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에 해당되는 글 1044건

  1. 2024.10.07 아이작 아시모프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계속 읽게 하는 비결
  2. 2024.10.07 도스토예프스키 #2 [분신] 자의분열 도플갱어 다중인격 소설
  3. 2024.10.07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열린책들 - 뜻이 애매한 것
  4. 2024.10.06 에드워드 애슈턴 [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적당히 웃긴 해피엔딩 과학소설
  5. 2024.10.05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게 다예요] 죽음 앞에서 글쓰기에 집착
  6. 2024.10.05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쪽으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경이로운 문장
  7. 2024.10.05 구매할 수 있는, 전 권 완간 번역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2024.10.04 파운데이션 1 [파운데이션] 아이작 아시모프 - 원자력 기술만 있는데...
  9. 2024.10.03 에드워드 애슈턴 [미키7] 유쾌하고 살짝 철학적인, 복제인간 이야기
  10. 2024.10.02 존 딕슨 카 [해골성] 분위기 조성으로 독자 끌어당기기
  11. 2024.10.01 2024년 9월 독서 결산 및 한 줄 독후감
  12. 2024.09.30 버트런드 러셀 [런던통신 1931-1935] 재치와 유머, 그리고 뛰어난 통찰
  13. 2024.09.30 존 딕슨 카 [연속살인사건] 자살 또는 타살, 두 번의 밀실
  14. 2024.09.29 에라스무스 [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우신예찬 광우예찬] 세상을 바꾼 우스개
  15. 2024.09.29 헨리 제임스 [나사의 회전] 유령보다 무서운, 생각의 나사
  16. 2024.09.29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작가의 내면 목소리, 열린책들 번역 문제
  17. 2024.09.29 존 스타인벡 [에덴의 동쪽] 선과 악으로 싸우고 꼬이고 지지고 볶는 두 집안
  18. 2024.09.29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부조리한 세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19. 2024.09.28 존 딕슨 카 [벨벳의 악마] 빙의물, 역사를 바꿔라!
  20. 2024.09.27 [나는 이렇게 쓴다 - 장르문학의 대가 기시 유스케의 엔터테인먼트 글쓰기]
  21. 2024.09.27 존 딕슨 카 [모자수집광사건] 트릭은 훌륭하나 반전은 무리했네
  22. 2024.09.26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난세에 간웅이 이기는 법
  23. 2024.09.25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자아인식
  24. 2024.09.25 아카가와 지로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크리스마스] 시체 찾기 연극
  25. 2024.09.25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인물 묘사의 악마적 탁월함, 번역본 비교 분석
  26. 2024.09.24 아카가와 지로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깜짝 상자] 단편소설집 6편
  27. 2024.09.24 가가 형사 4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 서술 트릭, 구식 IT 기술
  28. 2024.09.23 [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29. 2024.09.23 [자성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내면의 신성 추구
  30. 2024.09.23 스피노자 [에티카] 영원하고도 무한한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아시모프의 과학소설 창작백과 
Gold (1995년)
아이작 아시모프
오멜라스(웅진) | 2008년

"사건에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독자가 서스펜스 넘치는 한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급박하게 넘어가도록 하는 것이다." 125쪽.

계속 읽게 하는 비결이다.

"내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냐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못해 창문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을 때까지 생각한다네." 137쪽.

소설 쉽게 쓰는 방법 따윈 없다. 원래 어렵다.

아시모프는 딱히 소설 창작법이나 작문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단다. 그럼에도 그렇게나 많은 소설을 홍수처럼 써낼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뭔가 비결이 있지 않을까? 정작 해주는 말은 상식 그 자체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소설가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이 있다. 세부사항과 사건 개요를 완벽하게 짜고 글을 쓰는 사람과 대충 두루뭉실하게 막연하게 생각하고 세부사항과 사건 진행을 생각해내는 사람. 

아시모프는 후자였다. 그의 말을 들어 보라.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사회적 배경, 위기, 해결책, 등장인물과 시작뿐이다. 그러면 내 소설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잘 짜인 이야기 구성에 들어가는 수많은 세부 사항들은 언제 결정하는가. 유감스럽지만 나는 글을 써가면서 세부 사항을 구성한다. ...... 첫 장면을 우선 쓴다. 그것이 끝날 때쯤엔 두 번째 장면이 떠오른다. 두 번째 장면의 결말에 이르면 세 번째 장면, 그런 식으로 95장 정도까지 가면 소설이 끝나게 된다." 140쪽.

어떻게 다작하면서 빨리 쓸 수 있는지는 알긴 했는데, 여전히 경이로워 보인다. 그게 가능하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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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읽기 #2 분신 -

:: 자의분열 도플갱어 다중인격 소설

도스토예프스키는 처음 쓴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일약 문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가 그 다음에 야심차게 쓴 '분신'으로 추락한다. 그토록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던 독자며 비평가들이 갑자기 돌아서 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작가 본인은 이 작품의 성공을 확신했다. "골랴드낀(소설의 주인공)은 저를 성공의 절정으로 데려다 주었답니다." 실제로는 당시에 망했다. 하지만 오늘날 비평가와 독자들한테는 격찬을 받았다.

'분신'은 분열된 자아, 그러니까 똑같은 자신인데 정확히는 자신과는 다른 사람을 보게 되는 환상을 그린 소설이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자신과 꼭 닮았으면서 자신보다 훨등한, 분신(도플갱어)이 갑자기 나타나서 서로 갈등한다는 이야기다. 

자아 분열 혹은 다중 인격, 또는 도플갱어를 다룬 이야기는 대개 복잡하고 애매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때로는 아주 대박나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개인적 체험으로는 대개 다 별로였다.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쾌감이나 통쾌감이 없는 탓인 듯.

다중인격 살인자를 다룬 영화, 제임스 맨골드의 '아이덴티티'를 끝까지 흥미롭게 봤다. 과연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다. 알고나면 허탈하지만, 보는 내내 재미는 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적의 화장법'은 이 소재 '자아분열'로 반전을 만든다. 곰곰 생각해 보니, '지킬과 하이드'도 있다. 스포일러가 되려나.

이 소설 '분신'을 바탕으로 혹은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만든 영화도 있다. 나탈리 포트만이 주연으로 나오는 '블랙 스완'은 두 개의 인격으로 분열되면서 강렬한 긴장감을 만들긴 했지만 딱히 재미있다고 하긴 그렇다.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은 보다가 잤다. 영화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은 아무래도 다른 듯.


:: 극사실주의 판타지

소설 '분신'은 우리의 실제 사회 생활을 극사실주의 판타지로 보여준다. 너무나 공감하고 심히 절감해서 무서울 지경이다.

우리는 자신의 참된 자아가 아니라 가면, 즉 거짓된 자아를 연기하고 있다. '분신'의 주인공처럼 자아 분열 정신병에 걸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사회생활은 때때로 자아에 많은 상처와 스트레스를 준다. 대개들 가장 미운 사람 1순위가 직장상사 아닌가. 그리고 비굴하게 사는 자기 자신이 2순위겠고.

하급 관리 골랴드낀의 심리적 붕괴, 그의 일상, 그의 자존심, 그의 자의식은 오늘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은 이 소설 '분신'의 일부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 만났을 때 주인공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소리다.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대답을 해, 말아? 아는 체를 해야 하는 거야, 뭐야, 이거?' 우리의 주인공은 엄청난 고민에 빠져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고, 놀랄 정도로 나랑 닮은 누구 다른 사람인 척할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태연하게 쳐다 봐?'"

마음에 없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 한다. 속으로는 화가 풀릴 때까지 저 인간을 때려주고 싶은데 얼굴은 웃으며 입은 덕담을 말한다. 통제를 못하고 분출해 버리기도 하지만 가끔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번째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서 인물의 외부 모습과 주변 환경 묘사가 아닌 인물의 심리, 심중 묘사에 초점을 맞춰 썼다. 두 번째 소설 '분신'에서는 분열된 심리의 모습을 그려냈다. 미래의 문학 수법을 써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분신'은 뒤에 나올 대작의 서곡이다. 특히, '죄와 벌'을 미리 보는 느낌이다. 소심함과 자의식, 그리고 갈팡지팡하는 성격에 혼자서 중얼거리는 주인공. 종종 꿈이나 환각에 빠져서 현실을 이탈해 버린다. 빛과 그림자처럼 쌍둥이 분열자아의 캐릭터들인 라스꼴리니꼬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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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상, 중, 하) - 열린책들 세계문학 029 030 031

 

뜻이 애매한 것

읽다가 그 의미가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이상해서, Andrew R. MacAndrew의 영역본을 읽고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다.


상권 제2권 5장 아멘, 아멘!

✔ 꿈?

영어 번역본에 Vision으로 나온다. 장로가 뭔가를 미리 예견, 선견한 것을 뜻한다. 조시마 장로가 드미뜨리의 발에 대고 인사한 장면.


상권 제2권 6장 저 따위 인간은 뭣 때문에 살고 있는 걸까!

✔ 헌병? 124쪽

영어 번역본에 security police다. 헌병이 아니라 보안경찰이다. 공안경찰 혹은 비밀경찰. 문맥상 불순한 사상(자유주의, 사회주의)을 가진 자를 체포하려는 경찰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원문에는 헌병으로 나올 수도 있겠다 싶다. 헌병이 경찰 역할을 하는 군인이라는 뜻이니까. 러시아 어 원문까지 찾아 봐야 하나.

원문에 жандармы로 나오는데, 네이버 러한사전을 검색해 보니 헌병이 맞다. 직역으로 말이 이상해 보여도 원문에는 그렇게 적혀 있는 것이다!
http://ilibrary.ru/text/1199/p.12/index.html

이제야 알았다. 영역본은 직역이 아니라 의역이다. 이해가 잘 되도록 원문 단어가 아닌 다른 단어로 바꾸었다.


상권 제3권 5장 뜨거운 마음의 고백, 곤두박질

✔ 매?

하늘을 나는 매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영역본에는 hero 영웅으로 나온다. 러시아 원문에는 '매'로 나오는 모양이다.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번역본은 러시아 원서에 충실하느라 의역을 되도록, 아니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 무덤? 

"저는 무덤입니다." 무덤처럼 입이 무겁다는 뜻이다. 문맥으로 유추할 수 있긴 하다.

 

중권 제6권 3장 조시마 장로의 설교 중에서

자. 지옥과 지옥 불에 관하여, 신비주의적 고찰

✔ 결코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고통? 

영역본에 이렇게 나온다.

the suffering of one who can no longer love.

더는 사랑할 수 없음의 고통

 

하권 제11권 1장 그루센까의 집에서

✔ 바보 놀이?

문맥으로 카드 게임의 일종임을 알 수 있다. 영역본에는 a game of fools. 러시아의 카드 게임인데 러시아 어로 дура́к(DURAK 두라크)라고 부른다고. 바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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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 반물질의 블루스 
Antimatter Blues (2023년)
에드워드 애슈턴 | 황금가지 | 2023년
3점 ★★★ 무난해

미키7의 후속작이다.
가짜 평화 협정 맺은 이후 2년이 흘렀다.

거주지 돔에 에너지 문제가 생겨서
반물질 폭탄/에너지원을 회수해야 한다.

안 그러면 겨울이 오고 사람들이 얼어 
죽게 된다는 사령관의 말에 미키7은 출발한다.

171쪽에서 폭탄 돌리기 유머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더 읽을지 말지 결정될 듯.

약간의 전투와 다소의 곤욕을 치른 후에
전작과 마찬가지로 해피엔딩이다.

잘 읽히고 적당히 웃기고
살짝 진지하게 철학적인 것은 여전하다.

적당히 잘 써서 잘 읽힌다. 너무 잘 쓴 것은
읽기에 부담스럽고 자칫 질투를 유발한다.

"잠재적인 목적지를 찾아냈다." 431쪽.
3편이 나올 것 같은데...

202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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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예요
C'est Tout (1995년)
마르그리트 뒤라스
문학동네 | 1996

죽기 전까지 한 자라도 더 쓰려고 발버둥치는 뒤라스. 이게 다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쓰는 뒤라스. 뚜렷하게 알 수 없는 삶을 파악하려고 글을 쓰지만 결국 하나도 모르는 채 죽어 가는 한 작가의 모습. 모호한 삶을 살며 글을 쓰다가 죽는 인간.

우리나라에 영화로 잘 알려진 뒤라스의 소설 '연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김인환 번역, 민음사 1판 20쇄 34~35쪽) 이 수수께끼 같은 말이 아마도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아닐까.

이 책 '이게 다예요' 18쪽.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애인, 얀 앙드레아가 묻는다. "무슨 소용이죠, 쓴다는 것이?" 뒤라스는 소설 '연인'의 그 수수께끼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건 침묵인 동시에 말하는 것이지. 쓴다는 것. 그건 때로는 노래하는 걸 뜻하기도 해."

이 책에서 다음 두 군데가 내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는다. "네가 사는 것은 더 이상 불행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이다." 33쪽 "당신은 고독을 향해 직진하지. 난 아니야, 내겐 책들이 있어." 32쪽

과 후배가 그랬다, 젊어서의 추억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그래서 나는 말했다, 내 젊어서의 추억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책을 읽은 것이 전부라고. 사랑은 지옥에 갔다 버렸고, 꿈은 지하철에 놓고 내렸고, 열정은 냉장고에 넣어 얼렸다. 그리하여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지. 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 그저 자유로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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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네 쪽으로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Du cote de chez Swann (1913년)
마르셀 프루스트
문예출판사 | 2011년


:: 읽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문학작품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읽어보려고 하지만 통독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작품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누구든 예외가 있을까. 잃어버린 시간을 찾으려다 시간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다. 진담이다.

이 유명한 책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처음 읽어 본 것은 수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던 그해 한여름이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조용했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어슬렁 건물 안을 걸어다니다 한 구석에 자리한 책꽂이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집어다 먼지 탁탁 털어서 병실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쓰여진 검은 글씨를 읽었으나 한 쪽을 읽었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잠이 쏟아졌다. 판결은 내려졌다. 이해가 불가능하고 졸린 책이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길고 지루하고 난해한 문장의 연속 속에 사건 진행이 그다지 없으니, 악명은 해마다 높아져 갈 뿐이다. 도서관에서 가장 대여가 안 되는 책이니 무인도에 갇혔는데 할 일이 없을 때조차 읽지 않을 책이니 별별 희안한 말들이 돌고 있다. 읽다가 화가 나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다.

통독하거나 이해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책이다. 유명한 농담 반 진심 반으로 이런 게 있을 정도다. "나는 프랑스 문학 박사입니다. 프루스트를 읽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이라는 영토에 들어서는 순간 보지 않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산처럼 거대한 소설을 어쩐단 말인가. 못 본 척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지. 문학 작품을 읽을지 말지, 읽다 말지, 읽고서는 욕을 할지, 읽고서는 질투나 감동에 사로잡혀 며칠 몇 달간 음식조차 못 먹을 지경이 될지는 당신 몫이다.


::김인환 번역, 가장 읽기 편함

번역본이 많이 나와 있는데, 그중에 김인환의 문예출판사 책이 가장 편하게 읽혔다.

처음에는 전 권이 번역된 민희식의 동서문화사 판을 읽었다. 그해 여름 독서 체험이 반복되었다. 하루에 한 쪽을 읽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빨리 많이 읽어가기가 어려웠다. 한 문단이 한 쪽을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한 문장조차 기나길었다. 읽고나서는 더 해서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생각하는 시간이 읽는 시간보다 많았다.

1권 1부 전반부까지 읽고는 포기할까 말까 망설이던 중, 김인환 번역본이 전자책으로 나와있어 휴대폰에 받아놓고 지하철로 이동할 때 무심코 읽어나아가는데, 이게 웬일인가 읽기를 멈추지 못할 지경이 빠르게 읽히며 이해를 하면서 감상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이미 어느 정도 내용을 안 상태에서는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술술 읽혔던 것이다. 게다가 김인환 문예출판사 번역본은 주석을 각주나 미주가 아니라 본문 글 중 가로 안에 처리했다. 그래서 시선이 왔다갔다 하지 않으니 읽는 흐름을 유지했다.


:: 경이로운 문장, 문장 표현의 최대치

마침내 1권을 통독했다.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의 문장이 묘사할 수 있는 최대치였다.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경지를 만들어 놓았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쓸 수 있어. 혼자서 중얼거렸다. 별다른 내용이 없으면서 이토록 문장은 최고 수준이라니. 읽는 이에게 경의로움을 선사한다.

전 7권을 다 읽을 필요까지는 없다. 이 1권만 읽어도 이 대단한 문학작품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다. 부디 포기하지 말고 완독하길 바란다.

읽는 시간을 잊으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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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5일 현재

구매할 수 있는 전 권 완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우리나라 번역본은 두 가지다.
1. 민희식 동서문화사
2. 김희영 민음사

전 권을 완간했어도 구매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이형식 펭귄클래식코리아'와

'김창석 국일미디어'다.
 

1. 민희식 번역 동서문화사 출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본래 양장본 3권짜리였다. 그러다가 2017년에 5권짜리 반양장본으로도 나왔다. 

2. 김희영 번역 민음사 출판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양장본 13권짜리다. 2022년에 완간했다. 1권부터 오역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민희식 번역본으로 되돌아가는 이도 있다고.

펭귄클래식코리아의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양장본은 2권까지만 출판한 후 반양장본 12권으로 완간했다.

양장본을 절판시키고 반양장본으로 재출간하는 것은, 독서 인구 감소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인해 우리나라 출판 시장의 추세가 되었다. 값비싼 양장본으로는 출판사가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민용태 번역, 창작과비평사의 '돈키호테'는 양장본을 절판시키고 반양장본으로 팔고 있다.

나는 반양장본을 좋아한다. 양장본은 크고 무거워서 들고 읽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에 꺼린다. 장식용으로는 환영한다.

대충이라도 이 책 전권을 다 읽은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읽다가 어느새 포기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다가 포기하기를 세 차례했다. 네 번째 도전, 동서문화사 5권짜리 반양장본으로도 실패했다. 2편까지 읽긴 했지만. 왜 이렇게 재도전하는지 모르겠다.

타협안으로, 1편 '스완네 쪽'으로만 알차게 잘 읽는 것을 권한다. 1편에서 설정한 주제와 이야기의 틀거리가 2편 이후 반복되기 때문에, 1편만이라도 제대로 읽었다면 이 소설의 핵심은 잘 감상했다고 할 수 있다.

김인환 번역, 문예출판사의 '스완네 쪽으로'는 반양장본과 전자책으로 나와 있다. 종이책은 워낙 두꺼워서 전자책으로 구매해서 읽었다. 세 번 완독했다. 김인환의 번역 문장이 내 취향이라서 다른 번역본보다 자주 즐겨 읽는다. 김인환이 전권을 번역해 줬으면 싶은데, 아무래도 안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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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데이션 
Foundation 1951년

아이작 아시모프
황금가지 2013년

아시모프의 소설은 재미있는 듯하면서도
이상하게 지루해서 완독하기 힘들다.

읽다가 중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기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파운데이션은 그나마 드라마로 이미 봐서 
읽어낼 수 있었다. 

소설 이야기는 드라마와 많이 달랐다.
큰 틀거리와 주요 인물은 유사했다.

1권은 파운데이션의 설립과 
세 차례의 위기 극복 이야기다.

파운데이션은 은하제국의 멸망을 예견한
심리역사학자 셀던이 우주의 끝에 세웠다.

겉으로 은하백과사전 편찬을 내세웠지만
다 그의 계산과 예언에 따라 그곳에 마련된 것.

광물이라고 하나도 없는 터미너스에
유일한 경쟁력은 원자력 기술이다.

자, 파운데이션은 계속 다가오는 
'셀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군사력에서 절대적으로 약자인데
주변 강대국과 싸우지 않고 생존하려면?

위기 극복의 영웅들은 무력을 대신
다른 것을 이용한다. 과학 종교, 무역 경제.

주인공 한 명이 있는 게 아니라
각 시대별 주인공들이 나열되는 식이다.
해리 셀던, 샐버 하딘, 호버 말로.

역시나 원작 그대로 영상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했다. 보여줄 장면이 너무 부족하다.

202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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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Mickey7 (2022년)
에드워드 애슈턴 | 황금가지 | 2022년
4점 ★★★★ 괜찮네요

봉준호 감독 영화 '미키17'의 원작소설이다.
영화는 개봉 전이다. 예고편은 나왔다.

복제인간 이야기. 
SF 과학소설 장르에서 흔한 소재다.

과연 어떻게 풀어가는지가 관건이다.
'미키7'은 가볍고 유쾌하며 살짝 철학적이다.

잘 읽히고 소소하게 재미도 있다.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해서 해피엔딩이었다.

초중반까지는 좋은데 후반이 별로였다는
평이 종종 보이는데,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작가 스스로는 반전이 있는 훌륭한 결말이라고
여길 테지만, 너무 운이 좋아서 동화 결말 같다.

테세우스의 배 문제가 핵심인데, 거론만 할 뿐
딱히 더 전개하거나 결론을 내리진 않았다.

이야기 후반부에 외계 지능 생물체랑 대화에서
본질(오리지널을 번역한 듯)이냐는 질답을 한다.

네가 미키7이냐는 거였다, 복제 미키8이 아니라.
자신과 경험을 공유했느냐가 중요했다.
이 정도가 '테세우스의 배'에 대한 성찰이다.

202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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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성 
Castle Skuli 1931년

존 딕슨 카
동서문화사 2003년

:: 분위기 조성으로 독자 끌어당기기

존 딕슨 카 장편소설의 매력은 분위기를
잘 조성해서 독자를 끌어들인다는 점이다.

신비하고 무시무시하고 기괴하고 매력적인,
소위 오컬트라 불리는 것들로 치장한 도입부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상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제목부터 해골성이다. 비밀통로가 있을 법하다.

마술, 공포, 미신, 유령 같은 것을 포장지로 
써먹고 끝에서는 버리는 식이지만 매혹적이다.
'화형 법정'은 예외였다, 반전의 반전을 위한.

마법사의 자살인지 타살인지 불명확한 죽음.
몇 년 후, 그와 친한 배우의 의문스러운 사망.

이를 조사하는, 탐정과 형사의 추리 대결.
살인범이 우리들 중에 한 사람이라는 불안감.

살해 동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애증이었다.
이야기의 교훈은 악평을 삼가라는 것이다.

반전을 위해 결정적인 인간 관계를 숨기고 짜맞추고
연기의 신 남발은 옛 추리소설에서 흔하다.

경찰은 사건을 해결했다고 자랑하는 동안에
탐정은 진범을 밝히고 이를 묵인한다.

사건은 명쾌하게 해명되지만 슬픔은 남는다.
그렇게 달콤 씁쓸함을 남긴다.

2024.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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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독서 결산 및 한 줄 독후감

[eBook] 연속 살인사건
존 딕슨 카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로맨틱 코미디 좋아하는 사람이 추리소설도 잘 읽는다면 좋아할 책이다.

적산가옥의 유령
조예은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6월
귀신 나온다고 계속 변죽만 울려서 읽다가 포기했다.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장경현 감수 / 고려원북스 / 2009년 4월
빙의물. 웹소설 읽는 줄 알았다. 이야기에 구멍이 숭숭, 그럼에도 읽힌다.

나는 이렇게 쓴다- 장르문학의 대가 기시 유스케의 엔터테인먼트 글쓰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7년 9월
본인의 소설 창작 과정을 솔직히게 다 쏟아냈다. 딱히 큰 도움은 안 됨.

[eBook] 모자수집광사건
존 딕슨 카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트릭은 재미있었으나 반전은 너무 무리해서 만들었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크리스마스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이중혼과 불륜으로 여자 셋 어장 관리하는 남자 이야기.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깜짝 상자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3월
드라이아이스 트릭은 존 딕슨 카의 '연속살인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하다.

워터멜론 슈거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최승자 옮김 / 비채 / 2024년 5월
머릿속을 일부러 흐릿하게 만들고 싶을 때 읽는 책이다.

E. E. 커밍스 시 선집
E. E. 커밍스 지음, 박선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시를 쓰라고 했더니 건축을 하고 있네, 이 양반이. 밝고 맑은 분위기는 마음에 든다.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다시 읽어 보니, 트릭에 나오는 과학기술이 너무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쓰기라는 오만한 세계- <파리 리뷰> 인터뷰집: 세계적 작가들이 말하는 창작에 관한 모든 것
파리 리뷰 엮음, 김율희 옮김 / 다른 / 2024년 8월
창작 글쓰기에는 역시 정답이 없다. 다들 자기 멋대로 썼다.

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8월
웃어야 하는 것 같은데, 짜증만 났다. 다시는 노통브 만나지 말자.

빨강집의 수수께끼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이철범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곰돌이 푸 작가가 쓴 추리소설이니 당연히 유머 가득하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기사도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뭔가 허술해 보이고 만화 같다. 독일 고성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운동회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3월
불륜이 아니면 추리소설 못 쓰나 보나. 일본 경찰 신고는 110이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공포관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불성실한 작가의 글쓰기에 분노한다. 분노한다. 분노한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사랑의 도피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사랑은 쥐뿔, 결국 돈이지 뭐.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랩소디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노다메 칸타빌레 읽은 기분이다. "마리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군."

총 18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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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Mortals and Others
버트런드 러셀 | 사회평론 | 2011년

버트런드 러셀이 쓴 글이라서 곧바로 샀다. 책이 도착해서 보니, 우와 정말 두껍다. 500여 쪽이다. 만족감 충만!

이 책은 러셀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신문에 기고한 글 모음이다. 한글판 편집자가 붙인 부제 '젋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은유로서 '편지'라고 표현한 것 같다.

칼럼이다 보니, 글 하나하나는 짧다. 인쇄된 글씨가 크다. 줄간격이 넓다.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날마다 한두 편씩 부담 없이 읽었다.

러셀의 본래 문장은 기나긴 장문이다. 여유롭고 풍부한 사색을 즐겼던 그였기에, 단문으로 따따닥 빠르게 결론을 확정하는 방식을 싫어했다. 이 책의 원서와 번역본의 짧은 문장은 오늘날 우리 입맛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칼럼이 종종 그렇듯,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고 이 사실 저 사실 이 생각 저 생각 짜깁한 글이 적지 않다. 글 쓸 당시 시공간 배경을 잘 알 수 없어 글 자체만으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 없진 않았다. 몇 군데 주석을 달아주긴 했다.

러셀은 문평 비판적 시각에서 재치와 유머로 통찰을 보여준다. 그의 통찰은 오늘 우리 현실까지도 꿰뚫고 있다. 자살 허용, 교육 현장에서의 체벌 금지,안락사,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평등의 문제 등 오늘자 신문 칼럼을 읽는 기분이다.

이 책은 완역판이 아니다. 일부 글을 번역하지 않았다. 편집자 말로는 시대에 맞지 않거나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 다른 글 몇 편은 덜어냈단다.

각 글의 제목을 종종 의역해 놓았다. 가끔 너무 생뚱맞다. 원문 제목을 같이 표기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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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살인사건
The Case of the Constant Suicides (1941년)

존 딕슨 카
동서문화사 | 2003년

:: 자살 또는 타살, 두 번의 밀실

존 딕슨 카의 로맨틱 코미디물?
카는 로맨스 소설을 썼어야 했어!

초반 기대와 달리 밀실 나오는
정통 미스터리 추리소설이었다.

변호사랑 보험회사 직원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놓고 다툰다.

스코틀랜드의 옛 성 높은 꼭대기 방
아무리 살펴 봐도 밀실이다.

방 안에 동물 운반용 케이스는
도대체 왜 있는 거야?

아이고 골치 아픈 사건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다.

그럴 때는 술이나 마시는 거지.
위스키 마시고 취중 코미디 활극이 발생한다.

드디어 탐정 펠 박사가 호출된다.
유령이 추가된다. 당연하다. 카의 소설이니까.

제목 '연속살인사건'대로 시체가 또 나온다.
이번에도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리송하다.

두 개의 밀실 트릭을 풀어야 하는 셈이다.
하나는 드라이아이스였고 

또 하나는 낚시대였다.
알고나면 시시하고 허무하다.

그럼에도 알콩달콩 사랑에 유쾌한 분위기와
탐정만이 마련할 수 있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202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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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여신의 바보 예찬
에라스무스 지음, 차기태 옮김/필맥

한글 세대를 위한 번역본 

한문보다는 한글에 익숙한 세대에게 편한 번역본이다. 다만, 한스 홀바인의 삽화는 넣으려면 제대로 넣든가 하지. 실망했다. 아예 삽화를 다 빼 버리는 게 낫겠다. 그리고 어차피 이해도 잘 안 되고 낯설기만 한데 주석도 다 빼 버리고 본문만 간결하게 남기면 좋았겠다 싶다.

여러 번역본 중에 가장 잘 읽혔다. 교수 번역자들의 한문투 번역 문장에서 벗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2015.1.20

우신예찬 - 열린책들 세계문학 182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풍자를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에는 부록으로 에라스무스가 주변 사람들에 보낸 편지글이 있다. 읽어 보니, 의외로 에라스무스는 심심풀이 책 '우신예찬'을 나름대로 변호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식으로 전제를 세운 후 풍자를 어느 정도 허용해야 건전한 사회라는 투였다.

책은 저자의 의도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대로 읽힌다. 건전한 반성 정도를 기대했으나 전면적인 사회 개혁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그동안 종교 정치 지배층의 억압과 위선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양심에 사이렌을 울려 버렸다. 가볍게 다들 한 번 웃자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말했던 진실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풍자의 힘이 센 이유는 웃음으로 진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2011.9.21

우신예찬
에라스무스, 김남우/열린책들

해마다 읽는 책

어떤 책은 반복해서 읽는다. 대표적인 게 수험서다. 수험서의 운명은 한심한 인생과 똑같다. 반복해서 읽지만, 시험이 끝나면 다시 쳐다보지도 않는다. 딴 사람한테 팔아 버리거나 쓰레기통으로 간다. 어떤 사람의 삶은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 그렇게 가는 거다. 고전은 반복해서 읽히지만, 수험서와는 정반대의 운명이다. 계속 읽어도 언제나 새롭다. 인생은 이래야 한다.

에라스무스는 꽤 많은 책을 썼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은 달랑 [광우예찬] 한 권이다. 그것도 심심풀이로 별 생각없이 썼다. 작가라면 자신이 가장 노력해서 쓴 책이 많이 읽히길 바란다. 하지만 책의 운명은 작가의 노력과는 상관없다. 그가 공들여 쓴 책은 현재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이 책이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다는 게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정도 풍자에 당시 사람들이 흥분했다면 당시 종교 단체의 횡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정도로 짐작할 뿐이다.

에라스무스의 이 책을 네 번 읽었다. 해마다 읽었다.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왜 이렇게 읽을까. 이유는 뭘까. 아직도 바보들이 이 세상에서 설치고 있기 때문이다. 미친 놈들이 판 벌리고 지랄발광하고 있는 중이다.

2004.7.21

광우예찬.군주론.방법서설.잠언과 성찰
에라스무스 외 지음/을유문화사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그리스로마 고전, 성경, 구절의 종횡무진

세상을 바꾼 우스개

세로쓰기 책을 가로쓰기 책으로 읽으니까, 빨리 읽힌다. 느긋하게, 주석도 종종 읽었다. 세로쓰기에 절판의 운명을 겪었던 책이 가로쓰기에 새판으로 나왔다. 다행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에라스무스의 [광우예찬], 우리한테는 학생시절 세계사 시간 [우신예찬]이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실제로 책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고전이 읽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 책은 재미없다고 미리 판단하는 건 잘못이다. 책을 읽기도 전에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건, 음식 맛을 보기 전에 맛이 없다고 말하는 거와 같다.

[광우예찬]은 재미있다. 지금껏 세 번 읽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나면 또 읽을 작정이다. 이 책은 개그 콘서트보다 정확히 백배 더 웃긴다. 에라스무스의 수다는 수다맨을 오천배 앞지른다.

광우여신이 스스로를 예찬하면서, 인간의 바보 멍청 지랄 개판 짓거리를 줄줄이 꿰어서 늘어놓으며 웃긴다. 글쓴이 에라스무스의 익살은 자신의 책 [격언집]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까지 풍자하면서 끊없는 수다를 이어간다.

그는 이 풍자문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가 쓴 진지하고 교훈적인 책들에 비하면, 이 책은 심심풀이였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있었다. 부패 종교 권력에 대한 매서운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이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래서다. 사람들은 억압된 자신의 감정을 속시원하게 풀어준 이 책에 열광했다.

당시 종교 단체들은 성경 구절을 자기 이익에 맞게 뜯어고쳐 함부러 사람들을 사형시켰다. 그런 시대에 감히 그건 미친지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라스무스가 처음이었다. 이 심심풀이 책은 그 시대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어 퍼진다. 우스개가 세상을 바꾼다.

밑줄 긋기

모든 것을 먹줄로 재고, 어떠한 잘못도 용서하지 않고, 자기에게만 만족하고, 자기만이 부와 건강을 지니고 있고, 자기만이 임금이고, 자기만이 자유롭고, 천하에 유아 독존이라고 자칭하고, 친구도 필요치 않고, 어느 누구의 친구도 아니고, 신들에 대해서도 업신여기고, 인간의 행위를 모조리 어리석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밖에 퍼붓지 않는 그런 따위의 인간을 보았을 때, 누가 그를 괴물처럼, 유령처럼 무서워서 달아나지 않겠어요. 이러하기에 완벽한 현인이란 짐승 같은 거예요. (66쪽)

2002.8.15

글쓴이: 에라스무스 Erasmus
옮긴이: 정기수
펴낸곳: 을유문화사
발행일: 1989년 11월 25일
 
풍자 문학의 진수
인간의 광우에 대한 넉살

인간의 바보 미친 지랄을 찬양하라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전기문, [에라스무스 -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승리와 비극]을 읽고, 에라스무스의 책이 보고 싶었다. 서울문고에 갔다가 영어 원서 펭귄 클래식 [Praise of Folly]를 발견했다. 그것도 세일 코너에서! 덕분에, 싸게 샀다. 하지만, 내가 워낙 게으르고 영어 실력이 부족하여, 생소한 단어와 온갖 주석이 달린 그 책을 영어로 읽자니 만만치 않았다. 앞 부분 조금 읽다가 그만 두었다. 그게 1년 전이다. 아직도 다 읽지 못했다. 언제쯤 읽게 될지는 저 위에 계신 분도 모른다.

송파 도서관에서 에라스무스를 검색해 보니, [광우예찬]이 나왔다. 서가로 들어가서 책을 찾아냈다. 책을 펴는 순간, 읽어야 할지 망설였다. 세로쓰기였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니, 새로 가로쓰기 책이 나와 있었다. 종이가 누렇게 바랜 세로쓰기 책을 읽기로 했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자다가 거의 2주일이 걸려서야 다 읽었다. 머리 속에 남은 게 있나. 그래도 밑줄 두 개 그었다.

중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한국 사람들이라면, 에라스무스를 세계사 시간에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 정도로 들어봤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에라스무스는 고전 연구 학자였다. 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라틴어로 쓰여진 옛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섭렵한 박학 다식한 사람이었다. [광우예찬]에서 종횡무진 쏟아져 나오는 인용문구들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헌과 성경이다.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진지하게 쓴 게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여행을 하면서 그 동안 내내 말을 걸터타고 있어야만 했던(25쪽)" 그는, 장난삼아 광우신(狂愚神)을 예찬하는 글을 쓴다. 그냥 심심해서 쓴 거다. 그는 이 책이 종교 개혁의 불씨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심심풀이로 쓴 책이 세상을 바꾸다니, 우습지 않은가.

[광우예찬]은 나오자마자 그 시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부패한 종교 권력 세력들의 짓거리에 대한 풍자가 그 시대 사람들의 속을 풀어 주었다. 그럼에도, 이 책의 풍자 대상은 포괄적이다. 신학자, 문필가, 남편, 노름꾼, 사냥꾼, 국왕, 추기경, 수도사, 신하, 법률가, 철학자, 교황 등. 시작할 때는 농담만 하다가 독일 주교들과 신부들을 풍자할 때는 진담을 말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책은 기존 기득권 세력한테 금서로 묶인다.

에라스무스가 쓴 책들 중에 지금까지도 읽히는 건 이 책뿐이다. 나머지 책은 잊혀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책만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양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전과 성경에 대한 배경 지식을 갖추거나 일일이 주석을 읽어야한다. 반면, 에라스무스가 그랬듯 심심해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라면 광우신의 유쾌한 자화자찬을 그런 배경 지식과 주석의 도움이 없이도 즐길 수 있다.

풍자문의 생명은 꽤나 긴 것 같다. 인간들의 바보 미치광이 짓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으니.

밑줄 긋기

어떠한 종류의 인생도 제외하지 않는 풍자는 어떠한 특정인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의 악덕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일어나서 상처를 입었다고 외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 죄가 있음을 인정하는 까닭이요,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불안감을 자백하는 까닭일세.(27쪽)

행복이란 사물에 관해 인간이 갖는 의견에 따라서 좌우되는 거예요.(87쪽)

200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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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열린책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유명한 유령소설이다. 니콜 키드먼 주연 영화 '디 아더스'가 이 이야기의 틀거리를 가져다 썼다. 유령 이야기를 좋아하거나 쓰는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작품이라서, 나는 헨리 제임스의 그 많은 소설들 중에 유일하게 이 소설의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사의 회전. 제목이 특이하지 않은가. 언젠가 읽어야지 했는데, 때마침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자책에 있길래 냉큼 읽었다.

유령 이야기로는 내가 읽은 소설들 중에 가장 심심했다. 정말 정말 무섭다고 이야기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지금까지 저 말고는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일 겁니다. 정말 너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나는 정말 정말 하나도 안 무서웠다. 읽다가 졸려서 잤다. 사건 전개보다는 등장인물의 의식을 표현하는 데 치중하는, 작가 특유의 작풍 때문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의식을 모호하게 표현한다. 정말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불확실하다. 등장인물이 유령을 봤다고 하지만 정말 본 것인지 그냥 자기만의 착각인지 알 수 없다. 이야기를 하는 자를 신뢰할 수 없다. 이야기는 명확하지 못하게 되지만 해석의 가능성은 다양해진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려는 듯 보이지만 글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 조각처럼 의심스러운 문장이 많다. 읽다 보면, 도대체가 믿음이 안 간다.

이야기를 끝까지 읽었어도, 당신은 남자 아이 마일스가 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뭔가 나쁜 짓을 했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죽었다는 남녀 두 사람의 나쁜 짓도 명확히 알 수 없다. 둘이 성교를 했다는 암시가 있다. 어떻게 왜 죽었는지도 당최 알 수가 없다.

제임스의 소설은 죄다 이런 식이다.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고 모호하게 이야기해서 기묘한 효과를 거둔다. 그 효과를 애써 맛보지 않고 단호하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을리라. 그런 이들한테는 '죽은 하인들의 유령이 두 아이의 영혼을 사로잡으려는 이야기'로 명쾌하게 정리되리라. 

애써 작가의 의도대로 해석해 보자면, 유령의 목격자가 겪는 불안한 의식을 느껴 공포감에 사로잡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고 내내 불만만 쌓였다.

유령 자체보다는 자신의 생각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나사처럼 계속 특정 생각에 사로잡혀 깊게 파고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 나사가 이 이야기에는 두 개나 있다.

첫째, 타인의 말. 

내(가정 교사)가 유령을 정말 본 것인지 믿을 수 없지만 두 아이도 봤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유령이 있는 것이다. 

둘째, 집단 의식. 

사회적 압력으로 그렇게 믿도록 하는 것. "인간의 도덕이라는 나사를 한 번 조이기를 요구하는 압력"인 것이다. 자신(가정 교사)은 절대 선이며 죽은 하인 둘을 일방적으로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붙이고 절대 악으로 규정한다.

나의 생각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정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 소설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유령'이 아니라 특정 생각으로 조정되는 '의식'이다. 

나 스스로 나를 기만하며 허위 의식 속에서 위선과 허구의 삶을 사는 것이다. 유령처럼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사의 회전'은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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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열린책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뒤가 비치는 습자지를 보는 느낌이 든다. 저렇게 말하는 캐릭터 뒤에 작가의 육성. 이렇게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차분하게 내는 수필 같은 문장들.

부유하고 행운이 가득한 삶 속에서 우아하게 사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불행하고 가난한 삶을 사는 중에 자신감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끝장난 결혼과 경제적 곤란 속에서 세련된 인품을 유지하는 여성을, '오만과 편견'에 쓰인 문장에서 볼 수 있다.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제인 오스틴'을 읽을 수 있다.

연애와 결혼을 대단히 현실적으로 실질적으로 다루면서도 그 과정과 결말은 낭만적으로, 혹은 로맨스장르 소설의 규칙을 충실하게 따른다. 결혼했다로 끝난다. 그 후로 둘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 거라고 암시한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나쁘진 않지만, 아주 좋다고 할 수도 없었다.

YOU를 당신으로 고지식하게 직역한 건 거슬린다. 다른 말은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최대한 바꿨으면서 유독 YOU만은 당신으로 꼬박꼬박 옮긴 이유를 모르겠다.

하나 더. 영어의 어순을 고지식하게 옮기다 보니 우리말 어순을 지키지 못해 오류가 났다.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 수식어는 피수식어 바로 앞에 두던지 쉼표를 이용해서 독자의 혼동을 피해야 한다. "결혼에 대한 나의 생각" 또는 "나의,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 써야 맞다.

인간을 개미 보듯 관찰하며 글을 쓰는 사람은 고독한 게 아니라 고집스러운 것이다. 인간에 대해 실망한 사람은 대체로 인간 외의 것에서 위안을 찾는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을 인간이 아닌 관찰 대상자로 바꾼다. "엘리자베스는 그 상황에 눌리지 않고 차분하게 자기 앞의 세 여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성공적인 결혼은커녕 경제적인 독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 갖지 못한 것,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까. 현실은 시궁창이었으나 소설은 궁전이었다. 작가는 소설에서 연애와 결혼에 모두 성공한 주인공을 그려낸다. 자신이 원하는 환상 속 나라로 들어간다.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 이 첫 문장은 소설 전체를 요약하고 대변한다. 그리고 할리퀸 로맨스소설의 법칙이기도 하다.

키 크고 잘생겼으며 부자에다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젊은 미혼 남성이 가난하지만 독립심이 있으면서 착한 성품에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운다는, 밝은 성격의 미혼 여성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

이 결혼은 말 그대로 소설이며 환상이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로또 복권 1등 당첨이 연속으로 세 번 일어나거나 같은 장소에서 벼락을 두 번 맞는 것만큼이나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런 결혼은 여성의 가장 절실한 욕망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가장 손쉽고 빠른 신분 상승 및 부의 획득은 결혼이다. 문제는 그런 일은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는 점이며, 웬만해서는 절대로 이 판타지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상은 자유다. 게다가 공짜다.

세계문학고전으로 불리며 계속 읽히고 연구되는 소설 중에는 그다지 납득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인 오스틴의 소설도 그중 하나다. 사실주의 어쩌니 여성의 목소리니 사회소설이니 하면서 애써 훌륭한 작품이니 대단한 소설이니 떠들어대지만 그래봤자 요즘 흔히 보는 할리퀸 칙릿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않는가.

최신 여성지의 한쪽에 실린 연애 충고 칼럼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옛날 소설이라니. 연애와 결혼 문제는 과학기술과 달리 거의 발달하지 못한 모양이다. 연애고 결혼이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요즘이라도 말이다. 사랑은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논리적인 환상이면서 구차스러운 현실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해준다. 상상이라도 해도 감정은 사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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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1, 2
존 스타인벡 지음
정회성 옮김
민음사


이 작품은 대학생 시절 영미문학 관련 수업 시간에서 영어교육과 학생한테서 처음 들었다. 성서를 모티브로 한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 학생도 그 정도밖에는 얘길 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학생, 정말 이 책을 읽었는지 의문스럽다. 해설만 읽은 것 같다.

원죄, 성서, 영미 고전 따위의 화장을 지우면 이 작품은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만큼 재미있다.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두 가문의 사람들이 펼치는 여러 인생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유치하게 갈라놓고 온갖 자질구레한 복수심, 수치심, 욕망, 죄의식을 뒤엉켜 놓으며 이야기를 꾸려 나아간다.

스타인벡은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두 가문의 사람들을 서로 교묘하게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비행기와 자동차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묘사해서 독자를 웃기고, 트래스크 가문의 세대를 거치며 반복되는 형과 아우의 대결 구조로 독자를 긴장시키고, 캐시의 음모로 재미를 돋구며, 새뮤얼 해밀턴 가문의 이야기로 삶의 밝은 면으로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이야기의 중심은 트래스크 가문의 캐시와 애덤이다. 하지만, 난 중심보다 주변에서 내 모습을 더 많이 보았다. 특히, 톰의 모습에서 그랬다. 아론의 결벽증과 대학 생활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나는 톰처럼 장엄하게 자살하지 못했다. 아론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나의 생각대로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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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볼테르 지음, 윤미기 옮김
한울(한울아카데미)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열린책들 세계문학 054

캉디드(부제 낙관주의)는 볼테르의 대표작으로 풍자소설이다. 수능이네, 고전이네, 철학소설이네 해서 어렵고 재미없을 거라 짐작하기 쉬운데,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고 재미있게 읽힌다.

18세기 유럽이나 21세기 지금이나 세상은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발하는 산문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며 계속 읽힌다.

이 소설을 다 읽자마자 팝콘처럼 펑 생각나는 소설가가 있었다. 커트 보네거트. 소설 속 인물들은 온갖 별별 구질구질한 일을 당하기만 할 뿐,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할 의지가 없고 노력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다. 부조리와 전쟁과 불행이 요지경 속 무늬처럼 펼쳐지고, 거기에 휘말려든 주인공은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다. 그런 인물을 보는 독자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정말 삶이란 게 참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공감한다.

커트 보네거트가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은 건 참 심심하고도 시시하게도 상식이다. 공중 도덕을 지키고 서로 사랑하고 전쟁 일으키는 사람을 경멸하라. 볼테르도 비슷한 답을 내놓는다. 세상이 아무리 불합리하여 지옥처럼 느껴질지라도 자기 일을 충실히 하며 최선을 다해 살라.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 봐라. 볼테르가 이 소설을 쓰던 때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종교는 오만, 정치는 개판, 경제는 깽판, 사법은 한심, 행정은 바보. 돈과 권력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삶을 마감하는 게 도대체 제대로 된 삶인가. 우리는 더 나은 행동으로 이 세상을 개선할 순 없을까.

희망은 어리석은 행위다. 캉디드처럼 세상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착하게 살겠다는 믿음 말이다. 그럼에도, 비관에 빠져 있기보다는 희망을 갖고 뭐든 하는 게 낫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직전까지 이것저것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걸 보라. 빌린 닭값을 갚으려 한다. 심지어 피리 연주에 힘쓴다. 한 곡조 배우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면서.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의 밑바닥에서 우리는 삶의 최고 긍정을 발견한다. 캉디드가 그랬듯,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가꾸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암흑으로 가득하더라도 촛불을 켜고 앞으로 가야 한다. 내일 죽더라고 오늘 뭔가를 하자. 좋은 일을 하자. 나에게, 남에게, 또 그 누구에게 사랑으로 기쁨으로 무엇이든 해 주자. 보잘것없어도 좋다. 실패해도 좋다. 아무 소용이 없어도 좋다.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좋다. 선을 행하자.

한울에서 나온 책으로 처음 읽었고 열린책들 전자책으로 두 번째로 읽었다. 요즘 가뭄에 메르스에 표절에 대한민국 난장판인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나마 현실이 이 소설의 부조리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세상이 아무리 지옥 같아도 옛날보다는 살기 좋다. 그리고 어떤 최악의 상황이라도 희망을 갖고 바르게 살려는 시도를 멈춰서는 안 된다.

한울의 윤미기 번역본을 추천한다. 안에 간략한 그림도 있다. 열린책들의 이봉지 번역은 한글 세대들한테 낯선 한자어를 종종 썼다.

2015.6.20


천일야화의 영향이 큰 듯. 특히, 16장. 걸리버 여행기의 영향도 있는 듯.

진정한 이성적 합리주의란 뭘까. 볼테르는 극단적인 이성주의를 가볍게 비웃으면서 그런 극단적 광기에 사로잡혀 살며 부조리한 일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라이프니츠와 예수회를 싫어했다. 미친 년놈들 취급했다.

사람은 이성적인 존재인가? 세상은 완벽한 곳인가? 미친 세상에는 미친 사람이 제정신 취급을 받는다.

201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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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의 악마
The Devil In Velvet (1951년)

존 딕슨 카
고려원북스 | 2009년

:: 빙의물, 역사를 바꿔라!

존 딕슨 카의 빙의물이다.
악마와 계약해서, 과거의 인물로 들어간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되 니콜라스 펜튼이라는 인물
속으로 가고 싶소." 13쪽.

임무는 아내 리다아가 독살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늙은 역사학자의 회춘 타임슬립 어드벤처 스타트!

소설에서 묘사하는 역사/정치적 상황은 잘 몰라서
알고 싶지 않으니 대충 빨리 술술 읽혔다.

악마와 계약할 때, 역사는 바꿀 수 없다고 했는데,
어쨌거나 독살범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이 급선무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본연의 임무도 잊지 않는다.
자, 준비된 반전은 무엇일까?

초반에 범인을 알아 버렸다.
반전은 그것밖에 없으니. 467쪽 보니 맞았다.

검술은 무쌍을 찍는다.
왜? 미래에서 왔기에 발달된 펜싱 기술을 안다.

이렇게 재미있어 보이나
이유를 모르겠으나 읽기에는 지루했다.

뭔가 빈 구멍이 있는 이야기라서
아무래도 좋다고는 말하긴 어렵겠다.

202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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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쓴다
- 장르문학의 대가 기시 유스케의 
엔터테인먼트 글쓰기
エンタテインメントの作り方 (2015년)
창해 | 2017년
4점 ★★★★ 괜찮네요

기시 유스케 소설의 팬이라면 무조건 읽을 책이다. 
그의 소설 창작 과정이 나온다. 

감추는 것 하나 없이 모두 보여준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어느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취재는 어떻게 했다. 
이름과 지명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나온다.

'악의 교전' 창작 과정이 흥미롭다. 
까마귀는 실제로 작가의 아침잠을 방해해서 
넣게 되었다고 한다. 전혀 의도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들어간 거였다, 세상에. 
고등학교를 취재해서 쓴 거였다. 
가독성을 최우선으로 썼단다. 

소설 작법서로는 특별할 것이 없다. 
소설 쓰기의 기본, 기초 정도다. 
이미 다른 작법서에 말한 것을 반복한다. 
이미 알고 있어도 중요한 것은 중요하다.
목차만 읽어도 된다. 몇 개 골라 봤다.

"만약 OO이 XX라면?" 하고 가정하는 습관
처음부터 결말을 정하고 
서두와 클라이백스를 고민한다
캐릭터의 약점이 오히려 감정이입을 돕는다

작법서의 원칙은 제안이지 진리는 아니다. 
각자의 현실과 취향에 맞게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자신한테 무리하게 적용하지 마라.
가볍게 시도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있고 속도감 있는 스토리다." 178쪽

"감정이입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독자와 가까운 
캐릭터를 설정하는 게 좋다." 179쪽

"아무리 미스터리라도 트릭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트릭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에 불과하며, 
범행에 이르는 필연적 요소를 배치해 
드라마를 전개해야 한다." 199쪽

202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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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수집광사건
The Mad Hatter Mystery (1933년)

존 딕슨 카
동서문화사 | 2003년

:: 트릭은 훌륭하나 반전은 무리했네

끝까지 다 읽고서 드는 생각은
"좀 무리지 않나?"였다.

복잡하게 수수께끼를 만들지 않고서는
그토록 불가능한 범죄가 성립하기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 싶다.

모자와 도난 당한 원고 트릭은
훌륭하고 재미있었다.

그 정도까지만 했어도 좋았는데
작가는 욕심이 많아서 기어코 반전을 만든다.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만든 반전에
놀라거나 기쁘기보다는 실망하게 된다.

정통 미스터리의 기본을 지켜줬으면 싶다.
범인이 자백하는 식은 정말이지 피해 달라.

미해결 수사 종결로 감동을 주려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화가 나고 허탈했다.

탐정/경찰은 범인을 체포해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범인을 풀어주거나 모른 척한다면
그 사정에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범죄 수수께끼를 내고 풀기만 하면
좋은 추리소설이 될 수 없다.

그러면
독자는 허탈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02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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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II Principe (1513년) 
니콜로 마키아벨리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5년 4월
5점 ★★★★★

난세에 간웅이 이기는 법

'군주론'이 정치학의 고전이 된 이유는 선한 군주, 선한 정치, 폭군, 악한 정치 따위의 고리타분한 윤리적 이상론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현실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준 마키아벨리에게 인류는 큰 신세를 졌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실현 불가능한 공자님의 군자 임금이 아니라 실제로 권력을 잡아 통치하는 자의 행태에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가 악행을 찬양한 것은 아니다. "군주는 가능하다면 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지만, 필요하다면 악행을 저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114p) 악덕도 때론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도 정직하게 얘기했다. 

그럼에도 마키아벨리즘이라 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비윤리적 수단도 쓸 수 있다고 해서 비판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론적 이분법과 무용지물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정치 지식을 추구했다. 얼마나 현실적이었는지는, 그가 운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알 수 있다.

읽는 내내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떠오른다. 난세에는 간웅이 이기는 법이다. 도덕적 의무와 융통성이 없는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이익에 따라 꾀를 부려야 권력을 잡는다. 일단 승리하여 땅을 넓히고 마침내 통일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다.

마키아벨리가 이 책을 쓸 당시 이탈리아는 여러 왕국, 공국, 공화국이 서로 다투고 있었으며 주변 강대국의 위협까지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온갖 지략과 갖가지 모략이 넘쳐났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통일을 바랐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고전, 옛날 책, 옛날 기록을 읽으면서 현재 이탈리아의 분열 상황에서 과연 이기는 전략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정리하고 종합한다. 과거와 현재의 사례를 철저하게 파고들어가 사색하여 국가 통치술을 도출해낸다. "타인을 권력에 오르게 한 자는 스스로를 몰락시킨다."(50p)

'군주론'은 자기계발서나 처세술로 읽히기도 한다. 승리를 위한 전략을 끝없이 구상하고 여러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 궁리하는 글이니 그럴 수 있다. "인간들이란 충분히 만족시켜 주거나 짓뭉개야 한다."(43p) "친구를 만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친구를 만들어야 했다."(46p) 이런 류의 문장에 밑줄을 그면서 읽는 것이다.

처세에 능하지 못했던 자가 쓴 처세술 책이라니. 이 책 183쪽에 보면 마키아벨리의 생애가 나오는데, 인생 중후반부터 이 권력에 붙었다 저 권력자한테 붙었다 하며 아부하다가 별볼일 없이 살았다. 

'군주론'을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에게 바치지만 관직에 등용되지 못했다. 당연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음모 혐의로 투옥되었던 사람을 등용할 턱이 없지. 

로렌초 다음으로 권력을 쥔 추기경에게 '전쟁의 기술'을 저술해서 바치고 간신히 한직을 얻는다. 메디치 가문이 추방되고 피렌체가 공화국이 된다. 하지만 공직에 나가지 못한다. 메디치 가문에 협력했던 놈인데 누가 좋아했겠나. 

'군주론' 끝에서 아부를 하는데, 잘하지 못했다. 군주가 듣고 싶거나 도움이 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어쩌라고. 그게 먹히겠냐.

마키아벨리는 운이 없었다. 책 처음부터 끝까지 이 운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사무쳤던 모양이다. "제가 부당하게도 얼마나 거대하고 끊임없는 운의 원한을 견뎌야 하는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35p)

미드 보르지아를 보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전쟁, 살육, 음모, 배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극찬했던 체사레 보르자의 활약을 볼 수 있다. 지략이 제갈공명 수준이다.

문장은 간결하다 못해 바삭거린다. 논리와 사실과 증거와 예의 나열이다. 촘촘하게 쌓은 벽돌만 보는 셈이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쓴 것이다. 

"저는 유려한 미사여구나 요란하고 감동적인 말, 아니면 많은 이들이 자기가 만든 것을 묘사하거나 장식하기 위해 사용하곤 하는 감언이나 겉만 번드레한 윤색으로 이 책을 꾸미거나 채우지 않았습니다."(34p)

제대로 자세히 읽어내긴 어려운 책이다. 그래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펭귄클래식코리아의 번역본은 책 끝에 인명사전을 마련해 놓았고 서두에 1500년 당시 이탈리아 지도를 첨부했다. 아쉽게도, 그리고 이상하게도 장 제목들을 목차로 수록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각 장 제목은 중요하다. "마키아벨리는 본문에서 사용한 이탈리아어가 아니라 라틴어로 제목을 썼고, 이 제목들을 통해 군주는 신민들에게서 사랑을 바라야 하는지 공포를 바라야 하는지와 같은 전통적인 주제에 대한 토론을 제안했다. 독서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명확한 표지판을 제공했다."(20p)

1. 군주국의 다양한 종류와 그것이 획득되는 방식
2. 세습 군주국
3. 복합 군주국
4.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다리우스 왕국은 왜 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5. 각자의 법 아래에서 살던 도시나 공국들은 정복한 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6. 자신의 무력과 능력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7. 타인의 무력과 운의 도움으로 얻은 신생 군주국
8. 악행으로 권력에 오르는 자들
9. 시민 군주국
10. 군주국의 국력은 어떻게 측정되어야 하는가
11. 교권 군주국
12. 군사 조직과 용병
13. 원군, 혼성군, 자국군
14. 군주는 군을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가
15.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일들
16. 후함과 인색함
17. 잔인함과 자비함, 사랑을 받는 것이 두렵게 여겨지는 것보다 나은가 그 반대인가
18. 군주는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19. 경멸과 미움을 피할 필요
20. 요새, 그리고 군주들이 의지하는 오늘날의 다른 방편들은 유용한가
21. 명예를 얻기 위해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22. 군주의 개인적 막료
23. 아첨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24. 왜 이탈리아의 군주들은 그들의 국가를 잃었는가
25. 인간사는 얼마나 운에 지배되는가, 그리고 어떻게 운에 맞서야 하는가
26. 이탈리아를 야만인들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간곡한 권고

해당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며 해결책을 제시하는지 살펴보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서양 유럽 고대 중세 전쟁 역사에 익숙하다면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정치 군사 전략전술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읽었을 것 같다. 아직 안 읽었다면 이 책에 열광하게 되리라.

초판 1쇄 오탈자
57p 헤택 → 혜택

201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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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톰 버틀러 보던 | 센시오 | 2024년 2월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
흐름출판 | 절판 | 아래 쪽수 표시는 이 책이다.

자기계발에서 자아인식으로

수많은 자기계발서 중에 과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연하다면, [세계 자기계발 필독서 50 / 내 인생의 탐나는 자기계발 50]을 읽어 보라. 무턱 대고 이것저것 읽을 것이 아니라 추천 목록과 서평의 도움을 받아 읽는 것이 순리다. 50권에는 시대를 초월한 고전과 최근 베스트셀러가 자기계발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 묶여 있다.

책 제목만 보고 가벼운 책으로 짐작하지 말고 목차를 살펴 보라. 가장 처음 소개하는 책은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지만 마지막 서평 도서는 피에르 테아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자기계발을 주제로 한 책 소개로 보이나, 안으로 들어가 세부를 살피면 삶의 통찰과 자아인식을 종합했다.

여러 책을 탐색하는데 그 분야는 철학, 종교, 문학, 경제, 예술, 심리학 등을 물론이고 동서양의 고전을 포괄한다. 법구경, 도덕경, 바가바드 기타에 성경까지 등장한다. 삶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담겼다면 그 어떤 책이라도 기꺼이 파고들어갔다.

처음에는 가볍게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데 뒤로 갈수록 묵직한 주제와 낯선 책이 기다리고 있어서 통독하기가 쉽지 않으리라.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는가 하면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도 있다. 서평가는 책의 수준이 아니라 주제에 주목했다.

진정한 삶이란? 무엇이 행복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써내려갔던 이들의 책을 깊게 읽고 핵심을 짚어냈다. 글쓴이의 성실한 책읽기는 성지 순례처럼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노력과 정성이 글 한 줄 한 줄에 보인다. 그 어떤 책에도 편견을 갖지 않는 수용적 자세와 더불어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

흔히들 성공이란 건강, 부, 사랑, 행복, 명예 등을 뜻한다. 자기계발로 그것을 얻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고들 여긴다. 지은이는 그런 책을 소개하면서 그 너머를 펼쳐 보여준다. 버틀러 보던은 사람들이 바라는 그 모든 것을 소유했다가 한순간에 모두 잃게 될 처지에 있는 보에티우스가 죽기 직전에 감옥에서 쓴 '철학의 위안'을 “자기계발 영역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아무리 높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309쪽)고 평한다.

자기계발서는 말한다. “망설이지 말고 당장 해 봐라.” 그런데 사람들은 방금 읽은 대로 하지 않는다. 이를 거듭 경험한 사람에게는 ‘자기계발’이란 단어만 봐도 화가 난다. 그런 류의 책은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다. 그럼에도 삶이 힘들면 어김없이 자기계발서를 펴서 읽는다. 왜 그런가?

꿈을 이루기에는 현실이 녹녹치 않다. 책을 읽을 때 다잡았던 긍정적 사고는 짜증나는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로부터 들을 실망스러운 말과 그들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금세 잊힌다. 내면의 힘이 무쇠처럼 강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대체로들 그저 그리 된다.

당장의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니 현실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만이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하고 싶지 않을 일을 하는 데 하루의 대부분을 쓰니 성취하고 싶은 일의 실행은 계속 미룬다. 자기계발은 꿈으로만 머문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 “참아라.” 책에는 이런 말이 안 나온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성공은 운만 좋아서 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노력으로만 되는 것도 아님을 냉정하게 깨닫는다면, 위선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자아의 진정한 소망을 인식할 수 있으리라. 당신이 바라는 성공은 운과 노력이 필요하나 간절한 바람은 깨달음을 요구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잘할 수 있나? 그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나? 그런 의문에 답한 후에야 진정한 자기계발이 시작된다. 자기계발은 자아인식을 핵으로 감싸서 안을 때야 비로소 실천이 가능하다. 이 책은 ‘자기계발’로 출발해서 ‘자기인식’에서 멈춘다. “당신만의 독특함을 인식하고 표현함으로써 세상의 진화를 일으킨다.”(465쪽)

자기계발의 목표는 인간 잠재력의 발현이다. 진정한 삶은 행복과 성공을 초월한다. 자아실현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다.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배움의 길에는 실패도 끝도 없다. 오직 정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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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크리스마스
三毛猫ホ-ムズのクリスマス (1987년)
아카가와 지로 지음, 정태원 옮김
씨엘북스 | 2012년 5월
4점 ★★★★




단편소설집. 총 5편.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하루걸러 연휴

공원에서 연극을 하는데, 특이한 것은 시체 찾기 연극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홈즈 수사단은 진짜 시체를 발견하고 마는데... 연극을 해서 자수를 유도한다.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자장가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을 정신차리게 하려고 쌍둥이 언니와 연극을 한다. 아이를 인형이랑 바꿔치기 한 것이다. 그리고 언니가 자기 대신 있게 했다. 놀란 남편은 더 놀라는 데, 자기 아내(실은 언니)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왜 죽였을까?

1980년대 당시 일본 엘리트의 일상과 무례함이 잘 담겨 있다.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이혼 상담

남편이 살해된 부인을 만난 가타야마 형사. 알고보니, 지난번 백화점에서 자신들의 물건을 훔쳐갔던 여자다. 왜 그랬을까?

사건의 정체는 다소 말도 안 되는 이중혼과 불륜으로 남자 하나가 여자 셋을 어장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통근 지옥

출근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린 가타야마 형사. 신고한 여자는 나중에 다시 형사를 찾아와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크리스마스

홈즈 수사단은 겨울 방학에 여학생 기숙사로 간다. 가타야마 형사가 친구 대신 경비를 서기로 한 것. 그런데 그 친구는 결혼하고 신혼 여행을 떠나기로 되어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는 신랑이 결혼 취소라는 전언만 남겼다며 학교 기숙사로 되돌아 왔다.

그 친구가 그럴 친구가 아닌데... 형사는 의심한다.

친구/신랑은 기숙사 2층 방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용의자는 주변 여자들. 범인이 자백한다. 반전 있음.

국내 번역 출간된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총 10권을 다 읽었다. 1권 추리 편만 추천한다. 나머지는 1권을 능가하지 못했다.

202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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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인물 묘사의 악마적 탁월함

중학생 때 이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정말 지겨웠다. 무슨 사람들이 나와서 조잘조잘 수다만 떨고 뭘 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다. 고작 뭘 한다는 게 춤추거나 독서, 산책, 혹은 카드놀이라니. 그땐 정말 재미없었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가 넘으면 이 책은 어릴 적과는 다르게 읽힌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소설은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세상의 슬픔과 절망을 배제한다. 전쟁도 죽음도 질병도 실업도 가난도 없다. 특별한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고작 날씨다. 비가 와요. 사람들은 춤추고 밥먹고 카드놀이를 하며 산책하고 편지를 쓴다.

이 소설은 초고가 있었는데 그 제목은 '첫인상'이었고 서간체 소설이었다. 완성된 원고에 편지가 자주 나오는 건 그래서고 첫인상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짐작이지만 초고는 집안 반대로 결혼이 무산된 상태의 감정이 넘치는 상태에서 썼을 것이고 개고를 거듭하면서 과도한 감정은 제거되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 끝까지 놀랍고도 불편했던 점은, 남자의 돈과 여자의 외모를 노골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선언/농담/격언 같은 첫문장이라니. "부유한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시공사 9쪽)

다시 읽어 보니, "제가 원하는 진정한 찬사는 저를 진실된 사람으로 보아주는 것이에요."(시공사 139쪽) 이런 대사도 있다. 역시 명작이다.

작가가 모든 등장인물에게 공평하다는 점도 주목되는 특징이다. 그 어떤 연애소설에서도 보기 힘든 이야기 기술이다.

이 소설이 유쾌한 것은 단지 해피엔딩이라서가 아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자기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행복하다는 점이다. 자신의 장단점이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으면서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는 점이 유쾌한 것이다.

"저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의 판단이 어떠하든 개의치 않고, 제 판단에 따라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그대로 행동하기로 마음먹었을 뿐입니다." (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466쪽)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천한 것이 감히 내 조카랑 결혼하려 든다며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온갖 모욕을 퍼붓는 부잣집 나이든 여인에게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당당하고 확고하게 하는 말이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지 않았을까.

인간의 약점을 비웃으면서도 냉소적이진 않다. 이 점이 내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다. 다른 풍자소설은 불편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풍자소설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은 단연 콜린스다. 그는 웃기는 데 천하무적 캐릭터다. 다아시 따윈 상대도 안 된다. 

이 작품은 좀 답답한 구석이 있다. 작가는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거나 말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군대가 언급되는데, 제복 얘기만 반복할 뿐이다. 전쟁 같은 사회적 불안은 되도록 자세한 언급을 자제한다. 한사상속을 여러 번 외치기만 할 뿐 남녀평등을 주장하진 않는다. 남녀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을 언급하지만 감히 그 질서를 전복하겠다는 말은 삼간다.

우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거절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남다른 듯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작가의 결혼 실패와 겹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돈이냐 사랑이냐의 문제는 표면적인 문제이고 사랑이든 결혼이든 자기 소망대로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슬픈 일이니까.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묘사는 악마적인 탁월함이 있다. 그 어떤 소설에서 이토록 간결하고 명확하게 사람을 조각해낸 문장을 읽어본 적이 없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 듯한 생생함과 옆집 아줌마의 수다를 듣는 듯한 편안함과 클래식 음악을 듣는 듯한 고상함이 마법의 황금 비율로 섞인 글이다.

"키티와 리디아는 그 사람(위컴)의 변심을 저(엘리자베스)보다 더 슬퍼하고 있답니다. 아직 어려 세상의 이치를 모르니, 못생긴 청년이든 잘생긴 청년이든 먹고살 것은 있어야 한다는 굴욕적인 깨달음을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죠."(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205쪽)

'오만과 편견'이 연애소설 결혼 판타지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문장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결혼에 대한 환상에만 매달리거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넣어서, 오히려 소설이라기보다는 처세술로 보일 정도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에서 계속 돈 얘기를 한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내가 정말 좋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보다도 적어. 나는 세상에 대해 알수록 세상이 점점 싫어져. 사람들은 모두 모순투성이고 겉으로 드러난 장점이나 양식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내 믿음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으니까."(펭귄클래식코리아 특별판 185쪽)

작가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 결혼이 무산되고 독신으로 지냈어야 했던 이유를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를 통해 항변하듯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 리지의 언니인 제인을 통해 인식의 균형을 잡아 다시 생각을 정리하는 걸 보면, 왜 이 소설이 고전이 되었으며 왜 연애소설의 차원을 넘고 있는지 보여준다. 제인이라는 이름은 영어권 사회에서 흔하지만 작가와 등장인물의 이름이 같은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다지 잘난 게 없지만 나름 착하고 성실하고 똑똑하고 그냥저냥 못생기진 않은 여자가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 이 한 문장은 오늘날까지 지속되는 로맨스 소설의 뼈대를 말해준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이후 불멸의 플롯이다.

'오만과 편견' 영상물은 1995년 BBC 드라마와 2005년 영화가 유명한데, 나는 드라마 쪽이 좋다. 제인은 영화 쪽이 마음에 들고 엘리자베스는 드라마 쪽이 마음에 든다.

오만과 편격 각 번역본의 특징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민음사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원유경 옮김/열린책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고정아 옮김/시공사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김정아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오만과 편견 - 전2권 (한글판 + 영문판)
제인 오스틴 지음, 김유미 옮김/더클래식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선 옮김/현대문학

세계문학전집 작품 중에 가장 인기가 있을 게 분명한 <오만과 편견>은, 고전이라 불리는 소설 중에 가장 쉽고 편하고도 빠르게 재미있게 읽힌다. 남자가 번역한 건 피하라. 너무 점잖다. 어찌나 갑갑한지.

시공사 고정아의 번역은 간결하면서도 베넷 부인의 오도방정을 잘 살렸다. 참고로, 이 책에는 버지니아 울프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 평한 글을 부록으로 실었다. 분홍빛 표지가 예뻐서 많이들 사기도 한다.

펭귄클래식코리아 김정아의 번역은 합쇼체를 주로 하되 간간히 해요체를 섞어서 화자를 확연하게 드러내는 식이다. 이는 간결하게 '다'로 끝나는 문장으로 번역한 대다수와 확연히 다르다. 화자를 되도록 인식하지 않고 이야기 자체에 몰입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더클래식은 가격이 싸서 번역이 좋지 못할 거라 의심하기 쉬운데,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다.

열린책들 번역은 무난해서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는 책은 민음사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재산깨나? :-) 감정을 넣어서 단어를 넣었다. 이런 문장이 잘 읽히고 이해도 잘 되는 편이다. 

최근에 나온 현대문학 판은 삽화가 있는 게 특징이다.


번역 비교 평가

'오만과 편견'을 원문으로 읽으니 만만치 않다. 번역본 네 개랑 같이 봐도 인터넷 검색을 해도 도저히 for a kingdom! 이 숙어 뜻을 '정확히' 모르겠다. 열린책들 번역문(정말이지!)을 보면 대략 짐작은 가지만. 사전에 안 나온다.

번역에 정답은 없다. 선호가 있을 뿐. 때론 생략이나 첨가 혹은 변형도 필요하다. 단어 선택에 직면하면 번역자의 취향과 경험에 좌우될 것이다.

딱 한 문장만 봐도 번역이 제각각이다.

I quite detest the man.
그 남자 정말 싫어요. - 열린책들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었어요! - 시공사 고정아!
나는 그 남자가 정말 싫어요. - 펭귄클래식코리아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남자예요. - 더클래식

고정아 번역은 참 뭐라 해야 하나. 이건 뭐 원문을 능가해버리니. 번역은 그만하고 어서 소설 쓰세요. 언어 구사력이 이 정도면 번역에 자기 재능을 낭비하는 거다.

전반적인 느낌으론 이렇다.

시공사 : 고정아는 단어 선택의 맛을 안다. 번역이 단순히 원문을 잘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원문을 우리말로 돋보이게 창조하는 예술임을 보여준다.
펭귄클래식코리아 : 직역과 의역이 혼재. 어미를 요나 습니다로. 이 점은 호불호가 극명.
더클래식 : 의역이 많은 편이고 원문에 없지만 분위기상 어울리는 문장을 추가하거나 변형했다. 읽기에는 편할 것이다. 그러나 원문 충실도는 떨어짐.
열린책들 : 원문에 가까운 번역. 원문의 문장 구조와 순서를 잘 지킴. 원서랑 같이 읽기에는 가장 좋다.

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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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깜짝 상자
三毛猫ホ-ムズのびっくり箱 (1987)
아카가와 지로 | 씨엘북스 | 2012년 3월
4점 ★★★★ 괜찮네요




단편소설집. 총 6편.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깜짝 상자

빈 상자를 보고서 살해당할 수 있을까? 상자라는 소재에 맞춰 범죄를 꾸며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에 웃기는 한 방이 있다.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명연주

장편소설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랩소디에 나왔던 인물이 재소환되었다. 연주 중 중간 휴식 시간에 단원 한 명이 살해당한 것을 발견한다. 콘서트마스터한테 물어 봐도 범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없다는데...

살인이 아니었다는 해프닝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패닉

신축 건물. 건물주가 구두쇠라서 부실 시공. 건물이 기울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등이 찔린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건물이 무너져, 현장 검증을 할 수 없다. 사건을 재현하면서 피가 좌우로 흐른 이유를 찾아 보는데...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유령 퇴치

홈즈 수사팀이 유령 나온다는 집에 간다. 거울 뒤 방에서 남자 시체 발견. 왜 유령 흉내를 낸 것일까?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피로연

결혼식 피로연. 신부가 살해당한다. 하루미가 신부를 대신해서 위장하는데... 서로 알리바이 만들어주는 식이었다.

-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보물찾기

보물 지도 믿고 땅을 파다가 파산해 버린 남자 이야기. 실은 보석 도둑이 보물을 묻어두고 거길 남자가 파게 하려는 것이었다.

202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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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08년 초판

히가시노 게이고는 소설 '악의'에서 인간성의 단면을 날카롭게 묘파해냈다. 추리소설 장르에서 안주하는 그저그런 이야기로 쓰지 않았다. 범인 찾기 놀이와 트릭 보는 재미로 독자를 위한 놀이 한마당을 열고 잊혀지는 소설이 아니었다. 이토록 읽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다니. 놀라운 솜씨다. 

소설 주인공 가가 형사의 수사만큼 끈질기게 기필코 우리 모두에게 있을법한 '그 괴물'을 기어끼 꺼내 코앞에 들이댄다. 이런 악의적인 작가는 그동안 만나지 못했다. 스콧 스미스의 '심플 플랜' 이후 이런 작품은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잘 팔리는 작가라고 해서 어떻게든 책에서 못난 점을 찾으려고 혈안이었다. 아무리 잘 써도 그냥저냥 괜찮네 정도로 폄하시켜 내가 소설을 쓰지 못하는 불행을 감추고 싶었으리라. 그래, 어쩌면 나도 또 한 명의 노노구치이리라. 이름부터가 마음에 안 들더니. 

초반부 서술 트릭을 읽을 때만 해도 별 기대를 안 했다. 뻔히 나 범인이라고 말하는 문장과 이 수기는 제 멋대로 꾸며낸 거라는 게 확연히 보였다. 시시하게 끝나겠네. 하하핫. 드디어 이 작가 씹어 줄 때가 되었다고 속으로 엄청 좋아했다. 후반부를 읽을 때까지도 여전히 나는 이 작가를 어떻게든 깔아뭉게 버리고 싶었다. 예상했던 반전이었다. 그래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

마지막 세 쪽에서 지고 말았다. 담배를 피울 수 있으면 좋으려만,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그저 찹찹한 심정을 삼키고 한 마디만 덧붙인다. 최고다.

악의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19년 개정판

개정판으로 다시 읽은 '악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작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감상은 달라졌다. 세월도 많이 지나서 그런지, 트릭과 결말을 어느 정도 알고서 다시 읽어서 그런지.

당시 시대 기술 수준이 그대로 나오고 있어서 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포토앨범시디라니. 스마트폰, 인터넷, AI 시대에는 고대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서술 트릭을 이 정도까지 완성시켰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서술 트릭.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호불호가 갈린다. 범인과 수법이 가장 나중에 밝혀지는 식을 선호하는 추리소설 애독자한테는 이 작품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초반에 범인과 수법이 밝혀지고 게다가 신뢰할 수 없는 화자 1인칭 시점 수기라니. 추리소설에서 싫어하는 것이 한 개도 아니고 두 개 연속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악의라는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정교하게 디자인된 작품이다. 반전 추리소설 기술력을 보여준다. 이게 최고가 아니면 뭘 최고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소설에서 바라는 것은 재미와 감동이다. 둘 다 있으면 좋지만, 둘 다 소설에 쓰기는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악의'보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더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이제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소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선해도 미움을 받는다는 얘기다. 심지어 악의를 품어 선한 자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인간 본성의 악한 측면을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악플 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수밖에 없나 보다. 집단 따돌림과 학교 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그저 계속 외면할 것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버렸다.

학교 폭력(집단 따돌림)을 다루고 있지만 속시원하게 뭔가 해결해 주는 건 없다. 소설 '악의'는 좀 과하게 요약하면 악플 다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고양이 독살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서술 트릭. 추리소설에서 1인칭 서술이 시작되면 거르는 게 낫겠다.

작가는 독자를 속이는 재미로 독자는 속는 재미로 추리소설을 읽는다지만 읽은 후 허무함을 달래줄 게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재미있었잖아? 그래 최고로 재미있었다. 그럼 됐지 뭐.

202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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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왜 짧은가 - 세네카의 행복론, 인생의 의미를 찾는 오래된 질문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도서출판 숲 | 2005년 10월

이 책 '인생이 왜 짧은가'는 세네카의 저작들 중에서 '대화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10편의 에세이에서 4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인생의 짦음에 관하여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행복한 삶에 관하여

편지 형식으로 읽는 이한테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세네카의 글을 읽으면서 무척 놀랐다. 이거 어디서 이미 읽은 내용이었다. 헨리 소로우의 '월든'과 아놀드 베넷의 '시간관리론'은 세네카의 글을 가져다 썼다고 해도 될 만큼 이 옛날 사람 세네카가 쓴 글을 자기 식으로 조금 변형했을 뿐이었다. 소로우와 베넷한테서 배신감을 느낄 정도였다.

어쩌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근본적으로 없는 것이라, 이미 옛날 사람들 한 말, 한 고민, 한 생각을 오늘날 사람들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리라.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혹은 행복하고자 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고통, 고난, 실패, 불행, 불운에 시달리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자기계발서를 아무리 비난한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계발서의 핵심은 외부적 환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면, 내심, 의지, 마음을 바꾸거나 굳건하게 하는 것이다. 닥치는 불행,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부다. 세네카의 글은 이 마음가짐에 대한 친절하고 자상한 충고이다.

착한 사람한테는 복이, 나쁜 사람한테는 불행이 온다는 것은 산타만큼이나 거짓말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 나이에 과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철학적인 문제이자 당장에 현실적인 고민이다.

왜 착한 사람에게 불행이 닥치냐는 물음에, 세네카는 '섭리에 관하여'에서 직접적인 답이 아니라 우회적인 해설을 내놓는다. 선한 이에게 불행으로 오히려 더 단련되고 더 인간답게 처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한 이에게 행운은 그 사람을 더 악으로 이끌어줄 뿐이란다. 동문서답인데, 결국 인생의 길흉화복 자체는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그러니까 노력하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것 자체의 덕목을 유지하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였다.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에서도 세네카는 같은 견해/태도를 유지한다. "우리의 마음은 모든 외적인 것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네.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 것을 존중하고, 남의 것을 되도록 멀리하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어야 하네." 116쪽 이에 따라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외부의 불행, 행운, 부, 명예, 병, 기타 등등에 그다지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인생의 짦음에 관하여'에 보면 사람이 왜 인생을 낭비하고 허투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이 글은 아놀드 베넷의 '시간관리론'과 무척 비슷하다. 소로우의 '월든'을 읽는 듯했다. 그러면서 실용적인 해결보다는 더 근본적 인식을 제시한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계속 불안하고 불만에 사로잡힌다. 왜? 답은 간단하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남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고 있지요." 11쪽 바쁘게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작 그게 그다지 중요하지도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니까 시간을 낭비한다. 그러다 세월이 흐르고 왜 이렇게 인생이 짧은가 한탄하게 되는 때가 온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지금 자기계발서 뭘 읽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당장 덮고 이 책을 읽기 바란다. 나도 웬만한 자기계발서는 두루 읽어 봤다. 그리고 많이 실망하고 많이 낙담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세네카는 성공이 아니라 성공 그 자체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차분하고 진솔한 어투로 말해주고 있다.

도대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세네카는 '행복한 삶에 대해여'에서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에 기초하고 있어 동요하는 일이 없는 생활"(175쪽)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올바르고 확고한 판단이 바로 철학, 인생와 세상에 대한 생각, 좁혀 말하면 스토아 철학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행복하려고 너무 애쓰기 때문이다. 행복하려고 애면글면 집착하는 것을 버리고 담대하게 인생을 사는 것이 진짜 행복이다. 세네카가 그토록 침착하게 자살 명령을 수행했던 것은, 이같은 철학 때문이다.

가장 훌륭한 삶을 살았으나 참으로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세네카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며 자결함으로써 자기 철학을 몸소 실천하여 완성한다. "그들이 가끔 죽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은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지요." 52쪽 세네카는 자기 성찰로 죽음마저 평정한다. "자유는 운명에 무관심할 때에만 얻을 수 있어요."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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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록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Ta eis heauton
열린책들 | 2011년 12월
5점 ★★★★★ 끝내줍니다

내면의 신성 추구를 위한 부단한 자아성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쓴 명상록은 철학 서적이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책이다. 본인이 스토아철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혹은 이 철학사상을 정리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전쟁 중 틈 날 때마다 자아성찰을 위해 썼다.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블로그 일상글 같은 것이다. 물론 그 수준과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미드 시청에 빠져 있다 보니, 넷플릭스가 사람 잡는다, 책을 거의 안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블랙 세일즈를 보다가 책이 나와서 드라마 시청을 마치고 드라마에 나온 책을 읽기 시작했다.

명상록은 이미 읽은 책이지만 드라마 블랙 세일즈에서 인상적으로 남았기에 그 낡고 익숙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새롭게 다가왔다.

블랙 세일즈에 나오는 여자 캐릭터가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데, 자신이 현재 처한 불우한 상황에서 굳굳하게 살아남기 위한 터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는 온갖 부조리, 타락, 배신, 범죄, 살인, 권력투쟁, 모략이 뒤덮고 있는데 이런 철학책이라니. 놀라운 대조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 책의 구절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히는 바위처럼 되어라. 바위는 동요할 줄 모르며, 거친 바닷물은 그의 발치에서 잠든다."이다. 제4권 49절.

한때 철학 서적을 꾸준히 다양하게 많이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종교만큼이나 철학에 회의적인 생각이 든 후부터는 철학 책을 안 읽었다.

어떤 철학 도서를 읽든 어쩐지 궁극적인 답이 없는 질문만 계속 들 뿐이고 결국 다 하나의 의견일 뿐이고 절대적으로 옳거나 타당하고 말할 수 있는 철학 사상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실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철학서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문학서적은 재미라도 있지, 철학책은 그딴 것도 없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철학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건 예술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처럼 자기 편할 대로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외부 세계가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자꾸만 심란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펴서 아무 데나 읽어 보라. 마음을 다잡고 인생을 제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세우라. 물론 스토아철학을 진리로 받아들이라는 말은 아니다. 스토아철학을 자신의 인생의 지침으로 여기라는 뜻도 아니다.

삶의 불행과 역경, 요즘 같은 불황과 심리적 절망에 굴하지 말고 굳굳하게 살아라. 그러고자 할 때 이 책이 위안이자 격려가 될 것이다. 설령 행운과 경제적 풍요를 맞이한다 하더라고 사람 내면의 강건함이 없으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마르쿠스가 이 책 자성록에서 끝없이 되내이듯 우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안다면, 그것이 철학의 시작이요 내면 성찰의 핵심이 되어 사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용기 있게 참고 견디는 것은 행운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제4권 49절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행운을 즐기는 것보다는 불행을 이겨냄에 있는지도 모른다.

# 더 읽을만한 책

스피노자 '에티카' - 스토아 철학을 체계적인 윤리학으로 발전시켜 집대성한 책이다. '명상록'과 같은 맥락의 글이면서 확장된 모습이다.

에픽테투스 '엥케이리디온' - 스토아 철학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선배 되는 이의 대표적인 저서이다.

세네카 '행복론' - 스토아 철학자

파스칼 '팡세' - '명상록'의 문체와 비슷하다.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 문체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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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Die Ethik (1677)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서광사 | 1990년 10월
5점 ★★★★★ 끝내줍니다

영원하고 무한한 신에 대한 사랑
신은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이다

동양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사상가는 이탁오였다. 그럼 서양에서 욕사발을 가장 많이 들이켜야만 했던 철학자는 누구인가? 바로 바루흐 스피노자였다. 이 둘은 추방당하고 자신이 쓴 책이 금서로 묶이고 미치광이 취급을 받았다. 이들이 한 일은 집 안에 앉아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썼을 뿐이다. 문제는 그들의 사상이 기존 권력 세력의 질서에 대항한다는 점이다.

사상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방은 땅 속에 묻힌 관이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존경받는 인물이 그가 단지 다르게 생각하고 위선적으로 처신하지 않는다는 그 이유 때문에 국가를 반역한 사람처럼 취급된다면, 국가에게 이보다 더한 불행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왜 스피노자는 아웃사이더가 되었나? 그의 철학 체계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스피노자(1632-1677)의 대표작, 에티카. 본래 제목은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증명된 윤리학'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형이상학으로 시작해서 존재론을 논하며 인식론을 거쳐 윤리학에 이른다. 그리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이야기한다.

스피노자는 일원론자다.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은 신이다. "동일한 본성을 소유하는 실체는 오직 하나밖에 존재하는 않는다." 그 실체가 신이다. 그것만이 무한하고 영원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으며, 신 없이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도 또 파악될 수도 없다." "모든 것은 신의 힘에 의존한다." 정신과 물체는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일한 실체인 신의 변용이다. 주의! 사람들이 스피노자의 철학을 '범신론'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모든 것은 신이다!'라고 생각한다면 바보다. 

다시 말해, 실체의 변형과 실체 자체를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혼동하는 사람들은 "신의 본성과 인간의 본성을 혼동하는 사람은 신에게 쉽사리 인간의 정서를 부여한다." 또 신의 능력을 왕의 능력이나 권능으로 착각한다. 자, 여기서 스피노자가 그 당시 기독교 사상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밝혀진다. "많은 사람들이 신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열정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착각이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인격신은 엉터리다. 왜냐하면, 신은 육체도 정신도 아니며 모든 것의 존재 원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자. 기독교의 논리는 "신이 인간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신을 숭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을 만들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인간은 신의 목적을 위한 존재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날 때부터 사물의 원인을 모르고,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충동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정신과 신체로 성립되며, 인간의 신체는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대로 존재한다. 인간 정신의 대상은 오직 존재하는 신체일 뿐이다. 

이래서, 스피노자가 말하는 덕은 단순하다. 덕의 기초는 각자가 자신의 유(有)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그렇기에, 스피노자는 공자처럼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자유인은 결코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성찰이다."

인식론으로 접어든다. 사람들은 같은 사물이나 사건을 왜 그리 다르게 판단하고 다르게 보는가. 그것은 사물을 지성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인식을 세 종류로 나눈다. 첫째, 감각이나 기호를 통해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표상한다. 둘째, 사물의 성질에 대하여 공통 관념을 소유한다. 이것을 이성의 인식이라 부른다. 

셋째, 직관지(直觀知)다. 참된 인식은 두 번째와 세 번째다. 감각은 사물을 우연으로 고찰한다. 이성은 사물을 필연으로 고찰한다. 사람은 열정에 복종하여 자신의 본성을 잃기 쉽다. 열정적인 정서에 예속당한다. 그래서 불안하고 불행하다. 참다운 덕은 이성의 지도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성상 언제나 필연적으로 일치한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고 행복하다.

스피노자는 여러 가지 정서를 세 가지로 압축한다. 기쁨, 슬픔, 욕망. 다른 여러 종류는 이 세 가지의 변형이다. 예를 들어, 희망이란 우리들이 그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의심하는 또는 과거의 사물의 관념에서 생기는 비연속적인 기쁨이다. 자기 만족이란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기의 활동 능력을 고찰하는 데서 생기는 기쁨이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기쁨은 직접적으로는 악이 아니고 선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슬픔은 직접적으로 악이다." "기쁨에서 생기는 욕망이, 다른 사정이 같을 경우, 슬픔에서 생기는 욕망보다 강하다." 기쁨은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요약하자. "정신이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이 신적 본성의 필연성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특히 염두에 두며, 따라서 그가 불쾌하고 악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과 불경스럽고 혐오스럽거나 옳지 않고 수치스럽게 보이는 것은 사물 자체를 전도되고 훼손되게 그리고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데에서 생긴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 그러므로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하며, 참다운 인식의 장애들, 즉 미움, 분노, 질투, 조롱, 오만과 우리들이 앞에서 주의한 여러 가지를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들이 이미 말한 것처럼 가능한 한 선하게 행동하며 즐거워하려고 하는 일에 노력한다."

사람의 기쁨 중에 가장 큰 것은 신을 인식하는 일이다.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이는 직관지(直觀知)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명석 판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신을 사랑하며,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서를 더 많이 인식하면 할수록 더욱더 신을 사랑한다."

영원하고 무한한 그 무엇에 심취한 적이 있는가. 그것을 느끼거나 깨달은 자는 많지 않다. '에티카'의 마지막 문장이 그 이유를 말해 주는 듯하다. '철학하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스피노자는 이렇게 쓴다. "이제 여기에 이르는 것으로서 내가 제시한 길은 매우 어렵게 보일지라도 발견될 수는 있다. 또한 이처럼 드물게 발견되는 것은 물론 험준한 일임이 분명하다. 만일 행복이 눈앞에 있다면 그리고 큰 노력없이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서 등한시되는 일이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모든 고귀한 것은 힘들 뿐만 아니라 드물다." 보통 "사람들은 돈의 관념을 원인으로 동반하지 않는 어떤 종류의 기쁨도 거의 표상할 수 없다."

스피노자는 신에 취해 있었다. 영원하고도 무한한 자유인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유태인 공동체에서 추방되어도 이교도로 무신론자로 낙인찍혀도 자신의 사상을 지켰다. 홀로 살며 렌즈를 연마하여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행복했다. 1673년 하이델베르크 교수 초빙 제의를 사상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정중히 거절한다. 이처럼 인간의 위대한 정신은 세속의 욕망을 초월한다. 바루흐 스피노자, 그의 고독은 신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였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에티카'로 오늘날까지 전한다.

199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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