.03 [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 미국인 공학자가 쓴 연필 이야기
  18. 2022.09.03 [슈퍼연필데생 1, 2, 3] 일본 회회기법연구회에서 펴낸 책
  19. 2022.09.03 [신세대 디자이너를 위한 정밀묘사] 정밀묘사는 자기와의 싸움
  20. 2022.09.03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 길희성 - 에크하르트의 초월
  21. 2022.09.03 [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 책 관련 여러 역사와 재미있는 사실
  22. 2022.09.03 [신곡] 단테 청목 - 서사시의 느낌을 살린 신승희 번역
  23. 2022.09.03 스피노자, 에셔, 바흐 - 수학, 무한, 추론
  24. 2022.09.03 [눈사람] 최승호 - 눈처럼 내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지는 언어
  25. 2022.09.03 [몽유도원도] 최인호 - 설화 '도미의 처'를 소설로
  26. 2022.09.03 [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 초기 명작
  27. 2022.09.02 [가만히 거닐다] 전소연 - 잔잔히 퍼지는 빛
  28. 2022.09.02 다니카와 슌타로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위로하며 안아주는 말
  29. 2022.09.02 [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 이사 39번] 열정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다
  30. 2022.09.02 [백만불짜리 습관] 긍정적으로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하라

[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펴냄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비둘기 사건이 터졌을 때 조나단 노엘은 이미 나이 오십을 넘겼고,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세월을 뒤돌아보며 이제는 죽음이 아니고는 그 어떤 심각한 일도 결코 일어날 수가 없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5쪽)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비둘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잠깐,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시작 부분을 읽어보자. "어느 날 아침의 일이었다.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레고르 잠자는 잠자리 안에서 한 마리의 큼직한 독벌레로 변한 자신을 깨달았다." 일상적인 생활에 익숙했던 그레고르 잠자와 조나단 노엘은 갑작스러운 사건 앞에서 당황한다. 또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면서 고뇌하기 시작한다.

물론 두 작가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문체는 완전히 다르다. 카프카의 문체에는 결코 위트가 없다. 냉소에 가깝다. 독일 작가라는 점과 도시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점에서 같다. 존재의 근원을 파고드는 독일 문학의 전통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영향을 미친 모양이다.

<비둘기>는 한 경비원의 고독과 우울을 그리고 있다. 독자는 그를 통해 거대한 도시와 대중 속에 파묻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조나단은 유년기와 청년기에 불상사를 모두 겪고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파리에서 "길이가 3.4미터이고, 폭은 2.2미터이며, 높이가 2.5미터인" 방에서 혼자서 먹고 자며 은행의 경비원으로 일한다. 그러던 그에게 갑자기 출근길을 방해하는 녀석이 나타난다. 바로 비둘기다. 여기서 비둘기는 바로 조나단 자신의 모습을 똑바로 보게 하는 거울이다.

"새는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누인 채 왼쪽 눈으로 조나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눈, 작고 둥그스름한 원반형이었고, 갈색에 가운데가 까만 그것은 보기에 너무나도 끔찍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머리털에 꿰매어 놓은 단추처럼 보였고 속눈썹도 없는 듯이, 광채도 없이, 그냥 무턱대고 아무런 거리낌없이 끔찍스럽게 무표정한 시선을 밖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 외부의 빛을 몽땅 빨아들이기만 할 뿐 자기 자신은 빛을 전혀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카메라의 렌즈처럼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 살아 있는 흔적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할 눈이었다. 바로 그 눈이 조나단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죽을 만큼 놀랐다."(14-15쪽)

비둘기의 눈을 통해 조나단의 모습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는 끔찍스러운 사람이다. 무표정해서 마치 죽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을 결코 타인에게 들어내지 않는다. 오직 지켜만 본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놀란 것이다. 바로 우리 소시민의 모습이다.

"그에게는 사실 친구도 없었다. 또 은행에서의 그의 존재는 한낱 업무상 비치해 둔 물품 같은 신세라고 말할 수 있다. 고객들은 그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고, 그냥 은행의 부속품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슈퍼마켓이나, 거리에서나,(마지막으로 탔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버스에서도 그의 익명성은 다른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지켜질 수 있었다."(33쪽)

우리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 거대한 사회라는 기계의 부속품이다. 오직 익명성을 보장해 줄 많은 사람들 이외에 아는 사람이 없다.

"빌어먹을, 도대체 나를 왜 또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내가 무엇 때문에 다시 감시를 받아야 되는 거지? 이제는 제발 못 본 척 해주어서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거야? 인간들은 왜 이렇게 남을 못살게 하는 거지?"(33-34쪽)

그나마 그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로카르 부인마저 그렇게 몰아낸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을 의심하고 배척한다.

은행 경비원 조나단은 따분한 근무 시간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쳐다본다. 그저 쳐다 볼 뿐이다. 더 이상의 애정도 관심도 없다. 타인의 삶에 우리는 영원한 방관자다.

"도시에서는 인간들의 시선을 피하려면 빗장과 열쇠로 잠금 장치가 잘 되어 있으며, 칸막이가 된 공간을 사용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55쪽)

그런 우리는 결국 고독할 수밖에 없다.

"조나단은 권총을 꺼내 어디로든지 한방 날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 어려웠다. …… 짓눌러서 숨막힐 것 같은 비둘기빛 청회색의 하늘을 향해 쏘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하늘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납처럼 무거운 캡슐 같은 세상을 부서뜨리고……" (78쪽)

우리는 납처럼 답답하고 외로운 세상에 총질을 하고 싶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세상은 결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만, 이 거대한 도시 대중 사회는 그런 일을 가로막고 있다.

그런 자신의 모습에 방황하던 조나단은 자신의 모습(비둘기)이 두려워 호텔에서 잔다. 자면서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는 비둘기를 날려 버리면서 주인공 조나단의 자살 시도를 없애고 그를 다시 도시의 소시민으로 돌려보낸다.

그 흔한 비둘기에서 도시인의 모습을 묘파한다. 청회색 하늘 아래 고독한 우리는, 비둘기다. 멀리 날고 싶지만 결국 공원에 있는 새집에 살아야 한다. 벗어나고 싶지만 우리는 다시 도시에 돌아온다. 우리는 외로운 소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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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민음사


포스트모더니즘 소설 기법이 독자를 당황케 하거나 즐겁게 한다. 소설 속의 소설. 현실과 가상의 혼합. 시간 질서의 파괴.

아내 베라와 내가 성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단순한 이야기 틀에 나의 소설과 드방 드농의 소설이 교차되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현실과 소설이 뒤엉켜 전개된다.

작중 화자인 나는 소설의 첫머리에 느림의 미학과 매력에 대해서 말한다. 그런 후, 3단계의 느리고 여유 있는 T부인과 기사의 사랑을 다룬 드방 드농의 소설의 전개와 여유 없고 급한 현대인의 사랑을 다룬 나의 소설이 그 이야기 구조상 유사한 동시에 그 사랑의 행위에 있어서는 크게 대조가 되어 전개된다. 작가는 이런 전개를 통해 현대인의 순간적이고 단순한 사랑과 성교에 대해서 비난한다. 또 매스컴에 신경 쓰는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현대인의 즉흥적인 사고나 행동을 춤꾼이라고 하면서 비웃는다.

작중 인물인 내가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에서 갑자기 튀어 나와 "그 다음엔? 그 다음에라니? 그들은 정사를 나눌 것이다, 여러분은 다른 걸 생각했단 말인가?" 하는 부분에서는 독자가 정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하하 웃었다.

이 소설 전체의 분위기는 유머다. 글이 가볍고 웃기다. 특히 성교하는 모습을 독특하고 재미있게 묘사했다.

현대인의 즉흥적인 사랑과 성교에 대한 비판. 너 하고 싶니, 나도 하고 싶어. 그럼 시간 낭비하지 말자구! 이것으로 그만인 현대인의 성교. 또한 무엇 때문에 널 사랑한다는 이기적인 사랑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이해 관계가 없는 사랑이 참사랑이라고 말한다.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강도에 정비례한다."라는 실존 수학 기본 방정식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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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이야기
듀란트
홍신문화사


"철학? 어려워. 골치 아파." "철학책? 으, 재미없어." "철학자? 따분한 사람이지."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속하는 분이라면, 윌 듀란트의 유명한 [철학 이야기]를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철학에 대한 색다른 매력을 느낄 것이다.

철학은 분명,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철학책은 소설책보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다. 철학자는 따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대부분이 소설적이며, 극적이고, 인간적이다.

윌 듀란트의 세계적인 명저 [철학 이야기]는 서양 철학을 철학자 중심으로 소개했다. 글쓴이는 <서론 -철학의 효용에 대하여->라는 머리말을 통해 철학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다.

듀란트는 이 책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베이컨, 스피노자, 볼테르, 칸트, 쇼펜하우어, 스펜서, 니체, 베르그송, 크로체, 러셀, 산타야나, 제임스, 듀이, 이들 철학자의 삶과 철학과 책과 사상을 요약하고 비판했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철학자의 사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출생과 성장 과정과 죽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간략한 전기문이라고 해도 될 듯. 철학자가 그런 사상을 갖게 된 사회적 가정적 배경을 서술하여, 그들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이 단순한 서양 철학 사상사라면, 독자들은 외면했을 것이다. 듀란트는 철학 사상의 요약과 함께 비판을 했다. 그래서 각 철학 사상의 특징과 결점을 모두 보여줘서 맹목적으로 그 철학 체계에 빠지거나 외면하지 못하게 한다.

철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가볍게 철학자들의 삶 이야기로 읽어도 좋으며, 무겁게 각 서양 철학 사상의 분석적 비평으로 읽어도 재미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적인 철학자들의 사상과 인생관을 만나 보길.

1996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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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
크누트 함순 지음
김남석 옮김
범우사


이 소설에는 뚜렷한 사건도 없고 그렇다고 극적 반전이나 이야기도 없으며 플롯도 없다. 배고픈 사나이의 일상생활이 전개될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재미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도저히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묘한 소설이다. 앙드레 지드는 "독자는 이 야릇한 책을 한장 한장 넘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손가락 가득히, 마음 가득히 피와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라고 극찬했다.

전 4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간단하다. 가난한 사나이가 배고픔에 허덕이며 크리스티아나 거리를 헤매다가 외국의 배를 타고 그 곳을 떠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굶주린 사나이이다. 가난하지만 선량하고, 지적이며 감상적이고, 비정상적인 순수함을 간직한 사나이. 그 사나이는 크리스티아나 거리를 헤맨다. 가난하지만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배고픔에 굴하지 않고 지내려 한다. 이런 가난과 배고픔의 상황에서 주인공은 불안과 갈등에 직면해서 변덕스럽고 난폭한 행동도 하지만 다분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배고픔에 도덕적 갈등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묘한 감동을 받았다. 상당히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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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


나의 섬을 보고 싶다. 누구를 위해서 사는 내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 사는 내가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해 사는 나. 진정한 나.

유난히 한 문장이 나를 사로잡는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 섬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100쪽)

사람들은 고독을 참지 못한다. 고독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데, 고독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는데 말이다. 고독이란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버릇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없으니 고독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조용한 시간, 텅 빈 공간에서 나 자신을 보는 일. 먼 산을 보는 것처럼, 수평선 끝에 있는 섬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나 자신을 멀리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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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이 희곡 [콘트라베이스]가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무명이었다. 글을 쓰기는 계속 쓰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를 알아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의 소설 주인공처럼 말이다.

작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입을 통해, 자신을 얘기하고 있다. 소시민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희곡 마지막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5중주곡 숭어가 어느 채광업자의 청탁을 받고 쓴 작품이듯,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도 어느 작은 극단의 제의로 쓴 글이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으리라. 음악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 놓은 것은 그가 역사학을 전공했으니, 그 방면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쓸 수 있었겠지.

술주정하듯 이 얘기 저 얘기를 비틀비틀 풀어 놓으면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모습은 은둔 소설가 쥐스킨트와 겹친다. 연주자가 완벽한 방음벽을 장치한 방 안에서 음을 하나를 연주하듯, 작가는 조용한 방에서 단어 하나를 쓰는 것이다. 자신의 악기 콘트라베이스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는 연주자의 절망감은 자신의 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는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는 것을 깨닫고 절망하는 작가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이 희곡에 작가의 감정이 솔직하게 드러났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술을 마시고 넋두리를 하듯 그렇게. 쥐스킨트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가면을 쓰고 자기 얘기를 한다. 어쩌면, 소설 쓰기는 그런 가면 놀이가 아닐까. 아무리 짙은 가면을 쓴다고 해도 자신의 내면은 숨길 수 없다.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는 진실 게임.

작성일 : 2002년 10월 23일

일상적인 소재로 아주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독자를 감동시키는 묘한 글재주의 소유자, 파트리크 쥐스킨트. 마치 동네 옆 집 아저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수줍게 말하듯 글을 쓰는 이 소설가의 소설은 아주 매력적이다.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남성 모노드라마인 [콘트라베이스]는 소시민의 감정과 삶을 정확하게 그리고 있다.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국립 오케스트라 단원이 콘트라베이스를 켜며 독자에게 신세 타령을 시작한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집단에서 소외당하지만 꼭 필요한 콘트라베이스를 켜는 주인공. 그는 자신의 삶에 불만이지만 동시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바로 평범한 우리의 모습.

가장 돋보이는 오페라 가수를 사랑하는 그는 가장 눈에 띠지 않는다. 그는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과감히 일상을 거부하려 한다. 누구나 꿈꾸는 일탈(逸脫)의 소망.

그의 전공 역사학이 소설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장편소설 [향수]에서는 그의 해박한 역사 지식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콘트라베이스]도 예외가 아니라서 숨겨진 음악사의 재미있는 단면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즐거운 읽을거리다.

작성일 : 1998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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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진실을 찾아
크리슈나무르티
홍신문화사


삶의 진실
나의 길을 가는 것

이 책에 있는 그 어떤 구절도 인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그의 자유로운 사상에 공감을 했다. 돈, 명예, 욕망, 질투, 이념, 종교, 사상, 철학, 그 모든 구속을 벗어나 자신 안에 있는 진실을 찾는 노력이 진정한 삶이리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삶의 진실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깨달았다. 누구를 따라하거나 질투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는 나의 길을 가면 그만이다.

작성일 : 1996년 8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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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록
미셸 드 몽테뉴 지음
권응호 옮김
홍신문화사


고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쓰여진 책을 읽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매력적이다. 우선, 쓰여질 당시의 사회 문화적 상황을 글에서 읽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물론, 이러면 무슨 사료(史料)처럼 책을 읽는 것 같지만. 다음으로, 옛날에 쓰여진 책의 글이 마치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생선을 회쳐먹는 맛처럼 신선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 이 말은 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진실이다. 모든 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든 고전, 특히 서양 고전이 그렇듯이 몽테뉴의 <수상록>은 평범한 한국 독자가 술술 재미있게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다.

그래도 처음 쓰여진 수필인데 좀 궁금하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했다.

사실 유명한 서양의 고전 사상서들, 예를 들어 파스칼의 <팡세>나 베이컨의 <수상록> 따위는 첫 쪽부터 마지막 쪽까지 읽을 필요는 없는 책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과감하게 뛰어 건너 읽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일관된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 소재 중에서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좋다. 파스칼의 <팡세>에는 참으로 좋을 글귀가 많다. 종교와 관련된 어려운 내용은 안 읽어도 크게 문제될 건 없다. 또, 베이컨의 <수상록>도 그렇다. 특히 '학문에 대하여'라는 부분은 학문 예찬론으로 참 좋은 글이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고전 중에 고전이다. 서양 수필 문학의 시초(始初).

몽테뉴(1533~1592)는 르네상스 시대의 프랑스 수필가이며 철학자이고, 수필을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사람이다. 요건 다들 아시겠고.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보르도 시의 재판소 평의원으로 지냈고 가까운 친구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후 사색과 독서를 즐기기 시작했는데 주로 라틴 고전을 섭렵하여 책 여백에 주해와 독후감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몽테뉴는 '독자들에게'라는 글에서, "독자들이여, 나 자신이 곧 이 책의 소재인 것이다. 내가 이토록 경박하고 부질없는 일을 저질렀으니, 독자들에게는 소일거리나 될지 모르겠다." 라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신변잡기를 솔직하게 적는 시도 자체가 그 당시로서는 상당히 경박한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수상록>을 읽다보면, 역시 작가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오는 편이다. 자신은 기억력이 좋지 못한 편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부분과 담석병에 고생한 이야기 따위가 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과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솔직하게 적고 있다.

<수상록>은 양심, 실천, 부성애, 나이, 언어의 허영됨, 판단력의 불확실성, 옷 입는 습관, 절도, 우정, 아이들의 교육 등 다양하게 다루고 있지만, 작가의 일관된 두 가지 생각이 있다.

첫째,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많이 다루고 있다.

둘째, "내 이성에는 매일 돌발적인 충동과 동요가 있다." 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성에 회의적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이성을 무시한 것은 아님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했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합리주의 사고와 연결된다.

<팡세>와는 달리, 이 책에는 종교에 관한 작가의 언급이 거의 없다. 중세의 확고한 신학적 신념 체계가 무너져서일까.

작가를 소개하면서 이미 말했는데, 몽테뉴는 라틴 고전을 섭렵했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다. 아마도 작가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서양 문화에 대한 동경 때문인 것 같다. 서양인의 뿌리는 역시 그리스 로마 문화다. 정신적 고향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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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교수의 변소 이야기
박승조
신광문화사


이 책을 쓴 박승조 씨는 동아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로, 수질과 변소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어 변소에 관한 여러 잡다한 지식들을 모았다. 음식 문화와 함께 화장실 문화도 오래되었는데도, 이 쪽에 대한 자료는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 덕분에 화장실 문화에 대한 잡다한 지식들을 얻었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인데, 책표지에 중국인이 구식 화장실에서 옷을 벗고 웅크리고 앉아 대변을 보는 모습을 그렸는데,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수세식 변기 하나만 달랑 그려 놓는 것이 더 보기도 좋고 깔끔하지 않았을까. 윽, 난 이만 화장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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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의 모험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발터 트리어 그림
문성원 옮김
시공주니어


이 책은 독일 민담을 에리히 캐스트너가 적절하게 편집한 것이다. 머리말과 맺음말을 더한 듯 보이고 현대에 맞게 적절하게 글을 더하고 뺀 듯 하다. 꽤 많은 얘기가 전하는데, 그 중 열두 편을 골랐다.

'틸 오일렌슈피겔'이라는 이름의 광대 이야기다. 시대 배경이 중세다. 그 당시에 이 이야기를 적은 책이 금서로 묶였다. 종교, 교수, 기사 집단에 대한 풍자가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에라스무스의 '광우예찬'처럼. 풍자는 생명이 길다.

사람들이 광대를 보고 웃는 게 아니라, 광대가 사람들을 보고 웃는다. 거꾸로네. 그렇다. 광대가 세상 사람들의 바보짓을 비웃는 것이다. 광대 틸 님께서 더러운 세상에 대고 시원하게 방귀 한번 날려 주시는 것이다.

'틸'은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유쾌하고 상쾌하며 발랄하면서도 황당한 장난을 친다. 온갖 곳과 온갖 직업을 다 해 본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어느 직장에도 정착하지 못한다. 이는 주인공 '틸'의 잘못이 이나라 사람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광대의 짖궂은 장난에 속은 사람들은 보면, 다들 자기 욕심에 자기가 빠진 탓이다. 그러고서 광대에게 화를 내는 것이다. 사실 요즘도 흔하지 않은가. 이 땅만 사면 며칠 후에 1억을 벌 수 있다며 꼬임에 빠지는 인간이 얼마나 많으며, 다단계 회사나 경마장에서 오늘도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주인공을 포함해서 각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그리 자세한 편이 아니다. 이 단점은 발터 트리어의 그림이 보충한다. 이 부드럽고 소박한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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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끝내는 프랑스어 첫걸음
한택수 지음
김영사


김영사에서 펴낸 '주말에 끝내는 외국어 첫걸음' 시리즈는 외국어 맛보기 교재다. 따라서 이 책에 어학 교재에서 모범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본격적인 외국어 학습을 위해서라면 다른 책을 골라야 한다.

글쓴이의 수다와 익살스러운 사진으로 꾸몄다.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기분보다는 누구랑 같이 수다를 떠는 기분이다. 그러면서 알게 모르게 하나씩 하나씩 익혀 나아간다. 중간중간에 스페셜 리포트는 휴식 시간이다. 동네 미장원에서 이웃 사람들끼리 수다를 떨면서 잡지를 읽는 기분인 것이다.

총천연색 편집이라서 눈이 즐겁다. 다만 너무 즐거워서 글은 안 읽고 사진만 계속 보는 사태가 종종 벌어진다. 정신이 산만할 수도 있다.

정신을 집중해서 공부하려면 맨끝 부록만 보면 된다. 본문 내용을 정리해 놓았다. 우리말과 해당 외국어를 표시해 놓았다. 본문과 달리, 발음을 우리말로 표기하지 않았다.

녹음 테이프는 호들갑 떠는 여자 성우의 설명과 원어민 아저씨의 세 번 반복 발음으로 구성했다. 테이프마저 동네 미장원 분위기인 것이다.

해당 외국어를 처음 대하는 분이나 해당 외국어 학습에 어려움과 부담이 많았던 분이라면 최고의 책이다. 반면, 해당 외국어를 어느 정도 아는 분한테는 그다지 권할 책은 아니다.

2007.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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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빠상 괴기소설 광인
모빠상
장원

<여자의 일생>의 작가 모빠상(Guy de Maupassant)이 쓴 25편의 단편 괴기소설들. 그가 처음 발표했던 소설부터 마지막에 집필했던 소설까지 연대순으로 작품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모빠상의 동생은 정신병으로 죽었다. 모빠상도 편두통과 시신경장애에 시달리며 환각에 사로잡혔다. 모빠상은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말년에는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끝내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런 작가의 정신병 편력은 작품에 그대로 녹아 있다. 정신병이 깊어감에 따라 작품도 점점 괴상해진다.

모빠상은 불경스러운 작문을 했다는 이유로 신학교에서 쫓겨났다. 그 이유는 이 책에 수록된 작품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살인, 죽음, 복수, 시체, 최면술, 투명 생물체, 불륜의 사랑, 변태적 행위, 유령,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이런 소재로 윤리, 제도, 금기 사항 등을 과감하게 뚫었다. 작품에서는 그런 작가에 대한 사회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누구한테 들었다면서 이야기를 전개하거나 작중 화자가 정신병자라는 것을 밝힌다.

몇 작품만 간단하게 소개하겠다.

<박제된 손> : 최초의 단편소설. 살인을 다루고 있다.

<고인> : 불륜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괴물들의 어머니> : 낙태 문제를 꼬집고 있다.

<머리카락> : 한 줌의 여자 머리카락에서 환상의 사랑을 체험하는 남자. 독특한 문체와 매력적인 글 전개가 돋보이는 걸작. 인간의 상상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모빠상의 상상력과 문장력이 압도적이다. "인간의 정신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이 단편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 사람?> : 어느날 문득 자신의 공간과 몸을 송두리째 타인에게 점유된다. 인간의 자의식과 고독을 심리적으로 완벽하게 묘사. 친구에게 왜 자신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가를 밝히는 편지 형식으로 글이 전개한다.

<오를라> (제1판) : 눈에 보이지 않고 우유와 물만 마시며 물건을 이리 저리로 옮겨 놓는 투명 생물체 오를라.

(제2판) : 오를라와 싸우는 나의 일기.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이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누가 알아?>는 가구가 움직이고 사라지고 다시 제자리로 오는 내용으로 그런 특징은 극에 달한다.

사회적 금기 사항과 윤리의 위선에 대한 비웃음이 작품 곳곳에 보인다. 탁월한 심리 묘사! 마법에 가까운 글의 전개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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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현상연구
이상희 지음
나남출판

* 조선 사회를 언론으로 접근하여 살펴 봄
* 이율곡의 언론 사상
* 한국 현대대중문화 비평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신문방송학(언론학, 또는 커뮤니케이션학) 전공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위해서이다. 커뮤니케이션학의 기초 지식을 읽으라고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책은 커뮤니케이션학의 기초 지식이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내용이다. 민요를 한 곡도 부를 수 없는 한국 사람은 없다. 탈춤이 뭔지 모르는 한국 사람이 있을까. 또 민화는.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이 세 단어는 국사 시간에 지겹게 들어온 단어다. 시험에도 무진장 많이 나왔던 조선조 시대의 언론 기관이다. 순문, 구언. 이것도 고등학생 시절 국사 시험 답안지에 여러 번 썼다. 또 한국 사람 치고 사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광조, 이율곡. 너무나 유명한 조선 시대의 사림(士林)들이다. 

이 책은 앞에 말한 사항들을 언론학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수록된 글은 논문이기는 하지만, 오히려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나 조선 시대의 사회 현상을 언론학적 접근법으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조선 시대에 대한 민속학적, 역사학적, 문학적 접근은 이미 많이 다루어졌고 한국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졌다. 그러나 언론학적 접근은 거의 없는 듯하다. 

다섯 편의 논문을 수록했다.
1. 조선조 민중예술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2. 조선조 사회의 제도적 및 사회 문화적 언로 
3. 조선조 사림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성종, 연산, 중종대를 중심으로 
4. 이율곡의 커뮤니케이션 사상 
5. 한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문명비판론적 연구 -해방에서 유신체제까지 

다섯 번째 논문이 책의 제목과는 동떨어진 것 같다, 하고 독자들은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예외적인 논문이기는 하지만 시대 연장선상에서 살펴본다는 점에서 넣었다고 저자는 '책머리에'에서 말하고 있다. 다섯 번째 논문은 조선 시대가 아닌, 해방 후 현대 한국 사회의 대중문화현상을 살펴보고 있다. 이 논문도 좋은 읽을 거리다. 매스컴과 대중문화에 지나치게 중독이 된 현대인이 꼭 읽어야 할 글이다. 대중문화의 참모습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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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사회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행복한책읽기


로저 젤라즈니는 SF와 신화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신화 SF' 작가다. 이 작품 <신들의 사회(본래 제목은 '빛의 왕')>은 그의 그런 재주가 최고조로 이른 명작이다. 사람들은 이 소설에 대해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화를 SF로 끌어 내렸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SF로 다시 써서 신화의 해석을 풍요롭게 했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신화를 SF로 읽는 재미는 색다른 맛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소설을 누구에게나 선뜻 권하긴 주저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젤라즈니를 읽을 때 바탕에 깔린 신화를 알지 못하면 정말 재미없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이게 SF인지 신화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이 모호함을 기꺼이 받아들여 즐길 수 있다면, 당신은 젤라즈니의 열렬한 독자가 될 것이다. 루드라의 화살을 열추적식 미사일로, 야마의 우레 전차를 제트 추진식 비행 기계로, 이런 식이다. 그러나 SF 아이디어가 자세히 묘사되진 않는다. 그냥 기계 정도로 서술하고 그친다. 자세히 묘사할 필요도 없지만.

이 서양 작가는 동양 독자를 장난스럽게 웃긴다. 싯다르타가 숙소에 들어가는 하는 행동이란, 정말 코미디다. 부처는 여관 주인장한테 부르고뉴(포도주)를 받아 마시질 않나. 소년한테 피리로 푸른 다뉴브 강(왈츠)을 연주하게 하지 않나. 샘과 쿠베라가 아일랜드식 권투를 하는 장면은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다.

<신들의 사회>가 고대 인도 신화와 불교를 종횡무진 수놓고 있다. 이 책이 환생과 부처의 생애를 기본 골격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상의 진수를 담아낸 소설은 아니다. 이야기를 이끄는 힘은 기독교 사상이다. 신들의 전쟁은 그리스 신화랑 닮았고, 지옥은 단테의 <신곡>을 연상시키며, 싯다르타가 자신의 육체를 빼앗은 타라카한테 일장 연설을 하면서 내린 결론은 서구 기독교 사상의 죄악감이다. 신들의 사회에 대항하는 샘의 촉진주의는 서양의 종교 개혁 운동과 비슷하다. 샘은 부처의 탈을 쓴 프로테스탄트다. 자동 기도 기계에 돈을 넣고 선업을 쌓아야만 좋은 육체와 계급(카스트)으로 환생한다. 신들은 이 기계로 부를 독점한다. 자동 기도 기계는 면죄부 판매의 또 다른 비유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이 작품은 동서양의 역사와 신화와 문화가 교차되어 현란하게 조각되었다. 이 조각품에 대한 느낌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읽다가 어지러워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스꺼울 수도 있고, 눈부시게 아름다워 황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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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은 슬프다
권경인 지음
창비(창작과비평사)


권경인 시집 [변명은 슬프다]를 읽었다. 시집은 백 년만인 것 같다.

딱히 재미있는 시는 아니었다. 딱히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마음에 든 몇 부분을 속으로 읊조려 보았다. 그럼에도, 난 시에 집중할 수 없었다. 사물이 잠언과 뒤섞인 시를 읽는 건 썩 즐겁지 않았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아서, 이해하기 어려운 추상화를 보는 듯했다.

권경인의 시는 잠언처럼 읽혀진다. 해서, 진부하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종종 그런 진부함을 극복하고 성공한다. 사물과 자연 풍경에서 사람과 삶의 의미를 끌어내는 솜씨가 번쩍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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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의 만남
이가림 지음
월간미술


미술과 문학,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요. 잘 살펴보면 문학가들 중에 미술가였거나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분이 꽤 됩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책을 보면 국내 문학가들 중에 화가였거나 화가 지망생이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이 책은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 프랑스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 문학과 프랑스 미술에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읽기가 썩 매끄럽진 않아요. 그래도 유명한 사람 몇몇이 보여서 흥미를 돋웁니다. 피카소, 사르트르, 콕토, 아폴리네르, 고흐, 졸라, 드가, 발레리, 모네, 바슐라르, 플로베르, 프루스트, 보르레르. 익숙한 이름이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차례를 보고 해당 이름이 있는 글만 읽으면 됩니다. 주욱 이어진 글이 아니거든요. 문학가와 미술가를 짝짓어 열여덟 쌍에 대해 간략히 썼습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문학가와 미술가, 그들의 예술에 대한 해설이자 전기문이죠. 재미있습니다. 줄넘기처럼 서로 다른 예술 장르와 넘어서 왔다갔다 하며 노는 기분이랄까. 아아, 이게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허나 두 장르가 서로 완벽하게 연결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요. 비슷하네, 그럴 듯하네, 그렇게 느끼면 돼요. 글쓴이의 해석을 무턱대로 맞아 맞아 하며 따라할 건 없다고요.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보는 재미를 추구하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이 책 읽고 있으면, 역시나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그 말이 생각나서 자꾸만 웃음이 나와요. 진지하게 예술을 논하는 글이긴 하지만요.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 예술가라는 동지 의식이 부럽네요. 형제 같은 분위기랄까. 그런 게 있네요. 소설가 졸라가 화가 세잔에게 보낸 편지를 보세요.

"생각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면서 붓을 천장에 집어던졌다지? 왜 그토록 조급하고 왜 그토록 변덕이 죽 끓듯 하지? 자네가 여러 해 동안 그림을 공부하고, 또 수천 번 그림을 그렸는데도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그건(책에는 '그것'으로 인쇄되어 있음.) 이해하겠네. (중간 생략) 자네는 미술이나 한번 해 볼까 하면서 망설이는 것이 전부였지 않나. (에, 또 중간 생략) 용기를 가지게.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려면 여러 해 동안 참으면서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게." 84쪽

미술이든 문학이든 중요한 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죠. 서로 다른 표현 수단임에도 통하는 구석이 있는 건 바로 그 시선이죠. 섬세하고 독창적인 관점. 그게 예술가의 눈입니다. 샤르댕과 프루스트는 일상 경험의 깊은 느낌을 표현하고자 노력했죠. 서로 같은 곳을 바라 보았어요. 표현만 그림과 글로 갈라졌습니다.

아래 샤르댕의 그림을 보세요. 참, 책에는 이 그림보다 더 나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건데 아래 부분이 짤렸어요. 어쨌든 제가 말하는 부분은 나오니까.


과일의 색감과 빛깔이 참 따사롭죠. 사물의 모습에 화가의 느낌이 강조된 거랍니다. 아무나 저렇게 못 그려요. 엄청 노력했겠죠. 프루스트는 마들렌 과자에 샤르댕과 비슷한 감정을 더하죠. 그 과자 맛을 느끼자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고 황홀한 기쁨에 빠져들죠. 두 예술가 모두 일상적 사물에 특별한 느낌을 예술 감상자한테 아로새깁니다.

도판은 컬러고요. 보기 좋을 만큼 큽니다. 각 인물 사진은 주로 흑백입니다. 사진이 없는 분은 자화상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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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홍성림 옮김
지호


미국인 공학자가 쓴 연필 이야기다. 소로가 문필가 이전에 연필 제조자였으며 뛰어난 공학자였음을 설명했다. 연필은 소재일 뿐, 정작 글쓴이 헨리 페트로스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공학의 의미다. 

육각모가 가장 인기 있는 이유는 나무를 가장 경제적으로 써서 값이 싸고 둥근 연필과 달리 잘 구르지 않기 때문이란다. 삼각형은 손에 쥐기 좋지만 나무를 많이 낭비하기 때문에 값이 비싸다고.

헤밍웨이는 연필 두 자루 정도는 닳아 없어져야 하루 일을 충분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단다. 나는 뭐하고 있는가.

작성일: 2007.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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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연필데생
정은주 옮김/조형사
슈퍼연필데생 2
백경원 옮김/조형사
슈퍼연필데생 3
신내경 옮김/조형사


야마모토 히데코가 대표로 있는 회화기법연구회에서 집필했다. 국내에 들여 오면서 번역하고 편집했다. 알라딘에 2권과 3권은 한국 사람이 지은이로 나온다. 틀렸다. 모두 일본 사람들이 쓴 책이다.

1권을 읽어 봐도 감이 잘 안 와서 2권을 읽어 봤는데, 그제야 느꼈다. 올해 들어 그림을 그려 보려고 여러 책을 읽어 봤으나 죄다 효과는 없었다. 이 책은 내 불만을 꼭 집어서 풀어냈다. 잘 보면 잘 그릴 수 있다라는 소리와 열심히 계속 하면 그릴 수 있다는 소리. 헛소리. 정말 제대로 그림 그리는 방법을 터득하고 싶다면 이 책들을 보라. 이제야 당신은 그림 그리기가 뭔지 몸으로 체험할 수 있으리라. 물론 직접 따라 그려 봐야한다.

작성일 : 2007.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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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디자이너를 위한 정밀묘사
이재수 지음
학문사(학문출판주식회사)


전반부는 이론적인 얘기가 많으나 중반부와 후반부는 실제 정밀 묘사 방법과 그 예를 설명했다.

이재수는 정밀 묘사에서 진정으로 얻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라 했다. 정확히 관찰하고 제대로 묘사를 해 내는 일이 단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넘어 정신 수양이라는 얘기다.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카메라 사진이 넘치는 시대에도 정확한 관찰과 끈질긴 노력은 여전히 고귀한 자질이다.

작성일 : 2007.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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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 사상
길희성 지음
분도출판사


중세 신비주의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언제부터 엑카르트로 표기했는지 모르겠군. 뭐가 맞는 거야?)의 사상을 요약하고 해설하고 해석했다. 길희성은 에크하르트 전문가들의 해석을 적절히 반박하면서 자기 생각을 내놓았다.

에크하르트의 초월 개념은 불교 사상(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과 통하면서도 여전히 기독교 성경의 핵심(우리는 신의 형상을 닮았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라.)에 자리잡았다.

에크하르트는 한때 이단으로 몰렸고 지금도 이단의 혐의를 강하게 받는다. 기독교의 타락이 심할수록 이 신비주의자의 말은 더욱 진실로 들린다. 국내에 많지는 않지만 몇몇 논문이 나올 정도로 그는 이제 현대의 논의로 들어왔다.

우리에게 친숙한 실존주의 사상도 알고 보면 이 사상가의 생각에 상당히 많은 빚을 지고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다.

에크하르트는 스피노자와 닮은 구석이 많다. 크게 보면 거의 같다.

작성일 : 200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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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꽂힌 책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정영목 옮김
지호


삽화를 주의깊게 봤다.

옛날 서양 도서관에는 책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단다, 오늘날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되지만. 책이 처음이 눕혀서 꽂혔다고. 그러다가 세워 꽂으면서 더 많은 책을 수납할 수 있는 책꽂이로 발전했다. 공학의 발전이란 참 실용적이다. 몇몇 서점에서 책꽂이 제일 밑이 경사진 것은 앉아야 책의 제목을 알아 볼 수 있는 불편함을 없애기 위함이다.

대영박물관은 열람실이 원통형(돔형) 구조인데, 이는 불이 났을 때 번짐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오늘날 신문의 짧은 글을 '칼럼'이라고 부른다. 이는 옛날 서양에서 두루마기에 글을 쓸 때 뒤 종이 받침대의 길이를 단위로 쓴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 길이가 바로 '칼럼'이었던 것이다.

부록 '서가의 책 정리'를 재미있게 읽었다. 어찌나 웃기고 공감이 가던지.

나는 책 정리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책장 정리는 일종의 레고 블록 쌓기 놀이랑 비슷해서 즐겁다. 논리력과 공간 지각력을 키운다. 이 책을 저기에 두며 공간이 더 생기고 저 책을 여기에 넣으면 주제가 이어지고. 30초면 판단이 선다. 소장한 책이 오십 권을 넘지 못하기에 책 정리 고민하는 사람이 내겐 사치스러워 보인다.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책이 책장을 넘칠 정도가 되면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로 종종 준다. 가끔 다시 뺏어오기도 한다. 좋은 책을 읽으려면 사악해야 한다. 착한 사람은 좋은 책 다 빼앗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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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단테 지음
신승희 옮김
청목(청목사)


국내에 여러 출판사에서 여러 모습으로 나왔다. 내가 갖고 있는 책은 청목에서 펴낸 1992년판이다. 여의도 근처에서 마침 할인행사를 하기에 무작정 집어 들었던 책이다. 재조정가라고 값 3000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신승희 번역은 서사시의 느낌을 살렸다. 자세한 이해를 돕는 주석을 많이 달았다. 전부 100곡이다. 곡 시작에 내용 요약을 붙었다. 처음에는 요약을 보고 주석은 무시하고 본문은 건성으로 읽었다. 요즈음 요약은 안 읽고 주석을 꼼꼼하게 챙겨 읽는다. 본문을 3행 시로 천천히 되새기며 읊조린다.

예전에는 무척 읽기 까다로웠는데, 이제는 너무나 매끄럽게 읽힌다. 꼭 내 얘기를 읽고 있는 기분이었다. 완벽한 구조와 간결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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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B.스피노자 지음/서광사

M.C. 에셔, 무한의 공간 - 10점
모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외 지음, 김유경 옮김/다빈치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 글렌 굴드
바흐 (J. S. Bach) 작곡, 글렌 굴드 (Glenn Gould) 연주/소니뮤직(SonyMusic)


바흐, 스피노자, 에셔. 서로 각기 다른 분야의 인물이다. 그런데도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수학의 매력에 빠졌다. 거기서 무한을 느꼈다. 그 신비로운 무한 우주에서 열정으로 창작했다.

바흐에게 음악은 우주이자 신이었다. 음을 규칙적으로 정교하고 조화롭게 배열하는 일이야말로 신을 느끼고 찬양하는 행위였다.

스피노자에게 철학은 우주이자 신을 표현하는 언어였다. 신은 무한자다. 자기 원인이다.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는 오직 신이다. 신에서 끝없이 추론한다.

에셔의 그림은 끝없는 패턴을 무한하게 잇는다. 끝없는 질서 속 무한 공간을 나타낸다. 

이들의 창조물은 불멸이 되었다. 특정 시공간을 표현한 작품들과는 다른 지위에 있다. 작품에 우주의 영원한 질서를 표현했기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보편성을 획득했다.

바흐의 골트베르크 변주곡. 스피노자의 에티카. 에셔의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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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최승호 지음
세계사


첫 부분 '자서'가 마음에 들어 끝까지 읽었다.

최승호는 눈 내림, 사라짐, 녹아 버림에 대해서 상상한다. 시어는 이런 모습들에 대한 상상으로 펼쳐진다. 눈 내림은 따스함으로, 사라짐은 죽음으로, 녹아 버림은 허무로 발전한다. 그의 시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그 이후가 없다는 점이다. 거기서 끝이다. 시어들이 더 나아가지 않고 갇혀 버린다. 왜 더 나아가지 않을까.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마치 세상의 끝을 느낀 듯한 절망감에 빠진다. 죽음 이후로 상상할 수 없어서 그런 걸까. 허무 이후로 상상할 수 없어서? 이것이 삶의 한계일까.

재미있다. 불교와 도교가 세태풍자와 언어유희로 표현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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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도원도
최인호 지음
열림원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는 그의 장편소설 <왕도의 비밀>의 한 부분으로 있던 것으로, <삼국사기>에 있는 '도미(都彌)의 처(妻)' 이야기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있는 '도미의 처' 이야기는 상당히 짧다. 작가는 그 짧은 이야기를 현대 소설 문체로 약간 길게 늘이고 멋진 결말을 덧붙였다.

정절(貞節)을 끝까지 지키는 부부. 이 이야기를 꼭 유교주의적 발상이라고 몰아 세울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굳게 믿는 부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최인호는 "아름답고 피처럼 절실한 사랑"이라고 격찬했다.

우리나라의 신화/설화를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소설로 만드는 작업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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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문예출판사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대표작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처럼 풍자와 유머가 보인다. 개인적인 감상인데, 죽기 직전에 터뜨리는 웃음 같아서 소세키의 풍자와 유머가 불편하다. 

대쪽같은 성격의 교사가 시골 학교에 부임하면서 교감을 비롯한 이기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다투다가 결국 도쿄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소설 쓰는 기본을 배울 수 있었다.

첫째, 복잡한 성격의 현실적인 인물보다 단편적인 성격의 소설적인 인물을 창조한다.

둘째, 등장 인물을 독자들에게 쉽게 알리는 것은 이름보다는 별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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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거닐다
전소연 지음
북노마드


전소연은 피사체에 내려앉은 빛의 감촉을 잡아내는 데 귀신 같은 솜씨를 보인다. 놀랐다. 빛을 잘 찍는 사람을 몇몇 봤긴 했으나, 그 대상이 이런 일상 생활인 경우는 드물었다. 사진으로 빛을 이토록 환상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하다니.

혹시 인쇄 과정에서 부린 속임수가 아닐까 싶었는데, 너무 잘 찍혀서 의심스러웠으니까, 작가의 홈페이지 www.teeyang.com 에서 다른 사진을 보니, 아니다. 작가의 개성이 정확히 죄다 똑같이 찍혀 있다.

이런 재능은 노력해서 따라잡을 게 못 된다. 구도라면 모를까, 빛의 느낌은 모방해서 얻어낼 수는 표현력이 아니다. 혹시 사진기를 좋은 거 쓰면 되지 않을까? 전소연 씨 사진기 뭐 쓰세요? 아서라. 알면서 묻냐. 기계가 아무리 좋아도 한계가 있는 법. 

잔잔한 빛이 일상을 이토록 아름답게 보여주다니. 운율이 멋진 시처럼 빛이 샤르르 퍼지는 사진은 매혹적이다.

구도는 대체로 평이하나 그렇게 해서 피사체를 무척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사체를 보드랍게 매만진다.

글은 솔직하나 탁월하진 않다. 일상의 소소한 감상 수준에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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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이레


[무엇이든 대답해주는 질문상자]는 인터넷 신문 호보일간 이토이 http://www.1101.com 에 올라온 여러 질문과 그에 응했던 답변을 모은 책이다. 수많은 것들 중에 64개를 골랐다. 

질문은 뭘 먹느냐는 것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질문자는 이제 말을 막 시작한 아이부터 갱년기에 접어든 주부에 유명 연예인까지 많기도 많다. 

꿈을 이어서 꾸는 방법은? 우주인이 정말 있나요? 왜 날마다 목욕을 해야 하죠? 사람은 왜 죽나요? 이처럼 이 시인에게 하는 질문은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하찮은 것도 있다. 이에 대한 대답도 역시 그렇다. 때론 피식 웃게, 때로는 심각하게, 때때로는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의미가 없는 질문에 의미가 없는 대답을 했을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

대답을 멋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말의 예술이랄까. 내가 질문을 스트라이크 존에서 훌쩍 벗어나게 높이 혹은 낮게 던져도 결국 스트라이크로 잡아주는 포수처럼 말이다. 내가 아무리 멍청한 질문해도 나무라지 않으며 토닥토닥 위로하고 쓰다듬으며 지혜롭게 대답하는 감성이랄까.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가 그런 사람이다. 무척 태평스럽게 말하는 듯이 보이나, 잘 들여다 보면 절망했던 시절의 아픔이 답변들 사이에 힐긋힐긋 보인다. 오늘날 시인으로 살며 시를 쓴다는 것은 절망을 끌어안고서도 자살하지 않으려는 필사의 작업이다. 시만 써서는 당장 죽지 않는 게 용하니까. 허나, 그 무시무시한 각오를 일반인들한테 보일 필요는 없었으리라. 현명한 시인이다.

이 책에서 당신을 위로해줄 대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하나쯤은 꼭 있으리라. 마음이 답답하다면 이 책을 펴 보라. 잠시나마 상쾌해지리라. 가볍게 읽히지만 무겁게 내려앉는 감정의 재미를 맛보길 바란다. 

참, 곁들인 그림체도 마음에 든다. 에다 나나에 씨의 솜씨다. http://www.nanae.or.tv 여기에 가면 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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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기적 같은 피아노이사 39번
조나 윈터 지음
정지현 옮김
배리 블리트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그림책이다. 그림이 부드럽다. 글쓴이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이사를 그렇게 많이 했다면, 과연 피아노는 어떻게 옮겼을까. 여러 문헌과 자료를 통해 상상력으로 그 상황을 재현했다. 보고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난다. 요즘 나오는 어린이용 위인전은 예전과 참 많이 다르군. 위대한 업적을 나열하기보다는 위인의 열정적인 삶을 친근하게 그려내고 있으니. 

베토벤은 이사를 자주 했다. 주변 사람들 항의 때문에, 또 본인 스스로가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고 전한다. 귀 먹은 작곡가가 더듬더듬 조금씩 치는 피아노 소리를 참아내기란 쉽지 않았겠지. 가끔은 완성곡을 가장 먼저 듣는 행운을 얻기도 했겠지만. 반대로 베토벤 자신도 민감한 편이라서 창작을 방해하는 자극이 있으면 떠나야 했으리라. 

베토벤에게 피아노는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었으리라. 이사의 어려움 따위를 생각하며 피아노를 귀찮게 여겼다면, 거의 평생 내내 피아노 소나타를 무려 32곡이나 만들 수 있었겠는가.

사랑은 어려움을 극복한다. 정말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이사 39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 사랑은 그가 자살하려는 욕구마저 잠재웠다.

열정적인 삶,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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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불짜리 습관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서사봉 옮김
용오름


부자가 되는 방법이나 인생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설명한 책을 읽을 때마다 허무와 각성. 허무, 누가 그걸 몰라! 각성, 좀 실천해 봐!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을 것 같아서 흥분과 기대를 잔뜩하고 막상 책을 펴서 읽어 나아가면, 너무나도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 그 진실을 무시하고 요행만 바란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책의 결론은 언제나 결의와 실천이며, 나의 현실은 대체로 게으름과 망각이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가 되는 습관을 익히고, 성공하려면 성공한 사람의 습관을 익히면 된다. 그게 이 책이 주장하는 전부다. 이 주장 이후에 이어지는 세부도 단순하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저축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목표를 명확히 해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이게 무슨 백만불짜리 습관이야?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부자들의 습관이다.

습관이 인생을 바꾼다. 이 주장은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쓴 '심리학 원리'에 나온다. 그는 습관이 심리학이라기보단 물리학의 주제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종이를 한쪽으로 여러 번 접으면 다시 펴도 다시 그렇게 접은 방향으로 접힌다. 습관도 그렇다.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백만불짜리 습관'은 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 원리'에서 습관만을 떼어서 구체적으로 더 많이 풀어 썼다. 자신의 경험담과 여러 사례를 나열하면서 이해하기 쉽게 쓴 셈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한 인물로 벤자민 프랭클린을 꼽았다. 프랭클린은 나쁜 습관을 버리고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은 긍정적 습관 중에서 자기 사랑을 가장 중시했다. '나는 나를 사랑해.' 이것부터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긍정적으로 살 수 있다. 그래야 목표가 생기고 노력하고 성공한다. 부정적인 것은 용서하고 어서 잊으라고 충고한다.

트레이시는 성공을 네 가지 요소로 정의했다. 건강, 원만한 대인관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 재정적 독립. 줄이면 돈과 건강과 명예와 승진(해당 분야의 최고 실력자)이다. 일반적으로 다들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습관을 들이면 이 네 가지를 성취할 수 있다.

각자가 바라는 성공은 구체적으론 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성공에 도달하는 습관은 대체로 이 책에서 말하는 것과 비슷하리라.

좋은 습관을 들이자.

Posted by love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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